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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시작
느1:1-3
1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1: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1: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앙코르 왓트)
여러분들이 많이 후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한주간동안 캄보디아 선교지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제일 감동적인 부분은 베트남 난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시엠립의 수상촌에 있는 다일 공동체였습니다.
한 젊은 집사님 가정이 평신도 사역자로 시엠립의 다일공동체를 이끌고 계셨습니다.
수백명의 굶주린 어린이들이 다일공동체에서 공급하는 매일 한끼의 식사로 연명을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제일 답답한 것은 그들에게는 물이 넉넉한데 먹을 물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50만원이면 우물한개를 한 개를 팔수가 있는데 그 돈이 없어서 많은 어린이들이 오염된 물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로인해 각종질병이나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함께 간 저희 노회임원들이 즉석에서 호주머니를 다 털어서 돈을 갹출하여 우물한 개를 기증했습니다.
시간을 내서 앙코르왓트를 둘러보았습니다.
앙코르 왓트는 11세기에 건축된 피라미드와 함께 세계적인 불가사이한 유적중에 하나였습니다.
힌두교의 모든 신전의 출입구는 태양이 뜨는 곳인 동쪽을 향해 있는데 이 신전만은 유일하게 서쪽으로 출입구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신전을 지은 사람이 바로 수리아 바라마2세라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죽는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여 영원히 살수있는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힌두교의 300만이 넘는 신들중에 자신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신이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을 건축하면 자신도 신이 되어 영생할수 있다고 믿고 필생의 사업으로 이 거대한 신전을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신전과는 달리 죽음이후에 들어가는 영생의 길이라고 믿고, 서쪽으로 통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죽어도 한줌의 흙이 되었고, 폐허가된 돌맹이들속에 덩그렇게 이름만 남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한왕이 죽음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 싫어서, 신이 되고자 했고, 신이 되어 영생하고 싶었던 자기 일생을 드려 만든 이 폐허가 된 11세기 신전앞에서 제 자신에 대하여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저렇게 많은 불쌍한 백성들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자신만 영원이 잘되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백성들을 혹사시켜 이 거대한 신전을 건축했다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우매한 행동이었는가를 생각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영원하게 만드는가?)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나를 영원하게 만드는가?”하는 질문입니다.
또하나는, “무엇을 해야 내 작은 존재와 짧은 생애가 복근원적인 존재가 될수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거대한 신전앞에서 이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되는 삶의 비결은 매우 단순합니다.
이것만 잘 분석하면 우리는 영생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되고, 잘되는 삶을 살수 있는 복근원적인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선택의 여지앞에서,
“하고 싶은일을 지양하고,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일에 우리에게 대단히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 (=해야 할 일)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 희망미래)
저는 어제 늦은 시간에 급한 전화한통을 받았습니다.
한 젊은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누어서 “이규섭목사님을 보고 싶어한다”는 전화였습니다.
그 어머니가 누구인가를 물었더니 얼마전에 우리교회를 잠깐 다닌 분이라는 것입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급하게 권사님들을 불러서 병원심방을 했습니다.
거친숨을 몰아내쉬면서 중환자실에 누어있는 그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병세는 폐가 굳어가는 신기한 병이었습니다.
잠깐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순간 그분의 얼굴이 그렇게 평온해졌습니다.
저는 그분을 심방하면서 “희망미래”라는 단어를 구성해 보았습니다.
“절망미래”가 있을수 있고, “희망미래”가 있을수 있습니다.
즉 나의 오늘의 삶의 결과가 내일의 운명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오늘 눈물로 씨를 뿌리면 내일은 기쁨의 단을 거두는 희망미래가 되어집니다.
그러나 오늘 희생과 헌신을 거부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를 절망미래가 되고 말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삶이 모아져서 “희망영원”이 될수 있고, “절망영원”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중요한것은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절망미래로 빠져들게 되고, 나의 영원은 절망영원이 되고 만다는 것 입니다.
반대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있다면 나의 미래는 희망미래가 되어지고 나의 영원은 희망영원이 될수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이일에 모범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이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모세는 나이 40세가 되었을때에, 자신을 위한 삶인 애굽의 왕좌를 단호하게 버리고, 하고 싶은 일의 욕망을 단호하게 잘라버리고, 해야 할 일 곧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는 일을 선택하여 남은 생애를 살게 됩니다.
그것이 모세를 영원하게 했고, 그로 하여금 인류의 복 근원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느혜미아의 결단)
본문은 느혜미아의 위대한 결단의 근거가 되었던 상황 하나를 소개합니다.
느혜미아는 대단한 능력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 출신 포로민으로써 페르시야제국에서 그 무수한 경쟁자를 제치고 페르시야의 최고관리중에 한 사람인 “술관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11 ....그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었느니라
저와 함께 운동하는 자매님가운데 한분은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신데 늘 술을 즐겨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그분을 만나면 “오늘은 두 주님 중에 어느 주님을 가까이 했느냐?”라고 농담을 합니다.
첫 번째 “주”는 술 주입니다. 술을 좋아하신 분들은,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야 그렇게 신앙좋은 느혜미아도 술 관원이었으니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겟노!”라고 하면서 좋아할것이고,
또한분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왜 하필이면 신앙좋은 느혜미아가 술관원이란 말인가?”라고 하면서 꺼림찍하게 생각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페르시야 제국에서 술관원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휼륭한 지위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술 전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사람들은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단히 능력있고 메너좋은 사람들입니다.
이사람들은 외국의 중요한 바이어들과 직접 대면하여 회장과 사장이 하지 못하는 “오다”를 얻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술관원이었던 느혜미아도 고작 왕 곁에서 술이나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왕의 참모 역할을 하면서 왕의 정책자문을 담당하면서 한 나라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할수 있는 놀라운 권세를 가진 사람이 바로 술 관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느혜미아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해서 이렇게 출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거나 그를 희망영원으로 인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느혜미아의 결단)
도리어 느혜미아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은 더 이상 자신이 하고싶은 일, 곧 내 자신을 위한일은 하지 않기로 결단을 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이미 멸망해 버린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느혜미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더니
1: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1: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무슨 말씀입니까?
바로 느혜미아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일을 하기 위하여,
- 자기 동생 하나니를 예루살렘에 보내서 하나님의 나라인 예루살렘의 형편을 알아오게 했고,
- 자기동생 하나니가 돌아왔을때에는 지체없이 예루살렘 근황을 물었을 뿐 아니라,
- 예루살렘성의 참담한 근황을 보고받고서 느혜미아는 슬피 울었으며,
- 급기야는 하나님의 나라인 예루살렘 때문에 한달동안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금식으로 기도하면서 부르짖고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 느혜미아를 영원하게 만든 삶의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느혜미아의 꿈의 시작)
제가 오늘 설교제목을 “꿈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느혜미아는 포로민의 후손으로써 이를 악물고 자신을 위해서 노력을 한결과 술관원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그 거대한 페르시야 제국에서 그 엄청난 저항을 뚫고 술관원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과 의지를 소유한 사람인가를 알게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권력이 있었고, 그로인하여 비축한 많은 재물이 있었으며, 그결과 인간이 누릴수 있는 많은 쾌락과 수준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느혜미아를 영원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에게 희망영원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느혜미아가 어느날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했고,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두고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일에 자신의 운명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것들이 느혜미아를 영원하게 했고, 그를 복근원이 되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꿈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룻의 꿈의 시작
룻기에 보면 사사시대의 영웅이었던 룻과 그의 동서인 오르바를 비교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여인은 처음에는 동일한 운명이었고, 동일한 선택의 여지를 앞에 둔 사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르바는 자신을 위한 삶과 하나님을 위한 삶의 선택의 여지앞에서 전자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더 이상 성경역사가운데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한 사람의 범인으로 살다가 나이가 들어 한줌의 재가 되어 흩어지고 만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삶을 기회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성경의 스포라이트를 받는 여성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역사뿐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고, 인류역사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부자청년과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부자청년은 모든 것을 가진 대단히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택의 여지앞에서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생애에는 부자로, 성공자로 살았을지 몰라도, 영원에 이르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반대로 베드로는 무식했고 별볼일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선택했을때 그는 이미 영원의 대로를 걷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꿈의 시작)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부터 새로운 꿈의 시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일의 틀을 깨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나를 영원하게하고 가치있게하고 복되게 할수 있는, 진정한 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고, 구원하셨기에 그분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이요 백성들입니다.
종이 잘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종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자기일만 한다면 “절망미래”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종이 주인의 뜻을 받들고 주인이 부여한 일을 자신의 존재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충성하면 “희망미래”가 열리게 됩니다.
그것이 그 종을 복되고 하고, 영원하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주님이 명하신일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 마음의 소리에, 세상의 풍속을 따라사는 삶에만 귀를 기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주인의 명을 잘 경청하고 수행한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서,
“칭찬과 함께, 많은 것으로 맡으며,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희망미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한달란트받은 종은 주인의 명령과 맡긴일보다는 자기 자신의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책망과함게 절망미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제MBC 뉴스후에서 방영되는 내용들을 보면서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먼저는, 교회가 저러한 지탄의 대상이 되가고 있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분명히 교회는 반성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이 분명합니다.
또 하나는, 소위 교회개혁연대를 구성하고 목사님들의 면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분들중에 단한분도 목회를 하시는분들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지 않고 탁상공론적으로 개혁만을 외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분들도 개척을 하거나, 선교현지가 가있거나, 목회를 해보면 현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다못해 우리교회가 주차장을 준비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무리한 일들이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한 모든일들이 모두다 세속인들의 눈으로 볼때에는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캄보디아에 가서 제가 작은 교회목사라는 것과 우리교회 능력이 작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속이 상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가장 효과적인 선교사역중에 하나가 바로 학교를 세우고, 우물을 파주는 일일임을 알았습니다.
주체할수 없는 성령의 감동 때문에 목사님들이 꿇고 기도하면서 즉석에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고작해야 우물 한개 값이었습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년중 1억이상의 활동비와 품위유지비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노회장이었고, 임원들을 대표하는 신분의 지도자로써 내게는 그러한 이 없다는 것이 선교지에서 너무 슬픈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의 비방이 아무리 크고 힘들게 할찌라도,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해야할일, 곧 나를 위한 일이 아닌 주님을 위한 일들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을 준비하는 삶이 될 수가 있습니다.
꿈이 솟는 샘
느1:4-11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1: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1:6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1: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1:9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1:10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권능과 강한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당신의 것으로 여기셔서 만들어 주시고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37편에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너희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정말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작가이십니다.
그래서 그가 우리의 삶을 붙잡으시면 우리의 존재는 가장 탁월한 모습으로 빚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40장에 보면 “너는 내것이라”는 말씀이 소개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당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처럼 나를 부리시려고 “너는 내것이라고 하시는가?”
아닙니다.
그 말씀은 내가 너를 소중히 여기고 존귀히 여기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당신은 내것야”라고 합니다.
그것은 “내종으로 부리겠다”는 말이아니라, “내 자신보다도 당신을 더욱 사랑하겠다”는 표현이되는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것이 우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분명히 내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산다고 고백을 하고 그렇게 여기고 있는데 내 삶이 정오의 빛같이 되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씀을 의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고백적으로는 “내 삶을 하나님께 맡겼다”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천적 무신론자가 무엇을 말합니까?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부르고 헌금도 드리는데 실제로는 자신의 삶에서는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모습을가진 성도들을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시간 여러분들에게 말슴드리고 싶은 것은 만약에 우리가 내 전존재와 전 삶을 정말로 하나님께 맡겼다면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이제부터는 내삶의 모든 영역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를 체험하고 경험할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내 삶의 주인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을 했습니다.
곧 내 마음의 주관자가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어떤 일을 행할 때 “내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게 맡긴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맡겼다면 “이제는 내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곧 하고싶은 일을 그만하고, 내 영혼이 원하는일 곧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인도와 기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 느혜미아의 꿈의 확정
우리는 지난시간에 “무엇이 나를 영원하게 했는가?”를 “무엇이 느혜미아를 영원하게 했는가?”를 통해서 묵상했습니다.
느혜미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성공, 곧 페르시야 제국의 술관원이라는 엄청난 성공을 사명으로 바꾸고, 하고싶은 일은 해야 할 일로 바꾼 대단히 아름다운 신앙인이었음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느혜미아가 성공을 사명으로 바꾸워서 자신이 꿈을 확정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구체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도서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그 영역가지 하나님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아의 기도)
본문에 보면 느혜미아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야할일을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겨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11절의 말씀은 기도하는 느혜미아의 모습니다.
* 기도의 자세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아는 지금 울면서 기도하고 있고,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 기도의 내용
또 한가지는 느혜미아의 기도의 내용이 됩니다.
그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가 간구하되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1: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1:6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1: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1:9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1:10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손으로 구속하신 주의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중요한 한것은 지금 느혜미아가 자신의 삶의 구체적인 영역을 하나님게 맡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섭과 역사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다음주에 생각해 볼 부분인 2장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느헤미아는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방향과 사명도 하나님께 맡겨서 자신이 하고싶은 일이 아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그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들도 기도로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주시는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이 말씀에서 두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꿈과 비젼이 본질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꿈과 비젼을 주신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과 비젼을 주실때에 그것은 한결같이 우리가 이룰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아브라함이 이룰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에게도 동일한 모습의 꿈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곧 “해와 달과열한별이 절하는” 지도자의 꿈을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가난한 가나안에서 출생하고 자란 요셉이 그러한 것들을 이룰수 있단 말입니까?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서 그들을 “해뜨는 곳 유브라데에서 해지는 곳 대해까지 지경으로 삼게하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안되는 일을 명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땅끝까지 가서 만민을 제자로 삼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 꿈과 비젼이 가당한 말씀이었습니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과 비젼은 본질상 내가 할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할수 일들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고 현실이고, 비젼이 아니고 삶이 되어진 것들이 된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기하지 않습니가?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수 없는 그러한 일들을 내게 꿈과 비젼으로 허락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기도케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거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곧 하나님게서 그러한 꿈과 비젼을 우리에게 주신 까닦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게 하시려는 목적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느혜미야를 보십시오.
그에게 맡겨진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예루살렘 중건이라는 대업입니다.
예루살렘은 이미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페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을 다시 재건하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기도의 본질을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느혜미아가 자신이 확정한 꿈을 부여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기도가 굼을 현실이 되게했다는 것이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꿈은 기도라는 과정을 통해서 현실이 되고 성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기적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기적은 기도로 이뤄지고, 기도는 기적을 낳는 방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없는 기적은 없고, 기적은 기도를 통해서만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기적이라는 터에다가 꿈이라는 집을 짓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제 하나님의 꿈이라는 주제로 축제를 했습니다.
마틴루터 킹이라는 목사님에 대하여 설교헷습니다.
그는 흑인으로 탄생했고, 흑인으로 자랐습니다.
당시 그가 속한 미국사회는 도무지 꿈을 가질수 없는 상황이었고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하늘을 나르는 풍선들을 가리키면서 모든 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하늘을 나르는 것처럼 꿈이라는 바람을 가슴 담은 사람은 하늘을 나르고 성공할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이사람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세게인의 꿈이 되아던 것입니.
결론)
하나님의 자녀들은 꿈과 비젼을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그것들을 이룰수 없기에 꿈이요 비젼입니다.
하나님게서는 기도라는 방편을 통해서 그것들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 기적의 태풍을 만들다
느2:1-10
2:1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 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2: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2: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2: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2: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태풍이 어떻게 발생한지 아십니까?
태풍은 주로 북위 10도에서 25도 사이의 바다에서 발생합니다.
강렬한 태양열을 받아 이 해역의 바닷물이 증발하고 구름을 형성합니다.
지구 자전에 의해 이 구름이 선회운동을 함에 따라 점점 태풍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를 기적의 태풍을 만들어 내는 도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태양열이 우리에게 항상있고, 우리는 믿음이라는 수증기를 가지고 응답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증기로 발생되는 구름을 태풍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제가 즐겨보았던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사극이었던 대조영이었습니다.
그 막강했던 고구려가 청나라에 멸망하자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들을 모아서 다시 나라를 세워가는 과정이 바로 대조영이라는 드라마의 내용이었습니다.
청나라를 위시한 주변국가의 많은 견제와 방해를 극복해 나가면서 결국 발해라는 거대한 나라로 다시 고구려가 재건되는 놀라운 민족의 대업을 잘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판 대조영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본문에 등장하는 느혜미아라는 인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도 대조영처럼 멸망해버린 이스라엘의 후손으로써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재건했고, 나아가서는 백성들의 믿음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서 영광스러운 하나님나라를 재건한 사람이 바로 느혜미아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느혜미아의 생애를 통해서 꿈이 이뤄져 가는 과정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된 우리 모두가 어떻게 자신들을 꿈을 일으킬것이며, 어떻게 자신들을 꿈을 이뤄갈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느혜미아를 꿈의 사람으로 불러야 할것입니다. 이유는 느혜미아가 꿈을 가질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꿈을 만들었고, 그 꿈을 이뤄가서 꿈의 역사를 창조한 사람이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헤미아의 생애를 묵상해 보면 그의 생애가 매력적인 퍼즐조각들로 수놓아진 참으로 아름다운 생애였음을 확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의 시작”- 느혜미아에게 있어서 꿈의 시작은 “해야할일에 대한 각성”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하고싶은일은 충분히 할수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포로민의 아들로써 왕의 최측근이 되는 성공을 이미 거두었습니다. 그는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일을 다 할수 있는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 나를 영원하게 하는가?”를 생각했고, 그것이 “해야할일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애에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예루살렘과 조국 이스라엘에 재건에 대하여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느혜미아의 꿈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꿈의 생산”- 느혜미아가 해야 할 일을 각성할 때 자신의 삶의 방향이 새로워 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그가 꿈을 만들어내야하고, 꿈이 생산되어야 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뚜렷한 꿈을 주셨고, 그 꿈은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이스라엘민족을 일으키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꿈의 생산자가 될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밝게 하고 살리는 것은 우리의 꿈입니다.
내 가정을 살리고 가정미래를 희망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의 꿈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내 존재의 미래를 희망미래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나를 위한 꿈부터 생산해야 합니다.
그때 나의 미래는 희망미래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꿈, 큰 꿈을 생산하여 가졌다고 해도 그것을 이룰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꿈은 가졌으나, 그 꿈을 이룰 능력을 가지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만약에 우리가 꿈만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이룰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많고 큰 꿈들이 하늘에 있는 무지개와 같은 모습이 되고 말것입니다.
(기적의 태풍을 발생시키라)
그러나 여기 우리가 가진 꿈을 이룰수 있는 강력한 능력과 에네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과연 느혜미아는 자신의 큰 꿈을 어떻게 이루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의 꿈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는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절감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곧 느혜미아는 기도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장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할대에 그에게 기적의 태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장을 보십시오.
이 말씀에는 느혜미아의 꿈이 생산된 그의 기도가 소개됩니다.
곧 그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하여 기도하기 시작할때에 그에게 활하산 같은 꿈의 용암이 분출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안에서 나도 할수 있다”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나도 할수 있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일도 할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다라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능력을 바라보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당신의 큰일을 이룰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2장에서는 느혜미아의 기도를 들으신 우리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적의 태풍이었습니다.
곧 느헤미아가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할대에 그의 기도가 태풍의 눈이되었다면, 이제 그 태풍이 점점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거대한 기적이라는 태풍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첫째, 최상의 사람을 붙여주는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2:1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 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느헤미아가 자신이 이루워야 할 꿈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할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에게 막강한 힘을 가진 한 사람을 붙여주시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페스시야 제국의 황제인 아닥사스다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이사람의 이름은 “아탁세르세스”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당시 127도를 다스리고 있던 세계최대 제국의 황제였던 것입니다.
그는 엄청난 영토를 가진 왕이었고, 망강한 권력을 소유한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예루살렘성을 수천개라도 지을수 있는 여력을 가진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아의 꿈을 이뤄주시기 위해서 놀라웁게도 이 아닥사스다를 그에게 붙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느혜미아가 기도를 마치고 자신의 업무를 위해서 왕 앞에 서게 됩니다.
근 몇 달만에 느헤미아와 아닥사스다 왕의 조우가 이뤄지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일이 왠일입니까?
뜻밖에도 아닥사스다 왕이 느혜미아를 보자마자, 느헤미아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렇게 뭍습니다.
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대 제국의 제왕이 일개 관리의 표정을 살피며 그의 안부를 걱정하는 상황이 라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이런일은 절대 없엇을 것입니다.
신하나 관리들이 왕의 표정을 살피고, 왕의 기분을 맟추려고 노력을 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의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곧 황제가 신하의 표정을 살피면서 그의 안부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고대에 제왕앞에서 어두운 표정을 짓거나, 싫은 표정을 가진 사람들은 사형감입니다.
지금 느혜미아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그러한 느헤미아에게 분노하거나 책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의 안부를 뭍고 걱정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응답이 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처럼 왕의 마음을 움직여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역사들은 종종있었습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에스더가 이스라엘 민족을 살려내기 위해서 금식기도하고 왕의 허락없이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갔을때 왕이 그를 향해서 진노하고 처형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가득했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또한 야곱이 얍복강에서 철야하면서 기도하고 형을 만났을때에 강철같이 강팍하던 에서의 마음이 완전히 녹아서 야곱을 얼싸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가 만들어 낸 기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틀림없이 내꿈을 이룰수 있는 사람을 붙여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도 최상의 사람으로 붙여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신학공부를 할때 너무 막연했습니다.
대학부 2학년때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3학년때에는 저를 사모했다고하는 한 모령의 여인이 저도 모르는 새에 학비를 대주었습니다.
군대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을때까지는 군대에서 만난 군인가족들이 돈을 보아서 제 학비를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개되는 상황들을 보면서 제게 한가지를 확신이들었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꿈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최상의 사람들이다 라는 확신입니다.
그후로는 제가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무시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다 내게 필요한 사람이어서 하나님이 내게 붙여주셨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했습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변장의 천재이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다가올때, 내 주변의 사람으로 내게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것이 내게 한것”이라는 주님의 말슴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또다른 성육신이라고 믿고, 그들을 대할때에 주님대하듯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최고의 상황이라는 기적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2: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2: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본문에 보면 더욱 놀라운 상황이 전개됩니다.
그것은 바로 왕의 제안이 되는 것입니다.
느혜미아가 자신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이유는 파괴되어 버린 예루살렘성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사실 대제국의 왕이 이러한 말을 들으면 괭장히 기분나빠해야 옳습니다.
왜냐면 1,2차 귀환자들이 이스라엘에 돌아가서 성벽을 재건하려고 할대에 주변국가들의 반대상소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쇄도하게 되었고, 아닥사스다는 “예루살렘 성 중지조서”를 이미 내린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느혜미아가 다시 이일을 왕에게 꺼내 놓은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네가 왕은 물로 보냐, 내가 하지말라고 이미 조서를 내린일을 네가 다시 꺼내는 것을 보니 너는 반역자다”라고 하면서 느혜미아를 처형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아닥사스다는 뜻밖에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왕이 이렇게 질문한 까닦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느헤미아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다 들어주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는 느혜미아로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수 있는 최상의 여건이 형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왕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됨을 볼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2: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바로 이것입니다.
왕곁에는 왕후가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남자는 자존심의 동물이고, 만용을 좋아하는 동물들입니다.
여자들이 곁에서 알랑거리면 주머니가 다 털리는 것입니다.
기분나빠서 거절하고 싶어도 옆에 있는 왕후 때문에 거절할수 없는 상황이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느혜미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기도의 응답으로 그에게 꿈의 상황, 곧 최상의 상황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에게 펼쳐지는 상황을 무시하거나 우연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도리어 내게 이뤄지는 모든 상황이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우리에게 펼쳐지는 모든 상황들은 하나님이 나의 꿈을 이뤄주시기 위한 최상의 상황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느헤미아의 꿈을 이뤄주시기 위하여 최고의 조건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2:6 ....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2:7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2: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이제 왕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왕에게 말했습니다.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예루살렘 재건이라고 분명히 말했던 것입니다.
그때 왕은 그에게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뜻밖에 왕은 느헤미아에게 놀라운 질문을 했습니다.
2:6 ....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왜 왕이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까?
그것은 느헤미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러한 기적이 어찌 쉬운 기적입니까 분명한 하나님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느혜미아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것을 몇가지 왕에게 요청하게 됩니다.
(1) 유다까지 가는 길의 안전을 위해서 왕의 조서를 요청했습니다.
(2) 예루살렘성 재건에 필요한 자재를 요청했습니다.
왕은 이러한 느혜미아의 요구를 다 수용해서 이뤄주었습니다.
(3) 나아가서는 느혜미아가 요구하지도 않는 느혜미아를 위한 경호원 곧 “군대장관과 마병으로 이뤄진 호위병”까지 붙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느헤미아의 꿈이 이뤄지기 위한 완벽한 조건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꿈이 이뤄지는 통로)
우리가 개인이나 가정이나 공동체를 위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꿈을 이루려고 하면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뒤로 물러서게 되고, 포기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꿈의 에네지는 기도를 통해서 발생됩니다.
즉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품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우리의 꿈이 이뤄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적의 태풍을 만들어 내는 근거와 터전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꿈의 사역
느2:28-32
3:30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3: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누에 이르렀고
3:32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
(꿈의 사역)
저는 오늘 설교제목을 “꿈의 사역=드림워크”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느혜미아가 감당한 예루살렘 성 재건사역은 꿈의 사역임에 분명했다는 것입니다.
세가지 면에서 이 느혜미아의 사역은 꿈의 사역이었습니다.
첫째로는, 목적면에서 꿈의 사역이었습니다.
느혜미아가 일생을 두고 이루기를 원했던 사역이 어떤 사역이었습니까?
바로 예루살렘 재건이라는 거룩한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이 무엇입니까?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산실이었고, 하나님의 나라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에 파괴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꿈의 사람인 느혜미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예루살렘 재건이라는 꿈의 사역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재건”
이는 참으로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사역임에 분명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바로 이렇게 재건된 예루살렘을 통해서 메시야가 세상에 오시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결과면에서 꿈의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불과 52일만에 예루살렘 재건에 대 역사를 완성했습니다.
6:15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2달이 채 안된상황속에서 이 거대한 꿈의 사역이 완공 되었다는 것입니다.
느혜미아가 이렇게 일을 서두룬 까닦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였던 것입니다.
이미 아닥사스다 왕의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경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느혜미아는 이번에는 왕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일을 끝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이렇게 아름답고 큰 사역이 이렇게 짧은 공기에 끝난지는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는, 방법면에서도 꿈의 사역이었습니다.
1: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석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6:15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6: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이 두가지 말씀을 보면 느혜미아의 사역이 사람들끼리 이룬 사역이 아님을 쉽게 알수가 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이루신 사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꿈의 사역임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생각해 본대로 느혜미아는 예루살렘 재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약 2달간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를 하셨는데 최고의 사람을 동원하시고, 최고의 환경과 조건을 갖춰주셔서 역사가 이뤄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 최고의 꿈의 사역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교회사역은 꿈의 사역중에 꿈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일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인류구원을 위한 주님의 고난이 남아있어서 그 남은 고난을 우리가 대신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류구원이라는 하나님의 큰 뜻을 위해서 고난이 필요한데, 예수님이 그 고난의 90%이상을 당해야 하고, 나머지 5%는 구약의 사역자들이, 또 나머지 5%은 신약의 사역들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위해서 내가 당해야 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아마도 억만분지 1도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억만분의 1도 안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가 당할수 있음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일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억만분의 1도 안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나의 생애를 가장 찬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낸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드림팀)
중요한 것은 이러한 드림사역이 있기 까지에는 “드림팀”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드림팀이 무엇입니까?
스포츠팀 중에 가장 탁월한 선수들을 모아서 한 팀을 만들때 드림팀이라고 합니다.
지금 중국 베이징 올림픽 준비에 한창입니다. 한국 야구도 드림팀을 구성해서 출전하였고, 이번에도 메달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팀은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중에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드림팀이라고 합니다.
느혜미아는 자신의 사역팀이 드림팀이 되기를 원했고, 그들을 드림팀으로 구성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느혜미아의 드림팀이 소개됩니다.
인원은 불과 42개 가족단위였고, 동원된 인원은 불과 75명이었습니다.
그들안에는 대제사장이 있었고, 상인들이 있었고,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있었고, 금장색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다함께 힘을 합쳐서 52일만에 이 거룩한 대 역사를 이뤄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드림팀이 되므로 하나님의 꿈의 사역을 이뤄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시대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꿈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의 드림팀을 모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가 하나님의 드림팀이 되어서 하나님의 꿈의 사역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자원하는 사람들이 드림팀입니다.
3: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이 말씀은 대단히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때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느혜미아가 성재건의 깃발을 들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자신의 가솔들을 데리고 제일 먼저 사역의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준비된 42개 가족팀들이 일시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1절에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라고 말합니다.
2절에서는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 하였으며”
3절에서는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과와 빗장을 갗추었고”
이러한 말씀들을 보면 모두가 다 가족 단위및 마을 단위로 예루살렘 재건에 동참을 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자원해서 하나님의 꿈의 사역에 동참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은 예루사렘 성을 4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1-5까지는 양문에서 옛문까지
6-12절까지는 옛문에서 골짜기문까지
13-27절까지는 골짜기문에서 미문까지
28-32절까지는 미문에서 양문까지입니다.
이렇게 4부분으로 나눠진 성벽을 42개 작은 팀들이 일사분란하게 성벽재건에 들어가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모두 느혜미아를 감동적인 격려와 설득을 받아들여 자원하여 사역에 임한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마땅히 참여해야 할 사람들이 참여치 않는 것도 볼수가 있습니다.
5절에 보면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드고아 사람들이 모두다 예루살렘 재건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귀족들은 무엇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성 재건사역에 동참하지 않고 방관자의 모습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팀은 바로 자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팀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교회야 말로 가장 강력한 드림팀이라고 믿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자원하여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원자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루디아입니다.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그도 하나님의 드림팀에 참여하여 한시대에 대단한 역사를 이룬 여성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 성별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드림팀입니다.
3: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이 말씀에 보면 성별이라는 말이 반복하여 등장합니다.
이 성별하였다는 말은 봉헌했다는 말이 됩니다.
곧 그들은 성을 재건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수고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느혜미아 드림팀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이 됩니다.
특히 이 42개의 사역팀들은 자신들이 맡은 부분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거룩한 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 재건은 아름답게 이뤄지고 말았단느 것입니다.
특히 여러분 14절에 보면 “본문”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똥문이라는 문입니다.
곧 예루살렘의 모든 배설물들을 처리하는 문입니다.
이문을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게 됩니다.
냄새나는 쪽의 문도 하나님의 거룩한 일임을 확신하고 불평없이 감당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드림팀이 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는 내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성별되었다는 것,
또한가지는, 내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의식을 가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라는 책이있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파리 근교 한 수도원의 주방 요리사였습니다.
그는 수도원 주방에서 접시 닦기, 채소 씻기, 달갈 부치기, 바닥 청소 등 산더미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특별히 체험하기 위해 주방 밖으로 나가 본 적도 없었고, 여행을 하거나,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쓴 책은 유럽의 많은 신도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구경하고자 로렌스의 주방으로 몰려들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늘 “주방은 나의 제단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드림팀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애가 자기 집과 마주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또한 23절에는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 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냐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부하셨고”
28절에도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29절에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30절에는 “... 그 다음은 베가랴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느혜미아는 성 재건을 하면서 상당히 효과적인 사역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집에서 가까운 곳을 각자가 담당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자기 집과 마주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라고 하기도하고 때로는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역의 원리입니다.
이 얼마나 효과성이 큰 사역의 모습입니까?
느혜미아는 예루살렘 성 재건 공사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가 있는가에 대하여 고민한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꿈의 사역이 되기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장 생산성있는 사역을 선택했고, 가장 효과성이 있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성이라는 것은 가정과 가족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집앞을 담당하면 가장 성실하게, 가장 튼튼하게 중수하지 않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합력하는 사람들이 드림팀입니다.
3: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드림팀속에 “제사장들의 그룹”이 있었음이 소개됩니다.
3: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여리고 사람들이란 한 지역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3: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여기에 보면 금장색들과 상인들까지도 등장합니다.
이들도 느혜미아의 지도를 받으며 예루살렘 성재건에 힘을 보탰다는 것입니다.
3: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또 여기에는 백성들의 지도자들도 동참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뿐아닙니다.
3:12 그 다음은 ...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이제는 여자들까지도 이 거룩한 일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 거룩한 옷을 입은 제사장 집단들
- 열심히 돈을 버는 금장색과 향품장사치들
- 거룩한 의지를 가진 여인들과 딸들
- 지역을 다스리는 권력자 팀들
이들은 모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지만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곧 하나님의 드림사역을 이뤄내겠다는 의지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서 이 귀한 사역에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드림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대를 위해 빛을 발해야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인 꿈의 사역에 매진해야 합니다.
꿈의 지도자(Dream leader)
느4:1-6
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사람들을 비웃으며 2/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 하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일으키려는가 하고 3/암몬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리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8/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9/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13/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14/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16/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지도자는 만들어 집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지도자를 뽑는 국회의원선거과정에 있습니다.
대통령선거이든, 국회의원 선거이든지 선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바로 선거를 통해서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를 뽑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도력이 얼마나 중요합니가?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기도하고, 망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최근 뉴질랜드 북부 그레이트 베리어 섬 해안에서 142마리의 고래가 뭍으로 올라와 집단 자살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고래들의 지도자가 병들어 방향 감각을 잃고 해안에 상륙하자 다른 고래들도 따라왔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바로 지도자 한사람을 잘못 인솔하게 되면 수많은 대중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좋은 지도자를 가진 나라나 민족은 번영하게되고, 희망의 나라를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서 “우리나라에는 지도자가 없다”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때 선생께서는 "우리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우리가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공부를 하지 않는가? 인물이 없다고 탄식하지 말고 너 자신이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28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8: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28:14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곧 “너희가 좋은 신앙인이 되면 저절로 좋은 지도자가 되어질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좋은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시고, 그 좋은 지도자는 좋은 신앙인이 되는 방법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신시내티 대학의 총장을 지내다가 지금은 U.S.C대학의 경영학교수로 있는 베니스라는 사람이, 지도자가 지녀할 리더십의 네 가지 요소를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첫째, 지도자가 되려면 가이딩 비전(guiding vision) 곧 뚜렷한 목표의식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고 물을때에 지도자들은 이 질문에 대답을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패션(passion) 곧 정열과 열의를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세상을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보고 열정을 다해 도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째로는, 인테그러티(integrity) 곧 성실성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성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코우너지(courage) 곧 용기입니다. 큰일을 하려면 강한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 미경험지를 향하여 군중들을 인도하는 용기,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의 지도자)
저는 제가 존경하는 성경에서의 지도자 한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느혜미아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느혜미아를 통해서 위대한 지도력은 세가지 필수적인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수 잇었습니다.
첫째, 높고 숭고한 뜻, 창의성과 창조력, 의지와 효과성들입니다.
- 그의 지도력은 꿈을 창조하는 지도력이었습니다.
느혜미아는 높고 숭고한 뜻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개인의 안일이나 잘됨을 꿈꾸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재건과 하나님나라인 이스라엘회복이라는 거대한 꿈과 소망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느혜미아서 1장과 2장에서 그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둘째, 느혜미아의 지도력은 창조성이 있는 지도력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생각지못했던 탁월한 방법으로 예루살렘 성 재건을 이뤄냈던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의 폐허속에서 위대한 나라를 일으켜 세운 창조성을 강한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느혜미아서 3장에서 느혜미아는 탁월한 방법으로 성벽재건의 일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셋째, 그는 강철같은 의지력을 가진 지도력을 소유했습니다.
그는 이루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은 여러가지 장애요소와 방해물들을 극복해 가면서 꿈의 사역을 감당해 낸 대단한 집념과 강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레마 마리아란 여성을 소개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1968년에 스웨던 중남부에서 그녀가 탄생했을때 두팔이 없고, 두다리는 있으나 한 다리밖에 쓸수 없는 여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녀를 정상아처럼 길렀습니다.
3살 때 수영을 시작했고, 세계장애인 선수권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다고 합니다.
십자수, 요리 피아노,성가대 지휘등 못할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고, 스톡홀름음대를 졸업하고 가스펠싱어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그녀가 한국에 와서 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그녀가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혼자서 할수 없다면 그사람은 장애인이지만 혼자가 할수 있다면 그때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인 4장부터는 무서운 방해와 장애 요소들을 극복해 가면서 성벽재건을 성공해 내는 느혜미아를 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꿈의 시련)
오늘 본문에 보면 느혜미아가 유다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는 꿈의 사역을 감당할때에 그에게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놀라웁게도 느혜미아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서 그러한 문제와 적절히 해결해 나가면서 52일의 기적을 창조해 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느혜미아를 보면서 그는 “꿈의 지도자”였다는 확신을 가질수가 있었습니다.
즉 나도 느혜미아같은 자세와 모습을 가지면 이시대를 향한 위대한 지도자의 꿈을 꿀수 있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첫째, 느혜미아는 비방이라는 장애를 뛰어넘을때 좋은 지도자가 될수 있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산발랏과 도비아가 이렇게 느헤미아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사람들을 비웃으며 2/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 하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일으키려는가 하고 3/암몬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리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이들의 비방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 이 미약한 유다사람들이 하는일이 무엇인가?
-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 가?
- 제사를 드리려는 가?
- 하루에 일을 차치려 하는가?
-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이것들이 산발랏과 도비야의 비방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무서운 비방의 말들, 낙심케 할만한 말들을 느혜미아가 어떻게 극복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비방의 말들을 들어가면서 인간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웁게도 느혜미아는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기도했습니까?
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4: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참으로 탁월한 기도가 아닐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꾼들을 비방하는 것은 곧 그들을 세운 하나님을 비방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느혜미아는 이러한 사실 때문에 자신이 분노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이러한 비방을 기도하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느혜미아가 낙심과 좌절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을때 좋은 지도자가 될수 있었습니다.
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본문을 보십시오.
느혜미아는 뜻밖에 참담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유다사람들의 자조섞인 불만의 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산발랏이나 도비아가 조롱하고 비방하는 말을 한것은 느혜미아가 능히 싸워 이길만한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유다백성들이 스스로 하고 있는 말은 느혜미아를 대단히 힘들게 하는 말들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무슨 말입니까?
지금 유다백성들은 성벽재건을 하면서 스스로 지쳐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은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라고 한 것입니다.
즉 이들이 한말은 “우리에게 아직도 할 일은 많이 남아 있는데, 힘과 에네지가 다 소실되고 없다”라는 한탄이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잃어버리면 10명의 정탐군들처럼 상황이나 형편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한탄하게 되고 절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느혜미아의 처방이 무엇입니까?
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4/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한마디로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전진하자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지도자의 놀라운 믿음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느혜미아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느혜미아의 처방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무기력해질때가 바로 철야기도시간입니다.
텅텅빈자리를 보면서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우리교회 현실은 이 모양인데, 우리교회의 영적인 상태가 이 정도인데 내가 장차 무슨 큰일을 할수 있단 말인가?”
현실과 상황을 보면서 절망감에 치를 떨게 됩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효순집사님으로부터 해서 사라회팀들도 열심히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이제는 청년들이고, 사라회팀이고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절망감이 되는 지 모릅니다.
교회는 모임입니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주는가에 따라서 교회의 미래 전망이 달라집니다.
저는 이러한 절망감이 찾아올때, 좌절감이 다가올때에, 찬송을 부르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주를 의지하고 바라볼때에는 힘과 용기가 충만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확신을 회복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업무나 일을 바라보고, 내가 처해있는 어려운 상황을 바라보면 여지없이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면 마음에 새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혜미아는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유다백성들은 대단한 위로를 받게 되고, 새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역을 성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꼭 낙심과 좌절을 극복하는 방법을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좋은 지도자로 남게 될 것입니다.
셋째, 느혜미아는 방해라는 장애를 극복하므로 좋은 지도자가 될 수가 있었습니다.
4: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4: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이번에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일당들이 구체적으로 예루살렘 성재건 사역을 방해하려고 하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에게 달려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참으로 무서운 전략이 아닐수 없습니다.
선거철이 되자, 이명박정부도 상당히 고단수 꼼수를 쓰고 있는 것같습니다.
인사청문회를 하면서 무슨 합참의장인가하는 사람을 시켜서 “핵시설 선제타격”운운하면서 강경발언을 하게 했습니다.
이에 발끈한 북한이 연일 계속해서 도발적인 발언을 계속해서 내 보내고 있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보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국민들이 정부여당을 밀게 되어 있습니다.
대형사건이 터지고 문제가 발생하여 정세가 불안정하게 하면 중앙정부에서 공사중단지시를 내릴수 있는 상황이 바로 본문의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산발랏일당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느혜미아가 어떻게 대응했습니가?
20/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4:21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22/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23/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느헤미아는 이러한 위협속에 두려워 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백성들을 조를 나눠서 3교대로 일을 하게 했습니다.
1조는 재건사역을 하는 팀입니다.
2조는 방비를 하는 팀입니다.
3조는 쉬는 팀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대적들의 공격를 막아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20절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이한마디가 백성들로 용기 백배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백성들이 힘을 내서 끝끝내 성벽재건공사를 완성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꿈
이것은 우리자신들도 가져야할꿈이고, 우리 자녀들에게 꼭 일깨워 주어야할 꿈이 되는 것입니다.
꿈의 사람
느6:1-6
6: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6: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6:3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6:4 저희가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6: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6: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6: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6:8 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6: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6: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6: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6:12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6:13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6: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6:15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6: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6:17 그 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6: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6:19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저는 캠프데이비드에서 직접 카트를 운전하면서 유유낙낙 미국 정상과 함께 정상이 된 기쁨을 누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시는 그에게 MB. Lee를 새긴 청바지 옷을 선물했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대통령이었더면 MB.Lee가 아닌 KS.Lee가 새겨진 바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은 대단히 어려운 가정에서 탄생했고, 온갖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면서 한국가의 정상에 까지 오르게 된 사람입니다.
대선기간중에 그분이 한이야기가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자신이 현대건설 말단직원으로 취직을 해서 일하면서 자신이 과장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얼마후에 과정이 되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과장이 되어서는 부장이라고 생각하고열심이 일했더니 얼마후에는 부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더니 사장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자신이 대통령이나 된것처럼 열심히 일했고, 이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박근혜씨와의 갈등속에서 그는 이런말을 했습니다.
“나의 경쟁상대는 박근혜가 아니다. 나는 세계정상들과 경쟁하겠다”라고 했습니다.
더 높은 꿈과 의지를 밝힌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곧 내가 오늘 세워간 내 자신이 곧 미래의 내 자신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미래적 자아상을 갖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복근원으로써의 미래의 자아상을,
요셉에게는 꿈의 CEO로써 미래적 자아상을,
베드로에게는 반석같은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미래적 자아상을,
바울에게는 이방인의 빛으로써의 미래적 자아상을 심어주셨습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세워주신 미래적 자아상 대로 곧 이뤄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중요한 일중에 시급한 것은 나의 미래적 자아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미래적 자아상이 크고 확실하면 할수록 우리는 위대한 성공자들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아상을 세워가는데 있어서 사탄의 끊임없는 방해와 도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적절히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의 자아상을 깨어지고 말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희망미래가 되어지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많은 문제들과 시련들을 잘 이겨 내기만 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위대한 승리자가 되어서 위대한 성공자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시간 행복잠언 하나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승리는 곧 성공이다”
곧 승리없는 성공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달란트비유에서 주인의 인정을 받은 종은 값으로 환산할수 없는 희망미래를 보상으로 받았습니다.
반대로 주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종은 불행미래에 처하게 되는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도전골든벨”이라는 재미있는 퀴즈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내가 남느냐 문제가 남느냐”라는 말을 선포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문제는 풀지못하면 나는 없고 문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풀어 내면 문제는 없어지고 골든벨을 울리는 영광스러운 내가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상적인 자아상을 세워가기 위하여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상적인 자아상의 세가지를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미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
둘째, 내면과 자신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신념
셋째, 현실에 대한 충실과 집중력
이러한 요소들이 우리안에 있으면 우리는 삶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느혜미아의 영적싸움)
오늘 본문을 보면 꿈의 사역자인 느혜미아에게 많은 도전과 공격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 느혜미아는 자신의 생애 꿈의 사역인 예루살렘 성벽재건이 거의 완성단계에 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6: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이제 성문만 달면 예루살렘 재건이라는 거대한 꿈의 사역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느혜미아의 대적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총공세를 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생각해 본대로 성벽재건과 민족재건이라는 거대한 꿈을 안고 이스라엘에 귀국한 느헤미아가 처음부터 직면한 것은 대적들의 방해였고, 공격이었습니다.
느헤미아는 그들의 공격과 방해를 꾿꾿한 의지와 집념으로 극복해 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꿈의 사역을 완성하는 시점에 까지 이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바지에 이르러 느혜미아는 대적들의 총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곧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세가지 작전으로 공격을 해왔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적들의 공격과 도전앞에 느혜미아는 자신의 뜻을 조금도 흩트러뜨리지 않고 꿋꿋하게 전진했다는 것입니다.
결과 그는 자신이 세운 삶의 목표를 이룰뿐아니라. 자신이 세운 성공적인 자아상을 그대로 이뤄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회유라는 공격을 승리했습니다.
그들은 느혜미아에게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6: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그들은 느혜미아를 오노평지에 있는 한 작은 성에서 회담을 하자고 요청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속임수였습니다.
느혜미아를 그곳으로 유인해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느헤미아가 그들의 간계에 빠져서 오노회담에 참석을 했다면 그는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을것이고 그의 꿈의 사역인 예루살렘 성 재건은 그상태에서 중지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아는 단호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6:3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6:4 저희가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느혜미아는 조금도 자신을 흩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당당하고 꿋꿋하게 자신을 존재를 드러내면 사역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조심할것은 사탄은 끝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회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아버리고 무가치한 일에 집중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협박이라는 공격에서도 승리했습니다.
6: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6: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6: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6:8 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6: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산발랏은 회유라는 방법으로 느헤미아를 꺽지 못하자, 이번에는 다른 작전을 구사해습니다.
그것은 바로 협박이라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느헤미아를 협박했습니까?
산발랏이 이번에는 봉하지 않는 편지하나를 느헤미아에게 보냈습니다.
그 편지내용은 “느헤미아가 예루살렘을 재건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하고 있고, 이일을 페르시야 중앙정부에 보고하겠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내용의 협박이었습니다.
왕정통치시대에 반역이나 모반사건은 가장 무서운 범죄행위로써 삼족을 멸하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짓 소문을 만들어서 퍼트리면 느혜미아를 위협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느혜미아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했습니까?
그는 이러한 상황을 인간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러한 일은 백성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성재건 사역을 방해하려는 대적들이 꾸며낸 말임을 직시하고, 그들의 초청을 거절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이제 내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반응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러한 공격을 받아도 느혜미아는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담담하게 성재건사역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함정공격이었습니다.
6: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본문에 보면 스마야라는 느헤미아의 측근이 있었습니다.
그가 갑자기 두문불출하여 사역장에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느혜미아가 염려가 되어서 심방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선지지자 느헤미아에게 예언을 했습니다.
“오늘밤에 대적들이 보낸 자객들이 당신을 살해하게 될것이다. 그러니 살려면 성전외소로 몸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율법에 보면 성전외소는 제사장들외에는 아무도 들어갈수 없고, 만약에 율법을 어기고 그것에 들어가는 자는 아무나 죽일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적들은, 살해위협을 느낀 느헤미아가 성전외소에 들어오게 되면 자객을 보내서 느헤미아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느혜미아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그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6: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느혜미아는 지금 놀라운 반응과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곧 자신은 성벽재건을 하다가 죽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전외소까지 들어가 목숨을 구걸할만큼 자신은 대단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결단)
큰 나무는 어떤 폭풍우가 불어와도 젼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깊은 바다는 어떤 경우에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은 사람들, 믿음의 수준이 깊은 사람들은 어떤 비바람과 폭풍에도 젼혀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믿음이 강해져서 어떤 사탄의 공격과 위협과 협박에도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시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