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시의 날 기념 국제시낭송회 주한 헝가리문화원에서 열려
한국과 헝가리 문화의 가교역할 기대
지난 4월 11일 오후 5시, 명동 유네스코회관 8층에 위치한 주한 헝가리문화원에서는 뜻깊은 국제시낭독회가 열렸다. 사단법인 시사랑회(회장 최동호)와 계간 서정시학이 주관하고 주한 헝가리문화원이 후원한 이 행사는 특히 헝가리 시의 날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메드비지 이스트 반 주한 헝가리문화원장, 최동호 시인(고려대 명예교수,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과 함께, 김후란 시인(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김수복 시인(한국시인협회 회장, 전 단국대 총장), 김선향 시인(심연학원 이사장), 최금녀 시인(한국시인협회 부회장), 곽효환 시인(한국문학번역원장), 장재선 시인(문화일보 국장), 이인평 시인(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 아틸라 발라즈(헝가리 시인), 김추인 시인(시사랑회 이사), 이수영 시인(시사랑회 이사), 동시영 시인(한국관광대학 명예교수), 김구슬 시인(시사랑문화예술아카데미 원장),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문화에디터), 손정순 시인(쿨투라 발행인),한영수 시인(시사랑회 이사), 정혜영 시인(미래서정 대표), 박종명 시인(시사랑회 이사) 등이 참석하여 각자 자작시를 낭독하였다. 김조민 시인(한국시인협회 기획국장), 이윤정 서울아트나우 대표, 임윤식 시인(월간 오늘의 한국 회장)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1부 및 2부로 나눠 진행된 행사중간에는 가야금 명인 김승희 님의 축하음악이 선보였고, 마무리시간에는 홍보영 시인의 판소리 한판도 펼쳐졌다.
메드비지 이스트 반 주한 헝가리문화원장은 축사에서 “오늘은 헝가리 시의 날이자 국민시인 아틸라 요제프(1905~1937)의 생일이고, 아틸라 발라즈 시인의 한국어판 시집이 출간된 뜻깊은 날”이라며 “여기에 헝가리 화가 티보르 사이몬 마줄라의 작품 전시까지 겸할 수 있어서 아주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한 최동호 시사랑회 회장은 “최근 헝가리 대학에 한국학과가 두 군데 생겼는데 닮은 점이 많은 두 나라가 이제 본격적인 문화교류의 첫 단추를 끼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헝가리의 대표시인이며 2023년 KS국제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시인 아틸라 발라즈의 시집 <비용의 넥타이>(최소담 역, 서정시학 펴냄) 한국어판을 선보였다.
제1부에서는 제일 먼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김후란 시인이 <밤하늘에>라는 시를 낭독했다.
문득 저 아득한 밤하늘에
신비의 눈길 던진다
부드럽게 흐르는 은하계에
수천억 별이 있고
또 그만한 은하계가
우주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하면
생각할수록 아찔 현기증이 난다
우리는 너무 작은 일에 가슴앓이 하면서
자주 사람끼리 상처를 입고
자주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지만
그 많은 별중에 이 지구에 태어나
사랑으로 만난 우리
이게 어디 예삿일인가
이게 어디 예사로운 인연인가
나에겐 그대가 필요하다
시詩가 된 그대
별들이 눈부시다
이어서 아틸라 발라즈 시인은 헝가리문화원 루자 카타린 사무관 한국어 대독으로 그의 시 <비용의 넥타이>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당신 입술이 굳어지네요
당신이
비용이나 아틸라 조세프 시를
읽을 때면
당신 눈이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네요
화가 난 것처럼
아니면
나를 잊은 것처럼
질투가 솟구치지요
멀리 날아가버린
새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썩은 둥지에서
하늘이 어두워지면
영사기로 비추듯
비용은 상처난 자기 목에
로프를 조절하지요
(최소담 역)
또,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수복 시인은 자작시 <저녁바다의 가족>을 낭독, 참석자들의 시심을 한껏 북돋아줬다. 그는 “2022년 가을 헝가리 국립ELTE대에서 ‘단국대학교 총장배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면서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며, “앞으로 양국의 정기적인 문학 교류가 더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이날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산골물이었을 때 나는 태아였다네 심산유곡의 탯줄에서 한 살 두 살 세 살 지나서 성년을 맞는다네 콧날이 우뚝해지고 목덜미가 길어지고 미성과 미색을 지닌 냇물이 된다네 우둑우둑 소나기를 맞고 강물이 된다네 흥에 겨워서 살다가 장년이 되는 동안 허리가 나오고 배도 불룩한 배꼽바위에서 새들도 기른다네 철새들의 고향이 되어 북극으로 떠나간 아들딸들 한평생 그리워한다네 하구에 다다르면 갈대숲으로 바다를 불러와 다시 식솔을 늘린다네 철새들도 알을 품고 자식들 불려서 또 다른 고향으로 떠나가 버리면 빈 몸 되어 푸른 눈을 뜨는 새벽 바다로 나가서 먼 선조들에서부터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러 헤맨다네 해가 지면 누대의 이산상봉 등대에서 눈물로 반짝인다네 먼 산골물 후손들도 기다리며 산다네'
이날 행사에서는 국제 시낭독(송) 모임답게 아틸라 발라즈의 시는 헝가리어와 한국어로, 김선향 시인은 자작시 '황금장미'를 영어로, 김구슬 시인은 자작시 '0도의 사랑'을 유창하고 감미로운 프랑스어로 낭송하여 큰 갈채를 받았다.
0도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세계이다
그림자 없는 오솔길을 걸으며
우리는 가끔 허공을 응시한다
머리 위에는 소리 없는 깃털들이
출구 없는 소실점을 향하고
발 밑을 내려다보며 걷던
가슴이 문득 울고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없는 세계의 가능성을
읽을 수 없어서이다
꽃 한 송이 지지 않는 세계에
어떻게 다다를 수 있단 말인가
그리운 것들은
모두 세상 저편에 있다
시커먼 파도를 타고
출항을 예고하는 뱃고동 소리가
사라지는 수평선에 파랑을 일으키며
이 세상에 없는 사랑을 손짓한다
주한 헝가리문화원은 헝가리의 전통예술과 미술작품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한 자수 사진도 보이고, 특히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헝가리 출신 화가 티보르 사이몬-마줄라의 작품들도 곳곳에 걸려 있다.
시낭독회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헝가리 산 와인과 다과를 즐기면서 헝가리 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마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어느 유명 미술관을 찾은 듯 참석자들은 시종 사진 및 미술작품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못했다. 시심과 음악에 젖고 헝가리 예술 및 와인 맛에 흠뻑 취한 밤이었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