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와 국가 소멸 ③
몽골, 첫날밤과 매독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제국을 경영했던 몽골의 인구추세를 보자. 몽골의 전성기인 13세기의 인구는 약 100만 명 정도이었는데 1000년이 지난 지금도 겨우 300만 명에 머무르고 있다. 몽골은 외세에 땅만 잃은 것이 아니라 인구도 함께 잃어버렸다. 몽골족은 중국에 500만명, 러시아에 100만 명, 몽골의 300만 명까지 합해도 아직은 1000만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확한 기록으로는 몽골의 첫 인구조사는 20세기인 1918년에 이루어졌고, 이때만 해도 몽골에는 약 647,500여 명이었다. 1963에서야 백만이 되었고(1,017,100), 한세대가 지난 1989에 겨우 2,043,954, 또 한 세대가 지난 2020년 3,358,800명 이 되었다. 인구증가가 느린 것이다. 우리나라도 몽골의 지배 말에는 고려 500만 명에서 지금은 7000만 명이(2021년 남북한 7723; 남한/5175, 북/2458) 되었고, 영국은 비교 당시 영국 200명에서 지금은 6500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비해 몽골족은 아직도 1000만 명을 밑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청나라의 몽골에 대한 보복적 통치술에서 비롯된다. 몽골은 후금의 홍타이지에게 정복당한 1635년부터 청으로부터 독립한 1921년까지 300년 가까이 지배를 당했다. 청나라는 몽골인들의 역동성과 단결성을 억제하고, 청나라의 지배구조에 순응하는 동화정책을 실시했다. 청나라는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정치적 지도자로 젭춘담바 후툭투(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를 선택했으며, 달라이 라마와 마찬가지로 환생하는 존재로 믿어진 젭춘담바 후툭투는 8대에 걸쳐 몽골을 통치했다. 부국강병과는 동떨어진 티베트 불교, 라마교를 신봉하는 국가, 행사에 돈이 많이 들고 용맹한 기질을 말살하는 비폭력적인 티베트 불교를 몽골인에 강제하였다. 종교가 지배하는 독특한 정책으로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모든 몽골인들은 첫째 아들을 라마승으로 출가해야 했다. 독신생활을 하는 라마승에게 주는 보상으로는 초야권(初夜權)이라는 특권을 주었다. 초야권은 신혼의 신부는 첫날밤을 반드시 라마와 함께 치러야 하는 것이다. 신부는 초야의 선물로 라마로부터 매독이라는 성병을 받아서 신랑과 자식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초야권을 행사하는 라마는 매독의 숙주가 되어 청의 지배말년에는 몽골은 매독환자가 인구의 70%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몽골인의 인구는 사망률이 높아지고 인구가 줄어드는 인구 절벽을 만나게 된 것이다. 몽골은 독립 후에 인구증가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출산장려와 보상을 위한 지엽적인 정책사례이지만 10명이상을 출산한 여성은 영웅의 예우와 특혜를 주었으며, 모든 여성들은 남성보다 정년을 5년 앞당기어 연금을 주었고,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2023.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