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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이 한창일 때 서울로 강의를 다녀왔다. 서울길은 최소한 1박2일이 걸린다. 하루에 왕복하기엔 멀기도 하지만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지를 않아서 하루만에 돌아올 수가 없다. 한번 올라가면 친정엄마 뵙고 오니 그건 좋다. 또 세상 돌아가는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뜻이 통하는 이들과 만나는 기쁨도 있다. 하지만 서울을 다녀오면 며칠 그 여파가 이어져 생활리듬을 잘 찾지 못하고 헤맨다. 보통 강의 시간이 2시간. 그 시간을 위해 며칠을 투자해야 하는 셈이다. 서울로 오가는 버스에서 이번에는 무얼 쓸까 생각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집으로 돌아와서야 주제를 하나 잡을 수 있었다. 달거리 이야기로. 중학교 때 시작한 달거리가 40대 후반에 끝났으니 거의 20여년. 일년에 열두 번에 20년이라고 쳐 2백사십 번. 애 둘 낳느라고 하기엔 참 지루한 투자다. 서울 길처럼. 내가 처음 달거리를 시작했던 때만 해도 기저귀천으로 달거리대를 만들어 쓸 때였다. 그걸 학교에 들고 다니다가 일요일에 빨아서 널어야 했으니 중학생에게는 달거리는 귀찮은 일로 다가왔다. 어디를 나가려고 해도, 달거리 때 잠을 잘 때도, 늘 조심조심. 내 몸에 마음 쓰기보다 몸가짐에 마음 써야 했다. 남편과 부부관계는 또 어떤가. 아기를 가지고 싶었던 때를 빼고는 마음 편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귀찮기만 하던 달거리를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한 건 사십대가 넘어서 딸이 달거리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우리 여성에게 달거리가 진정 무엇일까?
우리 여성에게 달거리가 진정 무엇일까?
가끔 강의를 시작할 때 여러분들께 묻는 질문이 있다. “내게 가장 가까운 자연은 무엇일까요?” 그러면 나무, 강, 꽃 뭐 이런 답이 나오기도 하는데, 한 두 분 정도 “몸”이라고 하신다. 그렇다 내 몸이야말로 자연이 아닌가. 내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 그런데 그걸 별로 생각지도 않고 내 몸을 노예처럼 부리는데 익숙했다. 내 욕심에 맞춰 따라 움직이라고 말이다. 내 몸을 꾸미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내 몸이 원하는 게 무언지는 별 관심이 없이 살았다. 그러다가 크리스티안 노스럽 책을 만나고, 딸에게 달거리를 어찌 설명해 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달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골로 오면 밤이면 늘 달을 볼 줄 알았는데 달이 잘 안 보인다. 달이 언제 어떻게 뜨는지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보름달은 초저녁에 동산에서 떠서 밤 내내 하늘에 떠 있다가 새벽에 서산으로 진다. 잘 보일 뿐만 아니라 밤새도록 떠 온 세상을 일렁이게 한다. 그럼 초승달은? 초승달이 우리 눈에 보이는 건 초저녁 해질 무렵인데, 이때 초승달은 서쪽 하늘에서 져가고 있다. 달이 점점 커지면서 달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해 반달 무렵이 되면 초저녁에 하늘 꼭대기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반달을 지나 달이 차올라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 점점 동쪽하늘로 옮겨 떠오르다가 보름에 가장 동쪽에서 떠오르는 거다. 그렇게 환하게 온 세상을 비추던 보름달이 차츰 기울기 시작하면 달은 줄어들면서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점점 늦게 보이기 시작해 그믐이 가까워지면 새벽녘에 잠깐 보이다 만다. 내 눈으로 달을 바라보면서 달거리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도 이해했다. 여자들의 몸은 달이 차고기우는 것과 비슷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배란기를 보름이라고 할 때 보름으로 차오를 때는 의욕이 넘치고 밖으로 뻗친다. 하지만 보름을 지나 그믐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밖이 아닌 안으로 오모아진다. 보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게 즐겁다면 그믐에는 혼자 있는 게 더 좋다. 어느 원시 부족은 여성이 달거리를 하면 부족원 모두 그 여성을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단다. 달거리를 하는 여성은 혼자 지내고 혼자 밥 먹고. 그믐에 달이 없이 깜깜한 밤처럼. 그렇게 혼자 있으면서 잠을 푹 자고 자신의 몸에 귀 기울이는 때다. 그래야 보름으로 환하게 차오를 수 있다. 천문학은 보통 관찰자의 시점으로 우주를 본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를 보거나, 공중에 있는 것처럼 달과 지구를 본다. 천문학으로 볼 뿐 아니라 내 눈에 보이듯, 내가 겪는 그대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 몸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몸을 해부하듯 어디에 간이 있고, 허파가 있고, 간은 무슨 일을 하고 허파는 일분에 몇 번 숨을 쉬어야 정상이고……. 의사가 수술하고 진찰하듯 내 몸을 대하는 게 아니라, 오줌이 마려운지, 잠이 오는지, 왜 오늘 아침에 똥을 제대로 못 누었는지, 어제 밤 왜 잠이 안 왔는지……. 내 몸이 느끼는 대로 귀 기울이면 얼마나 좋겠나.
여성민우회에서 배운 ‘완경’이라는 말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시작하고 내 몸에 귀 기울여 배란을 느낄 수 있게 될 즈음, 내 몸은 달거리를 끝내가고 있었다. 그 무렵 여성민우회에서 ‘완경’이라는 말을 배웠다. 폐경이 아닌 완경. 호르몬의 흐름이 바뀌는 그 몇 년 몸은 변화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몸을 움직이는 리듬이 달라지면서 여기저기 삐꺽하기도 하고, 마음도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왔다 갔다 했다. 내 삶이 뭔가 싶기도 하고, 아, 그때 셋째를 확 가져버릴 걸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하지만 완경이라는 말 덕에 그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다. 내 또래도 거의 없어 내 몸과 마음의 출렁거림을 나눌 친구도 없었지만 ‘완경’이라는 말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 어려움은 우리 언니 그 위에 언니들도 겪은 자연스런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또 달거리를 했던 이십여 년보다 어쩌면 더 길지도 모르는 앞날을 긍정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완경을 한 지금은 여러 가지로 편하다. 몸도 가쁜하고 삶도 더 단순해진다. 부부 사이도 더 좋아졌다. 다만 한 가지, 달거리가 한달에 한번 몸의 독소를 빼주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제는 스스로 몸을 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태어났던 때가 초승달이었다면 내가 달거리를 시작한 게 차오르는 반달. 아이를 낳고 길렀던 젊은 시절이 보름. 달거리를 끝낼 무렵은 기우는 반달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믐으로 가고 있는 건데, 산골에 산 덕에 그믐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온 세상을 편히 잠들 수 있게 해주는 그믐. 고요한 밤은 바로 그믐의 밤이다. 풀도 곡식도 나무도 그믐에는 편히 잔다. 그믐에 편히 자야 새로운 생명을 맺는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믐에는 편히 자야 새로이 시작할 수 있어
비우는 맛. 가벼워지는 즐거움. 그믐을 알기에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뭐 거창한 거는 아니다. 내 곁에 있는 후배여성이 달거리를 하면 그 여성에게 하루 쉴 수 있도록 해주겠노라고. 손놓고 푹 쉬면서 자기 몸에 귀 기울이며 그믐을 그믐답게 지낼 수 있도록. 지금은 딸한테, 나중에는 며느리한테. 내가 남자라면 아내한테. 마지막으로 한 마디. 앞에서 “내게 가장 가까운 자연은 무엇일까요?”하고 물었을 때 “몸”이라고 대답하신 분은 모두 여성이었다. 여성은 달거리를 하는 덕에 몸에 기울이는 걸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완경을 긍정하고 새로운 몸을 유지하고 그 몸에 맞는 인생을 펼쳐나갈 때 우리 여성들은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