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위왕은 장자가 현자라는 말을 듣고 사자에게 후한 예물을 주어
그를 경상(卿相)으로 맞이하려 했다.
장자는 웃으며
“ 천금은 거액이요. 경상은 높은 지위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제물로 기르는 소를 보았을 것입니다.
몇 해를 부리지도 않고 거두어 잘 길러서 마침내 태묘(太廟)로 들여보내게 됩니다.
이때 그 소는 비로소 잘 먹고 몸 편했던 과거가 후회스럽고,
당장 돼지새끼라도 되고 싶겠지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입니까?
그대는 나에게 누가 되게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시오.
내 차라리 가난하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지
나라를 소유한 자에게 얽매여 살고 싶지는 않소.
나는 죽을 때까지 벼슬 않고 살겠소.“ 하고 거절했다.
장자는 평생 벼슬을 하지 않으면서 제자를 기르고 글을 쓰고,
산수를 즐기며 유유자적 했다.
다음은 장자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거북이를 만났다.
개구리는 자기의 생활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나는 세상사는 보람을 느낀다.
우물의 돌 틈으로 뛰어 올라 휴식을 취하기도하고,
물위로 뛰어들어 거리낌 없이 헤엄치다 물위에 떠오르기도 하고,
물 밑 해감 속에 묻히기도 한다.
저 장구벌레나 게, 올갱이 따위야 어찌 나의 처지에 비길 수 있겠는가.
한 우물을 독차지하여 노니 이 즐거움을 자네는 아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자네도 가끔 이곳을 찾아 이 즐거움을 나누지 않겠는가?”
동해의 자라는 개구리의 말을 듣고 호기심에 이끌려
그 우물로 들어가 보려고 했다.
큰 몸뚱이를 어기적거리며 오른 발을 들여놓았으나
왼쪽 무릎이 걸려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우물로 들어가려던 생각을 바꾸고
동해 이야기를 개구리에게 들려주었다.
“ 동해는 그 넓이나 깊이를 천리니 천 길이니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 임금 때는 아홉 번이나 홍수가 범람하여 중국 천지를 덮다시피 했으나
동해의 물은 그것으로 해서 더 불어나지 않았다.
탕 임금 때에는 8년 동안에 일곱 번이나 큰 가뭄이 들어
땅이 가라지고 초목이 탔지만 동해의 물은 그것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의 짧고 오램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홍수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불거나 줄지 않는 것이 동해의 물이거든,
이처럼 한 없는 물에서 달리는 멋이야말로
큰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자네는 알 까닭이 없지!”
우물 안 개구리는 자라의 말을 듣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장자는 이 개구리의 우언 끝에 북해의 해신이 한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덧붙여 놓았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이는 자기가 살고 있는 우물 세계 밖에는 m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한쪽 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를 논할 수 없음은,
사람은 자기가 배운 것에 너무 속박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