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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인천 97코스 제1부
하나아파트입구-천마바위봉-천마산-길마재-
중구봉-징매이고개-장미공원-계양문화회관
2024년 9월 11일
1.코스 소개(두루누비)
1)코스개요
- 인천의 진산 계양산 둘레를 걷는 길로 대부분이 걷기 좋은 산길로 조성된 코스
2)관광포인트
- 인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인천에서 가장 높은 산 '계양산'
3)여행정보(주의사항)
- 시점 : 인천시 서구 가정동 산21-51 대우하나아파트 버스정류장 부근
교통편) 인천지하철 2호선 가정역에서 도보 800m
- 종점 : 인천시 서구 검암동 414-191 인천지하철 2호선 검암역 1번출구 동측
교통편) 인천지하철 2호선, 공항철도 검암역 1번 출구 동측
- 계양산 정상에 오르면 인천 시내와 강화도, 북한산까지 조망이 가능함
- 5월에는 계양산 아래 장미원에서 다양한 종류의 장미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음
- 길이 14.3km, 소요시간 5시간 30분, 난도 어려움
- 주요경로 : 하나아파트버스정류장 3.5Km 천마산 2.1Km 계양산산림욕장 5.0Km 피고개산 4.0Km 검암역
2.천마산의 승천하는 천마의 슬픔
제1부 : 8월 28일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하나아파트 버스정류소 옆에서 서해랑길 96코스 역방향 탐방을 출발하였다. 2주 만에 서해랑길 97코스 탐방을 위해 하나아파트 버스정류소 옆에 다시 왔다. 날씨는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하다. 서해랑길 97코스는 14.3km 거리이지만 천마산 산줄기와 인천 본토 최고봉인 계양산둘레길 그리고 피고개산과 검암산 산줄기를 따라가기에 어려운 탐방길로 알려져 있다. 회원의 요청으로, 안내트레킹 대장이 공시한 제한시간 5시간보다 한 시간을 더해 6시간을 준다. 그렇다면 계양산에 올라가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풍성해진다.
대우하나아파트 1단지와 2단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천마산 산행 들머리로 올라가는데 아파트 담벽에는 천마산 안내도와 천마산 전설 속 비상하는 천마 그림이 붙어 있다. 천마산으로 가는 첫 오름길이 대단한 급경사여서 처음부터 몹시 힘겹다. 땀을 뻘뻘 쏟으며 완만한 능선에 오르니 천마바위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말발굽들이 많이 새겨져 있는 천마산 중턱의 바위를 천마바위라 이르는데 천마산 지명을 유래한 바위라고 한다. 자연적인 형상으로 말 발자국 모양이 힘차게 도약하는 듯 새겨져 있다고 하는 천마바위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천마바위는 천마산 아기장수 전설과 얽혀 있다. 천마산 아래 이씨 문중에 비범한 능력을 지닌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당시에 아기장수는 성장하여 나라에 반역을 도모한다고 하여 나라에서는 아기장수가 태어나는 가문은 그 가족과 아기장수를 모두 죽였다고 한다. 이씨 문중의 부모는 가문을 위해 몰래 아기장수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천마가 나타나 소리 내어 울며 아기장수의 집을 돌다가 아기장수의 목숨이 끊어지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천마산 중턱에 말 발자국이 무수히 나타나 있는 천마바위는 이 천마가 밟은 발자국이라고 하며 그래서 이 산을 마제봉(馬蹄峰)이라고 이른다고 한다.(설명안내판 참고)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육각정자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 천마산인 줄 알았더니 천마산은 더 북쪽 계양구 효성동에 솟아 있다. 서구 가정동 주민들은 육각정자가 조성된 산봉을 천마산이라 부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천마산은 서구 가정동의 해발 226m 천마산과 계양구 효성동의 해발 287m 천마산, 두 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육각정자가 조성되어 있는 서구 가정동의 천마산은 천마바위가 있으니 설명안내판에 나오듯이 마제봉(馬蹄峰)이라 이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제봉에서는 전망이 좋다. 남쪽을 조망하면 중앙에 원적산, 그 오른쪽 뒤에 문학산 줄기가 가늠된다. 남서쪽을 조망하면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신도시 지역의 고층아파트 빌딩들이 솟아 있다. 서쪽을 조망하면 가정동 승학산을 넘어 맨 뒤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에 청라국제도시가 펼쳐져 있다. 서북쪽을 조망하면 서구 연희동의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보이며, 그 오른쪽에 서구 심곡동 서구청이 가늠된다. 북쪽을 조망하면 왼쪽에 서구청, 오른쪽에 가톨릭관동대학교 성모병원이 가늠되며, 북서쪽 뒤에 서구 검암동 백석대교, 그 오른쪽에 서해랑길 97코스 종점인 검암역이 가늠된다. 힘겹게 오른 마제봉에서 이미 탐방한 지역을 호ㅓㅏㅣㄱ읹하고 이제 탐방하여야 할 지역을 가늠하는 풍경 조망에 가슴이 벅차다.
육각정자가 있는 천마산에서 동북쪽에 있는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구불구불 꿈틀거린다. 위치를 확인해 주는 계양산이 우뚝 솟아 있고,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동쪽 아래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철조망 울타리가 천마산 능선까지 둘러쳐져 있다. 군부대 사격훈련장에서 들려오는 사격훈련 총탄 소리가 가슴을 억누른다. 현지 주민이 이곳 군부대의 성격에 대해 설명해 주어서 군부대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게 되었다. 서해랑길 97코스 천마산 구간은 한남정맥 마루금을 따라가는 탐방길로서, 인천종주길, 인천둘레길, 서로이음길과 동행한다. 자연의 동일한 산길에 인간이 다른 지명을 너무 많이 명명한 것 같다.
서구청 방향으로 갈라지는 갈림길과 헬기장 몇 곳을 지나 서구 공촌동에서 계양구 효성동으로 넘어와 서구 해발 287m 천마산에 올랐다. 천마산에는 정상표석과 천마산 설명안내판, 새벌정 현판이 붙은 2층 누각이 세워져 있다. 천마산 2층 누각 새별정에 올라서 사방을 조망한다. 마제봉에서의 조망과 대동소이하지만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에 더 멀리 조망할 수 있으며 북쪽과 동쪽 지역이 마제봉에서보다 훨씬 더 열려 있다. 서울 북한산과 도봉산, 관악산이 미세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지역과 부평구 지역이 흐릿하게 조망되며 남쪽에 소래산이 가늠된다.
서해랑길 97코스 천마산 구간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마제봉과 천마산에서 조망한 마음으로 가슴도 활짝 열리고 마음 속 티끌들은 사라져 버렸다. 가벼운 마음에 날아갈 듯한 몸으로 천마산에서 길마재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중구봉, 탑돌이를 할 수는 돌무지탐이 자리하고 있으며 전망은 막혀 있다. 너무 가벼워졌기 때문일까? 경인교대 방향으로 잠시 잘못 내려갔다가 구중봉으로 되돌아와 징매이고개(경명현)로 내려갔다. 천마산, 구중봉, 계양산은 한남정맥 마루금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경명현 고개를 절단하여 경명대로를 개통하면서 한남정맥 마루금이 끊어졌다. 이 끊어진 고개 위에 2007~2009에 걸쳐 징매이고개 생태통로를 조성하여 산객들은 경명대로로 내려가지 않고 징매이고개 생태통로를 이용하여 산행할 수 있다.
징매이고개에서 계양산으로 이어지는 어름에 중심성터((衆心城址)가 있다. 고종3년(1866년) 8월에 일어난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양호사건 등의 이양선의 침입에 위협을 느끼게 되어 고종20년(1883년) 10월 부평부사 박희병이 주민들을 동원하여 축조한 산성이 중심성(衆心城)이라고 한다. 경명현(속칭 징매이고개)을 중심으로 동서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던 중심성(衆心城)은 현재 완전히 없어지고 잔해만이 약간 남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설명안내판 참고) 중심성터((衆心城址)를 지나면 계양산 정상으로 오르는 한남정맥 마루금 갈림목이 나온다. 서해랑길은 계양산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계양산둘레길을 남동북쪽으로 돌아 서쪽에서 한남정맥 마루금과 재회한다.
계양산 남쪽 아래 장미원으로 들어간다. 장미원은 2013년부터 조성되었다고 하며 조성 중에 인천 계양에 좌천된 고려시대의 대문호 이규보의 시비를 장미원 주차장에 세웠다고 하는데, 들르지 못하고 장미원 앞에서 길동무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나누었다. 경기 여주 출신의 이규보(1168~1241)는 52세 되던 1219년 탄핵되어 계양의 ‘도호부사병마금할’이 되어 부임하여, 계양 지역에서 스스로 자족하고 즐긴다며 ‘자오(自娛)’라 당호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정우7년 초여름 나는 좌사간 지제고에서 계양의 수령으로 좌천되었다. 고을 사람들이 산기슭의 갈대 사이에 있는 마치 달팽이의 깨진 껍질 같은 다 쓰러진 집을 태수의 거실이라고 하였다. 구조를 살펴보니 휘어진 들보를 마룻대에 걸쳐놓고 억지로 집이라고 이름했을 뿐이다. 위로는 머리를 들 수 없고 아래로는 다리를 뻗을 수 없다. 더운 때를 당하여 여기에 거처하면 마치 깊은 시루 속에 들어가서 찌고 지짐을 당하는것 같다." 이규보는 계양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오당기’뿐만 아니라 ‘초정기’와 ‘망해지’등을 남기고 있다. ‘초정기’는 처음 부임해 왔을때 무너진 풀잎지붕 정자를 다시 세웠음을 적고 있다. 초정터는 지난날 부평초등학교에서 바라보이는 동편의 작은 언덕이거나 계산동 남쪽으로 추정했는데 지금은 모두 흔적도 없고 분간 조차 불가능하다. - 출처 : 인천신문http://www.incheonnewspaper.com 2009.10.11.
장미원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고 하는 문순공백운이규보선생시비의 내용을 알아보았다. 계양부사 시절에 빗속에서 농사짓는 농부를 보고 시를 지어 서기(書記)에게 건네주었다는 시라고 한다. 국력의 바탕은 민력, 땀 흘리며 일하는 농민들의 공력임을 표현한 내용이다. 오늘날도 국력은 민력이요, 그 바탕은 노동자와 농민일 것이다.
나라가 잘되고 못됨 민력에 달렸고 一國濟肥民力內(일국제비민력내)
만민의 살고 죽음 벼 싹에 매였네 萬人生死稻芽中(만인생사도아중)
가을날 옥 같은 곡식 일천 창고에 쌓이리니 他時玉粒堆千廩(타시옥립퇴촌름)
땀 흘리는 농민들 오늘의 공을 기록하게나 請記今朝汗滴功(청기금조한적공)
- "비 속에서 농사짓는 사람을 보고 서기에게 써 주다 雨中觀耕者贈書記(우중관경자증서기)"
3.탐방 과정
전쳬 탐방 거리 : 15.3km
전체 소요 시간 : 6시간 25분(휴식시간 36분 포함)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하나아파트 버스정류소 동쪽에 서해랑길 96·97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 97코스는 거리 14.3km, 소요 시간 5시간, 난도 매우 어려움이다.
서해랑길 97코스 탐방을 출발하며 서해랑길 96·97코스 안내도와 함께 기념한다. 서쪽에 하나아파트 버스정류소가 있다.
서해랑길 97코스 탐방 출발지를 돌아본다. 서해랑길 96·97코스 안내도와 서인천우체국의 우편물보관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서쪽에 하나아파트 버스정류소가 있다. 2주 전에 이곳에서 서해랑길 96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였다.
봉오대로 대우하나아파트 입구에서 서해랑길 97코스는 왼쪽으로 꺾어 하나아파트와 천마산 방향으로 북진하고, 96코스 역방향은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너 원적산 방향으로 남진한다.
봉오대로는 인천광역시 서구 서해교차로부터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서울시계에 이르는 길이 15.6km, 왕복 8~10차선의 도로이며, 루원지하도~효성고가교 앞까지는 6번 국도의 일부이다. 원래 인천광역시 구간은 봉화로와 아나지로, 부천시 구간은 오정대로였으나, 2011년 도로명주소 개정 시행에 따라 하나의 도로로 통합되어 봉화로 + 오정대로 = '봉오'대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25년 영종국제도시~청라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제3연륙교가 개통되면 영종국제도시의 준고속화도로 하늘대로와 직결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대신 서울 도심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접근하는 우회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추가로 자동차 전용도로 구간은 경인고속도로에 포함된다. - 나무위키
하나아파트로 가는 길에 서구 가정동 지역의 뉴서울 아파트와 하나3차 아파트 단지를 올려본다. 서구 가정동(佳亭洞)은 조선 창업의 개국공신(開國功臣) 숙위공(肅魏公) 조반(趙朌)의 별장인 ‘가정(佳亭)’이 있어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봉오대로에서 봉오대로318번길을 따라 대우하나아파트로 올라간다.
왼쪽의 관인 고은유치원 노란 건물과 오른쪽의 하나1차 아파트단지 사이로 나 있는 봉오대로318번길을 따라간다.
봉오대로318번길에서 중앙 뒤에 보이는 원적산과 한남정맥 산줄기를 뒤돌아본다. 산줄기 북쪽은 가정동 지역이다.
가정동(佳亭洞)은 인천광역시 서구의 법정동이며, 관할 행정동은 가정1동, 가정2동, 가정3동이다. 동쪽으로는 계양구 효성동과 부평구 청천동을, 서쪽으로는 신현동과 청라동(청라국제도시)을, 남쪽으로는 석남동을, 북쪽으로는 심곡동을 접한다. 가정동(佳亭洞) 지명은 조선 창업의 개국공신 숙위공 조반의 별장인 ‘가정(佳亭)’이 있어서 유래되었다. 경인고속도로를 낀 가정오거리를 중심으로 번화가였던 지역이지만, 과거 루원시티가 개발되기 전인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루원시티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헬게이트가 열려 우범지역, 폐허 지역이 되어 양아치들이 춘추전국시대 무협을 찍기도 했던 동네였다. 현재는 재개발이 진행되었기에 위 이야기는 전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 나무위키
서해랑길은 대우하나 3차아파트 단지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대우하나 2차 아파트 단지 옆으로 이어간다.
오른쪽은 대우하나 1차아파트 단지이고, 왼쪽은 대우하나 2차아파트 단지이다. 왼쪽 벽에 천마산 안내도가 붙어 있다.
위쪽에는 천마산 안내도, 아래쪽에는 천마산 역사 설명글이 적혀 있다.
천마산 역사 : 천마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바위는 천마(天馬)바위 또는 마제(馬蹄)바위라고 불리는데 바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말발굽 형태의 흔적들이, 마치 말이 하늘을 향해 도약을 한 것처럼 바위를 함차게 내딛은 형태라 천마(天馬)가 비상(飛上)하는 순간을 보는 듯하여, 날개 달린 말이 이 산에서 날아올랐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 산의 남쪽 아랫마을에 살았다는 아기장수에 대한 설화와 천마(天馬)의 비상(飛上)에 대한 설화가 합쳐져 이 산 이름 천마산(天馬山)이 유래하였으며, 이 이야기들과 이 산의 이름은 지상의 인간이 하늘과 교감하고 소통하려는 소망과 의지를 신성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것으로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천마산 등산로 출입구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 천마산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천마산 등산로 출입구에 천마산 등산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설치한 지가 오래되어 안내문 읽기가 어렵다.
천마산의 유래 : 서구와 계양구를 가르는 천마산(天馬山)은 서구 공촌동, 심곡동과 계양구 효성동 사이에 걸쳐 있는 해발 267m의 산이다. 이 산에는 '천마와 아이장수'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오랫동안 '철마산'으로 잘못 불러왔다. 부평의 향토사학자인 고 조기준 선생에 따르면 1916년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을 위해 세부 측량 때 도면에 '철마산'으로 표기하면서 천마산이 철마산으로 둔갑하였다고 한다.
천마산 아기장수 : 천마산은 옛날 이 산 계곡에서 천마가 나왔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천마산 아래 가정동 이씨 문중에서 아기가 한 명 태어났는데 그 아기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걸음을 걸었고 양 어깨에 날개가 달려 천장을 날아다녔다고 한다. 아기장수의 부모는 관가에서 이 사실을 알까봐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옛날에는 아기장수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자라 반역을 할까봐 두려워서 관가에서는 감시와 단속을 엄중히 하였다. 그리고 후환이 두려워 아이장수가 태어났다는 소문이 나면 등달같이 달려가 소문이 난 아기는 부모와 함께 죽였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기장수의 부모는 고민 끝에 그 아기를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기를 죽이려 하자 아기는 휙 날아 천장에 붙었다. 그러나 부모는 끝내 아기를 끌어내려 다듬이돌로 눌러 죽였다. 이때 용마가 나타나 소리 내어 울며 아기장사의 집을 빙빙 돌다가 아기장수의 목숨이 끊어지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이후 이씨 문중에서는 전혀 인물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천마산 중턱에 말 발자국이 무수히 나타나 있는 암석이 있다. 이 말 발자국은 옛날에 이 천마가 밟은 발자국이라고 하며 이 산을 마제봉(馬蹄峰)이라고 한다.
천마 등산로 출입구에서부터 급경사 오름길이 시작된다. 몹시 힘겹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서 육각정자로 가는 길에 인천종주길2코스 스탬프함과 함께 천마바위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 천마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에는 말이 하늘을 향해 비상한 말발굽이 많이 새겨져 있는데, 인위적으로 새긴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형상으로 그 모양이 힘차게 도약하는 듯한 자국이고 허공을 향해 방향을 잡고 있다. 그래서 이 산에 천마산(天馬山)이라는 지명이 붙여졌고 그런 전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이 천마(天馬)바위이다. 이 천마바위와 관련하여 이곳에 천마가 살았다는 전설, 그리고 이 산의 남쪽 아래에 아기장수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데 암벽 위에 패인 말발굽 형상을 보고 천마에 대한 상상력을 더해 지명을 붙인 것은 지상의 인간이 하늘과 교통하는 신성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상징으로 우리 조상의 오랜 의식에서 유래된다.
조선 중기 이곳 산기슭의 합천 이씨 문중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다. 이 아기장수는 태어난지 일주일 만에 걷고 얼마 후 양 어깨에 날개가 돋아나 천장을 날아 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엔 이런 장수나 위인이 나면 후일 반역을 염려해 나라에서 그 집안 일족을 모두 죽여 없앴기 때문에 아기장수의 부모들은 후환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 아기장수를 붙잡아 내려 다듬이돌로 눌러 죽이려 했다. 그때 천마가 날아올라 큰 소리로 울며 아기장수의 집 주위를 맴돌며 구슬프게 울어대다가 아기장수의 숨이 끊어지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해발 226m 산봉에 삼각점이 있고 육각정자가 조성되어 있다. 이 산을 천마산이라 이르는데 마제봉이라 불러야 할 듯.
남쪽을 조망하면 중앙에 원적산, 그 오른쪽 뒤에 문학산 줄기가 가늠된다. 오른쪽은 가정동 루원시티 지역이다.
남서쪽을 조망하면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루원시티 신도시 지역의 고층아파트 빌딩들이 솟아 있다.
Lu1 City : ‘루원(樓苑)’이라는 명칭은 가정동(佳亭洞)의 의미를 풀어서 재해석한 것으로서, ‘아름다운 누각이 있는 정원’을 뜻한다. 영어로는 Lu1으로 표기하며, 이는 인간중심도시(Lively and Useful)를 뜻하기도 한다.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의 가정오거리 일대에 건설 중인 대규모 재개발 구역이다. 2006년 사업을 계획할 당시에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개최 전까지 재개발을 끝마칠 예정이었지만, 제반상황이 여의치 않아 착공이 계속 미루어졌다. 2016년 12월에 착공 후 2017년 상반기부터 토지매각을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2024년 기준으로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된 상황이다. - 나무위키
서쪽을 조망하면 맨 뒤쪽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에 청라국제도시가 펼쳐져 있다. 앞의 산은 가정동 승학산인 듯.
인천경제자유구역이 본격적으로 설치된 2003년 7월부터 이 부지 내에 있던 섬 청라도의 명칭을 따서 청라지구로 명명됐다. 청라도(菁蘿島)라는 이름은 지금의 서구청 부근인 서곶 지역 모양에서 섬을 바라보았을 때 모양이 푸른 댕댕이넝쿨 모양으로 보인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푸른색으로 보이는 것이 마치 비단결 같다는 의미로 '비단 라'를 쓰는 사람도 있다고. 이후 매립되어 섬은 사라지고 청라도의 이름을 따서 청라지구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때 청라지구 홍보자료에서 '인천의 푸른 보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하면서 '菁蘿' 대신 '艹'가 빠진 '靑羅' 표기를 쓰고 있다.
2005년부터는 공동주택에 대한 분양이 시작됐는데 이 시기에 세워진 아파트들이 2010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단지들이다. 2011년 9월 22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지식경제부와 협의를 거쳐 도시 명칭을 기존 '청라지구'에서 '청라국제도시'로 변경했다. 이로써 국내에서 최초로 '국제도시' 라는 공식명칭이 지정된 도시가 되었다. 경제자유구역 후보지 지정 20년 만인 2022년에 분양이 계획된 모든 아파트의 입주가 마무리됐고 현재는 도시 중심부의 인공운하 커낼웨이 주변으로 다양한 주상복합과 오피스텔이 지어지고 있다. 아울러 도시 서쪽편 부지에 인천로봇랜드, 국제금융단지, 국제업무단지 등이 개발을 앞두고 있으며 코스트코 청라점, 스타필드 청라 및 청라 돔 야구장 등 쇼핑·체육시설 개발이 예정돼 있다. - 나무위키
서북쪽을 조망하면 서구 연희동의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보이며, 오른쪽에 서구 심곡동 서구청이 가늠된다.
북쪽을 조망하면 왼쪽에 서구청, 오른쪽에 가톨릭관동대학교 성모병원이 가늠된다. 왼쪽에 서구 검암동 백석대교, 그 오른쪽에 서해랑길 97코스 종점인 검암역이 가늠된다.
육각정자가 있는 천마산에서 동북쪽에 있는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구불구불 꿈틀거린다. 그 왼쪽 뒤에 계양산이 솟아 있다. 서해랑길 97코스 천마산 구간은 한남정맥 마루금, 인천종주길, 인천둘레길, 서로이음길과 동행한다.
천마산과 계양산이 왼쪽에 솟아 있고, 그 아래는 군부대가 자리한다. 서울 북한산과 도봉산이 미세먼지 탓에 보이지 않는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지역이 뒤쪽에 흐릿하다. 오른쪽 뒤에 관악산이 미세먼지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서서 방금 사방을 조망한 육각정자가 있는 천마산을 돌아본다. 천마산 왼쪽 뒤에 원적산이 보인다.
왼쪽 계양구 지역과 중앙의 부평구 지역이 흐릿하다. 오른쪽 뒤에 소래산이 가늠되며 중앙 뒤에 관악산이 흐릿하다.
지하철 서구청역 갈림길인 첫 번째 헬기장에서 뒤돌아서서 바라보면 원적산이 보인다.
첫 번째 헬기장에서 왼쪽 길은 인천지하철2호선 서구청역 하산길이며, 서해랑길은 오른쪽 천마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헬기장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서구 가정동에서 심곡동으로 넘어왔다.
중앙 오른쪽에 천마산이 봉긋하게 솟아 있으며, 오른쪽 철조망 울타리 아래에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세 번째 철조망을 지나간다. 오른쪽 군부대 사격훈련장에서 총탄 터지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왼쪽은 서구 심곡동 서구청과 서곶근린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서해랑길은 천마산 방향으로 직진한다.
오른쪽 군부대 사격훈련장에서 사격할 때 왼쪽으로 우회하지만 천마산 방향으로 직진한다.
이곳도 헬기장일까? 빈터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이어간다. 이곳에서 서구 심곡동에서 공촌동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
넓은 빈터에서 조금 걸어가면 오른쪽에 무덤이 있고 천마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에 나무계단길이 조성되어 있다.
나무계단길을 올라와서 왼쪽 뒤 청라동 청라국제도시와 중앙의 연희동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을 뒤돌아본다.
무덤 위 나무계단길과 두 번째 나무계단길을 올라 군부대 철조망 옆을 따라 오르면 세 번째 급경사 나무계단길이 나온다.
천마산 정상에는 '새벌정' 현판이 붙은 2층 누각이 세워져 있다. 서구 공촌동에서 계양구 효성동으로 넘어왔다.
새벌정 2층에 올라서 동북쪽의 계양구 계산동 계양산, 중앙에 살짝 모습을 보이는 계양구 효성동 중구봉을 조망한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과 효성동, 작전동 일대를 가늠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풍경이 투명하지 않다.
중앙 앞의 계양구 효성동과 그 뒤 부평구 청천동, 갈산동, 작전동 일대를 조망한다.
계양구 효성동, 서구 가정동과 석남동, 부평구 청천동과 산곡동 일대, 오른쪽에 함봉산과 원곡산, 맨 뒤에 문학산이 가늠된다.
왼쪽에 계양구 효성동, 그 뒤에 부평구 청천동, 오른쪽은 서구가정동과 그 뒤는 서구 석남동 지역이다. 중앙 왼쪽에 원적산, 그 왼쪽 뒤에 함봉산, 맨 뒤에 문학산이 보인다.
걸어온 서해랑길 97코스 천마산 능선, 오른쪽 뒤에 서구 청라동 청라국제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라동 청라국제도시, 연희동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 심곡동 서구청 등 인천광역시 서구 일대와 서해 바다가 조망된다.
심곡동, 연희동, 공촌동, 경서동, 오류동, 백석동, 왕길동, 마전동, 검암동 등 인천광역시 서구 서북쪽 일대가 조망된다.
인천광역시 서구 심곡동과 백암동, 검암동, 시천동 일대가 조망된다. 바로 앞 나뭇가지 뒤에 서해랑길97코스 종점인 검암역, 그 왼쪽에 백석대교가 가늠된다.
인천의 진산 계양구 계산동 계양산이 우뚝하다. 맨 뒤쪽은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시도시인 듯. 서해랑길은 계양산둘레길을 오른쪽으로 돌아 중앙의 피고개산과 왼쪽의 검암산을 거쳐 서구 검암동 검암역으로 이어간다.
새벌정 2층에서 조망한 뒤 내려왔다. 새벌정 현판이 붙어 있는데, 2층 누각이기에 새벌루라고 부르는 게 좋을 듯.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억새풀 벌판을 뜻하는 새벌리에서 새벌을 따서 누각 이름을 새벌정이라 붙였다고 한다.
새벌리는 효성동의 옛 지명으로 새벌리의 '새'는 억새풀을 말하며, '벌'은 벌판을 뜻하므로 억새가 많은 넓은 벌판을 말한다. 또한 효성동에서 청천동, 산곡동으로 이어지는 벌판에 말(馬)이 좋아하는 억새풀이 많아 국영 말농장이 있었다 하여 마장면, 마장뜰이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효성동은 '새벌리', '새벼리', '샛별이'로 변음되어 오면서 샛별을 의미하는 효성동(曉星洞)으로 불리고 있다. 천마산 정상(287.2m)에 설치된 정자에도 지역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담고자 새벌정이라 이름하였다.
천마산 정상표석에는 해발 287m, 그 옆 천마산 설명안내판에는 천마산 높이가 해발 288m라고 적혀 있다.
천마산(天馬山)은 해발 288m로 계양산과 더불어 계양구를 대표하는 산이다. 산 중턱에 말 발자국과 같은 모양이 파진 큰 바위(일명 마제석馬蹄石)가 있는데, 여기에는 아기 장사의 탄생과 용마(龍馬)·천마(天馬)의 승천 전설이 있어 이 산을 천마가 출몰했다는 '천마산(天馬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설명안내판
인천 계양구 효성동 천마산 정상에 오른 것을 천마산 정상표석과 함께 기념한다.
천마산 정상에서 200m 내려오면 길마재 쉼터, 이곳에서 남쪽 770m 지점에 계양구 효성동 효성약수터가 있다고 한다.
길마재 쉼터에 둥그렇게 기다란 벤치가 설치되어 있고, 인천종주길 스탬프함과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남쪽에서 정상과 중구봉을 바라보면 봉우리 두 개가 마치 길마(안장)처럼 보인다고 하여 길마재 또는 '길마재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길마 :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기 위해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 - 설명안내판
천마산 정상에서 길마재로 내려왔다. 이정목 왼쪽 방향 남쪽으로 내려가면 효성약수터와 효성중학교가 나온다.
길마재에서 중구봉으로 오르다 뒤돌아서서 천마산과 산줄기를 바라본다.
중구봉 직전의 전망대에서 계양구 효성동 일대가 조망된다. 효성초등학교, 효성중학교, 경인교대가 바로 아래에 있다.
중구봉 정상에는 탑돌이하는 둥근 돌무지탑이 세워져 있다. 중앙 뒤의 길은 경인교대 방향, 왼쪽 계양산 방향으로 이어간다.
중구봉 정상의 돌무지탑 북쪽에 해발 276m 중구봉 정상표석과 중구봉 설명안내판,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중구봉(重九峯)은 고려시대 때 붙여진 이름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가 아홉 개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하기도 하고, 고려시대 때 불교 행사인 중구절(重九節, 음력 9월 9일)의 시성사를 치른 산이라 하여 중구봉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중구봉에서 징매이고개로 내려가는 마지막 내리막길은 급경사 나무계단길이다.
징매이고개로 내려가며 인천의 최고봉 계양산을 올려본다. 정상의 송신탑은 계양산을 증거하는 기준이 된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계양산(桂陽山)은 높이 395m로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산 또는 안남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양구의 꽃인 진달래가 유난히 많이 핀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서쪽으로는 영종도와 강화도 등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동쪽으로는 김포공항을 비롯한 서울특별시 전경이, 북쪽으로는 고양시가, 남쪽으로는 인천광역시가 펼쳐진다. 산 아래에는 계양문화회관과 경인여자대학교·백용사·성불사·연무정 등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남단에는 1986년에 도시 자연공원으로 지정된 계양공원이 들어서 있으며, 계양산성과 봉월사터·봉화대의 유적지와 고려시대의 학자 이규보가 거처하던 자오당터와 초정지가 위치한다. - 두산백과
징매이고개로 내려가는 곳에 징매이고개 생태통로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경명로 도로 개설로 단절된 생물 이동로를 복원하고 계양산과 천마산의 녹지축을 연결하기 위해 조성한 생태통로입니다. 야생 동·식물의 이동을 돕고 서식처 역할을 제공하는 시설이므로 등산객들께서는 가능한 정숙을 유지해 주시고 정해진 등산로를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생태통로 내 시설물 안내 •생물서식지 조성 : 돌무더기, 나무더미, 교목, 관목, 조류 먹이 공급대, 저류조 등 •모니터링 시설 : 무인 감시카메라 4대 •유도시설 : 동물유도 휀스 •등산로 : 140m(침목계단) •조성기간 : 2007년 7월~2009년 8월 •관리기관 : 인천광역사 북부공원사업소
징매이고개 생태통로는 경명대로 개설로 사라진 징매이고개 위에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경명대로 위쪽으로 내려간다.
중구봉과 계양산을 잇는 경명현은 경명대로가 뚫리면서 잘려나갔다. 현재는 사라진 경명현 위에 징매이고개 생태통로가 조성되었으며, 생태통로 옆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경명현(景明峴)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에서 서구 공촌동을 잇는 고개다. 고려시대 충렬왕이 매사냥을 좋아해 ‘응방(鷹坊)’을 설치하고 매를 징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징맹이고개[徵鷹峴]’로도 불렸다. - 인천광역시사
징매이고개 생태통로 위에서 경명대로 서쪽 인천광역시 서구 공촌동 지역을 바라본다.
경명대로(景明大路)는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동 북인천IC부터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 박촌교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길이 14.1km의 도로이다. 도로명은 이 도로가 지나는 계양산의 고개인 '경명현(景明峴, 징매이고개)'에서 유래했다.' - 나무위키
징매이고개 생태통로를 건너 북쪽으로 올라오니 중심성터((衆心城址) 표석과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1883년 중심성이 축성되었다고 하는데 그 성터가 이곳이라면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현재 중심성의 축성에 관련하여 전해지는 기록은 중심성사적비(衆心城事蹟碑)가 유일하며 비문의 내용을 일부 옮기면 아래와 같다. "계양산 서쪽에 고개가 있으니 경명이요 연해관문이다. ~중략~ 이 해 9월 조칙이 있어 아전과 백성에게 관문을 막아야 고을이 편안한 점을 설명하였더니 백성들이 즐겁게 역사에 응해 주어서 서쪽에 장대를 쌓고 병정 훈련하는 곳을 삼았다. 문은 지명을 따서 경명이라 부르고 바다를 바라보며 방어토록 하고, 읍민의 마음으로 성을 쌓았기에 중심이라 이름 지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중략~ 광서9년 계미10월 행부사 박희방이 기록하다."
1883년 10월 부평부사 박희방이 경명현(景明峴)에 축조한 성곽이다. 성(城)의 이름을 중심(衆心)이라고 한 것은 주민들의 협조와 의연금으로 완공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인천 개항이 기정사실화되고 일본과 외세에 대비하고자 설치되었던 연희진(連喜鎭)이 1882년 6월 혁파됨에 따라 부평 해안-부평도호부-(한양)도성을 잇는 육로를 차단하는 또 다른 방어 장치가 필요했다. 중심성이 위치한 경명현(징매이고개)은 교통의 중심지로, 고지에서 서해를 관측하고 방어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 1884년 1월 부평에 기연해방영(畿沿海防營)을 신설하여 연해지방의 방비를 강화하였는데 중심성은 해안방어 체제를 재정비하고 유사시를 대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한남정맥은 왼쪽 계양산 정상(1,380M 지점)으로 이어지고, 서해랑길은 오른쪽 지선사 방향으로 이어간다.
예전의 중심성지(衆心城址)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계양산의 사라져 버린 회양목 복원을 위해 회양목을 식재하였다.
옛 중심성지(衆心城址) 설명안내판이 새 설명안내판보다 구체적이다. 그런데 낡아서 읽기가 어렵다.
문화재자료(비지정 문화재) 소재지 : 인천광역시 서구 공촌동. 중심성지는 계산동과 공촌동 사이에 있는 경명현에 위치하고 있다. 경명현(속칭 징맹이고개)을 중심으로 동서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던 산성(山城)으로 현재는 완전히 없어지고 잔해만이 약간 남이 있을 뿐이다. 고종3년(1866년) 8월에 일어난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양호사건 등의 이양선의 침입에 위협을 느끼게 되어 왕의 칙령에 의해 고종 20년(1883년) 10월 부평부사 박희병이 주민들을 동원하여 축조하였는데 성문은 지명을 따라 경명문이라 하고 문 위에는 누각을 세워 공해루라 하였으며, 성의 이름은 민중들의 마음(心)을 모아 축조하였다 하여 중심성지 즉 중심성이라 전한다.
이곳에서도 계양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왼쪽은 피고개, 위쪽은 계양산 정상, 오른쪽은 장미원 방향이다.
인천광역시 서구 공촌동과 계양구 계산동의 경계 지점을 통과하여 계양구 계산동으로 넘어간다.
목재데크길을 따라 계양산 장미원으로 들어간다. 주차장 왼쪽에 고려의 대학자 이규보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장미원 서쪽 출입구 꽃밭에 '계양구 계양산 장미원' 문자 조형물과 회양목으로 조성한 '계양구' 글자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인천 계양구와 서구로 넘어가는 징매이고개 주변에 위치한 계양산 장미원은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조성 중으로 5월에서 10월까지 장미를 감상할 수 있어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서 자연학습장으로 사랑받으며, 계양산을 찾는 등산객과 지역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 설명안내판
서해랑길은 이 문주를 통과하여 장미원 탐방길을 따라 이어간다. 서해랑길에서 벗어나 쉼터에서 휴식한다.
장미원 아래 쉼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했다. 서해랑길은 장미원 위쪽 솔숲길을 통과하여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송신탑이 솟아 있는 계양산 남쪽에 2013년부터 장미원을 조성하여 5월에서 10월까지 장미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장미원 탐방길에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흰토끼 모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실제 풍경이라면 좋을텐데.
3대가 함께 걷는 계양三代(20리)길은 7.8km, 3시간 코스라고 한다. 계양산성박물관과 계양구산림욕장으로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장미원 탐방로에서 혼란스럽다. 계양三代(20리)길 목재데크길을 따라 계양산성박물관 방향으로 이어왔다.
왼쪽 계양三代(20리)길 목재데크길을 따라와 갈림길에서 계양문화회관 방향으로 내려왔다. 위쪽은 계양산 정상 방향, 오른쪽은 계양三代(20리)길로 계양산성박물관으로 이어간다.
계양산 정상·계양산성박물관·계양문화회관 갈림길에서 계양문회관 방향으로 내려간다.
계양문화회관 앞으로 내려와서 걸어 내려온 길을 뒤돌아본다. 위의 길은 장미원과 계양산 등산로 출입구이다.
계양문화회관 옆길로로 내려가면 노틀담 수녀원, 노틀담 복지관, 가르멜 수도원 등이 자리한다.
‘노틀담 수녀회’는 1850년 독일 웨스트팔렌 코스펠드에서 창설된 수녀회이다. 1848년 힐리곤데 블브링과 동료 교사 엘리사벳 큘링은 독일 코스펠드의 성 람베르티 본당 부설 초등학교 교사였으며 베르나르드 오버베르그의 영성적이며 교육학적인 전통 속에서 양성을 받았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사회적 혼란의 시기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와 고아들이 많았던 상황에서 이 두 여교사는 가난한 어린이와 고아들에 대한 연민으로 함께 살며 돌보았다. 당시 성 람베르티 본당 테오도르 엘팅 보좌 신부는 이들의 영성 지도 신부로서 교회 내에서의 이 사도직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들을 수도 성소로 이끌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교육수도회가 없어 뮨스터 교구장 요한 게오르그 뮬러 주교와 의논하였고 네덜란드 아메스포르트의 노틀담 수녀회에 도움을 청하였다. 1850년 6월 3일 아메스포르트 수녀들을 맞이하여 힐리곤데 볼브링과 엘리사벳 큘링은 청원기를 시작하였다. 10월 1일 힐리곤데는 마리아 알로이시아 수녀, 엘리사벳은 마리아 익나시아 수녀로 수도명을 받고 수련기를 시작하였다. 이 날이 코스펠드 노틀담 수녀회의 창립일이다. - 노틀담 수녀회 http://www.notredame.or.kr/
서해랑길은 계양문화회관 앞을 거쳐 경인여자대학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양산로에 자리하고 있는 계양문화회관은 총 795석을 갖춘 공연장, 연습실, 생활문화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 유수의 교향악단이 참여하는 클래식 공연부터 뮤지컬, 연극, 아트 공연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볼 수 있으며, 계양문화회관 소속 교향악단, 소년소녀합창단, 여성합창단, 풍물단 등 구민들이 참여하는 공연도 가까운 곳에서 관람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댄스스포츠, 웰빙댄스, 한국무용, 서예 교실, 바리스타 등 다양한 강좌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원하는 구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계양문화회관 http://www.gysiseol.or.kr/culturebuilding - 대한민국 구석구석
게양문화회관 앞에 '계양찬가'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고 뒤쪽의 산은 천마산인 듯.
재료 : 청동(BRONZE), 규모 : 가로 3.5M, 세로 1.4M, 높이 3.5M, 제작자 : 강영모, 작품 제목 : 계양찬가 - 계양 구민의 정감 어린 가족애를 표현한 작품으로, 계양구에 보금자리를 두고 가족, 직장, 지역사회, 국가로 이어지는 밝고 건강한 사회의 모습들 그리고 있다. 좌측ㄹ 부분의 까치 날개와 작품 하부 은행잎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계양 구민의 희망찬 모습을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1996. 10.
장미원 출입구에서 노틀담 수녀회 앞으로 내려와 계양문화회관 앞 계양찬가 조형물을 거쳐 왔다.
계양문화회관 앞에서 계양산로35번길을 따라 계양산로로 나간다.
계양산로35번길에서 계양산로로 나와 계양산로 남쪽 보도를 따라 경인여자대학교 방향으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