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열매
1998년 12월, 왼쪽 아랫배가 아파 산부인과를 갔더니 산부인과 문제가 아니고 내과를 가라하여 동네 내과에 갔다. 검사후, 장의 문제 같다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래서 병원 다니며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다.
그러던 중 1999년 1월 20일 큰아이 돌을 맞았고, 그 후에도 계속 약물 치료를 하였다. 2월 초 독감에 걸려 주사도 매일 맞고 약도 장약에 독감약까지 많이 먹었다. 그러던 중 생리가 있었다. 생리 주기에 맞지 않게 빨리 시작되어 이상하긴 했지만, 생리가 좀 빠르게 왔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리를 치렀다. 약물 치료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2월 중순에 거실 바닥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다르게 물이 불어만 갔다. 아랫집 주인께 말씀 드렸떠니, 몇 가지 알아보고는 짐을 다 드러내놓고 집안 바닥 전체를 다 뜯어내고 파이프를 갈고 다시 바닥을 덮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아이 겨우 돌 지나 어린데, 그 어린애를 데리고 그 공사를 한 겨울에 벌리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결혼할 때 돈이 별로 없어 이런 하찮은(?) 집을 구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남편에게 온갖 짜증 다 부리고 원망, 불평하고 심한 말로 비수를 꽂기도 했다.(며칠 뒤면 영천으로 군의관 훈련을 떠나야 하는 남편인데, 그토록 심하게 대한 것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도 미안하다. 그대는 생각이 짧았고 믿음도 부족했었다.) 한참을 길길이 뛰다가 조용히 기도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이사하기로 했다. 어차피 4월이면 이사갈 계획이었는데, 임시로 2개월간 머물 집을 구하고 그 후엔 군대 발령 나는대로 옮기면 될 것 같았다.
며칠뒤, 남편은 경북 영천으로 훈련 받으러 떠나고 나와 아이는 할 수 없이 일단 친정으로 옮겨서 2개월간 지냈다. 친정으로 옮긴 후, 3월에 생리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확인하는 의미에서 임신 테스트를 해보니 양성 반응 이었다. 깜짝 놀랐다. 임신일 리가 없는데... 없는데...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더니 이미 임신 6주였다.
알고보니 2월에 있었던 생리는 착상 출혈이었던 모양이다. 앞이 캄캄하였다. 약을 2월 22일까지는 복용하였다. 갑자기 이사하게 되면서 내과 치료 받던 것을 못 받게 되었고 마지막에 타온 약 남은 것까지 먹으니 22일까지는 복용하였다. 갑자기 이사하게 되면서 내과 치료 받던 것을 못 받게 되었고 마지막에 타온 약 남은 것까지 먹으니 22일까지 먹게 되었다. 임신되고도 4주 동안을 약을 먹은 셈이다. 현실이 암담하고 믿기가 어려웠다.
산부인과에서는 약을 처방했던 내과에 물어 보라고 했다. 내과에 물어 보니 의사가 펄쩍 뛰며, 유산시키란다. 태아에게 해로운 약이 너무 많이 들어갔단다. 요즘 같은 IMF에 웬 기형아를 낳아 힘들게 키유냐며 유산시키라 한다. 실오라기라도 잡아볼 심정으로 이것저것 물어 보았지만, 의사는 소리만 지르고 바쁘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너무 상처받고 속상해서 막 울었다.
왜 이때 아기가 생겼는지, 내 신세가 처량하기만 했고 뱃속의 아기가 불쌍했다. 영천에서 훈련 받고 있는 남편에게 급하게 소식을 알렸다. 정말 유산을 시킬 것인가 낳을 것인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만 하루 동안 각자 생각하고 기도한 후 결정하기로 했는데, 나는 낳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기형아를 주시고자 계획하셨다면 유산시킨다고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 큰애 원일이를 기형아로 만들 수도 있는 일...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해야겠다고 결정했고, 남편에게서도 낳자고 연락이 왔다.
10개월 동안 무수히도 기도했다. 주변에 중보 기도자도 많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구역장님은 새벽 기도 시간에 매일 기도해 주셨단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임신 기간 내내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했고 임신 중기부터는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드디어, 출산 일... 충분히 기도했기 때문에 마음은 편했다. 아기를 낳았는데, 건강한 4.4kg 남아였다. 할렐루야!! 어디 한군데 문제없이 건강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돌이켜보니, 파이프가 터진 바람에 갑자기 이사한 후 약을 중단하게 되었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불평불만했던 것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아기 이름은 '원하' 라 지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 후, 우리 원하는 무럭무럭 자랐고, 26개월 되던 때, 형 원일이를 먼저 천국에 보내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그때 만약 유산했더라면 이 땅에 원일이, 원하 모두 없을 뻔했다.
하나님께 순종했더니, '순종의 열매'인 우리 원하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가 유산시키지 않도록 노심초사 우리를 이끌어 주셨던 하나님의 자상한 손길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니 그 사랑이 얼마나 깊던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알려주셨다. 원하가 태중에 있을 때, 기도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것은 26개월에 형을 먼저 천국에 보낼 때를 대비해서 미리 영적 준비를 시키신 것이라고... 얼마나 철저하고 전지 전능하시며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신가...!! 태중에 새벽 제단을 쌓은 덕에 우리 원하는 애기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몸도 마음도 영도 얼마나 건강한지 모른다.
순종의 열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순종하는 자의 믿음이 만들어 낸 보물이다.
정해인/조옥구(전남대 의대 94년 졸업, 원일의원 원장) 누가 아내, 원하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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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79년 경북 영천으로 군입대하여 가서 대구통합병원에 근무했던 1979년도가 갑자기 생각이 나면서 가슴이 짜낳네요! 그때 군의관 중위 월급이 5만원 이었어요! 콘나물만 먹고 1달을 살아야 했습니다. 대위로 진급해도 7만원 ..그러나 그때가 돌이켜보면 감사햇던 시간이었어요 하물며 예수남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