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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우헌 원문보기 글쓴이: 김수우
삶과 꿈, 영원의 깊이를 새기다
-고령 대가야문화학교 대표 以山 안준영 님
<고령 대가야(대장경)문화학교>는 우리나라의 전통판각과 고인쇄 문화를 배우고 직접 체험하는 곳이다. 목판서화가 안준영씨가 경북 고령군 쌍림리 월막리(월막초교 폐교)에 개관했다. 인쇄문화 종주국으로서의 우리의 문화적 역량과 정신을 회복하는 데 뜻을 둔 이 학교는 인간과 가치에 대해 많은 물음을 제시한다. 시뮬라크르를 넘어 회복되어야 할 생명성이란 무엇인가. 가장 본래적인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원형의 꿈, 그 소리없는 혁명을 들여다본다.
점등인, 끊임없는 의미와 무의미의 싸움
어린 왕자에게 다섯 번째 소혹성은 무척 흥미로운 별이었다. 제일 작은 그 별엔 가로등 하나와 점등인 한 사람뿐이었다. 점등인은 끊임없이 가로등을 켜고 껐다. 바쁘고 고독한 그 작업에 충실한 점등인을 보며 어린 왕자는 생각한다. '가로등을 켜는 일은 별 하나를, 꽃 한 송이를 더 태어나게 하는 것과 같아. 또 가로등을 끄는 일은 꽃이나 별을 잠들게 하는 거고. 이건 매우 아름다운 일이야. 의미가 있으니까.'
전통판각에 자신의 혁명을 걸고 있는 이산선생의 작업을 보면서 홀로 바쁘고 외로운 그 점등인을 떠올린 건 왜일까. 소리없이 몰입했을 판각의 순간순간들이 꽃 한 송이, 별 하나를 태어나게 하는 불빛 같다는 느낌 때문일까. 그 손끝에서 의미를 얻는 글씨와 문양이 내는 숨소리 때문일까. 아님, 그 한 자 한 자의 살림이 절실한 영혼의 작업이기 때문일까.
현대는 끊임없는 의미와 무의미와의 싸움이다. 그 전쟁을 치르는 전사로서 우리는 어떤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가. 삶의 꿈의 양식이 아침마다 흔들린다. 일상은 무수한 삭제 위에 놓여있다. 삭제가 키워드가 되어버린 시대인 것이다. 문자를 삭제하고 메일을 삭제하고 불편과 불필요를 매순간 삭제한다. 그것을 돌이키듯 또는 뛰어넘듯 이산선생은 매일 새긴다. 단단한 목판 위에 무한한 의미와 뜨거운 교감과 적막한 꿈을 살려낸다. 그렇게 새겨 미래로 밀고 간다. 다양한 패러다임이 겹겹 새로워져도 이산선생이 꿈꾸는 건 오래된 미래이다. 이 現狀을 넘어서려 모두 앞으로 치닫지만, 그건 그에게 미래의 방향이 아니다. 이산선생에게 진정한 미래란 획득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되살아나는 그 무엇이다. 또 그에게 창조란 오래된 광맥 속에서 발견하는 잠자리화석 같은 것이다. 일상 속 모든 낯설음을 낯익음으로 바꾸는, 숨은 것들의 조심스러운 힘. 그것이 원래적인 생명성이라 믿는다. 시뮬라시옹이라는 블랙홀 속으로 현실이 빨려드는 내내 그는 한 잎 버들처럼 새푸르게 반짝이고 있다. 고독한 점등인의 가로등처럼.
방법적 회의를 빌려서라도 오늘 우리는 삶의 근본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교란된 생태계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식탁에 놓인 유전자 조작 식품들. 총체성이나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이론이 많지만 그조차 인류의 미래에 얼마나 긍정적인지 의심스럽다. 생명 이론들이 책방마다 한 서가를 이루지만 이미 신경증이 너무 심해진 현대이다.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잊혀진 것은 어떻게 찾을 것이며, 잃어버린 것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삭제와 각인, 그 사이에 놓인 무한한 의심과 의구의 눈빛들. 그러나 인간의 꿈이란 그런 의구를 타고 흘러온 아름다운 절망들이 아닐까.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 슬픈 명제를 위하여 그는 작은 별의 점등인처럼 끊임없이 의미를 켜는 직업을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의 혁명은 섬세한 손끝과 검은테 안경, 예민한 조각도들과 함께 오래된 목판 속에서 잠잠하고 치열하다. 누군가 그를 향해 고려 각수가 환생했다고 했다. 사이버 현실을 거슬러 우리 속 잠재된, 미래의 패랭이꽃을 틔워내려는 그 작업은 참 지루하고 고단하지 않을까.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말이다. 그러나 새긴다는 건,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이고 꿈의 행위였다. 그리고 그 행위는 문명 속의 불만이 아니라, 문명 속의 위로로 우리를 연결하는 은빛 고리였던 것. 그 소통은 판각과 고인쇄문화라는 아름다운 광맥으로 역사의 지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리라.
실재와 시뮬라크르의 대응에는 정보와 과학과 기술의 매체가 작용한다. 이산선생이 주목하고 고집하는 것도 판각이 바로 그 매체, 지식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커뮤니티의 진정성에 있다. 그것이 인간에게 접목되고 있는가, 내면의 사유에 어떻게 닿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끊임없이 가상화되는 세계에서 그가 감행하고 있는 것은 목판각이다. 그가 따라가는 건 추억의 속도가 아니다. 생명의 활동, 정신의 유전자를 끌어내는 심층적인 세계, 그 살아있는 힘을 따라가고자 한다. 하여 판각은 보다 인간적인 지평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설계도가 되는 것이다. 의미라는 건 순간순간 생명을 열어주는 작업이며, 무수히 변용된 의미의 경험으로 세계는 지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산선생의 목판서화 작업은 적극적인 몸싸움일 수밖에 없다. 하여 이 시대의 유목적인 사유는 정신적인 것 또는 영혼적인 것의 각인이 절실하리라. 무엇이 본래적이고 무엇이 생명적인 건지, 그의 판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존재의 원형을 기억시킨다. 도르래우물의 긴 두레박처럼 깊은 데로 첨벙이며 말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뛰어난 인쇄문화를 가지고 있다. 8세기 초의 목판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시작으로 인쇄술의 극치라고 불리는 팔만대장경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판각문화를 지니며 살아온 것. 특히 最高, 最古의 수준인 목판인쇄는 금속활자로 발전, 14세기 <직지심체요설>이라는, 다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을 만드는 기틀이 되었다. 조선 초에는 경자자, 갑인자, 병진자 등 한문목판 활자본과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을 새긴 한글목판 활자본이 쏟아져 인쇄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오늘날 대량 인쇄와 전자매체라는 최첨단의 정보화에 편리해진 우리는 인쇄문화 종주국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선조들이 목판에 한 자 한 자 새겨 전해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긴 지혜와 지식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산선생은 지속적 연구와 실증적 실험을 통해 우리 고인쇄문화를 전통적인 목판화기법으로 복원, 재현했으며, 하고 있다. 인쇄란 지식정보를 전해주는 폭발적인 매체의 출발이다. 그 최초의 힘이 우리한테서 나왔다는 건 얼마나 위대한가. 이것을 알리고 되찾고 가르치는 일이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원형복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원형복원이 없으면 문화민족으로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먼저 원형복원을 하면서 함께 창작적인 길이 열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게 제가 가야할 예술의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한 자 한 자 새겨 전해주려 했던 인쇄술은 선조들이 후대에 남긴 전달매체의 선구요 미래를 향한 정신문화의 비전이라 생각합니다. 고인쇄문화의 연구, 소실된 목판원형 복원을 통해 그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인쇄발달사 및 예술사적으로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어찌 그뿐일까. 그의 작업은 우리 정신사의 긴 뿌리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전통문화의 양식엔 다양한 정신이 담긴다. 글씨든 문양이든, 문헌이든, 시든, 그림이든 자기가 원하는 세계를 무한 표현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우선적으로 시급한 건 판각의 기능적인 연구와 그 보급, 복원의 기술이다. 때문에 순수예술적인 평가보다 그 기능의 보급과 복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산선생이다. 예술이란 그렇게 스스로 몰입하다 보면 언젠가 저절로 가닿을 수 있는 세계라 믿고 있다.
아름다운 각수, 그 원형의 꿈
우리는 어떤 소혹성을 방문했던 걸까. 우리 전통판각과 고인쇄문화, 그 원형의 꿈을 찾아 발길을 함께한 사람은 이해웅 편집고문과 구모룡, 김경복, 황선열 편집위원, 그리고 진명주 편집장이었다. 빗방울이 가랑가랑한 사이로 도착한 대가야문화학교는 마치 낯선 별 같았다. 폐교를 이용하고 있는 이 별엔 나뭇가지마다 겨울눈이 푸릇푸릇 송송했다. 전주에서 용비어천가 복각판을 전시 중이던 이산선생은 전날 우리 일정에 맞추어 학교로 돌아와 있었다. 마침 목판서화연구회의 수업도 진행 중이라 일행은 회원들의 다양한 목판작업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안준영씨는 청도 출생이다. 어릴 때부터 刻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운문사에서 서각을 시작했다. 20년 전 남덕유산의 영각사 보행스님과 인연이 되어 산에서 지내며 영각사 목판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엄경 목판본 본책이 우연히 손에 들어왔다. 그때서야 각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문화를 너무 모르고 있는 데에 대한 자각이 강하게 일었다.
인류사에 있어 刻은 곧 언어의 기원이며, 그 출발은 바로 문자의 출발이다. 곧 새김은 인류가 갖고 있는 最古의 문화, 인간만이 꿈꾸는 最高의 문화라는 말이다. 집단생활에서 소리와 행동은 한계가 있었고,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그림과 문양을 새겼던 것. 이 행위와 흔적이 곧 문명사이다. 나무나 흙, 돌 등에 그림언어를 남기면서 인류는 21세기 최첨단 정보화까지 온 것이다. 이렇듯 새김과 흔적은 정보를 오래 널리 알리려는 소통의 출발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새김이 많고 체계화된 흔적도 많다. 이 행위 속에 홍익인간의 정신과 영원을 추구하는 존재의 원초적 본능이 다 들어있다. 이처럼 새김은 다양한 매체의 원점이 된다. 이 점이 이산선생이 판각의 원형을 찾고 복구하려는 열망, 교육에 열중하는 까닭이다.
목판각 하나에도 매우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한다. 그것은 숙련된 손과 고독한 정신과 그 다양한 깊이를 필요로 한다. 결국 새김이란 예술과 기술의 문제에 닿는 것. 그러나 그런 예술이나 기술에 치우치지 않고, 목판각을 살아있는 문화로 만드는 것이 이산선생의 진정한 꿈이다. 판각을 통해 살아나는 의미는 얼마나 무수하고 다정한가. 그 복원 운동은 결국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인 동시에 자아를 확인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리라.
보통각은 서체 등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하다. 그러나 출판, 즉 인쇄술은 그런 미학성과 다르다. 책을 정신의 보고라고 할 때 정보 전달과 생산성이라는 관점이 발생한다. 미세한 서체와 대량생산을 위한 목재가 굉장히 중요하며, 좋은 먹과 좋은 한지, 인쇄에 쓰는 솔이나 도구 자체 등에서 오래 갈 수 있는 기능성이 문제가 된다. 진정한 앎을 넓게 전하기 위한 방법으로의 출판에 그의 호기심은 환한 불을 켰다. 고목판 복원에 대한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람은 동물과 달라 말과 행동을 문자체계로 전합니다. 오래 널리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는 거지요. 인터넷이나 매체가 발달하면 할수록 이런 문화적인 원점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판각과 고인쇄문화를 교육하는 게 중요할 밖에요. 한국의 정신과 역사가 이 목판 속에 다 들어있다고 믿습니다. 원형을 찾는 것도 복원하는 것도 당연하고, 가르치는 것도 너무 당연합니다.”
고목판 복원은 해인사와 인연이 깊다. 1994년 해인사 근처로 오면서 종림스님을 뵙게 되고 해인사 대장경 연구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장경판각에 들어가 제작 과정과 목판 연구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팔만대장경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 팔만대장경은 비의에 싸여 있다. 실체는 있는데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의 과정이 전하지 않는다.
81,258의 경판, 책으로 묶어도 6,815권이 되는 팔만대장경은 양각으로 새겨진 수천만 개의 글자가 구양순체로 하나같이 고르고 정밀하다. 방대한 경판, 아무리 노련한 각수라도 경판 1면을 새기는데 1주일씩 걸리는 일을 몽고와 전쟁을 치르면서 완성했다는 건 불가사의하다. 수천의 각수들이 한 공간에 모인 전란시의 판각작업이 완벽하고 치밀하다는 건 도저히 헤아려지지 않는다. 현재까지도 글자가 그대로 살아있는 것도 신비이며, 오랫동안 경판용 목재가 뒤틀리거나 손상되지 않는 것도 수수께끼이다.
어떻게 800년 가까이 완벽하게 보존되었을까. 먹과 건축술이 뛰어난 장경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비밀은 나무에서 출발한다. 그는 목판을 조각하는 각수의 입장에서, 예술보다 기술의 문제로 팔만대장경에 접근했다. 그동안 과학적으로 분석된 팔만대장경의 목판은 산벚나무 62%, 돌배나무 13%, 후박나무 8% 등이다. 산벚나무는 잘 변형되는 나무로 경전의 목판으로 사용되었다는 건 어떤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어려운 일. 고려인들이 대장경을 만들 때 목재를 3년간 바다에 담구었다는 佛家의 구전이 있을 뿐이었다. 나뭇결에 스며든 바다소금의 기운이 좀을 방지하고 뒤틀림을 막아주어 천 년을 견디게 한다는 것. 종경록 27권에 보면 <분사남해대장도감 개판>이라고 그 많은 경판 중 딱 한 군데서 남해지명이 거론된다. 하여 남해판각설이 집중조명을 받게 되는 정황에 따라 남해 관음포 앞바다를 선택, 목재를 삼 년을 바다 속에 넣었다. 그냥 뻘 속에 박으면 될 줄 알았다가 공유수면허가를 내어야 했고, 그 때문에 몇 년 간 남해를 다니며 어촌계서 동의서를 받아내야 했다. 순간순간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남해에서 나온 시편(試片)들은 현재 독일중세사학회에 의뢰된 상태이다. 중세의 성화나 뛰어난 예술들이 나무에 그려져 있어, 나무의 보존 연구에 우리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들의 목판문화와 연구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보관할 때 판면이 손상되지 않고 공기소통이 잘 되도록 한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글자의 선이 완벽하게 살아있다는 게 불가사의해요. 조성과정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그 표현 외에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일본의 신수대장경보다 수백 년 앞설 뿐만 아니라, 양과 질에서도 훨씬 뛰어난 팔만대장경이 일본 것보다 덜 알려진 것은 후손으로서 너무 부끄럽죠.”
전란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판각했을 고려 각수의 손끝을 그는 가끔 떠올린다. 제작과정에 대한 의문 자체가 애정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는 우리가 문화민족임을 알리는 데에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본격적인 조판 과정 연구에 돌입했고, 철저한 고증작업에 전념했다. 목판을 구하기 위해 경북 문경, 강원도 삼림지대 등을 다녔고, 목재 채취에서부터 침목, 건조 경판, 판각, 인쇄, 제본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려고 했다. 그의 작업은 한 마디로 신앙 자체였을 것. 대장경 각수란 이미 하나의 구도자적인 삶이 아닐까. 자신이 새긴 한 자 한 자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는 믿음이 아니면 그 고독한 작업에 몰입할 수 없지 않을까. 지금도 고증에 심혈을 기울이는 그의 꿈은 장경각 속에 갇혀 있는 팔만대장경이 살아있는 문화재로 승화되는 것.
“새김질보다 더 어렵고 고된 건 고려 각수의 숭고한 정신을 판각에 불어넣는 일입니다. 문자를 전해주는 경전은 전쟁을 대비하는 만리장성과는 그 가치를 비교조차 할 수 없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지만 팔만대장경은 우리가 세계 속의 문화대국임을 입증할 수 있는 걸작품 중의 걸작품입니다.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아 이를 연구 보존하고 재현해, 새로운 예술성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후손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쇄방법도 서양과는 차이가 많다. 우리는 먹을 사용하지만 서양은 유성이나 잉크를 사용한다. 우리는 딱딱한 솔로 먹 자체를 목판에 스미게 해 그 스며든 힘으로 찍어내지만 서양 잉크판화는 로울러로 밀어 표면만 찍어낸다. 서양 잉크판화는 1만 장 정도만 찍어도 변질되는 데에 비해, 우리 판각은 30만 장을 찍어도 그 글이 안 흐트러진다. 체험학습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찍으면서 실증적인 실험을 통해 계산해낸 양이다. 나무가 수성이므로 먹이 목판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을 것이다. 서양보다 훨씬 과학적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계속 주장하고 또 물음을 던진다.
“경전이나 좋은 문헌을 쉽게 찍고, 많이 찍고, 오래 보관한다는 것은 인쇄술의 극치입니다. 먹은 불변이고 한지도 보관에 뛰어나 완벽한 기능을 가졌는데 왜 우리가 평가를 못 받습니까. 이 분야에서 두 번째도 아닌 최고로 완벽한 우리 판각문화를 두고 왜 각 대학은 서양판화를 가르칩니까.”
원형을 찾고 복원하겠다는 건 곧 뿌리의식이다. 이 뿌리는 근원과 더불어 동질성을 캐어내고 회복하려는 동족의식에 다름 아니며 동시에 존재론적 본색이다. 하여 원형 및 뿌리체험은 개체를 형성하는 다양하고 내면적인 문화층을 끌어내는 작업이 된다.
“판각문화 속에 이미 다양한 세계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불경 같으면 신앙심이 생길 것이고, 전통문양 같으면 전통가치를 얻게 되겠지요. 인쇄기능적이면 문화유산적인 것으로 가르치면 세계를 발견하는 건 다 각자의 몫이 됩니다. 보통예술가들은 작품 속에 자기 틀을 만들어놓고 주장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문화적 원형 속에 들어있는 가치는 각자 제 눈높이로 해석할 수 있지요. 특히 판각은 다양한 상상력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예술성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해석에 따라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목판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서예가나 뛰어난 장인들이 필요하죠. 자기 할 바가 다르고 갈 길이 다 다른 것이지요. 저는 기술을 복원하고 창작하는, 기능적인 것을 가르칠 뿐입니다.”
진정한 '살림'은 무엇일까. 그건 인내와 원칙, 그리고 치열한 장인의식에 다름 아니리라. 그렇다면 매사 편의주의이고 부실한 요즘 세태는 얼마나 민망하고 서글픈가. 그것이 너무 절실하기에 원형 복원에 최선을 다하는 이산 안준영. 어찌 그 꿈이 이 시대의 문화와 예술에 아름다운 등불이 되지 않겠는가.
소리 없는 혁명을 위하여
꿈은 언제나 혁명이다. 꿈 자체로 즐거운 혁명이다. 이산선생에게 그 혁명의 현장은 손끝에서 시작된다. 손은 분명 물리적이지만 언제나 물질적 차원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근원이다. 도구의 사용이 문명을 끌어왔듯, 손은 무수한 정신을 창조해온 실질적인 내면인 것. 존재자를 존재로 바꾸는 체온이 거기에 있다. 그 온도와 촉감이 곧 생명성이 아닐까. 손은 나무의 결을 따라 꿈꾼다. 손이라는 실체, 나무라는 실체, 꿈이라는 실체, 서로 뜨겁게 부딪힌 순간 아름다운 형상을 창조한다. 그렇게 거대한 시뮬라시옹과 가장 정직하게 직면하는 손. 모든 사유는 접촉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그의 판각작업을 보면서 깨닫게 된다.
그의 목판서화는 왜 원시적이면서 영혼적인 작업으로 다가오는 걸까. 원형은 꿈을 꾼다. 손은 꿈을 꾼다. 그리고 나무는 꿈을 꾼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來歷이고 耐力이며 內力이다. 동시에 이는 안준영씨의 내력이기도 하다. 다시 이 내력은 신생을 꿈꾸는《신생》의 내력에도 닿는다. 이 내력들은 본래면목, 즉 생명적인 것, 원초적인 것, 인간적인 것을 찾아가는 투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잊혀져가는 각문화를 자꾸 이끌어내는 것도, 단절되다시피 한 전통서각을 지키고, 알리고, 재창출하려는 꿈도 곧 신생을 향한 열망이 아니겠는가.
너무 쉽게 정보화되고 너무 쉽게 삭제되는 세상. 한 자 한 자 나무에 새겨 전해준 그 정신적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은 오늘날 얼마든지 무한한 의미를 생성해낼 수 있다. 문화활동가와 예술가의 꿈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리라. 하여 이산선생의 몰입은 단단한 고독 속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혼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산선생에게서 오래된 침목의 향기를 맡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던가.
그는 보존하고 기록하는 자이며 증언하는 자이다. 이산 각연구소 소장, 대장경문화학교 대표,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 문화역사마을만들기 집행위원장, 해인사 고려대장경연구소 판각전문위원 등 그에게 딸린 직함을 헤아리면 그의 주요활동을 대충 알 수 있다. 팔만대장경의 학술 활동이나 제작 과정 연구, 목판 문화유산의 보판과 재현, 문화재급 고목판의 보존과 훼손, 소실된 목판의 보판 작업, 전통문화 전문교육 및 연수, 문화예술 국제 교류 및 전시, 전통문화의 계승과 창조에 관한 고뇌가 그의 일상이다.
쓰는 것, 필사에는 한계가 있다. 널리 알리려는 인간의 의지가 곧 인쇄술이고, 인쇄술은 인류사에 하나의 혁명이 아니었던가. 때문에 역사적으로 새기고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최고의 것을 가지고 있다. 왜 이것을 천대시하는가. 학교에서 안 가르치니 문화활동가가 스스로 나서서 가르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가야학교의 방명록을 보면 외국인이 많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정신문화에 더 흥미를 가진다는 말이다.
“장경각이나 장판각 속에 있는 목판은 세계에서 제일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갖고 있는 편입니다만 이는 그 제작 과정의 실체가 전혀 없는 대가 끊긴 문화입니다. 이를 토대로 예술활동을 한다는 건 또 하나의 수치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가가 아니라, 문화활동가라고 불리기를 원합니다. 예술가로 평가받고 싶지만, 문제는 그 뿌리에는 근처도 못 가면서 행세만 하는 게 싫습니다.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그것이 97년도 세계 유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가 제안되었을 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후 팔만대장경의 제작 과정을 연구하면서 2007년 대영박물관에서 의뢰가 왔을 때는 흔쾌히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영국 템즈 페스티벌과 대영박물관에서 그는 한국목판인쇄문화 전시체험전을 열었다. 거기서 목판 문화유산 원형의 복각 과정을 시연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목판인쇄본을 시대별로 전시했다. 또한 고인쇄 체험 등을 통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섰던 우리 목판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충분히 알릴 수 있었다. 훈민정음 등을 통해 한글의 독창성을 알리는 계기를 가지기도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복원한 우리 고문헌을 많이 가져갔다. 15세기의 세계지도, 대동여지도 전도, 우리나라 지도, 판화로써 섬세 웅장한 불화들, 통도사 <금강경변상도>, 해인사 <화엄경변상도>, 송광사의 <권수정업왕생첩경도>, 한글문헌(훈민정음), 한글, 세시풍속화, 벽사용 판화 등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쇄술로 계승시킨 자신의 창작판화도 준비해갔다. 이 글에서 그의 창작판화에 대한 부분은 제외한 상황. 그러나 그는 전통문화를 토대로 하고 고인쇄로 계승시킨 자생적인 판화활동에 열심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함축성이 뛰어나고 선적인 판화를 추구하는 중.
그의 묵묵한 혁명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그 세계를 엿본다면 진정 그가 가진 우리 고문화에 대한 애정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현재 문화재급만 700여 점의 고목판을 복원해냈다. 1997년도부터 남해 관음포에 목재를 침목부터 시작해 몇 차례에 걸쳐 팔만대장경의 제작과정을 고증해내고 복각작업을 했다. 또 삼국시대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향가 14수부터 시작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친 경전과 불화, 시와 글씨, 단가와 민화, 지도와 기와문양, 민간신앙을 대표하는 부적 등 다양한 장르를 시대별로 복원했다. 그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판각 시연, 목판서화 제작과정 전시와 체험전, 인쇄문화 기획전을 해냈다. 또한 창작판화는 수백 점이 있다. 최근 그는 한글목판 문화유산 복원작업으로 용비어천가 제1권, 목판 32개를 복원했다. 복각된 <용비어천가>의 실물과 인쇄된 책을 전주 한옥마을의 공예명인관에 전시되었다. 한글의 우수성이 고스란한 15세기 한글 문헌을 새로 판각하는 일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세우고, 목판각 기술과 목판인쇄문화의 가치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기능적인 것은 계승시켜 놓으면 또 누군가가 표현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원형회복은 내 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같이 하는 중이지만 무게비중을 둔다면 창작판화를 많이 하는 예술가도 좋지만 원형 쪽이 더 절박합니다. 그래서 원형찾기는 기록 계승되어야 합니다. 전통 장인들이 우리 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한 건 자기 기능의 희소가치를 믿고, 먹고 살기 위해 자기만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인류문명사에 영향을 끼치는 문헌을 생산하는 인쇄의 가치는 보다 넓게 이롭게 전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곧 홍익정신이 아닐까. 지혜란 인간적인 것을 지향할 때 빛나는 법. 그래서 그는 가르치는 길을 선택했고, 그것이 너무 절박하고 소중해 대가야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홍익정신과 대가야 문화학교
그는 1995년 팔만대장경의 제작과정 연구와 뿌리 깊은 우리 刻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이산 각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1999년 <대가야문화학교>를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개관했다. 고인쇄 방법으로 목판을 직접 찍어보는 체험 과정을 통해서 선조들이 책을 만들던 원리를 배우고, 목판 인쇄의 과학성과 그 의미를 알도록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한 게 바로 대가야문화학교를 만든 계기이다.
'서점에서 그냥 책을 사는 것보다 우리 고유의 방식대로 직접 만들어 보니까 재미있었다. 선조들은 우리에게 책을 전하기 위해 너무 힘들었겠다. 다음에 가족과 같이 와서 한 번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았다. 그것도 전통적인 우리책이었다. 우선 너무너무 신기했다. 한지도 너무 고왔다. 우리만의 책을, 오직 하나뿐인 책을 만들었다는 것이 참 기쁘다. 책 한 권에 이렇게 많은 공이 드는 줄 몰랐다. 앞으로는 책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처음이라 서툴긴 했지만 직접 색칠해서 책도 만들어본 게 특별한 경험이다. 세상에서 한 권밖에 없는 책이라는 점이 매우 뿌듯하다. 역시 우리 것을 지키며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대한민국이, 목판이 자랑스럽다.'
'팔만대장경의 위대함을 다시 알게 되었고 모든 일에는 집중력이 필요한 것을 깨달았다. 독일보다 몇 백 년 빠르게 우리나라가 인쇄를 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고 조상들이 존경스럽다. 이렇게 물려주신 것들을 잘 보전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체험학습을 다녀간 중학생들의 기록이다. 대가야문화학교 현관 입구에 수북한 방명록 중 한 권을 쑥 뽑아와 꼼꼼히 읽었다. 손수 뭔가를 해본다는 것은 사물과의 또다른 소통을 끌어낸다. 한결같이, 손수 만든다는 것과 하나뿐인 책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이는 바로 존재감의 발현에 다름 아니다. 경험을 통한 발견은 창조적인 꿈으로 연결되는 법. 스스로의 손을 통해 문화의 역사와 가치를 이해하는 힘이 바로 길찾기이며, 미래이며, 자기정체성인 것이다. 이처럼 개체의 꿈은 전체라는 문화적 원형 위에서 존재감을 회복한다. 이런 과정을 실천하면서 원형 복원이 곧 혼을 살리는 작업이라는 이산선생의 믿음은 더 견고해지는 것이리라.
인쇄문화의 종주국답게 우리 기술은 나무라는 재료를 잘 살리면서 서양기법보다 간편하고 간결하다. 또한 대중이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많은 양을 인쇄할 수 있는 장점뿐 아니라, 오래도록 보존하기에 손색이 없다. <대가야문화학교>는 관람 차원에서 벗어나, 전통판각과 고인쇄문화를 직접 체험함으로서 선조들의 정신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 유치원생부터 고위 관리직까지 그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차별화하여 딱딱한 전통문화를 재미있게 접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승화시켰다. 2000년 한국문화학교로 지정되면서 판각과 고인쇄 뿐 아니라 책만들기, 목판화 엽서만들기, 한지공예, 다도 예절, 도예, 천연염색, 민요, 대가야문화유산답사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 대가야문화학교는 연간 2만여 명의 체험자들이 다녀간다. 1회에 몇 백 명씩 다녀가는 체험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또한 목판화를 인쇄하여 전통제본인 오침법으로 책 만드는 체험을 통해 그 소중함과 동시에 가족이나 친구와의 단결심을 배우게 된다. 이산선생은 언젠가 '중앙도서관전'을 계획 중인데 그때 워크샵과 전시와 함께 인쇄체험을 기획할 참이다. 가족끼리 와서도 목판인쇄본 책 한 권 정도는 스스로 제작해볼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 게다가 그는 이런 대안적인 학교를 고령뿐만 아니라 전주 등 전국으로 확산할 꿈도 가지고 있다.
"영어를 아무리 심도있게 배워도 한글 문헌의 가치를 아는 건 매우 중요하지요. 개교 100주년 되는 학교는 많아도 한글문헌연구소가 있는 학교는 하나도 없어 씁쓸합니다. 아쉬운 건 정작 아이들은 목판문화를 즐기는데 그런 환경을 갖추지 못한 현실이죠. 한글 목판을 전시하고 체험하고 복원된 자료를 누구나, 스스로 인쇄하고 제본하여 한 권 정도는 가질 수 있는 문화가 절실합니다."
이산선생은 판각문화 교육과 운동을 계속해가다보면 분명 배운 이들이 감당해야할 일이 많으리라고 예측한다. 앞으로 팔만대장경을 보수할 일이 생기거나 새로운 대장경을 조성하거나 할 때 이를 제대로 판각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절실할 거라는 것. 현재는 이러한 방면의 인재가 몇 안 된다. 현대서각과는 또 다르다. 전통서각은 칼 쓰는 부분이 달라, 현대서각을 배운 사람도 전통서각을 다시 3년 정도 배운 다음, 판화를 시작할 수 있다. 인재양성은 시간이 걸리는 분야.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전개해온 것이 '목판서화연구회'이다.
'목판서화연구회'는 다양한 전공과목의 교사들이 참여, 전통판각을 배운 분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자연이나 환경 등을 한 테마로 자신의 가치와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추구, 판각과 인쇄, 제책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직무연수를 왔던 교사들이 이산선생과 뜻이 맞아 우리 문화를 배우고 전수하며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 현재는 대구, 경북 지역의 교사들을 비롯한 18명이 참여하고 있다. 거의 교사들이라 가치관을 공유하고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매력이며, 일 년에 한번 전시회를 통해 결속력을 다지고 작업 의지를 북돋운다. 제도권이 아니라 예산 문제가 쉽지 않지만 그들 역시 꿈의 힘을 믿는 사람들.
역사를 가르치는 조윤화씨는 2년째 판각수업을 받는 중이다. 그동안 제대로 추구하는 사람도 기능 자체도 없는데, 그 문화에 관심을 가져오다 이산 선생님이 생을 걸어 작업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귀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배워서 제대로 전해줄 수 있는 환경이 없었어요. 목판각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우리 전통문화입니다. 그런 정신을 키우고 복원해내는 작업은 한민족이라면 당연한 민족적 과제가 아닐까요.”
인테리어업을 하는 박웅서씨는 현재 현풍에 작은 작업장을 가지고 개인적으로도 판각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나무 쪽에 관심이 있어 나무를 만지다보니 자연스럽게 목판에 가까워졌다는 것. 대가야가 해인사와 가깝고 학교 위치가 낙동강을 타고 온 대장경의 경로 가운데 있어 나름대로 전통문화공간으로 활용되는 폐교가 참 의미 있다고 했다.
“이산선생님이 너무 오래 혼자 힘들게 했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이제 돕고 싶어요. 선생님은 행동을 먼저 하고 말은 나중에 하는 분이라, 항상 결과가 먼저 나오는 분입니다.”
이산 안준영씨는 오늘도 오래된 미래를 향하여 걷는 중이다. 그의 목판서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낸 평상심이 바탕이리라. 무욕무념이 아니면 한자 한자 정성을 심는 일이 어찌 쉬우랴. 옛 방식이나 원형을 복원해내는 작업이 어찌 열정만 가지고 되겠는가. 그 길에서 그는 하루하루 온고지신의 지혜를 품는다. 그는 올해도 켜들어야할 의미의 등불들이 많다. 복각된 제1권 용비어천가 전국 순회전을 계획 중이고, 제2권 복각작업을 마칠 생각이다. 7월엔 영국에 한국인쇄문화를 알리는 전시체험전을 열 예정도 있다. 현재 남덕유산의 서상에 짓는 중인 박물관을 겸할 수 있는 작업실도 이번 여름에 완공할 느낌.
부산 시인들의 전통목판화의 시화제작에 대한 희망을 나누며 우리 일행은 주섬주섬 일어섰다. 시화가 담긴 목판을 우리가 찍고 채색하고 제본까지 우리 스스로 하여 한 권씩 간직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있는 작업일까. 참 사치스러운 꿈이면서 누리고 싶은 꿈이었다. 발돋움으로 창을 내다보는 눈동자처럼 우리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면을 오래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의미라는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에 바쁘고 충실한 점등인 안준영씨. 그 깜박임은 세상의 모든 삶과 꿈을 반짝임으로 수놓고 있으리라. 전통판각은 원형을 끌어내어 진정한 미래와 소통하는, 자연과 사람을 향한, 예술과 기술을 향한 그 모든 교감의 구체적인 작업이다. 그 문화적 자부심이 어찌 순수하고 사려깊지 않을 수 있으랴. 의미와 무의미의 무한한 싸움을 그는 매일 진지하고 뜨겁게 치르는 중. 그렇게 하여 그의 원형의 꿈은 우리 문화와 역사에 깊은 광맥으로 흐르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