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라는 벨기에 출신 소설가를 아시는지. 대답은 두 가지일 것이다. 아주 잘 알거나 전혀 모르거나. 그의 소설은 한 권만 읽어도 뇌리에 강하게 박힌다.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 촌철살인의 대화법 등은 신선함을 넘어 ‘가 보지 않은 낯선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그 낯섦은 그의 소설을 싫어하는 독자라도 신간이 나오면 ‘이번엔 또 어떤 기상천외함이 있을까?’라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그의 소설에 대한 선호도 역시 극과 극으로 나뉜다. 열광하거나 거북해하거나. 이는 죽음과 강간, 납치와 살인 등 극단적 상황 설정이 많고, 극렬하게 대립하는 인물을 등장시켜 그 인물이 가진 허위의식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글쓰기 방식, 냉혹하고 직설적인 현실 인식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고 위악적으로 긍정하기보다는 삶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조롱한다. 읽고 나면 후련하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아멜리 노통브는 프랑스에서 하나의 현상이다. 그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의 패션은 곧 유행이 되며 소위 ‘아멜리 신드롬’을 일으킨다. 그가 25세 때 발표한 《살인자의 건강법》은 ‘천재의 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불치병에 걸려 두 달밖에 살지 못하는 괴팍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의 인터뷰를 다룬 이 책은 우선 재미있다. 깊이도 있으면서 술술 읽힌다. 인간의 허위의식을 조롱하고, 육욕을 알기 이전의 순결한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문학의 모호함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마치 게임하듯 펼쳐진다. 이 책은 국내에서만 7만 부 가까이 팔렸고,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됐다.
노통브와의 이메일 인터뷰는 쉽게 성사됐다. 질문 메일을 보낸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육필 원고로 답변이 왔다. 그러나 힘이 빠졌다. 그의 소설을 보며 친절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질문에 비해 답변이 매우 짧았다. 인터뷰를 주선한 출판 관계자는 “그는 ‘원래’ 그렇다”고 했다. 문답식이 아닌 서술형으로 녹여서 쓸까 고민하다가 아멜리 노통브 육성 그대로 옮긴다.
이메일 인터뷰 답장을 쓰고 있는 그곳 주변 풍경이 궁금하다.
시간과 장소, 눈에 보이는 것과 그것들을 바라보는 느낌은?
오전 8시, 복잡하게 어질러진 책상에 앉아 이 답변을 쓰고 있다. 정신이 아주 맑다.
컴퓨터를 쓰지 않고 종이와 펜으로 창작한다고 들었다. 이유가 궁금하다.
다른 것들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책 곳곳에서 ‘절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묻어난다. 게다가 미적 탐닉 대상의 대부분은 ‘여성’과 ‘젊음’이다.
‘남성’과 ‘나이듦’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언제 어디서나 발현될 수 있다.
그저 젊은 여성에게서 자주 볼 뿐이다.
당신은 프랑스 문단에서 하나의 현상이다. 내놓는 소설마다 화제가 되고, 입는 옷은 유행이 된다. 작품 자체가 지닌 매력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윽한 눈망울을 가진 미모의 젊은 소설가’라는 것도 이유라고 생각한다. ‘절정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당신이 스스로의 노화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떤가.
내 나이 마흔 둘,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주 늙은이로 살고 있다.
늙는다는 것, 늙은이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앞으로도 멋진 노년을 보내리라 생각한다.
살인과 강간(《적의 화장법》), 탐식(《살인자의 건강법》), 거식증(《배고픔의 자서전》), 거짓의 극단-뒤바뀐 삶-(《왕자의 특권》) 등 극단적 욕망을 소재로 인간 본연의 허위의식을 찌르는 작품이 많다. 당신 소설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는가. 또는 어떤 영향을 끼치길 바라는가.
독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직 현실을 그려 낼 뿐이다.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중국·미국·방글라데시·보르네오·라오스 등지에서 살았고, 이 경험이 소설의 재료가 됐다. 《두려움과 떨림》에서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배고픔의 자서전》에서는 중국과 중국인의 속성에 대해 예리한 시각을 담았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오빠가 10년째 서울에서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여러 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당신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어릴 때는 정말 끊임없이 이사를 다녔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바로 모든 것에 대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극동 아시아에서 살았던 덕에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었다.
자전적 소설에 자신을 ‘신’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 “나는 신이다. 나는 우주를 다스렸다”, “일곱 살에, 나는 이미 겪을 일을 다 겪었다는 분명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신성도 경험했고, 이에 따르는 절대적 만족감도 맛보았다”(《배고픔의 자서전》), “후부키, 나는 신이야. 네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신이야”(《두려움과 떨림》) 등. 자신이 선택받은 존재라는 특권의식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신은 특권의식을 가진 신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인식이 신적이었다는 것이다.
글쓰기광,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다. 1년에 네 편 정도 소설을 쓴다고 들었다. 하루 집필량과 독서량은?
매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최소 4시간을 쓰고 책은 끊임없이 읽는다.
당신에게 소설쓰기는 쾌감인가, 고통인가. 《살인자의 건강법》에서는 “쾌감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는 쾌감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여자아이를 강간하는, 강간하기 위해서 강간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에게 글쓰기란 고통스러운 쾌감이다.
‘천재의 탄생’이라는 찬사를 듣던 초창기에 비해 최근작 《왕자의 특권》에서는 작가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과 허를 찌르는 속도감 있는 대화감각이 약해진 것 같다. 이전 작품은 시니컬한 문체가 매력이었다면, 근작들은 주제 의식에 감탄하면서 “오호!” 하는 여운이 남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편안해진 건가.
그렇지 않다. 내 안에는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이 작품 하나에 다 표현되지 않을 뿐이다. 작품마다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스스로 “신념에 의한 염세주의자”라고 한 바 있다. 그렇다면 타고난 기질은 염세적이지 않다는 건가.
또 40대 중반인 지금도 그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즐거운 염세주의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내 행동이 염세적인 것은 아니다.
나의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신념 자체가 염세적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집필 중인 작품에 대해 소개해 달라.
절대로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진제공 : 문학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