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불법(佛法)
생활을 떠나서 불법을 따로 구하지 말라.
생활을 잃고 따로 그 어떤 것이 있다고 결코 믿지 말라.
살아가는 모든 것이 곧 불법이니 내가 있는 곳이 불교요,
내가 살아가는 것이 불교다.
생활을 불교식으로 바꾸는 것이 작은 일이라면
생활과 존재 그 자체가 불법 그것임을 깊이 깨닫는 것은 큰일이다.
불교를 생활화하기보다 생활이 진리임을 알라.
새도 깃을 다듬고서야 난다.
사람도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야 무엇이든 하게 된다.
남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거든 먼저 내 마음 안으로 남을 위하라.
그것은 전화를 걸려면 먼저 내 쪽에서 송화기를 들어야 하는 것과 같다.
무슨 일이든 나로부터 닦고 내 마음 안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모두를 살리는 진리이다.
상대가 하찮아 보이고 못나 보이고 밉게 여겨질 때든
저것이 바로 내가 몰랐던 시절에 나의 못 낫던 시절의 나이지 하고
넓은 아량과 지혜로 사랑과 자비를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수 억겁을 지나면서 갖가지 모습을 보이면서 살았던 나인데
어찌 잘못이 있다거나 하찮은 짓을 한다 해서
상대를 보고 너는 아니다 라며 버릴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도둑질한 자기 자식을 말없는 슬픔으로 감싸듯이
다른 사람의 행업을 마음으로 감싸면서 자비심을 내도록 하라.
정법이니 사법이니 가리느라 몸과 입과 뜻으로 업을 짓지 말고
다만 그윽한 마음을 내도록하라.
사람이 고통을 싫어하는 것이나
축생과 미물들이 고통을 싫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생명을 가장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평안과 자유를 위해서 아픔을 견디며
피눈물 나는 노력과 투쟁을 하고 있다.
사실 차원의 높고 낮음에 있어서는 사람과 축생 미물이
서로 다를망정 하나의 생명이 겪는
근본적인 아픔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다.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되지만 급할 때에는
가령 토끼를 잡더라도 그 토끼가 내 몸이요 내 생명이며
내 마음인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래야 죽여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비의 천도가 된다.
그래야 토끼가 나로 환생되는 것이니
나를 원망하기보다 이렇게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웠든가 하는 생각에 환희를 느낀다.
행복이란 자기가 만드는 것이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가져다준다고 기대하거나 믿지 마라.
거기에 착을 두면 온갖 번뇌가 따른다.
슬픈 생각을 하면 슬프게 살고
옹졸한 생각을 하면 옹졸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불법의 진리는 그런 것이 아니니,
믿어 발랄하고 생동력 있게 산다면 스스로 풍요로워진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 하고 많은 일들을 보고 듣고 겪으며,
일일이 언짢아하고 분개하고
울고 웃다보면 넝마밖에는 될 것이 없다.
시대를 탓하고 나라를 탓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주위사람들을 못 마땅해 한다면
스스로 갈갈이 찢긴 넝마가 될 뿐이다.
재산을 쓰는 사람이 되라.
재산에 쓰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재산에 쓰이는 사람에게는 재산이 곧 짐이라 온갖 풍파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재산을 쓰는 사람에게는
재산이 편리한 가축이 되어 자꾸 새끼를 친다.
이익을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손해만 보고 살라는 것도 아니다.
이익과 손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짝으로 다니지 결코 혼자서 다니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늘 그 뒷면을 불 줄 알아야한다.
이익을 보아도 이익에 빠지지 않고
손해를 보아도 손해에 낙담하지 말라.
자기의 마음의 자리를 묵연히 지키면서
이익과 손해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 속에서
인연의 자기를 알아 침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중도의 발걸음이라 할 것이다.
만약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의 중심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침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중도의 길을 걷는 사람의 발걸음이라 할 것이다.
만약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빗나간다 해도
입으로 몸으로 물질로 상대하지 마라.
오직 마음에 맡기고 관하고 놓아버려라.
그러면 서로 통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할 때 전화번호를 이쪽에서 저쪽에서
마음의 진실이 이것이 참된 사랑이요 이시대의 불법이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자비롭게 대하라.
그리고 놓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람들은 조그마한 사랑을 가지고 죽네 사네 야단이지만
큰 사랑은 죽어도 사랑이요 살려도 사랑이다.
그것이 자비다 죽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의 여종이면서 동시에 남편의 어머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슴이면서 동시에 아내의 아버지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때에 따라서
여종도 되었다가 어머니도 되어야 할 것이요
남편도 능수능란하게 머슴과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은 곧 감싸줄 때와 타 이를 때가 있어야 하고
져줄 때가 있는가 하면 권위가 서야 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 역할을 뒤집어서 한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역할을 잘해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현명한 남편 현명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을 거두어 드려서 자성에 깊이 맡기고
맑고 티 없는 자세로 모든 상황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자세로 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인간의 삶이
그 얼마나 크나큰 삶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 법은 인간에게 그런 슬기의 싹을 움틔워 준다.
시대가 급변하는 대로 우리가 앞장서서
마음의 촛불을 켜고 밝게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법이지 따로 부처님의 법이 있겠는가?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