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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애 시편
치열한 진화의 전장에서 최종 승자는 살아남는 자가 아니라 연애 잘하는 자라고 합니다. 사람은 생존기계가 아닌 연애기계라는 것입니다.³⁸⁾ 니체는 천 개의 사랑과 천 개의 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랑의 에너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할 사람이 없는 것은 대상을 창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젊은 여성을 위한 『성공연애특강』(랜덤하우스, 2007)에서 쿨한 연애학을 말하였는데, 연애는 “시장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가장 살벌한 비즈니스”라고 합니다. 학습에 의한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사람, 용모가 빼어나지 않는 사람, 자산이 없는 사람은 시장에서 가치 있게 팔 것이 없기 때문에 빈약한 서비스밖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애는 가장 확실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자신을 비싸게 팔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연애 비즈니스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또 연애는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연애는 참을성, 인내, 무리 같은 것과 어울리지 않으며, 자신이 상대를 필요로 하고 상대도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만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서로에게 요구하거나 의존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 대수롭지 않은 노력을 하면 될 뿐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무료한 인생보다 실연이 낫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이 무료하다는 것도 모르는 채 평온하다는 착각으로 안일한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이 최악이라고 합니다. 이와 함께 창피하지 않은 상대를 구하고, 연애를 하려면 기준과 상식에서 벗어나야 하며, 한가한 남자를 조심하라고 합니다. (《AM7》, 2007. 8. 6)
우리나라 최초의 시 「황조가」는 연애시입니다. 독일에서는 궁정시인을 연애가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사랑은 생계 다음의 최대 관심사이며, 생계가 해결된 사람에게 인생 최고 행복은 연애를 멋있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애는 고통을 가져오고, 그 고통을 치료하려고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만 그 결혼은 다시 사랑을 묻어버리죠. 그래서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사랑과 결혼은 말과 마차처럼 함께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지요.
옛 시인들의 시를 보면 제목이 대개 시적 대상과 사건을 제목으로 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유적 제목도 눈에 뜨입니다. 우리 시문학사상 최초의 서정시는 「황조가」입니다. 이 연애시는 제목을 '꾀고리 노래'로 잡았습니다. 비유적 제목입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수놈과 암놈이 저리 정다운데
나의 외로움을 생각함이여
그 누구와 함께 돌아갈까
-유리왕, 「황조가」 전문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 노래는 고구려 제2대 왕 유리왕 3년(기원전 17년)의 작품으로 보는 게 학계의 통설입니다. 그리고 제작 동기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지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본래 국어로 되어 있으나 한시로 번역되어 전한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이 시의 소재는 꾀꼬리라는 자연물이고, 주제는 남녀 간 애정을 읊은 노래입니다. 연애의 감정을 꾀꼬리라는 대상에 빗대서 표현한 것입니다. 주제를 자연에서 빌려 와 창작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선배들의 전통적인 시 창작방법입니다.
한때 조선의 문장을 장악했던 유학자면서 정치가인 서경덕은 기생 황진이와 사랑의 흔적을 다음과 같은 시로 남겼고, 지금까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마음이 어린 후(後)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증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그인가 하노라
화자는 님을 그리워하면서 바람에 나뭇잎이 지는 소리만 들려도 애인이 오는 소리로 듣습니다. 님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어린아이 또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유하여 지극한 연모의 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개인의 정서보다 충과 효를 학자의 덕목으로 삼았던 당시에도 이런 연애 감정은 있었습니다.
퇴계 이황이 “후배가 두렵다(後生可畏)”까지 한, 성리학을 꽃피운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 역시 아름다운 사랑을 하였습니다. 학문의 경지를 이룬 그 역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 시는 어린 기생 유지에게 지어준 시라고 합니다.³⁹⁾
어린 몸 수줍은 듯 고개 숙여
추파를 던져도 대답이 없네
마음은 부질없이 설레이건만
운우의 정은 풀지 못하였네
너는 자라면 이름을 떨칠 것이나
나는 이미 늙음 길에 들어섰네
미인에게는 임자가 따로 없으니
영락없이 가엽겠구나
사랑은 어느 정도 집착과 독점과 질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서로가 억압이 되어 문제가 되나 적절한 집착과 독점과 질투는 사랑의 관계를 고양시킨다고 합니다.⁴⁰⁾ 양반가의 여성인 허난설현의 질투가 묻어나는 시 「견흥遣興)」(보내는 노래)을 보겠습니다. 그는 남편과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것을 평생의 한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직으로 멀리 떠나는 남편에게 정표로 비단과 패물을 주는 모양입니다. 남편이 그곳에 가서 다른 여성의 치마를 만들어주거나 시앗에게 주지 말라는 당부를 시 속에 담고 있습니다.⁴¹⁾ 아래 시는 남편을 보내는 사건을 제목으로 달고 있습니다.
찬란한 봉황무늬 아껴오던 비단 한 끝
떠나는 님에게 정표로 드리니
바지는 지을지언정 치마는 되게 하지 마세요
신혼 때 물려주신 서기 어린 순금 패물도
치마끈에 풀어내어 가는 님에게 드리니
차라리 버릴망정 시앗에게는 주지 마세요
-허난설헌, 「견흥」 전문
지배 남성엘리트와 독점적으로 교유했던 기녀들은 양반가의 여인보다 글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연애시도 많이 남겼습니다. 선조 때 이옥봉이라는 기녀의 시를 보겠습니다. 신분제도가 완강했던 시대에 태어난 그는 옥천군수를 지낸 봉의 서녀로 진사 조원의 소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녀의 설움과 소실이라는 설움 가운데에서도 임을 그리는 것은 여전합니다. 「규정閨情」(규방의 감정)이라는 시인데, 정인을 기다리는 한 여성의 감정이 살아 있습니다. 위 시와 같은 방식으로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온다 약속터니 어찌하여 늦으시나요
뜰 위 매화는 이미 다 져가는데
홀연히 가지 위에 까치 소리 들리니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만 그립니다
-이옥봉, 「규정」 전문
아마 정을 준 사람과 매화가 피기 전에 만나자고 약속을 한 모양입니다. 얼마나 기다렸겠습니까? 그러나 매화가 다 질 때까지 정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까치가 울어 정인이 오려나 하고 화장을 하는데 정인은 끝내 오지 않습니다. 바람 맞은 심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연애담과 시도 감동적입니다. 최경창은 시문에 능한 홍랑을 사랑해서 군사작전을 하는 군막에서 부부처럼 살았지만, 이듬해 봄 서울로 전근을 가야 했습니다.
갯버들 가지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셔요
밤비에 새 잎 나거든 나인 줄 여기셔요
이별 일 년 후인 1575년 최경이 병석에 눕자, 홍랑은 함경도를 떠날 수 없고, 서울에 출입할 수 없는 국법을 어기고 7일 밤낮 걸어서 서울로 올라와 병수발을 들었다고 합니다.
말없이 마주보며 그윽한 난초를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에 올라 옛 노래를 부르지 말라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현대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나간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는 주제를 압축하여 서술형 제목을 붙였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전문
신경림의 시를 보면 '울음' 어휘가 많이 나타나는데, 초기에는 「갈대」에서 보여주었던 내면적이고 관념적인 울음이었다가 나중에는 현실적인 생활의 고통에서 오는 울음으로 변화를 합니다. 위 시에서도 현실 문제인 가난 때문에 같이 있지 못하고 헤어져 돌아와 울음을 터트려야 하고, 그리운 어머니를 그리워해야 하고, 사랑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을 버려야 하는 상황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랑일수록 오히려 더 절실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난은 사랑의 완성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남녀는 끊임없는 탐색과 줄다리기를 통해 연인이나 부부관계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남성의 종족번식 본능과 여성의 정자경쟁 등 생물학적인 원인 때문에 누구나 배신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는 골드미스의 등장과 알파남성의 독과점, 국제결혼의 증가로 인간본능이 새로운 패턴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의 저류에는 부(돈)라는 것이 놓여 있다고 합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부는 이제 인간의 본능, 남녀관계마저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행량, 『당신의 본능은 안녕하십니까?』, 랜덤하우스중앙, 2007)
우리는 연애를 예술가의 필수품으로 착각하게 하기도 합니다.⁴²⁾ 사랑은 시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다만 시인만이 자신의 체험을 시로 표현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프랑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프랑스와 롤로르는 “사랑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는 이별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를 뒤집은 △함께 있을 때의 충만함 △내가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만족감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 △당신이 사랑하는 나에 대한 자신감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편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힘겨운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에 상처받지 말고 권태나 변태로 빠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공부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지적 수준을 높여 사랑의 무상성을 체득하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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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 연애, 동녘사이언스, 2009.
39) 율곡은 39세에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이때 동기 유지를 만났다. 15~6세 안팎의 유지는 율곡에게 수청을 들며 머리를 올려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율곡은 성인의식을 치러주었으나 몸을 섞지는 않았고 대신 시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유지가 24세 때 율곡이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해주에 들렀는데, 유지와 하룻밤을 지냈다고 한다. 이때도 율곡은 살을 섞지 않고 한 편의 시를 주었다고 한다. “타고난 자태 선녀인 양 침착하고 고상하여 서로 알기 십 년에 마음 움직임도 많았네/ 내 본시 목석같은 사내는 아니나/병으로 쇠약하여 화려한 꾸밈을 사양했을 뿐이네”(天姿綽約一仙娥 十載相知意態多 不是吳兒腸木石 只緣衰病謝芬華) 조정의 부름에도 사양할 만큼 건강하지 못했던 율곡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고, 성리학자로서 자신의 윤리의식을 실천하였다고 한다. 유지는 율곡이 죽기 3개월 전에 화석정으로 율곡을 찾아갔다. 그러나 율곡은 이런 시를 남겼다. “젊은 날 좋은 기약 다 놓치고서/ 이제 황혼의 나이에 다시 만났으니/ (중략) / 문을 닫는 건 인정 없는 일같이 눕는 건 옳지 않은 일/ 가로막힌 병풍이사 걷어치워도 자리도 달리 이불도 달리/마음을 거두어 근원을 맑게 하고/ 밝은 근본으로 돌아갈지라/ 내생이 있단 말 빈말이 아니라면/ 가서 저 부용성 나라에서 너를 만나리” 유지는 율곡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3년 시묘살이를 한 후에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강기옥, 「파주의 사랑, <문학과의식》, 2008 가을호 참조)
40) 다양한 생물들이 종족 번식을 위해 벌이는 짝짓기 게임과 자손을 온전히 성장시키기 위해 벌이는 전술들이 사람과 다를 게 거의 없다고 한다. “수컷 황새는 자신이 둥지를 비운 틈을 이용해 암컷이 바람을 피우지 않도록 온몸을 바쳐 성행위를 한다. 암컷의 바람기를 잠재우기 위해 알을 낳을 때까지 수백 회씩 교미를 한다. 코끼리들은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해서 수태하지 못하도록 교미가 끝난 후에도 일정기간 암컷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암컷을 너무나 사랑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암컷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직 종족 번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략…) 존 스파크의 말대로 섹스가 없었다면 지구상에는 생물의 눈부시게 다채로운 색깔도, 아름다움도, 드라마도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류 역시 성 전쟁을 벌여오지 않았다면 장엄한 음악이나 감동적인 시 따위 심원한 문학들을 이루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가 이룩한 대부분의 찬란한 문화는 모두 남녀가 성 전쟁을 치르면서 체험하는 열정과 좌절감과 분노 등이 창조해낸 산물이다. (…중략…) 코끼리바다표범은 수컷끼리 싸울 때 상대의 어금니에 목이 찔리고 코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바우어 새는 오랜 시간을 들여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오두막을 짓고, 온갖 종류의 과실과 나뭇잎으로 앞뜰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실잠자리, 파리, 벼룩의 수컷은 갈고리처럼 심하게 뒤틀린 성기로 바람피운 암컷의 몸에 남아 있는 경쟁자의 정액을 퍼낸다. 이 범상치 않은 행위의 원인은 오직 하나, 종족 번식이다.”(《시사저널>, 2000. 9. 1)
41) 허난설헌의 「閨怨」(규방의 원한)이라는 시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강남에 멀리 가 있는 남편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시입니다. 창작자의 마음 상태를 제목으로 달고 있습니다. “제비는 처마를 스쳐 쌍쌍이 비껴 날고/ 지는 꽃은 우수수 비단옷에 부딪칩니다/ 내다보이는 모든 것은 봄 시름을 돋우는데/ 초록빛 강남에 간 낭군님은 돌아올 줄 모릅니다"(허난설헌, 「규원」 전문)
42) 저항시와 연애시를 동시에 썼던 노벨상 수상자인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1834~1891)는 연애를 원도 한도 없이 했다고 한다. 공식적인 결혼만 세 번에, 알려진 애인만 다섯 명, 애인인지 친구인지 경계가 모호한 여성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공광규「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중에서
2025. 2. 22
맹태영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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