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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1-14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2007년 하반기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당시 세계적인 여러 은행을 파산하게 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 신년0시예배에서 이재철 목사님은 '미래와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새해에는 더 나아지겠지' '경제가 회복되겠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겠지'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모였던 시기에, 오늘 본문 11절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미래와 희망'을 표어로 삼아, 하나님 안에서 미래와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다가올 미래에 평안의 열매가 맺히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그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가졌던 기도의 제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2026년 오늘,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사람들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고, 심지어 AI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궁금증을 질문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0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 생활과 사회는 변화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미래와 희망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도의 제목을 찾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향한 성실함(1-7절)
(1-2)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본문은 1절에서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내용으로 시작하여, 2절은 그 일이 어떤 역사점 시점에서 이뤄지는지 보여줍니다. 이 편지는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 편지를 보내는 시기까지 비교적 정교하게 작성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59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의 여고니야 왕과 왕후뿐만 아니라, 유다의 핵심 브레인과 기술자들을 모조리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당시 바벨론 제국은 남유다를 착쥐하였고, 마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에 행했던 착취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수탈하려는 와중에, 일본 순사들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가들이 비밀 서신을 주고 받는 상황입니다. 이후 살펴볼 이 편지의 내용이 단순히 안부 인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미래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된다면 즉각 편지가 압수당하고 관련된 사람들이 모조리 사형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가 어떻게 전해지는지 보면, 본문 3절입니다.
(3)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오늘 본문은 편지가 보내지는 과정도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됩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합니다. 예레미야는 그 외교 사절단을 통해 비밀 서신을 밀수하듯 포로들이 있는 바벨론 땅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본문 4절부터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6)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본문 4절에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사로잡아 간 진짜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확정합니다. 바벨론이 사로잡아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로잡혀 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커다란 위협이나 적으로 두시지 않습니다. 이후에 나오는 말씀의 초점은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지, 바벨론 제국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5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하십니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열매를 먹으라" 바벨론 제국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셨지만, 지금 당장 돌아올 방법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마치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 같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도 이와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밭을 일구고, 평생을 수고하여 땅의 소산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평생 땀을 흘려야 했던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서 텃밭을 일구고 열매를 먹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이야기가 하나님의 사람에서 사망 권세, 사탄 마귀의 사람이 된 첫 번째 추방이었다면, 두 번째 추방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스라엘이 심지 않은 과실을 먹고 파지 않은 우물을 마시는 은혜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추방 당한 포로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제안합니다. 두 번째 추방의 한복판인 바벨론의 심장부에서 하나님은 마치 에덴 동산에서 땅을 경작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던 그 명령을 다시금 기억나게 하십니다. 저주와 심판의 공간에서 '작은 에덴'을 개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6절에선 그 땅에서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다시 자녀를 낳아 대를 이어 번성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의 첫 번째 추방에 이어서, 가나안 땅에서 두 번째 추방에서도 동일하게 '매일의 성실함'을 요구하십니다. 때때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 하나님이 주시지 않을 것 같은 유배지와 같은 모양인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유배의 시간을 주시는지, 고통과 어려움, 슬픔을 토해냅니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 완전히 힘을 잃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직장은 어차피 잠깐 다닐 곳이니까", "내 가정환경은 최악이니까" 이렇게 핑계하고 방관하며 우리의 일상을 팽개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칠고 낯선 현재의 유배지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텃밭으로 일구어 가도록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의 성실함'으로 우리의 건강한 일상을 살아내도록 말씀하십니다. 마치 우리가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하루 피곤하다고 운동을 하지 않고 치킨과 피자를 마음껏 먹는다고 당장 내 몸에 티가 나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 나태함이 차곡차곡 쌓이면 다이어트와 건강이라는 소망은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의 사소한 순간마다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일상의 텃밭을 경작하는 '주님을 향한 성실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에서 하나님은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말씀까지 하십니다.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 치하에서 강제로 끌려간 노역의 자리에서, 일본제국 정부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이 말씀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기도는 민족적 감정으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이적행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명령하는 이 기도는 결코 바벨론에 무릎꿇는 비굴한 기도가 아닙니다. 고대 근동의 법적 관습 하에서 피정복민은 제국의 신전 앞에서 바벨론의 신 앞에 제국의 번영을 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포로들에게 제국의 신 앞에서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바벨론 성읍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흥망성쇠와 안위조차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 하나님은 '평안'을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을 세 번에 걸쳐서 반복하며 결국 유다 백성들의 샬롬을 선포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 환경, 나를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인 부조리를 두고서, 우리가 기도할 것은 평안을 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짓누르는 세상의 위압과 폭력 앞에 기도하십시다. 우리의 일상을 살아내고, 그들의 평안을 구하며 기도하십시다.
소망으로 가득찬 미래, 미래와 희망(8-11절)
하지만 예레미야와 달리 거짓 선지자와 점쟁이들이 가짜 샬롬을 선포합니다.
(8-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포로로 끌려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기도와 열망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과 점쟁이들은 그 마음에 기대어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패배하지 않을것이라, 바벨론 제국은 무너지고 너희들은 고향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가짜 평안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선포나, 예루살렘 성전을 사수하려던 유다 백성들의 종교적 열심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들의 행동은 자기 기반을 잃지 않으려는, 버림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입니다. 즉각 돌아갈 수 있다는 낙관으로 지금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피하고자 하나님의 공의를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진짜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거짓 선지자들의 가짜 평안의 이면에는, 반대로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채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포로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 '더 이상 유다백성에게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짜 뜻은 더 이상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고, 가짜 평안을 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짜 뜻은 70년의 시간 동안 묵묵히 견디며 인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멸망과 심판 속에서도 진짜 평안을 전하십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유다를 멸망하시고 심판하시는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평안을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짜 뜻은 거짓 선지자들의 가짜 평안이 아니라, 진짜 평안입니다. 그리고 이 진짜 평안의 소식은 포로로 갇혀 있는 사람들이 듣기엔 그 평생을 포로로 살아야만 한다는 절망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미래와 희망입니다. 11절 하반절에 있는 "미래와 희망"은 성경에서 두 단어를 대등하게 표현하여 하나의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중언법이라는 문학적 표현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성령과 불"을 주시겠다고 하실 때, 그 의미가 성령을 주시고, 또 성령과 별개로 불을 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과 불을 따로 따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불과 같은 성령', '타는 듯이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성령과 불을 연달아 표기하면서 우리에게 성령과 불 모두를 동일하게 주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래와 희망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로 끌려간 유다백성에게 빛나는 미래도 주시고, 마음의 소망도 각각 따로 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은 '소망으로 가득찬 미래'를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70년이 지날 때까지 그 평생을 포로로 살다가 죽어야한다는 절망의 소식이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보게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미래와 희망'은 무엇입니까?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입니까? 오늘 이 시간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길 바라는 소망입니까?
바벨론에 세워진 지성소(12-14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짜 평안은, 오늘 우리의 삶이 어떤 모양이든지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내는 우리의 일상입니다.
(12-14)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전까지 유다백성에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가야하던 곳은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에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 한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도록 말씀하십니다. 이전에 남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지만, 이후에 포로된 백성들은 바벨론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더 이상 헤엄칠 수 없는, 답답한 우물 밑바닥에 빠진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오늘 우리의 삶이 어떤 모양이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진짜 평안을 구하십시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평생이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의 삶처럼 바벨론에서 죽음을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미래와 희망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소망으로 가득찬 미래, 다시 오실 주님의 나라를 기대하십시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가 해야할 기도는, 우리의 현실의 즉각적인 도피가 아니라, 우리 눈 앞에 놓인 환경이 바벨론처럼 거칠고 낯설지라도,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겠노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고난의 장기전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가장 안전한 생각이라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진짜 평안이라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바벨론의 텃밭을 성실한 마음으로 일구어내십시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어려움이 오늘 내가 살아내는 모든 순간에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 평생에 간절히 기도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미래와 희망을 붙잡으십시다.
매일의 성실함으로 건강한 일상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이 세상을 향하여 중보하고, 주님의 뜻으로 세워진 '작은 에덴'을 일궈가십시다. 오늘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뜻대로 되지 않고, 내 생각과 상관없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억울한 일들이 몰려올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하늘의 힘을 구하십시다.
오늘 우리가 품고 나온 눈물의 기도제목을 주님 앞에 드릴 때, 단순히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는 조급함의 신을 벗으십시다. 척박한 상황 가운데에도 내 영혼을 새롭게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을 신뢰하겠노라,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힘으로 우리의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며, 일상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지성소로 나아가십시다.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로 오늘 우리가 살아내는 모든 일상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지성소로 향해가는 믿음의 백성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척박한 바벨론을 우리 삶에 마주할 때 주님의 뜻을 신뢰하지 못하고 우리 믿음이 흔들렸음을 고백합니다. 당장의 고통을 피하고자 거짓 선지자들의 가짜 평안에 미혹되었고, 바벨론 같은 세상을 핑계하며 주어진 직장과 가정을 방관하였습니다. '즉각적인 도피'만을 구했던 우리의 나태함과 조급함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를 고난의 자리로 이끄신 진짜 주인을 하나님으로 고백하오니, 멸망과 심판의 한복판에서 텃밭을 일구며 말씀에 반응하는 '주님을 향한 성실함'을 회복케하여 주시옵소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부조리한 환경을 뒤로하며 평안과 샬롬을 구하며 기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시고, 단지 막연한 내일이 아닌 '소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장의 상황을 해결해달라는 조급함의 신을 벗고, 일상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지성소로 나아갑니다.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를 통해 오늘 우리가 살아내는 모든 삶의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인생의 두려움과 눈물의 기도제목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을 의지하게 하여 주실 줄 믿으며, 오늘 우리 삶에 진짜 평안, 미래와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20년 전을 돌이켜보고 지금 내 삶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오늘 내가 성실하게 살아가야 할 일상, 중보해야할 바벨론은 어디입니까?
3.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이 기도를 하나님과 함께할 미래와 희망으로 어떻게 바꿀지 묵상해 봅시다.
4. 오늘 우리 일상에 임재하실 하나님의 지성소를 떠올리며, 오늘을 살아낼 나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작성: 송주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