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등산에 안긴 광주의 명물
광주시내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무등산을 등 뒤에 두고 서 있는 하얀 건물을 볼 수 있다.
광주 동구 서석동 375번지 주소를 둔 조선대학교다.
광주를 상징하는 것이 무등산이라고 한다면 건축물 중에서는 단연 무등산을 배경으로 하얀 자태를 뿜어내는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을 연상케 한다.
광주의 어머니와 같은 무등산의 푸른 배경에 학들이 내려 앉아 있는 듯 하얀 큰 건물이 줄지어 있어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19개의 박공지붕이 산 모양으로 배열돼 있는 한 가운데 본관과 양 옆의 2개의 건물이 건축가들 사이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5개의 박공지붕 건물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시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고 광주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 최초의 민립(民立)대학으로 출발한 조선대학교는 1946년 9월 7만 2천여여 명으로 이루어진 조선대학교 설립동지회에서 설립, 1948년 조선대학으로 개편돼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후 오늘날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사립대학으로 발전했다.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의 총 길이는 대학의 지번인 375번지와 같은 375m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건물의 구조는 단위모듈이 3.6m, 기본모듈이 7.2m로 구성되는 총 19개의 박공지붕이 삼각형 모양으로 배열돼 있다.
연면적은 4만2천605.43㎡ 건축연면적은 6천586.48㎡인 건물의 건립연도는 1951년도다. 1948년 이길성 씨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붉은 벽돌에 팔(八)자형 지붕
이 건물이 지어진 1948년 광주지역에는 해방 이후라서 건축자재가 아주 귀했고 기술도 뒤떨어져 2, 3층 건물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1951년 당시 6층 건물의 건축은 크기나 높이에서 그 위용이 대단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의 건축 재료는 기본적으로 붉은 벽돌이었고 박공지붕은 슬레이트가 쓰였다.
학교 건물에 이 같은 박공지붕 양식이 도입된 것은 미학적인 측면보다는 재료가 적게 들고, 구조가 간단해 실용적인 측면에서 도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건물이 백색으로 보이는 것은 흰 페인트를 칠했기 때문이다.
이 건물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건립된 김순하 씨의 설계 작품인 옛 전남도 청사 역시 원래는 붉은 벽돌 건물이었으나 후에 흰색으로 페인트칠한 것이다.
처음에 이 건물이 건축될 때에는 박공형의 중심건물을 중앙에 두고 대칭적으로 양쪽에 상자모습의 방형건물이 하나씩만 있었다.
그 후 어떤 연유인지 알려지고 있지 않으나 양 옆에 방형건물을 하나씩 새롭게 축조한 다음 그 위에 삼각형 부분을 증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조선대학교 건물은 오늘처럼 박공형 지붕이 계속된 모습을 보여주는 거대한 건물로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보면 박공형 사이에 2m 가량 슬라브 지붕이 있고 이어 박공형 지붕의 건물이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1948년 1962년, 1982년 수리 및 증축 기록이 있다 전체적인 건물의 모습은 중앙 현관을 중심으로 강한 대칭성을 지니면서 6층의 중앙부를 높게 하고 양쪽 층을 조금 낮게 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따라서 중앙과 좌·우측의 높은 부분에 출입구를 두었고, 배면에 편복도를 두어 전면의 각실과 연결했고 층간에는 계단으로 오르내리도록 했다.
이러한 형식은 이 시기에 건립된 건물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 정면진입, 편복도 형태가 주를 이룬다.
건물 2층 총장실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새로이 증축된 원통형의 교수연구실과 왼쪽으로 법학도서관 건물이 연결돼 있다.
건물의 층고는 기준층이 약 5.2m나 박공 하부는 층이 변화돼 일정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보존대책 마련 시급한 과제
이처럼 높은 건물을 벽돌조로 건축하기에는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으나 벽면을 벽돌 두장 쌓기를 통해 견고함을 높였고 이 보다 더 두껍게 기둥형식으로 부축벽을 만들어 건물의 구조체계를 갖췄다. 나중에 증축된 부분들은 벽돌 대신 철근 콘크리트가 골격을 이뤘다.
건물 전면광장과 뒷면은 건물을 따라 도로가 있으며 남은 공간은 대부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당초 계획에는 본관 건물 뒤편에 20층 이상 규모의 구(球)형 건물을 계획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만약 예정대로 차질없이 추진됐다면 지역의 명물이나 큰 관심을 끌었을 수도 있지만 환경단체의 반발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광주건축 100년’을 쓴 천득염 교수(전남대 건축학과)는 “본관 건물은 산허리에 입지한 거대한 규모에 비해 기본시설인 배수로와 경사지 처리시설의 미비로 건물후면은 낙석과 우수 범람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수차례 무리한 증축으로 인해 본관 중앙에 가장 높이 솟아 있는 6층은 안전의 문제를 들어 통행을 막고 있다. 광주시의 안전도 진단 결과 최하등급을 받은 까닭이다.
이러한 부분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2002년 8월 조사를 벌였던 천득염 교수는 광주지역에 많지 않은 1950년대 건물로 외부형태의 독특한 조형성과 무등산과 어울리는 인지성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04년 9월 4일 중앙의 5개 박공부분에 한해 광주시는 등록문화재 94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첫댓글 하얀색이 이채롭네요.
자료 잘구경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구경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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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 잘 했습니다.
자료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구경한번잘했네!
GOOOOOOD
멋져요
멋져요
감사
잘봤습니다~
다닐땐 좋은줄 몰랐는데 이렇게보니 명물이내요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