교황 요한 23세의 위대함은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는 점에만 있지 않다. 그는 공의회를 소집함으로써 세상을 향하여 교회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의 영적 일기에 실린 '다짐 열 가지'에서 우리는,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과 현실에 능동적으로 관여하는 자세의 일치를 엿볼 수 있다.
“오늘 나는 현재를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 삶의 모든 문제들이 단번에 해결되기를 바라지 않겠다.
... 다른 이들의 잘못을 바로잡기보다는 나 자신을 개선하는 데에 힘쓰겠다.
... 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묵상하겠다.
... 상황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 나를 맞추도록 하겠다.
... 좋은 책을 읽는 데 10분이라도 시간을 내겠다. 영혼도 육신처럼 양식이 필요하다.
... 선을 행하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겠다.
아니, 나조차도 내 안의 거부감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하느님은 반드시 내 곁에 계신다는 점을 굳게 믿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평생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괴롭히지 말고 좌절하지도 않겠다.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꼭 지키도록 하겠다. 열두 시간, 선을 행하기 위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두 시간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기쁨이자 마음의 평화이며, 많이 눈감아주고 적게 꾸짖는 데에 있다. 하느님의 뜻 말고 내게 관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계략이나 정치에 능수능란해선 안되고, 학문에 통달한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충분하다. 자비와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하느님은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가로 나를 판단하지 않으신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실천했는가 하는 점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마음과 의도를 보실 뿐 다른 것은 요구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목자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서 성인이 될 수 있지만, 빗자루를 손에 들고서도 성인이 될 수 있다."
빅토르 -요제프 다메르츠 주교(아욱스부르크 전 교구장)는 이렇게 평했다.
“나는 그의 깊은 믿음에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면이 있는 것에 깜짝 놀랐었다. 그의 신앙은 용기와 힘의 원천이며, 자기 계획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다 믿음 때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교회 일치를 위한 공의회를 소집했다는 점이다. 그는 소박하게 사람들을 대했고, 사람들은 그런 명랑하고 따뜻한 모습에서 친근함을 느꼈다. 쿠바에서 시작된 정치적 위기로 또 다른 세계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닥쳤던 1963년에 공표한 회칙 <지상의 평화>는 전 세계에서 지지를 얻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방 소토 일 몬테에서 가난한 농부의 열네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명은 안젤로 쥬세페 론칼리이며,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기에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고자 사제를 지망하여 1904년 신학박사와 사제서품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의무병으로, 군종사제로 복무했다. 1925년 주교서품을 받았으며, 1934년 대주교로 승품된 후 터키와 그리스의 교황 사절로서 이스탄불에서, 교황청에 적대적인 터키 정부의 각료들과 우정을 맺으며 동방교회와의 관계 개선과 교회 일치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에 점령당한 그리스를 돕고 유대인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철수한 1944년 12월 22일부터 파리 주재 교황청 대사로 임명되어 프랑스 교회의 쇄신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1953년 1월 12일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된 후 1월 15일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로 임명되었다.
1958년 10월 9일 교황 비오 12세가 선종한 후 제261대 교황(1958년 10 월 28일-1963년 6월 3일 재위)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77세의 고령이었기 때문에 그는 교황직을 최소한으로 수행하다가 갈 '과도기적 교황',' 징검다리 교황' 정도로만 보였다. 하지만 교황 즉위 이듬해인 1959년에 그는 두 번째의 바티칸 공의회(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1869-1870년 개최) 소집을 공표하고, 1962년 10월 11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막을 열었다. 공의회 소집의 목적은 "Aggiornamento", 즉 교회의 쇄신이었다. 또한 회칙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1963년 4월 11일 공표)를 발표하는 등으로 세상의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도 세계 각지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1963년 5월 22일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에게 마지막 인사와 함께 축복을 주고는 그해의 성령 강림 대축일인 6월 3일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Papa buono”, 즉 "좋으신(착한) 교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는 2000년 9월 3일 시복되었으며, 2014년 4 월 27일 성인품에 올랐다. 요한 23세 교황은 시성에 필요한 두 번째 기적 심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거룩한 인물이며,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공로를 교황청 시성성이 인정한 까닭이다. 성 요한 23세 교황의 축일은 일반적 관례에 따라 선종한 날인 6월 3일이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일인 10월 11일로 변경되었다.
박규희 옮김
(마리아지 2024년 5•6월호 통권 245호에서)
☆ 영성 잡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리아지를 구독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리아지는 격월지로 1년에 6권이 출판되며 1년 구독료는 18,000원입니다.
주문처 : 아베마리아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