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문학시의 아버지로 추대 받는 정지용의 시 ‘향수’를 부르며 파아란 하늘빛을 찾아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꿈과 사랑의 시 잔치 한마당의 일부인 ‘가족과 함께 하는 시문학 기행.에 남편과 함께 나섰다. 아들을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이제 컸다고 따라나서지 않는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규정하고 문화를 주도권을 잡는 나라가 세계인의 감성까지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한류열풍이니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 ‘문화의 세기’라는 말이 잘 이해되기도 한다.
시에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자연의 리듬이 담겨 있기에 시를 보거나 들으면 마음이 순화되고 정서가 풍부해져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음이 생기기에 시읽기의 생활화가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데 이번에는 문학기행을 마련해 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파아란 하늘빛을 찾아나섰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금자탑을 쌓은 분이다.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한 이미지와 새로운 언어감각으로 우리나라의 시를 탁월한 경지까지 끌어 올렸다는 평가와 어느 대학 외국인 교수가 영문으로 번역하면서 릴케나 괴테에 버금가는 시인이라고 평가 받는 시인 정지용은 1988년 해금 조치 이전까지 우리 문학사의 그늘에 묻혀 있어야만 했다. 시의 경향과는 아무 상관없이 1950년 한국전쟁 때 북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40년이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던 정지용! 하지만 그의 시는 이름도 없이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휘문고보 학생 시절에 지었다는 ‘향수’라는 시 하나만 보더라도 그는 참 대단한 시인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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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 만하니
눈감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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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라는 이 시도 제목도 물론, 누가 지은 것인지도 모르는 체로 지냈는데 오늘에야 정지용 시인의 시임을 알았으니 안타까움이 일어난다.
‘향수’의 시비가 생가 앞에 턱~하니 서 있고 긴 돌다리가 집 옆에 놓인 생가의 앞쪽에는 개울물이 맑게 흐르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은 실개천이 아니었지만 이 곳에서 자라고 생각이 여물었던 곳이라 생각하며 그 분의 맑은 시어들이 더욱 빛나게 다가섰다.
돈 두마지기의 가난한 집에 3대 독자인 아버지에 이어서 4대 독자(원래는 독자가 아니었다고 함)가 되어버려 12세에 동갑내기와 결혼했다고 한다. 슬하에 3남 1녀을 두었으나 현재는 남한에 딸과 이북에 아들이 한사람 있단다.
그 분의 향기를 더 느끼기 위해 그 분이 다녔던 죽향초등학교로 들어섰다.
학교 운동장 한 쪽의 담 아래도 실개천이 졸졸 흐르고 있고, 마침 육영수 여사도 같은 마을, 같은 학교 출신인지라 낡고 오래된 목조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채 쌓인 먼지와 함께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시인의 마을답게 학교 뒤의 아파트 이름도 "향수마을"이다. 길가의 식당 이름도 정감이 어려있는 "싸립문 열고 들어서니" 이기도 하고, 시인의 향기에 빠져서 운동장 나무 그늘에 앉아서 차 두 대로 나누어 타고 온 일행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다
먼저, 함께 온 장학사 한분 중 대학원 논문으로 정지용에 관한 연구를 하신 분이 계셔서 ‘공간을 따라 가며 시읽기’란 강연을 들으며 정지용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함께 낭송하고, 뒤를 이어서 ‘홀로서기’로 유명한 시인 서정윤 님의 자작시 낭송을 듣기도 하였다. 서정윤 시인은 시를 정의하기를 ‘영혼을 씻는 맑은 물’이라고 표현했다. 이제는 홀로서기에 성공하여 자기의 반쪽을 찾아서 부부가 함께 시문학기행에 참가하여 더욱 아름답게 보였음을......
동행하신 아동문학가 심후섭 장학사는 옛 지명의 유래와 재미있는 이야기와 욕심 많게도 나무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곁들여 시종일관 우리의 귀를 열리게 해 주셨고, 정지용 시인에 대한 ○ × 퀴즈 문제풀기와 보물찾기 게임까지 즐겁게 참여하며 시문학기행으로 보람되게 보낸 하루였음을......
끝으로
‘고향’이라는 그 분의 참된 삶의 회복과 삶의 공간으로 시인의 의식을 끊임없이 지향했을 시로 이 글을 마무리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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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뇨.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한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참고 자료 >
정지용(鄭芝溶) 1902-?
한국 근현대시단의 대표적인 작가.
1903년 충북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에 입학
1922년 휘문고보 졸업
1929년 일본 경도의 동지사(同志社)대학 영문과 졸업.
이후 휘문고보 교원으로 재직.
1939년 '시문학'동인
1933년 <카톨릭 청년> 편집 고문
1935년 첫 시집 <정지용시집> 간행
1941년 시집 <백록담> 간행
1945년 이후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 편집국장, <문장(文章)>지 편집인 역임.
1946년 시집 <지용시선> 간행
1948년 <문학독본> 간행
1949년 <산문> 간행
6·25이후 납북.
정지용은 휘문고보 재학시절인 1919년 <서광>창간호에 유일한 소설 '삼인'을 발표했으며, 휘문고보 졸업호 일본으로 유학간 후 1925년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 <학조> 창간호에 시 '카페 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했다.
1929년 대학 졸업이후 모교인 휘분고보에서 영어교사로 16년간 재직하면서 '유리창' 등의 시를 발표했고, 1930년 <시문학>동인으로 참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정지용은 1933년 <가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으로 있을 때,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단시켰으며, 1939년 <문장(文章)>지 편집인으로 있을 때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의 '청록파'를 등단시켰다.
그의 시는 감각적 이미지즘으로부터 출발,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인 시, 동양적인 정서의 산수시 등의 변모를 보인다. 빼어난 감성으로 우리 시단의 중심을 이루었으나 후에 월북 시인으로 오인되어 38년동안이나 작품이 공개되지 못했다.
시집으로는 <정지용 시집> <백록담> <지용 시선> 등이 있으며, 그의 시 '향수(鄕愁)'가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첫댓글 저는 시간과 힘을 들이지 않고 이 많은 것을 알았으니 실로 ~이득이 많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