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파인스타인은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밥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시각 장애라는 시련을 계획이 아닌 ‘사고’로 만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사고’ 또는 적어도 사고의 가능성을 태어나기 전에 계획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영매와의 세션을 통해 밥이 전생 계획의 일차 단계에서는 시각 장애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사실 그가 애초에 계획한 삶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밥의 삶에 시각 장애가 불쑥 끼어들었을 때 밥과 그의 길잡이 영혼은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청사진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사고’라는 말에 따옴표를 쳤는데,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고’란 없다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극히 미세한 단위까지도 정교하게 질서를 세워놓았고,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는 – 때로는 의식적이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의 공동계획자다.
밥은 1949년 12월, 예정보다 3개월 앞서 조산아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1킬로그램도 채 되지 않아 한동안 인큐베이터 안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안의 산소 농도가 너무 높아지는 바람에 망막 세포가 급속도로 증식했고, 그 결과 커다란 흉터 조직이 생기고 말았다.
“나는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내가 맹인이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으셨지요. 난 맹인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그러다가 세 살쯤이었던가, 그때야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불을 좀 끄렴’이나 ‘여기 어둡군’ 같은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거든요. 어느 날 어머니가 ‘저기 실비아 이모가 오는구나’라고 하시기에, 내가 ‘어떻게 아세요?’하고 물었지요. 어머니는 ‘보이니까’라고 대답하셨어요. 내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물으니까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만, 넌 손으로 본단다.’”
밥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이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배울 때 밥은 브라유 점자책으로 읽고 타이프라이터로 글씨를 쳤다. 그는 비시각 장애인과 같이 수업을 들었고, 따라서 학기가 시작하는 첫날이면 선생님이 “모두들 밥에게 잘해주도록 해요. 밥은 무척 특별한 친구니까요”라고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밥은 앞이 보이는 친구들의 책을 만져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책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이 붙잡아주는 사람 없이도 달리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밥이 비시각 장애인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점자책이 있는 교실까지 늘 안내해 주던 친구가 혼자서 앞장을 서 갔다. 밥은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했지만 친구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네가 더 빨리 걸으면 되잖아. 이런 건 다른 애들 시켰으면 좋겠어.”
밥은 집에서도 시련을 겪었다. “아버지는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으셨어요. 맹인 아들이라는 게 몹시 실망스러우셨던가 봐요.”
밥은 그래서 어머니와 이모들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밥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가끔씩 밥은 일반책을 들고 책장을 넘겨 가면서 마치 책을 읽듯이 자기가 꾸민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한번은 누가 와서 말하더군요. ‘너, 책 거꾸로 들었어’라고요.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막으신 적이 없어요. 앞이 안 보이는 아이를 그렇게 키우는 건 정말 좋은 방법이지요. 장애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느끼게 되니까요. 어머니는 나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어요.”
함께 쇼핑을 나가면 어머니는 밥이 이것저것 만져도 말리지 않았다. 설령 그러다가 물건을 깨뜨리는 일이 있어도 어머니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직접 만져보는 것이 사물을 읽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초등학교보다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더욱 힘들었다. “무척이나 외로웠지요.” 그의 목소리에서는 슬픔이 묻어났다. “아이들은 늘 재미있는 데 가고 신나게 논 이야기를 해댔지만, 난 단 한 번도 함께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밥이 받아들여진 곳도 있었다.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참가한 음악 캠프에서였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멋진 여름으로 남아 있지요!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눌 친구들이 주변에 늘 있었으니까요.”
음악 캠프 선생님은 점자책 악보를 구해다 주었고, 밥은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밥은 귀가 무척이나 섬세하여 자동차 경적은 B플랫, 문이 삐거덕거리는 소리는 높은 A음이라고 말해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밥은 오벌린 대학을 졸업했다. “비시각 장애인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학교를 훌륭하게 졸업해 냈다는 게 뿌듯하지요. 시력 때문에 필요한 경우를 빼고는 어떤 특혜도 받지 않았어요.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시각 장애가 절대 넘을 수 없는 장애물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밥은 대학에서 동성애자로서의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뒤에 알게 되었지만 이 역시 전생 계획에 포함된 일이었다. 밥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은 8년 동안 친구처럼 지낸 래브라도 맹인 안내견 할리다. 할리는 밥이 지하철 승강장에서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질 뻔한 것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할리랑 같이 있으면 가끔 내가 맹인이라는 걸 잊고는 했어요. 할리와 같이 걸을 때면 정말 행복했거든요.”
나는 밥에게 물었다. “물건은 어떻게 알아보나요? 손으로 만질 수 있거나 쥘 수 있는 작은 물건은 손의 느낌으로 모양을 알 수 있겠지만, 비행기처럼 큰 것은 어떻게 알지요? 비행기 같은 큰 물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혹시 알고 있나요?”
“사실을 말하자면, 몰라요. 물건들이 참 많지요. 그 이름들을 배울 수는 있어요. 하지만 잘 상상이 되지는 않아요. 동물만 해도 정말 많잖아요. 사실 동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라요. 그것들을 손으로 다 만져볼 수는 없으니까요. 마천루라는 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지평선이나 달, 별 이런게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지요. 누가 ‘잘생겼다’거나 ‘못생겼다’고 할 때도 그게 어떤 뜻인지 몰라요.”
“꿈을 꿀 때는 뭔가를 보나요?”
“내 꿈에서는 온통 목소리만 나와요. 라디오 방송 같지요. 재미있는 건 꿈에서는 안내견이랑 걷거나 지팡이를 짚고 걸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꿈에서는 내가 어디에 가야 하면 곧바로 거기에 가 있어요. (밥의 말을 듣다 보니, 영혼 상태에서 우리는 그저 원하는 장소에 의식을 집중하기만 하면 바로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꿈에서 갖는 느낌이 그리 강하지는 않아요. 냄새도 안 나고요. 내가 아무것도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그저 목소리뿐이에요. 맹인이라고 해도 빛이나 어둠을 전혀 볼 수 없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은데, 내가 바로 그런 경우지요.”
“꿈에서도 자기가 맹인이라는 것을 자각하나요?”
“아뇨. . . 앞을 못 본다는 건 의식되지 않아요. 만일 꿈에서 메뉴판이 읽고 싶은 경우라면. . . 아니 메뉴판이라는 게 아예 없어요. 메뉴에 있는 걸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요. 그냥 내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요.”
“밥, 시각 장애인은 비시각 장애인과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면에서 우리는 휠씬 더 섬세하지요. 촉각이나 후각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친절한지 불친절한지도 귀신같이 느껴요. 일상 생활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의 친절함이 절실하니까요.”
나는 그에게 만일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어떻게 달라졌겠느냐고 물었다.
“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깊이 끌립니다.”
밥의 대답에 나는 페넬로페가 떠올랐다.
“만일 앞을 볼 수 있었다면 제 잘난 맛에 살면서 돈 욕심도 내고 사람들도 겉모습으로 판단했겠지요. 그런 건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들이에요.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본질이 어떤가 하는 거죠. 또 앞이 안보여서 동물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개에게 의지한다는 게 어떤 건지, 그리고 개가 자기 지능으로 나를 돕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동물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 거지요. 그리고 좀 이상한 방식인지는 몰라도 사람을 믿는 법도 배웠어요. 누군가 옆에서 당신이 이끌어준다면 그 사람을 믿고 따르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