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그리스도 (1872)
이반 크람스코이
이반 크람스코이(Ivan Nikolaevich Kramskoy, 1837-1887)는
1837년 러시아 오스트로고쥬스크 시의회 서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185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해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863년에 ‘농노 해방령’과 관련된 황제의 업적으로 할 것을 요구하는
아카데미 졸업 작품 주제에 반발해
다른 13명의 학생과 함께 작품 주제 선정의 자유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졸업 직전 아카데미에서 나왔다.
스스로 ‘14인의 반란자’라 칭하며 ‘페테르부르크 예술가 조직’을 결성한 이들은
작업실과 주거지를 공유하는 공동체 생활에 들어갔다.
1870년 이반 크람스코이는 비평가 스타소프(V.V. Stasov)와 전격적인 합의로
‘러시아 이동전시협회’를 창립하였다.
여기에는 일리야 레핀(Ilya Repine), 바실리 수리코프(Vasily Surikov),
바실리 페로프(Vasily Perov), 이사크 레비탄(Isaak Levitan) 등
19세기 후반의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참여했다.
이 그룹은 러시아의 여러 도시를 이동하면서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이동파(移動派)’라는 이름을 붙였다.
몇몇 특수한 사람만을 위한 미술 전시회가 아닌
대중이 함께 미술품을 감상하고 즐기자는 취지로 거의 해마다 개최된 이 전시는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이후 러시아 미술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규정지었고,
귀족들과 부유한 사람들의 기호를 만족시켜 돈과 명예를 얻는 예술이 아니라
일반 민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러시아 예술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길을 열었다.
크람스코이는 ‘화가는 사회에 대해 도덕적인 의무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러시아의 사회적인 이상과 높은 도덕을 추구했고,
예술의 진실과 아름다움, 도덕과 미적 가치는 상호불가분의 것이라고 보았다.
크람스코이가 1872년에 그린 <광야의 그리스도>는
마태오복음 4장 1-11절, 마르코복음 1장 12-13절,
루카복음 4장 1-13절이 그 배경이지만,
전통적인 화가들처럼 예수님의 세 가지 유혹을 형상화하는 표현에서 벗어나
자신의 철학과 도덕적 기준을 담아 이 작품에 접근했으며,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두고 ‘내가 본 그리스도 중 최고’라고 찬사를 보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뒤에 성령께서는 곧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 1,12-13)
크람스코이는 전통적인 유혹에 대한 교리 해설적 접근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던 러시아 사회 정치적 흐름이 반영된
인본주의 사고방식으로 이 작품에 접근했다.
다른 화가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세 가지 유혹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크람스코이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그렸다.
예수님의 고뇌는 바로 작가가 몸담은 러시아 현실에서 민중들에게
예술을 통해 삶의 방향과 지혜를 제시해야 하는 작가의 고뇌이기도 했다.
이른 새벽 동이 트는 시간에 바위투성이 광야에 예수님 홀로 바위에 앉아계신다.
살아 있는 생명은 잡초 하나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돌무더기 황무지이다.
예수님께 확대경을 대고 보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너무 슬퍼서 가슴이 먹먹하고 숨이 멎어버린다.
그냥 작은 화면의 그림으로 보았을 때는 잘 몰랐는데,
확대 기능을 통해 그리스도의 얼굴과 눈과 손과 발을 보는 순간,
심연을 알 수 없는 고뇌하는 예수님의 깊은 눈동자에 어린 우수에 가슴이 저미고,
꽉 쥐고 있는 두 손과 뼈만 앙상하고 거친 맨발에 목이 메게 된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자기 소명에 대한 깊은 고뇌로
밤을 새워 기도하신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초췌하고 피곤한 모습이다.
돌만 가득한 광야는 맨발로 걷기에 너무 힘든 곳이기에 그분의 맨발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힘줄이 드러나도록 굳게 깍지를 낀 두 손은
너무나도 간절하게 바친 기도의 마무리를 아직도 마치지 못한 상태이다.
그분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온 하느님의 아들로서
앞으로 자기가 걸어야 할 미지의 길에 대한 깊은 의문과 불안에 찬 모습이다.
먹을 것도 없고 밤의 찬 기운을 피할 곳도 없는 사십 일 동안의 광야 생활은
그분의 얼굴을 핼쑥하게 만들었지만, 그분의 눈빛은 점점 고뇌로 깊어졌다.
지금 세상과 다가올 세상에 대한 새로운 약속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 작품은 밑바닥에서부터 저며 오는 깊은 고통으로 인해
예수님의 잔인한 슬픔이 진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깊은 명상에 잠겨 있다.
세상의 모든 욕망과 유혹을 떨쳐버리기 위해 광야에서 깊이 내면으로 침잠해 있다.
그분의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소박한 마음이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예수님께 따뜻한 양말이라도 신겨 드리고 싶고,
어깨에 담요라도 덮어드리고 싶으며,
뜨거운 커피라도 들고 가 한 잔 건네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