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스코 정신과 이태석 신부 (1) / 백광현 신부
돈보스코 정신과 이태석 신부
-- 살레시오 수도회 백광현 신부
故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톤즈에 파견된 살레시오회의 사제이며 선교사이다. 살레시오회는 이탈리아의 사제이며 교육자였던 요한 보스코 성인이 1859년 청소년 교육을 위해 설립한 수도회이다. 현재 1만 6천명의 회원이 전 세계 131개국에서 청소년들, 특히 가장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하며 위험에 처해 있는 청소년들의 교육과 복음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태석 신부는 KBS 1TV의 다큐와 영화『울지마 톤즈』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참사랑의 불씨를 붙여놓았다. 이태석 신부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좀더 알고 싶어 하고 그의 뜻을 따라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그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태석 신부의 삶과 영성을 함께 나누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객관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스콜라 철학에는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는 명제가 있다. 이 명제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적 본질에서부터 구체적인 활동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태석 신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내적 가치와 영적 정체성을 형성했던 본질이 무엇인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태석 신부가 살레시오회에 입회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살레시오회의 사제요 선교사로 양성되었는가 알아볼 필요가 있다.
1. 살레시오 수도회 안에서 양성: 제2의 돈보스코 되기
살레시오 회원이 된다는 것은 돈보스코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청소년들에게 착한 목자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살레시오 회원은 돈보스코 안에서 ‘자신의 성화의 길’(회헌 2)을 발견한다. 이태석 신부는 살레시오회에 입회해서 사제가 되기까지의 양성 과정을 통해 돈보스코의 모습을 닮은 사제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1.1 예비수련기
이태석 신부는 1991년 8월, 서울 대림동에 있는 살레시오회에 예비수련자로 입회하였다. 이듬해, 광주가톨릭대학교 철학과에 편입하여 수도회의 사제 지망 지원자로 1학년을 보내면서 그는 자신의 창의력과 음악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지원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해 여름 캠프 프로그램 준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태석 신부는 음악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것을 신앙 체험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룹사운드를 전례와 캠프에 도입하면서 청소년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철학과 1학년을 마친 뒤 1993년 수도자가 되는 삶을 배우기 위해 대전 정림동에 있는 수련소에 입소해 일 년간 살레시오 회원으로 살아갈 구체적인 준비를 하였다.
1.2 수련기
살레시오 수도회 안에서 ‘수련기’(修練期)는 수도자로 살아가기 위해 모든 외부적인 활동을 멈추고 공동체 생활과 기도, 수도회의 영성과 창립자인 돈보스코의 정신을 배우고 심화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보내면서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성소 선택 동기를 심화시켰고, 신앙 정신을 습득하여 살레시오적인 가치를 삶으로 소화해냈다. 그는 젊은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은총을 청했고, 기도와 사도적 활동을 결합시키는 일치의 은총, 활동하는 관상가가 되기 위해 힘썼다.
이태석 신부가 수련기 동안에 터득한 것은 ‘살레시안적인 삶의 방식’이다. 살레시안적 삶의 방식이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안에서 가장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아낌없이 발휘하는 것이다. 그는 이 시기에 ‘청소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창립자 돈 보스코가 원하는 살레시오 회원의 모습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렇게 살기 위해 1994년 1월 30일 첫서원(First Profession)을 하면서 온전한 자유의지로 자신을 오롯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살레시오회의 ‘수사’가 되었다.
1.3 실습기
이태석 신부는 1994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2학년에 복학하여 철학 과정을 마치고 이듬해 서울 대림동에 있는 ‘살레시오청소년센터’에서 2년 동안 가난하고, 소외되고, 위험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돌보면서 실습기를 보낸다.
‘실습기’는 청소년들과 함께 살면서 교육적이며 사목적인 경험을 통하여 살레시오 활동을 실제적이며 본격적으로 접해 보는 시기이다. 이때 이태석 신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제2의 돈보스코’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대림동의 청소년들을 마음으로 사랑했고 그들로부터 사랑받는 살레시안이 되었다. 그때 아이들은 이태석 신부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
이태석 신부가 로마 유학 중에 관구장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를 아는 우리 아이들 특히, 정말 보고 싶은 대림동 아이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인사로 전해 주십시오”라고 쓴 것을 보아도 청소년들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태석 신부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후 대림동 공동체에서 투병 생활을 할 때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대림동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많이 받았었다. 필자 역시 이태석 신부와 9년을 함께 산 동기로서 몇 가지 제안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는 “난 형제들과 아이들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 사람이 진짜 살레시안이구나!’라는 생각에 내심 고맙기도 했다. 이태석 신부는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교육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받는 교육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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