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想錄 23, 土地 (小說)
토지의 작가는 박경리는 통영이다.
박경리는 1926년 생이며 2008년 , 81세의 나의로 사망했다.
본명은 박금이 이다.
진주 여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세종대학(서울 가정사범학교) 졸업했다.
필자는 10여 년 전 박경리 문학관, 그리고 평사리를 갔던 것 은 때는 봄이었던 것 같다.
박경리 문학관은 통영의 선착장에서 비탈길을 10여분 오르니 언덕위에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다.
토지의 소재는 작가는 일제시대부터 현대 까지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대 서사시 처럼 펼쳐 놓았다.
토지의 배경은 하동군 평사리 최참판댁(픽션)이다.
최참판은 경주의 최부자( 본인의 집에서 칠십리 안 사람은 삼백년 동안 굶머 죽는 사람이 없다 했다.) 종친이었으며. 나의 종친 이기도 하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넓게 펼쳐진 평사리 악양 들판은 기름진 옥토처럼 전원적 풍경은 이승 세계의 지상 낙원 같았다.
지리산과 섬진강은 한 과 눈물 그리고 핏빛으로 얼룩진 수난의 역사적 사실이라면, 평사리는 풍요를 이상향(理想鄕)의 그 자체였다.
악양의 토지 배경은 꿈을 형상화한 것 처럼
지리산 자락의 200고지 능선에 최참판 고택이 있고 그 주위에는 하인들이 사는 촌락이 형상화 되 있었다.
주변의 인물인 김길상, 이칠성, 평산댁. 등 초가집이 있다.
그 밑에는 섬진강을 끼고 악양 들판이 꿈 속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필자의 그림 참조)
필자의 웃자고 하는 얘기는 올르막 길에 간이 상점에서 은행나무열매를 종이컵에 오천원주고 사고, 먹자니,
군복차림도 그렇지만 전우들이 볼까봐 숨어서 해치웠다.
그날 저녁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죽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은행 열매는 독이 있어 10알 이상 먹으면 그랬다 했다. 또 한번 죽었다 살았다,
아마도, 작가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를 읽었 던 것 같다.
"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 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을 사람
육체를 거세 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하여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작가는 사마천처럼 중병(암) 을 앓으면서도 피안의세계를 진실을 향한 소망의 강을 총체적으로 표현에 한을 기울렸을 것이다.
그랬다, 최참판은 들판을 굽어보며 일꾼들이 악양 들판에서
일(力)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을 것이다.
작가는 69년 토지를 쓰기 시작하여 1994년 "토지"를 25년의 세월을 창작 하였다.
원고지는 약 3만 1 천 200장에, 600여 인물이 등장 했다.
어쩌면 노벨상에 당선작이 었을지 모른다.
글 虎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