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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래하는 가족
최외득
골목가게 주인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한탄하는 소리를 남자가 지나다 들었다. 대형마트가 서민을 다 죽인다고 하였다. 마침 그 말 덕분에 가게 주인아줌마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에게 담배 파는 것을 몇 번 목격한 이후로 그 가게에 가는 일이 없어진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일상 엄숙한 시간을 따라가는 그림자 된 육신을 위로하며 행복주문을 위해 시사토크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기쁜 일이라 생각했다. 남자는 요즘 들어 설렘이 줄어드는 낡은 생각을 낯빛에다 자주 켜두곤 했다. 홍수가 나면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할지. 눈이 오는 날 우산을 써야 할지. 머리에 묻은 먼지가 많다면 비를 흠뻑 맞는 것이 좋을지. 침대 머리맡에서 기생하는 TV 리모컨이 사내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무척 피곤한 휴일이 되리라는 명운은 이미 발명 당시부터 알았던 사실이 아니었을지. 현실행위 전에 하게 되는 꿈같은 물음이 이어졌다.
11차원의 초끈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우주세계를 동경하는 일이나, 20121221이라는 1과 2로 나열된 숫자에 의해 지구 종말이 온다는 떠도는 소문에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마음씨 좋은 동네 할아버지로 뇌리에 잔디뿌리처럼 뻗어서 이미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지런히 걸어가는 사람들 눈이 해를 닮았다. 더운 열기에 커진 콧구멍, 부루퉁하게 내민 입술, 뒹구는 술병아가리, 폭력을 재미 삼는 주먹들마저도 둥근 해를 닮으려다 만 미완성된 작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개구리가 아름다운 눈을 가진 시인이었으나 누군가 자의적으로 그를 불효자의 효시로 낙인찍어 놓고 말았던 것처럼 권력자가 일념으로 보내 주는 파종기 그 시각에서 남자는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도피처로 향하는 단순한 굴렁쇠 같았다.
일정한 톤을 가진 노학자가 주장하기를 성공이란 명제는 행운의 가설 위에 간절한 주문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다며 기상학자의 나비효과를 빌려서 강의실에서 졸고 있는 젊은이들을 향해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는 퍼포먼스를 곧잘 치르곤 하였다. 그는 많은 젊은이가 온 힘껏 세상을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하잘것없는 육신의 가치를 드높이다 곧 실천으로 겪게 될 슬픈 노동에 대한 현실 때문이라는 게으른 불평으로 자위하는 핑계 때문이라 했다.
20121221은 태양이 지나다 이미 숫자로 정해 놓은 어느 한 지번에서 결국 프라이버시를 노출하고 말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도 좋을 듯했다. 낮보다 밤이 자연스러운 도시인에게 따분한 대낮에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 큰 행운일 것이다. 남자는 한낮에 벌어진 정사로 창백해진 중천에 걸린 낮달을 보며 길을 나섰다.
도원이 이마에 땀을 흘리며 등산로 입구 광장에서 남동생과 같이 자동차에서 음향장비들을 내리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매번 동생이 짬을 내어 무거운 짐을 내리고 싣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늦봄이지만, 여름철이나 진배없었다. 뙤약볕에서 한두 시간 동안 노래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숲에서 산바람이 있을 법한데, 그리 시원한 바람이 불지 않았다. 도원은 많은 관객이 나무그늘에 앉아서 가족밴드가 들려주는 음악을 경청할 때 제일 행복해했다.
“다빈아! 혁아! 엄마는 우리 가족이 같이 화음을 맞추며 노래 부를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단다. 엄마는 노래를 잘 못하지만, 아빠랑 너희가 같이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설레고, 가슴에서 사랑이 샘처럼 마구, 마구 솟아나는 것 같아.”
“와! 우리 엄마 최고.”
아빠 일을 돕는다고 졸졸 따라다니던 다빈이와 혁이가 엄마의 경쾌한 리듬에 실린 말을 듣고는 영채의 목을 감싸며 매달린다. 도원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씩 한번 웃고 나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열한 살 된 딸 다빈이와 아홉 살인 아들 혁이는 이제 노래를 잘 부르고 연주도 곧잘 하여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아주 예뻐해 주셨다. 특히 혁이 드럼연주 실력에 많은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앙증맞은 모습에 감탄하곤 했다. 영채는 남편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무척 감사하다고 했다. 텔레비전 출연 이후 많은 사람이 가족밴드에 열렬한 팬이 되었다.
살짝 지나가는 약한 바람에 나뭇잎이 순간 가늘게 떨렸다. 도원은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가족밴드로 노래하게 된 연유는 각종 노래자랑 대회서 곧잘 상을 받아오던 도원이 휴일이면 혼자서 공원이나 거리에서 공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도원은 많은 사람과 노래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며 계속 노래하고 싶어 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직장동료 두 명과 영채 이렇게 ‘Workmen’ 밴드를 결성하여 노동단체나 잘 아는 선배 부탁으로 문학단체 행사장에서 가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각자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습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고 해서 ‘Workmen’ 밴드활동은 자연히 중단되고 말았다.
“도원씨, 라이브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릴 따라 나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 사장에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번 와서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했어. 한번 안 가볼래? 사장은 11시 타임에 자기가 노래하니까 만약에 하게 되면 도원씨는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시간 조정하면 될 거라고 했어.”
“글쎄, 내가 그 정도 실력이 되나. 지금처럼 취미 삼아서 공원에서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고정적으로 카페에서 노래하게 되면 실력이 좋아지겠지. 나중에 도원씨가 노래하는 카페를 직접운영하고 싶은 게 내 소원인데. 어때?”
“라이브카페! 좋긴 하지만, 그거 만만치 않을 텐데…….”
영채가 가끔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당돌하게 밀어붙일 때면 도원이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곤 하지만 그렇게 밀어붙이는 면 때문에 좋은 결과가 많았기에 도원은 늘 그런 영채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
도원은 k사거리 언덕길에 있는 ‘M’ 라이브카페에서 월, 수, 금요일로 하루에 한 시간씩 노래하게 되었다. 력셔리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청년 사장은 자상하게 도원의 음악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 꼼꼼하게 일러주었다.
주말 낮에는 도원 혼자 기타를 메고 a호수공원이나 c등산로 입구 공원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왕 노래가 좋아서 거리에서 계속 노래를 할 거면, 노래봉사활동을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영채의 말에 도원은 동의하였고, ‘시문화재단 나눔봉사단’에 신청하여 가족밴드로 선발되었다.
“둘은 참 대단해. 어떻게 그런 걸 할 생각을 다 했어. 직장생활 하는 것도 힘들 텐데.”
가족밴드 출범을 기념하기 위해 퇴근 후 직장동료 몇몇이 식당에 모인 자리에서 정후가 말했다.
“둘은 진짜로 찰떡궁합인가 보네. 천생연분이야. 건강하게 사는 모습이 부러워.”
정후의 말을 이어서 창식이가 거들었다. 가끔 도원이 가족과 정후, 창식이, 길상이가 저녁을 같이 하곤 했다. 여름엔 도원이 집에서 삼겹살 굽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영채가 음식을 직접 조리해서 동료들과 식사하는 걸 좋아했다. 영채는 남자 선배에게는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비록 비좁은 집이지만 동료를 기꺼이 불러서 같이 식사를 할 정도로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영채는 돈이나 이런 것에는 참으로 마음을 비운 사람처럼 보이는데, 신랑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척 욕심을 부린단 말이야.”
길상이가 중간, 중간 특유의 웃음소리를 크게 내며 말했다.
“형님들, 도원씨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적극 밀어줄 생각이에요.”
영채가 미소 띤 얼굴로 도원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 혹시 도원을 통해서 대리만족 얻으려는 거 아닌가? 허허허.”
창식이 농담을 건네자 영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건가! 그래도 좋아요. 나도 당연히 만족을 얻어야 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식당에서 음식을 나누며 대화가 무르익자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연신 정후 귀에다 얼굴을 대고 속삭였다.
“얘들은 정후 형님을 너무 잘 따라요. 너네, 엄마, 아빠에 대해 일러바치고 있지?”
영채가 두 아이를 번갈아 보며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하였다. 아이들이 입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둘이 서로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가족밴드는 주말이면 호수공원, 거리공원, 팔각정, 등산로 입구 광장 등 문화재단에서 지정해주는 장소에서 도원이 평소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는 모습 때문에 빠바기네라는 애칭으로 공연을 했다. 다빈이는 건반, 혁은 드럼, 영채는 작은 타악기들을 담당하였는데, 이제 혁이가 드럼 실력이 꽤 늘어난 덕분으로 연주할 때마다 사람들로부터 제일 많은 인기를 얻었다.
영채는 이런 가족 모습을 보는 게 삶의 큰 낙이라 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도원과 같이 라이브카페를 운영하겠다며 적금을 붓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가게를 열고 싶지만 아직은 여건이 그리 만만치가 않아서 시작을 못 하고 있을 뿐이라 했다.
영채의 당찬 면이 가족밴드로 ‘나눔봉사단’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녀는 늘 긍정적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지만, 간혹 눈동자에 그려지는 왠지 모를 깊은 애절한 그리움 같은 게 스쳐 지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원은 그런 영채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듯 그때마다 말을 아끼며 가벼운 장난을 걸었다.
도원이 동생과 함께 음향기기를 다 설치하고 악기를 점검한 후, 시간에 맞춰서 공연을 시작했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지나는 등산객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연주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머니들이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둘러앉거나 서서 공연을 함께 즐겼다. 노래는 참으로 사람 마음을 평온하고 즐겁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아직은 아마추어 밴드로 서툰 면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사람들을 더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내내 사람들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건 필시 어린아이들이 참여한 가족밴드의 힘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방송을 통해서 도원이의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이 큰 시련을 이겨낸 가족에게 사랑의 응원을 보내는 메시지였다.
도원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말에 ‘나눔 봉사단’ 활동을 한다는 게 힘이 들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며 공연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행복해하던 그가 지난해 추석 무렵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새벽녘 화장실에서 나오다 순간 어지러워서 넘어지기도 했으나, 어젯밤에 먹은 술기운 탓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근무 중 내내 졸리는 것 같아서 휴게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는데, 동료들은 숙취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아무도 눈여겨보질 않았다. 영채가 지점에 파견 근무 중이라 오후 늦게 도원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하다 상황을 심각하게 감지하고 다급히 재촉하여 직장 동료들이 병원으로 후송하게 되었다.
진료를 마친 의사가 뇌에 혈관이 막혀서 온 뇌경색이라 했다. 병원을 늦게 찾은 탓에 오른쪽 얼굴, 팔, 다리 부분이 마비증세가 왔으며, 뇌에 산소공급이 제대로 안 되어 엑스레이 사진에 나타난 동전크기보다 조금 작은 하얀 부분이 뇌세포가 죽은 상태라 했다. 중환자실에서 도원이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영채는 그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반드시 완치될 수 있다는 말을 의식이 없는 도원 앞에서 계속 되풀이하였다. 도원이 다음날 의식이 돌아오고 나서 한 달간 입원하였는데 별 차도가 없자 병원 측과 상의하여 한방병원으로 옮겼다.
한방병원 담당의사가 재활치료를 잘 받고 완치된 분들이 많이 있으니, 치료를 잘 받으면 많은 차도가 있을 거라며 용기를 주었다. 도원은 이를 악물고 힘든 재활치료를 잘 견뎌냈다. 젊은 나이에 반신불수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완치하고자하는 의지가 아주 강했다.
“도원씨, 이제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게 보여.”
도원이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래, 조~금 발~끝~에 힘~이 있~어 보~이~지?”
“응, 확실히 차도가 있어 보여.”
재활치료를 받는 도원이 모습을 지켜보시는 부모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두 분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아무 말씀이 없었다. 도원이 재활치료를 열심히 한 덕분에 날마다 조금씩 차도가 있었다. 영채가 병원 로비에 나와서 문화재단 측에 도원의 몸 상태를 전화로 알렸다.
“도원씨, 문화재단 측에서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잘 해왔기 때문에 우리 자리는 계속 비워둔다고 했어. 빨리 회복해서 다시 시작하제.”
도원은 영채의 말을 듣고 나서는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원씨, 힘내자고. 애들을 위해서라도 꼭 일어서야지.”
영채는 눈가에 눈물이 고였지만, 그 모습을 애써 감추려 했다. 그런 영채를 바라본 도원이 눈에 물기가 비쳤다. 저녁때가 되자 회사 직원들이 면회를 왔다. 병원에서 무료하게 보내던 그런 기분이 사라지자 영채와 도원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도원은 발음이 어눌하지만, 직장 동료에게 그간의 사정과 증상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하였다.
한방병원에서 담당의사 결정으로 두 달간 입원생활을 마치고 통근치료를 받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도원은 기분이 한껏 들떠있었다. 걸음걸이는 많이 좋아져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만 조심하면 될 정도였다. 정후, 길상이와 같이 면회 온 창식이가 자기 친구의 경우를 봐서 아는데, 6개월만 지나면 완치되는 걸 장담한다는 말을 했다. 도원이 이제는 농담할 정도로 몸이며 마음도 많이 호전되어가고 있었다.
도원이 그린색이 감도는 벽지가 유난히 기분을 좋게 한다고 말했다. 그전에 무심코 지나간 것들이 새삼 새로이 느껴지는 모양인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온 도원은 한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영채는 식단을 모두 채식 위주로 바꾸었다. 아이들도 아빠의 병세를 잘 알기에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도원은 젓가락으로 콩을 집으려고 진땀을 쏟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영채가 출근하고 나면 도원은 동네 뒷산 체육공원으로 올라갔다. 철봉에 매달리며 팔 힘을 올렸다. 그렇게 매일 산에 올라 운동하면서 동네 주민 분들과 스스럼없이 서로 인사를 건넬 정도가 되었다. 주민 분들이 완치한 사람의 경우를 설명해주며 꼭 나을 거라며 따뜻한 말로 위로를 해주곤 했다.
도원이 오전에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오후엔 거실에 자리를 잡고서 기타 연주를 했다. 그전에는 기타 치는 것이 밥 먹기보다 쉽다고 했는데, 오른손으로 기타 줄 튕기는 일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힘이 들었다.
‘꼭 나아서 다시 멋진 연주할 것이다. 꼭, 꼭, 꼭…….’
용을 쓰듯 혼잣말을 하면서 기타 줄을 한 번, 한 번씩 튕겼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인지 퇴원을 하고 보름쯤이 지나자 서툴지만 오른손으로 휴대전화기로 문자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병세가 호전되었다. 도원이 여느 때처럼 기타 줄을 켜는데, 오후에 저녁을 같이 하자는 창식이 전화에 어눌한 발음으로 그렇게 하기로 대답을 했다.
창식은 도원을 데리러 가기 위해 퇴근할 시간에 맞춰서 영채가 근무하는 지점으로 차를 몰고 갔다. 영채가 창식이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도원에게 전화통화로 그쪽으로 데리러 가는 중이니 큰 골목길로 나오라고 했다. 두 사람은 집 앞 큰 골목에서 도원을 기다리는데 창식이가 도원이 걷는 모습을 보더니 놀란 투로 영채에게 말했다.
“뭐야, 정상으로 걸어오는데. 두 팔을 흔들면서 하나도 절지 않잖아.”
영채도 놀라는 표정을 하면서 도원을 향해 흥분한 소리로 말했다.
“아침까지도 두 팔을 흔들지 않았는데. 진짜로 두 팔을 흔들며 걸어오네.”
도원이 창식이와 악수를 하면서 일부러 손에 힘을 주어 보였다.
“이야, 확실히 손에 힘이 세졌는데.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어. 이제 됐다 됐어. 오리고기가 몸에 좋다니까. 오리고기 먹으러 가자고.”
어둠이 내리는 거리는 달빛 받은 사자의 눈빛처럼 불을 켠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12월 막바지인데도 겨울 날씨의 위세가 전혀 없고, 해가 짧아진 것만 실감할 정도였다. 셋은 인근 오리고기전문 식당으로 갔다. 정후와 길상이가 이미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도원은 영채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영채가 말하기를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도 뇌의 죽은 세포 때문에 딴사람들이 쉽게 느낄 정도는 아니나 예전보다는 조금은 어눌할지 모른다고 하였다.
“도원이에게 오리고기가 좋다고 해서 같이 한번 오고 싶었어.”
길상이가 집게로 고기를 집어 불판 위에 올려놓는 것을 바라보면서 창식이가 말했다.
“저기 형님, 도원씨가 며칠 전 ‘M’카페에 가서 노래를 한번 불러봤어요. 그런데 안 되겠더라고요. 노래를 부르는데 발음이 안 되어서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카페는 장사하는 집이라 거기서 노래하는 것은 무리이고 거리에서 공연활동을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나눔봉사단’에서 계속해보라고 했어요. 아직 기타 치는 건 힘들어서 연주는 애들이 하는 걸로 해서 노래하다 보면 치유가 빨리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매일 저녁마다 아이들과 노래 연습해야 돼요. 연습장도 빌려 놨어요. 무료로 빌려준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앞으로 당분간은 형님들과 이렇게 여유롭게 저녁을 같이 할 기회가 별로 없을 거 같아요. 그 대신 연습실에 자주 놀러 오세요.”
영채가 연신 도원에게 고기를 챙겨주며 말했다.
“그래, 노래로 치료하는 거 괜찮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거니까 덜 힘들어하겠고.”
정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길상이가 국궁이 좋다며 권하자 영채가 형님은 본인이 국궁한다고 자꾸 그걸 권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밉다는 투로 쏘아붙이자 길상이가 껄껄거리며 크게 웃었다.
영채가 형님들께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으면서, 도원씨가 제대로 되지 않는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우리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분명 비아냥거리는 말을 할 거라며, 도원씨는 그런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면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게 힘들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빨리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도원이 영채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이가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과 똑같네. 뇌세포가 좀 죽었다더니. 천진난만해진 거 같은데. 이거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정후가 농을 걸며 말하자 도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좋아진 거죠. 이제 마누라 말도 잘 들어요.”
“도원! 영채! 힘내자! 두 사람은 앞으로 복 많이 받고 살 거야.”
길상이가 도원 가족을 위해 건배 제의를 했다.
영채는 연습실에서 도원과 아이들이 노래연습 하는 것을 맞은편에 서서 듣고 있었다. 아직 발음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 도원이 아픈 뒤로 처음으로 광장에서 거리공연을 할 때,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노랫소리를 듣고는 몇몇 사람이 비아냥하듯 웃고 가는 것을 보았다. 음악을 듣기 위해 예전처럼 사람들이 모이지 않자 아이들도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고, 도원이도 힘이 빠지는 모습이 얼굴에 비쳤지만 영채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자신과의 싸움이라 그 어떠한 모멸감도 스스로 극복해야 했다. 도원은 시간이 갈수록 의지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버거운지 실의에 빠져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보던 영채가 정후에게 전화를 걸어서 가족들에게 어떻게 하면 용기를 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좋은 답변을 못들은 듯 실망하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영채는 입술을 깨문 채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때 갑자기 도원이 마이크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이들도 놀란 표정이었다. 잠시 후 다빈이가 머리를 숙이고 울자 혁이도 따라 울었다. 영채가 무대 쪽으로 달려갔다. 먼저 아이들을 달래고 나서, 도원을 꼭 껴안아 주었다. 도원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도원씨, 여기서 포기할 수 없잖아. 조금만 더 힘내자고. 오늘은 이만 끝내고 집으로 가자.”
긴 침묵 뒤에 도원이 다시 마이크를 집어서 절규에 가깝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혁이 드럼을 크게 치기 시작하고 다빈이도 건반을 연주하며, 아이들도 크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녹초가 될 때까지 한 시간 정도를 연습하자 도원이 마음도 한결 안정되어 가는 듯 했다.
“오늘 연습은 여기서 끝!”
도원이 말하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영채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도원이 영채 곁으로 다가와서는 꼭 껴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사실 나보다 당신이 더 힘들다는 거 잘 알고 있어. 내가 잘할게. 꼭 이겨낼게.”
“도원씨, 고마워요. 당신은 원래 의지가 강한 사람이잖아. 잘해낼 거야.”
눈치 빠른 다빈이가 집까지 걸어가자고 해서 넷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거리를 나섰다. 도원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가 살아있는 생명으로 보인다고 했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모두가 한결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때 다빈이가 영채를 쳐다보며 물었다.
“엄마, 우리도 ‘아침마당 가족이 부른다.’에 나가서 노래 부르면 어때?”
“맞다. 누나 거기 보면 아이들이 나오는 팀이 우승을 잘해. 엄마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얼른 집에 가서 어떻게 신청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자.”
사무실에서 급한 업무로 정신이 없을 때,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방송작가가 이것저것 물어본 뒤 예심과 인터뷰 날짜를 알려주었다. 무슨 노래를 부를 것인지 가족회의로 결정하여 매일 노래 연습을 했다. 팀명을 ‘아빠 힘내세요.’로 정했다. 마침 예심이 있는 날 도원과 아이들, 이렇게 셋은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 덕분에 무난히 예심을 통과하였고, 심사위원이 도원이 마비된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불편한 상태라고 대답하였다. 심사가 끝나자 아이들이 신나서 엄마 쪽으로 뛰어왔다.
방송출연을 계기로 집안에 활기가 넘쳐났다. 줄곧 대회에 나가는 일로 대화가 이어졌다. 도원이 얼굴에도 자신감이 넘쳐나 보였다.
“봄이 되면 공연도 열심히 해야 해. 아그들 알았어?”
“네! 아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그래, 착한 우리 공주님, 왕자님 최고.”
도원은 아이들과 시간을 재며 접시에 담긴 콩을 젓가락으로 빨리 옮기는 시합을 했다. 그러고 나서 젓가락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을 했다. 그때 영채 휴대전화기로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님께서 가족들과 같이 저녁 먹자고 다들 올라오라고 하셔. 얘들아 빨리 준비해. 할머니 댁에 가게.”
다빈이와 혁은 방송국에 갔던 일이며, 연습하는 일에 대하여 할아버지, 할머니를 불러가며 연신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이들 재롱에 모처럼 늙으신 부모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가족 분위기가 예전처럼 돌아온 듯했다. 아니 그전보다 더 화목해진 것 같았다.
“아버지, 저 4월에 회사에 복직할까 해요. 지금 같으면 직장 생활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해요.”
“그래, 일하면 더 빨리 몸도 회복될 거다. 동료직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거다.”
“네, 모든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늘 음식에 신경 써서 가려먹고, 우리는 아비 때문에 십년감수 했다.”
“불효자가 돼서 죄송해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너희가 열심히 사는 모습 보니까 흐뭇하다. 특히 어미가 고맙다.”
영채가 그 소리를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께 저희가 늘 감사드려요. 애들도 잘 챙겨주시고 해서 직장 생활하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어요. 저처럼 편한 며느리도 없을 거예요. 저에겐 친부모님 같아서 너무 행복해요.”
“할머니 우린 토끼 가족이야. 풀만 먹거든. 히히.”
혁이 말에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자고 싶다고 해서, 도원과 영채는 모처럼 연애하던 기분으로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상쾌한 밤공기를 가르며 집으로 향했다.
방송출연 날 도원은 무척 긴장했다. 평소에도 별로 말이 없는 그였지만, 긴장한 탓에 더욱더 표정이 굳어있었다. 무대는 조명장치로 인해 열기가 느껴졌다.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사회자가 아이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고 아이들이 재치 있게 또박또박 말을 잘하였다. 노래를 부를 때는 아이들도 어느 정도 긴장했는지 연습 때처럼 잘하지 못했다. 도원은 노래가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왔어도 긴장된 표정이 가시질 않았다. 결과가 나왔을 때 도원도 영채도 놀랐다. 전혀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우승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많은 분이 저희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 ‘아빠 힘내세요.’ 팀을 선택해준 것 같다는 말을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이 끝나고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되풀이했다. 영채는 무엇보다 이제 2승을 위해 한 주간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게 매우 기쁘다 했다. 2승째는 무려 3만 표 이상을 얻었다. 도원은 기쁜 표정보다는 연신 의아해하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이후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격려를 받아서 인지 도원이 모습에 더욱더 자신감이 차보였다.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도원의 빡빡머리를 보고는 대번에 알아보는 이도 생겼다. 이웃 분들이 만날 때마다 용기를 가지고 꼭 이겨내라는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거리공연 때는 인기그룹 못지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신났다. 도원이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저분들께 빚진 게 많아 앞으로 우리 가족이 더 열심히 하도록 하자. 거리공연뿐 아니라 어렵고 힘든 분들을 찾아가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봉사활동을 하자고.”
“와! 아빠가 가면 다른 사람들도 분명 용기를 얻을 거야.”
다빈이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도원이 얼굴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사실 3승까지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운 생각에 더욱 성심껏 연습하고 시청자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3승 때도 3만 2천표를 얻어 우승했다.
꽃샘추위가 다른 해보다 심했다. 강원도에서는 3월중에도 폭설이 두 번씩이나 내렸다. 도원은 직장에 복직했다. 도원이 건강도 많이 회복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도원이게는 좀처럼 예전 같은 봄이 오지 않는지 날이 갈수록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손놀림과 발음 때문에 공연이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다시피 하고 몸 상태가 더는 정상까지 차도의 기미가 제대로 보이지 않자 무척 초조해 했다. 그런 도원의 불안한 심경을 드러낼 때마다 영채는 웃는 얼굴을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영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채는 날마다 마음 졸이며 백방으로 완치한 사람들의 수기를 찾아보고, 의사와 많은 상담을 하며 도원의 치료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도원의 신경질이 극에 달하자 영채도 폭발하고 말았다.
“당신 말이야 언제까지 애처럼 굴 거냐고?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용기를 준 걸 벌써 잊어버린 거냐고?”
“뭐, 내가 애들처럼 떼쓰는 걸로 보이냐고?”
“차라리 떼를 쓰면 낳겠네. 왜 그렇게 나약해. 그럼 세상살이가 맘먹은 대로 쉽게 다 되는 것처럼 그리 만만해 보였느냐고.”
결국, 영채가 울음을 터트렸다. 서럽게 우는 영채를 보자 도원이 마음 편치 않아 보였다. 미안해하는 표정이 잠시 지나가는 듯 보였지만 애써 무시하려는 듯 돌아앉아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자 도원이 결심한 듯 말문을 열었다.
“내가 미안해.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고. 회사에서도 동료들 앞에서 자신감이 자꾸 없어지고 그래. 당신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어. 잘 알지. 잘 알면서도 내가 짜증을 부리게 돼. 내가 더 노력할게. 애들이랑 당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내야지.”
도원이 영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둘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곁에 와서 엄마 아빠를 꼭 껴안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부부는 잠이 오지 않았는지 오순도순 서로 위로하는 말과 서로 미안해하는 말로 밤이 깊도록 속삭였다.
벚꽃 시즌이 찰나에 지나고, 아까시꽃 향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여름채비를 서둘러야 했다. 근래 몇 년 사이에 게릴라성 호우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뒷산에 진초록 빛이 무성해졌다.
도원이 휴일인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나서 기타를 치며 악보를 그리고 있었다.
“도원씨! 기타 소리가 경쾌하네. 한결 좋아졌는데.”
도원이 기타 치며 악보를 그리는 모습을 본 영채가 뭐 하는지를 묻자 작곡하는 것이라 했다.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곡으로 만들어 공연할 때 불러보겠다 했다.
“내가 다른 거는 몰라도 당신 꿈은 이뤄줘야지. 나이 지긋한 내가 당신 모습을 바라보면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상상을 하면 아주 멋진 삶일 것 같단 말이지. 그리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뛰네.”
영채가 도원이 말을 듣고는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 인생에 최고의 선물은 노래 잘하는 신랑을 만난 거였어. 악보 그릴 동안 내가 맛있는 요리 하고 있을게”
“알았어. 좋은 곡 기대하라고.”
영채가 요리해서 식탁을 차렸다. 요리라고 하나 모두 도원이 건강을 위한 식단이었다. 아이들은 종종 토요일 저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자겠다는 바람에 부부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때가 자주 있게 되었다.
“우리도 유명 인기 가수처럼 한 달 일정이 빡빡하네. 거리공연을 빼고도 결혼 축가를 부르랴. 축하행사장에도 가랴 바쁘게 돌아가네. 이따 창식이 선배 출판 기념식에도 가봐야 하잖아.”
“우리가 정후 선배랑 해서 좋은 분들을 만난 것도 행운이야.”
도원이 말하자 영채가 거들었다.
“다 당신이 잘해서 얻은 복인 거야. 그래서 예쁜 마누라도 잘 얻었잖아.”
둘은 환하게 웃으며 여유롭게 식사를 즐겼다.
“언제 형님들 불러서 삼겹살이라도 구워먹자고. 나는 이제 음식을 가려야 하지만, 그 형님들은 하나같이 삼겹살을 무척 좋아하잖아. 우리 집에서 같이 식사한 게 너무 오래되었네.”
“그래, 우리가 그동안 너무 정신이 없었지. 내가 날 잡아서 전화할게.”
“형님들과 식사하면서 어려운 분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상의해보자. 이왕이면 다른 봉사단체와 같이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창식이 형님이 아는 시인들이 하는 봉사단체와 같이하는 것은 어떤지도 물어보고.”
도원이 땀을 흘리며 쉬지 않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등산객들이 내려오면서 공연장 주위로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환호성을 지르며 같이 노래 부르는 이도 있었고, 앞에 나와서 춤을 추는 어르신도 있었다. 누군가가 “빠바기네가 명물이다.”라며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다빈이, 혁이도 신이 났는지 연주에 더욱 힘이 실렸다. 한참을 신나는 곡으로 이어 부르다가 도원이 자작곡인 ‘널 위해 살기로 했어’라는 노래를 불렀다. 관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에 빠져들었다. 미소 짓는 영채 얼굴에서 눈물 한줄기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황빛 해가 낮달이 지나던 아까시나무 숲속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월간순수문학 6월호]
첫댓글 노래하는 파랑새가족이네요..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