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감아`이며 고향은 `안동성좌원`입니다"

"저는 '미감아'이며 고향은 '안동성좌원'입니다" 2007년 경찰공채 고득점합격자 김민정의 커밍아웃 / 김민정 저의 고향은 안동시 옥동 1359 안동성좌원입니다. ‘안동성좌원’ 보통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그곳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한센병(나병) 환자들의 요양원으로서 지금도 한센병 치유자들이 살고 계시는 곳입니다. 즉 저희 아버지께서 한센병에 감염되셨다가 치유되셨지만 그 후유증으로 장애를 입은 한센장애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저희 아버지와 결혼을 하신 저희 어머니는 선천적 청각장애인입니다. 이 두 분이 1978년 11월 24일 성좌원 교회에서 신혼여행도 없는 결혼식을 치루고 저와 제 동생들을 낳으신 것입니다. ‘미감아 김민정’ ‘미감아 김민정’의 역사는 1981. 11. 19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미감아’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된 이후 저는 이 말이 주는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한센병에 대한 우리사회의 지독한 편견과 그 굴래 속에서 한평생을 살아야 하는 분들의 아픔이 가슴을 찢는 것 같습니다. 즉 ‘미감아’란 ‘부모 중에 누구라도 한센병에 감염되었으므로 그 2세는 아직 감염되지 않았으나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무서운 고정관념 안에서 만들어진 용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용어는 한센병력을 가진 부모를 둔 아이들 외에 어떤 병력을 가진 아이들도 듣지 않는 아주 특정한 용어입니다. 어쨌든 1981년 당시까지도 한센인들의 요양소나 치료병원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태어난 안동성좌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원규가 엄연히 존재했으므로 저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이별을 해야 했던 아이였습니다. ‘미감아 김민정’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첫 젖만 빨고 할머니가 계신 부산 수영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제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또래의 아이들보다 키가 작은데 아마도 유아기에 젖배를 곯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어른들은 말합니다. 제 유아기의 유배(?)생활은 그러나 1983년 8월 30일 끝납니다. 그해 8월 4일 제 동생이 세상에 온지 26일이 지난 8월30일, 저희 부모님은 더 이상 아이들을 유배(?)시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성좌원’을 퇴원했기 때문입니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4리 ‘경애원’ 자녀들을 직접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9년이나 살았던 ‘성좌원’을 미련도 없이 떠나 한센인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자활마을 ‘경애원’에 둥지를 틀고 닭과 돼지를 키우며 새 삶을 개척하셨습니다. 옛날에 공동묘지였다는 곳이지만 세상으로부터 쫓겨난 한센인들이 모여들어 자신들의 삶터로 만든 경애원은 동네사람들 모두 생업으로 닭이나 돼지를 기르는 마을이었습니다. 냄새나는 이곳으로 이사 온 저는 그러나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는 것이 즐거움 때문에 그 냄새도 싫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유년시절이 지나고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경애원’밖의 친구들과 만나게 되면서 저는 제 안의 갈등과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자모회에나 소풍갈 때 다른 엄마는 다 오는데 우리 엄마나 아빠는 오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엄마들은 다 말을 하는데 우리 엄마는 웃기만합니다. 손짓 발짓 몸짓으로만 얘기해도 집에서는 불편함이 없었는데 경애원만 벗어나면 너무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또 친구들의 수근거림이 있은 후 아빠의 손이 보였고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전에는 엄마 아빠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중학교에 진학한 후 이 같은 갈등은 더더욱 나를 옥죄어 왔지만 아주 특별한 일을 기회로 이 갈등을 스스로 치유했습니다. “말 못하는 이 여자를 찾습니다” 엄마 사진이 들어있는 포스터를 아빠 짐차에서 봤을 때의 충격은 뭘로 표현해야 할까요. 아빠와 결혼 한 뒤 자신이 말을 못하는 것 때문에 느꼈던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갈등, 알콜중독인 시동생과 한센 장애인 남편의 갈등, 거기에 자녀들인 저희가 자라면서 저희에게서 받았을 상처들... 이런 것들에 대한 충격으로 엄마가 어느 날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가출이 아니었습니다. 경기도 마석에 있는 ‘성생원’이란 엄마의 친정을 찾아 위로만 위로만 버스를 타고 가시다가 결국 길을 잃고 춘천 어느 천주교 단체에 보호되신 것이었습니다. 경찰에 엄마의 가출을 신고한 아빠는 “말 못하는 여자를 찾습니다”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자기 짐차에 붙이고 전국을 누비다가 결국 춘천의 단체에서 찾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아빠가 엄마를 모시고 오기까지의 엄마의 외출은 한 달 여 만에 막을 내렸지만 저에겐 이때를 계기로 엄마의 소중함과 위치를 재조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안의 갈등을 말끔하게 치유하였으며 그때부터 제 장래에 대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뒤 저는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이 기숙사 생활은 새로운 활력소였으며 제가 대학의 경찰행정학과에 합격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토대를 쌓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2003년 1월 1일, 저와 제 동생은 저희들의 확실한 정체성을 깨닫기 위하여 아빠를 졸라 소록도 기행을 감행했습니다. 국립 소록도 병원을 가다 아빠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소록도, 그 섬의 기행을 동생 현정이와 함께 결행하고 소록도 남성교회에서의 드렸던 수요일 1시 예배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빠가 처음 소록도 입원할 당시 남생리 이장님이셨다는 김세일씨는 장로님이 되어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건강하심이 놀라웠습니다. 소록도 일곱 교회가 이제는 원생의 감소에 따라 5개로 줄었다는 귀뜸도 들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원생들의 강제노동으로 조성되었다는 중앙공원에 이르니 [나병은낫는다]동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원은 오랜 세월 한센인들의 고통을 묻은 채 이국적인 정취로 이를 둘러보는 저희들의 감회를 새롭게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 생가를 방문 할 수 있었던 것도 소록도에 입원했었던 아빠가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니 과거 철부지 시절 가졌던 갈등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제게 씌워진 한센미감이라는 굴욕을 벗고 세상을 이기는 길을 찾아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경찰이 되어야겠다. 2004년,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경찰로 굳게 정했습니다. 취업을 할까?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할까? 졸업하는 순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항상 때가 있는 법입니다. 경찰은 30세까지 응시연령 제한이 있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내 인생에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서슴없이 경찰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선택에 책임을 다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수험생활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2006년 시험은 연거푸 보기 좋게 낙방했습니다. 그 후 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짚어보았습니다. 수험서들을 보며 제가 출제 위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 나름대로 나올 부분, 안 나올 부분 구분해서 공부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 시험 준비는 승진, 채용 수험서 둘 다를 보며,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대비했으며, 공부할 분량이 늘어난 만큼 더 열심히 했습니다. “설마 이런 문제까지 나오겠어?”하는 부분도 거르지 않고 다 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평균 91점이라는 안정권으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하면서 저는 제가 참 바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해 속도가 굉장히 느린 편이고 책을 빠르게 읽는 대신 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 모의고사를 풀면 항상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기 일쑤였습니다. 저의 모자라는 부분을 잘 알기에 더 열심히 했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바보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꼭꼭 되새기며 말입니다. 수험생들 모두가 힘들겠지만, 저는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의 일을 돕고, 교회의 봉사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일주일이 8일이라 해도 모자를 판에 집에 가서 일 돕고, 교회가고 언제 공부할래? 넌지시 건네던 말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장로님으로 임직 받으신 후 많은 일들로 집을 비우실 때는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동기들, 후배들 하나둘 경찰이 되는 모습을 보며,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난 역시 안 되는 걸까?” “하나님께서 가라는 길이 이 길이 아닌 건가?” “매주 집에 내려가지 말고, 공부만 하면 되지 않을까?” 수 만 가지 생각들이 제 머리를 헤집고 다녔습니다. 무엇보다 수험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방대한 공부양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안 되면 어쩌지? 가족들 얼굴을 어떻게 보지? 이런 생각들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잠을 설치고,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 있다 와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고, 채워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끔찍이 싫었습니다. 합격 후 되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짐을 지어주신다는 말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김민정의 인생은 합격이 끝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 결실이 저의 노력으로만 된 것 절대 아닙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의 땀과 눈물, 그리고 기도의 결실임을 잘 압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어 저를 위해 수없이 기도해주시고 눈물 흘려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부모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분들 생각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공무원의 첫발을 내딛으려 합니다. 지켜봐주시고 더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금성교회 최준락 목사님 사모님 여러 장로님들 권사님 집사님 온 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이 모든 영광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저 김민정의 인생은 합격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