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학교와 한반도평화포럼, 프레시안, 오마이뉴스가 공동 주최하는 제3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 첫 번째 강의가 18일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에서 열렸다.
'김정은 시대와 모란봉 악단'이라는 주제로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가 진행한 이날 강연은 지난해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출범한 김정은 체제에서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향후 북한의 행보를 전망하는 자리였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파격 행보로 대표되는 북한의 변화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는 상황이다.
김정은 체제가 보여주는 변화가 북한이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지만 진 교수는 안정에 무게를 뒀다. 파격적인 곡 선정과 무대의상으로 주목을 받았던 모란봉 악단 공연 뿐 아니라 권력서열의 변화, 김정은 제1원장의 행보를 상세히 살펴봤을 때 북한이 조금씩 "김정은식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북한을 불안정한 상태로 간주하고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오판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은 체제의 권력서열 어떻게 변했나
김정은 체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급격하게 변화한 권력 서열이다. 변화의 조짐은 2010년 9월 열린 북한 노동당 제3차 당 대표자회부터다. 당시 대표자회에서는 노동당 당원 자격에서 '명예 당원'이 신설됐는데, 이는 젊은 김정은을 보좌할 이들을 당원으로 승격시키는 과정에서 밀려날 1세대 원로들을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고 진 교수는 설명했다. 1세대 지도부의 퇴장은 지난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 사건으로 가시화된 바 있다.
김정일 사후 권력 서열의 변화도 눈에 띈다. 김정일 사후 꾸려진 장의위원회 232명의 명단은 권력 서열을 반영하는데, 불과 2일 뒤인 12월 20일 첫 참배에서 순위가 급격히 바뀌었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가 14위에서 5위로 올랐고, 29위였던 원로 오극렬이 13위로 오른 것은 부친 오중흡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해석된다.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도 24위에서 17위로 뛰었다. 진 교수는 "2일 사이에 이러한 변동이 있는 것은 북한의 제도적 논의구조가 있는가 하면 이를 뒤엎을 배후가 있다는 것"이라며 "(순위 변동에는) 김경희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보고 있다"고 말했다.
권력 서열에 다시 일어난 변화는 지난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주석단 배치에서 관찰된다. 참배 당시 21위였던 최룡해가 이제는 4위로 급부상했다. 진 교수에 따르면 최룡해의 급부상은 부친 최현과도 관련이 있는데, 최현은 김일성의 회갑 만찬 당시 김평일을 후계자로 평가하는 분위기에서 '장자 상속 원칙'을 주장해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진 교수는 "최룡해 자체는 크게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는 평가에 무게가 많이 실린다"며 "(최룡해의 서열 승격으로) 김정은이 보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잇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7월) 리영호의 실각이 최룡해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의위원회 당시 77위였던 현영철이 약 반 년만에 총참모장으로 오르는 등 서열 5위로 수직 상승한 것도 큰 변화다. 최고인민회의 당시 북한 지도부 최고 실세로 꼽히는 장성택은 7위, 김정각도 6위로 올랐다. 9월 16일 김정은의 아리랑 공연 관람 당시 좌석 배치를 보면 오른쪽으로 최룡해에 이어 장성택이 등장했다. 이 같은 권력 서열의 급격한 변화는 김정은의 노선에 반하는 직언을 할 수 있는 리영호 등을 물러나게 해 김정은식 정치를 보다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모란봉 악단 공연, 얼마나 파격적이었나
파격적인 의상과 곡 선정으로 주목을 받았던 모란봉 악단의 지난 7월 11일 시범 공연은 북한이 공연을 통해 국내외에 던지는 메시지라는 측면에서 많은 의미가 있다.
보통 16명으로 구성되는 모란봉 악단의 당시 공연은 아리랑 연주로 시작했는데, 이는 민족 문제가 가장 최우선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중국곡 <오성홍기>를 부른 것은 북중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분석됐다.
파격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곡이 이날 공연에서 다수 등장했다는데 있다. 영화 <록키> 주제곡을 비롯해 '마이웨이', 만화영화 <톰과 제리> 삽입곡, <미녀와 야수>의 번안곡 등이 나왔고, 무대에도 미키마우스나 푸우 등 미국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진 교수는 이러한 공연의 의미에 대해 "북한의 문예는 문학작품을 기반으로 드라마나 영화, 노래가사 등으로 다시 표현되는 방식을 따르는데, 반드시 사회주의 혁명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이번 공연은 앞뒤로 당과 최고지도자에 대한 노래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회주의와는 관련이 적었다"고 말했다.
▲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1일 공개한 모란공 악단의 공연 장면. ⓒ연합뉴스
김정은의 '다름'을 보여주는 사건은 이밖에도 많다. 노후됐던 순안공항을 평양공항역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청사를 완공했다. 능라도 유원지 등 놀이공원개보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부인 리설주와 공개 석상에 동행해 북한에서 약 40년 만에 '퍼스트레이디' 개념을 부활시킨 것도 특징이다. 25일 제6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구체적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되는 '6.28 신경제관리개선조치'는 북한 경제의 전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뒤에는 과제도 여전히 많다고 진 교수는 설명했다. 김정일 사후 당규약 개정을 통해 밝힌 '김일성-김정일주의'에 대한 해석을 두고 갈등이 빚어질 수 있는데,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의 이론화 과정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경제 문제 역시 주변국과의 관계 회복이 전제되지 않으면 중국과의 교역만으로는 안정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리영호 등의 실각으로 드러난 지도부 세대교체 과정에서 불거질 노-장(老-壯) 갈등에 대처하는 것도 김정은에게 남겨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