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단추/김희자
갈잎 같은 그녀의 가슴을 연다. 통증을 덜어주는 마약패치를 붙이기 위해서다. 야윌 대로 야윈 몸을 감싸기에는 헐렁한 환자복이지만 단추가 옷자락을 꼭꼭 여며 준다. 앙상한 가슴 절벽에는 검은 유두가 건포도처럼 붙어 있다. 팔십 킬로그램이었다던 그녀의 몸이 마른 잎처럼 가벼워져 바스러질 것만 같다. 가슴에 패치를 붙이다 말고 내 시선이 젖은 창으로 간다. 창을 타고 내리는 비가 말없이 흐르는 그녀의 눈물 같아 내 눈에도 물기가 돈다.
그녀는 말기 암 환자다. 내가 일하는 병동에 들어온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지난가을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찾아든 곳이다. 그녀는 인생의 종착역으로 가는 환자다. 주치의는 오래 살아야 겨우 두세 달이라고 했다. 그녀의 터미널케어는 시작되었다. 터미널케어란 말기 암 환자 등 치유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돕는 일을 말한다. 현대의료의 정수(精粹)를 모아도 치유할 수 없는 진행된 암은 시간적인 연명에만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단지 연명을 꾀하는 것만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과 불안, 공포를 덜어줌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처음 그녀의 링거에는 모르핀이 두 앰플 들어갔다. 그마저 통증을 억제하지 못하자 두 앰플이 더해졌다. 이십사 시간 내내 링거가 유지되고 진통제가 몇 시간마다 투여되었다. 그녀는 육십 고개를 넘기고 겨우 한 살이 더해진 나이다. 인생 육십부터라는 한창때의 나이밖에 되지 않았다. 신체가 젊을수록 암세포의 증식은 빠르다. 갈수록 병이 악화되니 십중팔구는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딱하게 여긴 가족들은 고단위 영양제를 투여해달라고 간청했다. 부종이 심한 사지에는 정맥이 드러나지 않아 주사바늘을 꽂는데 애를 먹는다.
인생의 종점에 다다른 그녀는 암세포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있다는 걸 짐작했다. 심장에도 이미 전이가 되어 갑자기 사망할 수 있다고 의사는 선언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굳힌 보호자들도 정성을 다했다. 남편은 매일 아침 찾아와 웅크리고 있는 아내의 몸을 마사지하고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 손길에는 애틋한 마음이 배어나왔다.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를 보며 딸의 눈에는 눈물 마를 새가 없었고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들도 예견된 어머니와의 이별을 애통해했다. 장성한 아들이었지만 병실을 떠나가며 어깨를 들썩였다.
어미의 몫도 못다 했는데 먼 길을 가야 하는 심정은 오죽할까. 늦은 밤까지 정담을 나누던 아들을 보내고 혼자 남았을 그녀를 위해 병실로 갔다. 그녀는 슬픔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지막 길은 잡고 있는 손목을 놓는 것이라고... 그녀는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처럼 처연했다.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사람은 자신에게 말미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내려놓을 때를 알고 버린다. 버려야 할 때 버리는 것이 안아야 할 때 안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 차가운 사랑이 진짜 뜨거운 사랑의 길임을 내 어찌 모르랴.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그녀를 두고 병실을 조용히 나왔다.
병색이 짙어지자 빈혈이 심해졌다. 낯빛은 창백한 낮달 같아졌다. 수혈을 해주고 싶지만 부작용이 따를 수 있어 그것조차 할 수 없다며 가족들은 애를 태웠다. 끝까지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녀는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두렵다고 가족을 찾지도 않는다. 통증이 심해지면 앉아서 노루잠을 자고 식은땀으로 옷을 적셔냈다.
처연하던 그녀도 가끔은 두려운 듯 병실에 자주 와달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은 드러내었지만 공포에 떠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통증이 밀려와도 신음 한 마디 흘리지 않고 배만 움켜쥔 채 뒹굴었다. 정신력 또한 강했다. 기저귀를 차지 않고 대소변을 해결했다.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켜 뚱뚱 부은 발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마지막까지 그녀를 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나를 알아보았던 그녀가 서서히 말귀에 어두워지고 소통의 문도 닫았다. 정신을 내려놓고 언제 눈을 감게 될지 모르는 처지가 되어간다.
나는 출근을 하면 새로 입원한 환자들을 먼저 살핀다. 그녀가 입원했던 날도 출근을 하자마자 입원환자의 차트를 뒤졌다. 손○열. 여/60세 췌장암이라는 병명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이름과 비슷한 나이. 내 눈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병실로 달려갔다. 웅크리고 앉아 있던 환자는 내가 아는 여인이 아니었다.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참았던 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날, 그녀는 통증을 이겨내지 못해 배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중환자실로 갔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우리 병동으로 모셔온 환자였다. 손을 쓸 수 없어 수술도 못하고 마지막 가는 날까지 통증만 완화해 줄 수밖에 없다. 그녀의 링거에는 마약까지 희석되었으나 효과를 발하지 못했다. 연신 식은땀을 훔쳐 내어 반창고가 떨어져 내렸다. 상태를 봐서는 이내 중환자로 올라 갈 것 같았다. 다음날 비번이라 쉬고 이튿날 출근을 했다.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 곧장 병실로 갔다.
병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며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P병원에 근무했었지요?". 얼마 전 그곳에 가니 안 보였다며 안면을 틀었다. 내가 이곳을 옮겨오기 전의 병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십 수 년 동안 일을 했으니 환자로 왔던 그녀가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다. 말을 잊은 채 고개를 끄덕이던 내 눈에 샘처럼 물기가 고였다. 눈썰미가 없다는 말은 안 듣고 살았는데 몰라보게 살이 빠진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낯이 익어 그녀에게 처음부터 관심이 갔던 모양이었다.
중환자실로 입원했던 그녀가 2병동으로 오기에는 남다른 배려가 있었다. 정신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그녀를 중환자실에 두기에는 마음이 쓰렸던 것이다. 그녀가 입원을 하던 날 딸은 낯선 나의 손을 잡고 울었다. 네댓 살 되어보이는 아이들을 옆에 두고 딸은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의지할 손을 잡았다. 환자 앞에서는 의연함을 잃지 않아야 하건만 내 마음을 세우지 못했다. 강해져야 한다며 울먹이는 남의 딸을 보듬었다.
통증이 주저앉으면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사람은 한없이 쓸쓸해지기 마련이다. 이승과 작별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야 하는 심경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생을 마감하는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편안히 새로운 세상으로 떠날 채비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다. 나는 병실에 갈 때마다 그녀의 실낱같은 손을 꼭잡아주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간호는 다 해주고 싶다.
창 밖에는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철 이른 유월의 날씨는 등에 땀을 지게 만든다. 허나 그녀는 한기가 든다며 이불 두 채를 덮어달라고 애원한다. 바짝 마른 그녀의 가슴에 마약 성분이 든 패치 세 개를 붙이고 환의 구멍에 단추를 끼운다. 몸을 보호하기엔 남아도는 옷인데 단추를 채운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입은 환자복 단추를 꼭꼭 채운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흔들리는 실뿌리를 야무지게 채워준다. 얌전하게 채워주는 이 단추가 이생과 단절되지 않는 꽃단추이기를 내심 바라며…….
-2014년 실험수필 발표작-
첫댓글 선생님의 글을 읽고있으면 저를 보는것같요 ᆢ또다른 내가 대한민국 어디엔가 또 있는듯한 착각 ᆢ저와 직업도 똑 같으시고 글도 쓰시고ᆢ 항상 좋은글 잘 보고 갑니디ㅡ
따뜻한 마음을 가진 김작가님이 곁에 있으니 이승을 떠나는 生들은 행복하겠어요. 잘 읽고 나갑니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분이 역시 실을 자아내듯 따뜻한 감동을 주는 글을 풀어 내십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