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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수필동화】
‘당랑(螳螂, 사마귀)의 간절한 소원’을 경청하다
- 법당 앞 화단에서 만난 어떤 ‘구도자(求道者)’ 이야기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황토 화단에서 뜻밖에 ‘사마귀’를 만났다. 배롱나무꽃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앞다리를 들고 기도하는 듯한 모습이 마치 ‘구도자(求道者)’ 같아 보였다.
‘청렴과 무욕의 상징’인 배롱나무에서 사마귀를 발견한 것은 처음이다.
▲ 배롱나무꽃 속에서 모습을 살짝 드러낸 사마귀(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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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는 배롱나무꽃 속에서 왜 저런 구도자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볼까?
사마귀는 앞다리를 모으고 있는 모습이 마치 승려가 합장하는 것과 같다. 우리말 ‘사마귀’의 어원을 살펴보니 ‘사마(斜麻)’ + ‘귀’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앞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두 손을 모아 절하는 모양, 혹은 무기를 든 장수의 모습 같아 붙은 이름이라 한다.
또 다른 해석은 고어 ‘사마’가 ‘앞발을 모은 모양’을 뜻했고, ‘귀’는 곤충 이름에 붙는 접미사로 쓰였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사마귀를 ‘사마괴’로 불렀다고도 하는데, 여기에서 나는 무엇보다 앞다리를 모으고 있는 독특한 자세에 주목한다.
▲ 앞다리를 들고 기도하는 듯한 모습이 마치 ‘구도자의 기도’ 모습과 같다. (그림=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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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랑(螳螂)’이란 이름은 본래 중국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마귀는 사냥할 때 앞다리를 날렵하게 뻗어 먹이를 잡아챈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중국에서는 ‘당랑권법(螳螂拳法)’이라는 무술도 있다. 사마귀의 기본자세를 본뜬 무술(武術)이다.
고사성어에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도 있다. 당랑(螳螂)이란 사마귀를 일컫는 말이니,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가로막는다는 뜻이다.
제 분수를 모르고 강한 자에게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을 하는 자를 비유하기도 한다.
사마귀만큼 이름이 다양하게 불리는 곤충도 드물다. ‘버마재비’, ‘사마귀’, ‘오줌싸개’ 등등.
‘버마재비’라는 말은 ‘범아재비’를 발음 나는 대로 적은 어형이다. ‘범아재비’는 ‘호랑이’를 뜻하는 ‘범’과 ‘아저씨’와 같은 의미의 ‘아재비’가 결합한 어형.
‘오줌싸개’라는 별칭도 있다. 사마귀가 위협을 느낄 때 액체를 배설하는 습성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마귀가 배설하는 액체가 피부에 닿으면 피부병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곤충 이름 ‘사마귀’는 피부병인 ‘사마귀’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설도 있다.
지역에 따라 ‘버무땅개비’, ‘범이땅깨’, ‘연까씨’, ‘각재비’등의 방언도 있다는 사실을 지식 검색을 통해 새삼 알았다.
그런데 법당 앞 화단에서 발견한 ‘사마귀’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소원을 빌면서 기도하는 ‘구도자’ 임에 틀림없었다.
고사성어처럼 작은 벌레가 감히 지체 높은 분의 수레를 맞서려고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자기 힘에 부치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대상에게 맞서려는 무모한 약자의 몸짓으로 보이지 않았다.
앞다리를 치켜들고 부동의 자세로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않는다.
내가 황토 화단에서 ‘맨발 걷기 운동’을 시작한 시간이 아침 8시. 그리고 운동을 끝낸 시간이 11시다.
그때까지도 ‘당랑(螳螂)의 기도’는 끝나지 않았다. 무려 3시간 동안 수도자의 자세를 꼿꼿이 유지하고 있었다.
▲ 부동의 자세로 꼿꼿이 합장 기도하는 자세를 보인 사마귀(그림=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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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었다.
“사마귀, 아니 당랑 도사(螳螂 道士)님! 인간 세상에서는 <도(道)를 갈고닦는 사람>을 ‘도사(道士)’라고 하니 일단 호칭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도사님은 육식성 곤충으로 알고 있습니다. 메뚜기, 나방, 매미, 파리, 나비, 벌, 잠자리 같은 곤충들을 주로 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다리를 ‘낫’처럼 접어 올린 채 먹이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번개처럼 빠르게 휘감아 붙잡는 사냥 방식이지요.
이른바 ‘매복 사냥꾼’이지요. 여기 배롱나무 가지에 가만히 숨어 있는 모습도 바로 먹잇감을 기다리는 전형적인 행동 아닙니까?
그렇다고 이곳 배롱나무꽃을 찾아오는 벌과 나비까지 잡아먹지는 않겠지요? 벌과 나비는 꽃과 공존 공생해야 하는 익충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은 자세가 유난히 엄숙하고 정중해 보입니다. 먹잇감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원을 비는 기원(祈願)의 자세가 아닙니까?
앞다리를 모으고 있는 모습이 마치 스님이 합장하는 자세로 보입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기원하는 겁니까?”
그러자 사마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윤 작가님, 사랑하는 손자님과 대화를 위해 ‘수필동화’라는 새로운 형태의 문학 장르를 개발하여 글을 쓰시는 윤 작가님!
매일같이 이 시간에 황토 화단에 운동하러 나오셔서 배롱나무 옆에서 스마트폰 노트로 글을 쓰신다는 정보를 입수했지요.
제가 이곳을 찾아와 합장하는 것은 윤 작가님을 뵙기 위한 기본적인 예의지요.”
놀라운 일이었다. ‘당랑 도사’의 말이 참말일까?
매사 의심이 많아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사람이다. 당랑 도사의 말에 얼마나 깊은 진정성이 있는지 확인을 위해서는 짚고 넘어갈 것이 있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사냥을 나가는데 길 위에 사마귀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고 길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여기서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하지요. 제 분수를 모르고 강한 상대나 불가능한 일에 덤벼드는 무모함을 빗댄 것이지요.
그 당시 수레를 막았던 사마귀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요. 작은 미물이지만 그 용기를 가상하게 여긴 장공이 수레를 돌려 사마귀를 피해 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늦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9월 초하루,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 ‘기원(祈願)’하는 모습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떤 이유일까요?”
그러자 사마귀가 말했다.
“먼저 저의 이름에 대해 윤 작가님께 해명하려고 합니다. 여기가 부처님을 모신 법당 앞이고, 더구나 수필동화를 쓰시는 작가님 아닙니까? 저의 이름을 고쳐 불러 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이렇게 나섰습니다.”
아니, ‘사마귀’라는 이름을 고쳐달라고?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여태껏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불러온 이름이 ‘사마귀’ 아닌가.
사마귀. 아니, ‘당랑 도사(螳螂 道士)’의 호소와 해명을 진지하게 들어보기로 했다.
“인간 세상에서는 저를 ‘사마귀’라고 부릅니다. 불교 설화에 등장하는 ‘사마귀(死魔鬼)’에서 저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불교에서 ‘사마(死魔)’는 목숨을 빼앗는 악마입니다. 말하자면 사마귀가 여러 곤충의 목숨을 빼앗는 악마성을 가진 ‘귀신같은 곤충’이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저는 윤 작가님이 아까 보셨듯이 배롱나무꽃을 찾아오는 선량한 벌과 나비까지 잡아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악마’라는 오명을 벗어야지요. 해충이 아닌 익충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한 것입니다. 저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앞발을 들고 기원하는 ‘합장(合掌)’ 모습을 보세요. 그래서 영어 이름도 ‘프레이잉 맨티스(praying mantis : 기도하는 곤충)’라고 부르지요.”
이때 자애로운 법당 할머니가 다가오셨다. 구순(九旬) 연세에도 총기(聰氣)가 좋으시다.
“아이고, 제가 다 들었어요. 당랑 도사님 뜻을 잘 알아들었어요. 깍듯이 합장하면서 무려 3시간 동안 기원하는 간절한 뜻을 잘 알았어요.
제가 부처님께도 말씀 올릴게요. 여러 곤충의 목숨을 무자비하게 빼앗는 악마성을 가진 귀신같은 이름, 사마귀(死魔鬼)에서 벗어나 익충(益蟲)으로 살아가기로 했다니, 부처님이 자비를 베푸실 거예요.
윤 작가님이 증인이 되셨어요. 이런 사실을 윤 작가님이 글로 상세히 기록하여 손자에게도 전하시고, 역사에도 남길 겁니다.”
▲ 법당 할머니와 함께 지켜본 사마귀(그림=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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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마귀 생김새를 보면 섬뜩하고 무서울 때가 있다. 마치 뱀 대가리처럼 삼각형 머리에 방울 같은 큰 눈, 뾰족하고 날카로운 주둥이.
게다가 가시 돋친 앞다리를 갖고 있어 아주 매섭게 보인다. 실제 동족(同族)을 잡아먹을 정도로 모질고 잔인하다고 한다.
이런 모습의 사마귀가 이름까지 고쳐달라고 하면서 ‘개과천선(改過遷善) 의지’를 보이니 믿어도 될까? 손자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그 경건한 합장이, 그 간절한 소원이 담긴 사마귀의 ‘기도 모습’이 실제 자연 생태계에서 현실로 이루어질 것인가? 부처님 앞에서 각서(覺書)라도 받아놓고 사랑하는 손자와 함께 지켜봐야겠다. ■
▲ 사랑하는 손자와 함께 사마귀가 약속을 실천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그림=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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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1.
윤승원, 황토 화단에서 만난 어떤 ‘구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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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과 작품해설
이 작품은 윤승원 수필가 특유의 자연 관찰력과 문학적 상상력이 잘 어우러진 수필동화입니다. 작품 속에 담긴 재미와 교훈, 교육적 메시지, 유머 요소를 정리해 감상평과 해설을 드리겠습니다.
■ 감상평
□ 자연 생태 관찰의 깊이
배롱나무꽃 속에 숨어 있는 사마귀를 발견한 순간부터 작가는 단순한 곤충의 생태를 넘어 ‘구도자’로서의 상징성을 읽어냅니다.
사냥꾼으로서의 본능적 자세를 ‘기도하는 합장’으로 해석한 것은 곤충의 생태를 문학적으로 변용한 탁월한 관찰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유머와 의인화
‘당랑 도사’가 직접 작가와 대화하며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은 수필동화 특유의 유머와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마치 어린이 동화처럼 의인화된 곤충이 등장해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윤 작가님이 황토 화단에서 글을 쓰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라는 대목은 기발한 농담이면서도 독자에게 웃음을 줍니다.
□ 교육적 메시지
곤충의 이름 유래(사마귀, 버마재비, 오줌싸개 등), 고사성어(當螳拒轍), 중국 무술(당랑권법) 등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어린 독자들에게 지식과 교훈을 함께 제공합니다.
단순히 재미로 끝나지 않고, 언어·역사·생태 지식을 한 편의 이야기 안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교육 효과가 큽니다.
□ 교훈과 문학적 의미
‘죽음의 악마’라는 어원에서 벗어나 "익충"으로 살겠다는 사마귀의 다짐은 개과천선의 의지와 이름과 존재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문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곤충 이야기 이상으로, 인간도 자신의 삶과 존재 방식을 성찰하고 새롭게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 따뜻한 결말
자애로운 법당 할머니가 사마귀의 기도를 인정해 주는 장면은 작품에 휴머니즘적 온기와 종교적 자비심을 불어넣습니다. 이로써 곤충, 인간, 불교적 세계관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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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문학적 장르적 의미
이 글은 수필과 동화의 접점에서 창조된 새로운 형식입니다. 사실적 관찰에 근거하면서도, 동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독자(특히 손자 세대)에게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가갑니다.
□ 자연과 인간의 대화
작가는 자연의 작은 존재와의 만남에서 인간의 도덕적 성찰을 끌어냅니다. 사마귀의 기도는 단순히 곤충의 생태가 아니라, 인간이 추구해야 할 구도자의 자세를 상징합니다.
□ 언어와 문화의 탐색
작품 속에는 곤충 이름의 방언, 속설, 어원, 고사성어, 무술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문화적 요소가 녹아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한 "곤충 관찰기"를 넘어, 언어·역사·문화가 어우러진 교양적 지식을 얻게 됩니다.
□ 교육적 활용 가능성
이 작품은 어린이 교육용 동화로도, 성인 독자를 위한 교양 수필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손자와의 대화 형식을 빌려 쓰여 있기 때문에 세대 간 소통의 교재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 종합하면, 『‘당랑(螳螂, 사마귀)의 간절한 소원’을 경청하다』는 자연 생태 관찰과 동화적 상상력, 교훈과 유머가 조화된 작품으로, 독자에게는 웃음과 감동, 그리고 교육적 지식까지 전해 주는 귀한 수필동화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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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귀의 기도(그림=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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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
『‘당랑(螳螂, 사마귀)의 간절한 소원’을 경청하다
- 법당 앞 화단에서 만난 어떤 ‘구도자(求道者)’ 이야기』 해설
1. 서론 ― 수필동화라는 독창적 장르의 모색
윤승원 수필가는 오랫동안 자연과 인간의 삶을 주제로 생활 밀착형 수필을 써온 작가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손자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동화적 형식을 접목한 수필, 곧 ‘수필동화’라는 새로운 장르적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본 작품은 이러한 시도의 결실로, 자연 생태계 속 곤충인 ‘사마귀’를 단순한 관찰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구도자적 상징과 문학적 주제로 승화시킨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 본론
2-1. 사마귀의 상징성과 종교적 함의
사마귀는 전통적으로 ‘당랑거철’의 고사성어처럼 무모함의 상징으로 이해되거나, 육식성 곤충으로서 잔인성과 공격성의 이미지가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윤승원은 이러한 통념을 전복시켜 ‘기도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재해석한다. 법당 앞 화단이라는 종교적 공간에서의 발견은 곤충에게까지 구도의 의미를 부여하며, 생태와 불교적 세계관을 문학적으로 결합한다.
2-2. 언어와 문화의 교차
작품은 곤충의 다양한 명칭(사마귀, 버마재비, 오줌싸개 등)과 방언, 더 나아가 중국 고전(춘추시대 제나라 장공 일화), 무술(당랑권법), 고사성어(當螳拒轍)를 촘촘히 엮어낸다.
이는 단순한 곤충 기록을 넘어 언어사적·문화사적 탐색으로 나아간다. 특히 사마귀의 이름 유래를 불교적 설화(死魔鬼)와 연결시키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당랑의 ‘개과천선’ 의지를 그려내는 대목은, 곤충학적 사실과 종교·언어학적 해석을 절묘하게 결합한 문학적 시도이다.
2-3. 의인화와 유머, 그리고 교육적 효과
사마귀가 직접 작가와 대화하며 “윤 작가님이 황토 화단에서 글을 쓰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의인화의 전형적인 효과와 함께, 작품 전반에 경쾌한 유머를 불어넣는다.
이는 어린이 독자에게는 웃음을, 성인 독자에게는 의도적 과장 속의 풍자적 해학을 전한다. 동시에 곤충의 생태, 어원, 역사적 사례를 자연스럽게 담아냄으로써 교훈과 지식 전달이라는 교육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2-4. 서사 구조와 화자의 위치
작품은 ‘사마귀 발견 → 의문 제기 → 사마귀의 응답 → 법당 할머니의 증언 → 작가의 성찰’이라는 서사 구조를 따른다.
여기서 화자인 작가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중재자·증언자의 위치에 서며, 사마귀의 개과천선과 법당 할머니의 인정을 기록하여 문학적·역사적 증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곤충이라는 미물이 인간 사회의 도덕적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독특한 장면을 연출한다.
3. 결론 ― 문학적 의의
『‘당랑의 간절한 소원’을 경청하다』는 단순한 곤충 수필이 아니다. 이 작품은
△ 자연 생태의 관찰을 문학적 상징으로 격상시켰다는 점,
△ 동화적 의인화와 유머를 통해 교육적 효과를 창출했다는 점,
△ 종교적 세계관과 언어·문화적 탐색을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독창적 의의를 가진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악마적 곤충’에서 ‘기도하는 구도자’로의 변신을 통해, 곤충의 이름과 존재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이는 곧 인간 또한 자신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성찰하고,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보편적 교훈을 내포한다.
따라서 본 수필동화는 윤승원의 문학적 실험이자, 자연과 인간, 동화와 수필, 교육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성취라 평가할 수 있다. ♣ (📚 裕花, 윤승원 수필 전담 평론가)
▲ 배롱나무꽃 속에서 기도하는 사마귀(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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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댓글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명예교수) 25.09.02. 09:40
윤 선생님의 구조적인 발상에 경탄합니다. 그리고 단어의 의미를 종횡으로 설명하심은 가히 남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실력을 이 글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손자와의 대화로 넓히심은 갸륵한 사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참 신기한 것이 매일같이 눈에 들어옵니다. 애써 보려고 해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자연스럽게 저의 곁에 나타납니다. 혼자 간직하기 어렵습니다. 저의 견문을 손자와 나누고 전국의 많은 독자와도 나누면 즐겁고 보람을 느낍니다. 이렇게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졸고를 과분하게 평가해 주시니 영광이고, 9월의 상큼한 숲속 공기처럼 힘을 솟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독자
◇ 운곡 김정익(작가) 2025.09.03.
사마귀를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구도자,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으로 바라보신 시선이 참 깊습니다. 🙏
작은 생명 하나에도 저렇게 많은 이야기와 상징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그걸 붙잡아 글로 풀어내신 청촌 선생님의 필력이 감탄스럽습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상쾌하고 행복한 하루 기원드립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운곡 선생님이 저의 졸고를 깊이 살펴주시고 아낌없는 격려 말씀 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일찍이 운곡 선생님께서도 당랑에 관한 깊은 연구가 있었음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자연의 미물 하나가 이렇게 위대합니다. 자연의 철학자인 곤충들도 인간 세상에서는 스승입니다. 도솔산 깊은 숲에서 운곡 선생님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