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벌레》(양승언. 도서출판아침. 2020.9.20.), 이 소설은 무겁다. 천근만근이다. 천근만근의 무게로 실체적 직접적으로 몸을 내리누르고 짓밟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온몸에 땀이 흥건하거나, 때로는 서늘하여 오싹한 공포마저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내가 되어 이 소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밑바닥 인간의 삶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굴욕적이고 비루한지, 칼날로 뼈를 깎는 고통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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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지칭되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그는 지금 서울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필리핀 보라카이의 탐비사안비치를 그곳의 개떼처럼 어스렁거리고 있다. 전망이 칠흑 같고 지향이 사라진 그의 시간은 여기에서도 철저히 감옥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했다. 대학을 다닌 적이 있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한때는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챔피온이 되려고 복싱체육관을 다니기도 했었다. 배우가 될 망상에 젖어 살았는가 하면, 가수가 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되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땅히 머무를 거처도 없었고, 그를 뒷바라지 해 줄 어떤 인연도 만나지 못했다. 없는 게 전부인 그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입산하여 산중 절에서 부목 노릇을 했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애기보살(젊은 처자)을 만나 32살에 결혼을 했고, 34살에 아이 둘을 두었지만 마땅한 직업이나 돈을 벌 재주가 없었으므로 그는 여전히 제대로 된 가장은 아니었다.
아내가 모아 둔 돈에 기대어 어찌어찌 구로동 골목에 솔뫼식당을 차리고 보신탕과 장닭백숙을 팔았지만 겨우 끼니를 연명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마저도 도시개발 계획에 의해 강제로 철거될 처지에 놓였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빚까지 얻어 도시의 중심부인 신촌에 고깃집을 개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그곳은 굴레였고 함정이었고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눈을 뜨면 어느 집 머슴처럼 일을 해야 했다. 누군가는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10년이 넘도록 일요일 한 번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중략) 나는 최소한 한국사회에서 '밥'은 먹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밥을 먹고 살기는커녕 나는 늘 누군가의 밥이어야 했다. 건물주에게는 월세를, 의료보험공단이나 연금공단에 보험료를, 정작 내 자신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데 타인의 산업재해를 대비하고 실직을 보호해줄 고용보험료를 내야만 했다. 실제 내 수중에 돈이 남든 안 남든 분기마다 국가에는 부가세를 내야 했고 소득세를 납부해야 했다. 돈을 벌지 못한 나는 무능했고 실패자로 규정 당했다. (중략) 내가 사냥한 그 무수한 먹잇감들은 대체 누구의 식탁으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중략) 물론 '그건 당신이 무능했기 때문이지'라고 세상 사람들이 비난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헛일이 되었다. 모든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는 세상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나의 노동의 대가가 나와 상관없는 타인들의 축제를 위한 것이라니. 남은 것은 절망이요, 세상에 대한 분노였다. 아니 빚이었다. 빚은 당면한 문제였다.
''식당 임대 보증금은 8천만 원이었고 이전의 주인에게 권리금 1억 원을 주었다. (중략) 냉면기계 등 초도비용이 전부 1억3천만 원이 들어갔다. 거기다 가게를 얻을 때 복비 준 것, 자잘한 경비까지 합치면 2천만 원 이상이었다. 장부에 잡히는 것들만 따져도 3억3천만 원이 들어갔다. 내 살림의 전부였다. 물론 그 안에는 절반이 은행 빚이었다. (중략) 5년을 장사했지만 시쳇말로 목구멍 풀칠한 것만 빼고는 은행 원금 한 푼 줄이지 못했다. 이자만 냈다. 그런 마당에 주인이 재계약을 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4개월 밀린 월세 2,200만 원을 제하고 5,800만 원만 들고 나와야 할 처지였다. 그 돈으로는 은행 빚 원금의 절반도 갚을 수 없었다. 나머지는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고 파산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떡하든 시간을 끌고 버티다가 들어간 돈의 반의 반이라도 건져야 했다. 식당이 팔려야 했고 누군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내 식당을 사줘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를 도와줄 인간도 하느님도 없었다. 하느님이 있다면 하느님의 탈을 쓴 악마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 같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어떤 말로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 그는 쓸쓸한 유전자였다. '꼬리 없는 소'라는 별명을 들었을 만큼 평생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아버지의 쓸쓸한 유전자가 그의 온몸을 헤집고 있었다.
''인생살이라는 게 말여. 깔짐 한 짐 잔뜩 지고 쇠새끼를 끌고가는데 급하게 오줌이 마려워. 지게를 받쳐 놓고 볼 일 좀 볼라고 하니께 작대기가 자빠질라고 햐. 그런데 하필 그때 쇠새끼가 내뺀단 말여. 거기다가 옹쳐 맨 허리띠는 풀어지지를 않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환장하는 거지. 그런 게 인생살이란 말이여. 그르케 심든 게 사람 사는 일이다 그 말이여.''
그는 반성문을 쓰듯 건물주에게 긴 편지를 써야 했다. 그는 누가 밟아도 꿈틀거릴 줄 모르는 굼벵이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고백했다. 발톱은커녕 나병환자처럼 발가락도 없는 병신이나 마찬가지라고. 중개인이 기침만 크게 해도 놀라자빠지거나 까물러칠 수도 있는 겁 많은 인간이라며 백기를 들었다. 그는 때가 아닌 때는 고개를 숙이고 빌면서 바람, 태풍, 구름, 천둥 다 지나갈 때까지 빌라는 무당의 말을 무슨 경전처럼 떠받들어야 했다.
그는 결국 원 플러스(1+) 등급의 한우 치마살, 미국산 나파벨리 와인으로 관리인이자 중개인인 임사장을 극진히 대접하고 나서야 겨우 이사비용 500만 원을 챙기고, 밀린 월세와 각종 공과금 등의 일체를 제한 쥐꼬리만 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는 완전하게 망했고 삶의 저편으로 물러났다. 그는 전장의 폐허에 아내를 내팽개치고 혼자 도망친 비겁자였다. 아내에게 설거지나 시키고 남에게 평생 굽신거리다가 급기야는 여기 보라카이 해변까지 떠밀려와 탐비사안비치의 게으른 한 마리 개가 되어 어슬렁거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확인하고 싶었다. 생애의 썰물 때, 갯벌이 썩은 조개껍데기 하나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나면 무엇이 자신을 그토록 지치게 했는지, 무엇에 그토록 시달리고 목매달게 했던 것인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모든 분망함을 쉬고 온전한 썰물 때의 평화를 누리고 싶었다. 그동안 볼 수 없었고 감추어졌던 것들의 실체를 확인하고 거기에서 미련 없이 벗어나고 싶었다.
탐비사안은 보라카이의 냄새나는 겨드랑이거나 항문이었다. 가축 우리 같은 집, 비좁은 방과 그 안에서 작은 동물새끼들처럼 꼬물거리는 아이들, 잡초가 우거진 텃밭,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 누구도 부자로 살지 않았으나 누구도 불행하지 않았다. 그는 누추하고 냄새나는 이곳 보라카이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했다. 무엇을 얻으려고 그렇게 처참한 생활의 노예가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모든 활동이 멈춘 뒤에야 도시의 회오리에 갇혀 알아볼 수 없었던 자신의 초상이 조금씩 복원되고 있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소비를 강요했고 나는 그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돈벌이에 미쳐야 하는 도시의 벌레가 되어야 했다. 보라카이의 개처럼 시간을 비웃으며 탐비사안비치를 어슬렁거릴 것인가? 디몰의 화이트 해변에서 외국 아가씨의 하얀 엉덩이를 훔쳐보면서 문명의 수혜를 누리는 대신, '마싸쥐이!''를 외치며 비루한 한 마리 쥐로 살아갈 것인가?''
자신이 있을 곳은 저 화려한 관광의 도시 디몰이 아니라 여기 탐비사안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화려하지만 헛된 수고의 '디몰'을 버리고 불편하지만 가난해도 좋을 행복한 '탐비사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울의 아내 곁으로.
세상을 탓해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회의 덫에 분별없이 빠져들었던 건 순전히 그 자신의 잘못이었다. 이제부터는 철저히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멋모르고 시장자본주의 욕망을 따라가다는 언제 어느 구덩이에 빠져 죽을지 모른다는 것. 그는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딛고 선 발밑을 잘 살피기로 했다.''
그는 서울로 가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러나 보라카이를 강타한 태풍 '판폰'. 구상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의 앞에 '아로스 칼도'라는 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아로스 칼도는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먹는 닭고기 죽이었다. 스페인어로 '쌀 수프'라는 뜻으로 필리핀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거무죽죽한 색깔, 땟국이 누렇게 밴 프라스틱 그릇에 담긴 그것. 순간 떠오른 것은 아내의 얼굴이었고, 그 죽은 다름 아닌 구로동 솔뫼식당에서 아내가 직접 만들어 팔았던 장닭죽이었다. 그 맛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가장 따뜻한 모성의 맛이었다. 알 수 없는 전율이 일었다. 지금까지의 고민했던 문제의 해답을 찾은 듯한 느낌과 더불어 저릿한 심연의 파동, 통렬한 각성이 일어났다.
그가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도시는 처음부터 그를 외면했을 터였다. 모든 걸 바친 뒤에야 실상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아니어야 했다. 지금까지 그를 희롱하고 속였던 도시는 그로부터 버림받아야 마땅했다. 다시는 도시의 어떤 속임수에도, 그 어떤 화려한 도시적인 것에도 목매지도, 도시의 허망을 꿈꾸지도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아로스 칼도'라는 죽 한 그릇만 남기고 삶을 속박하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도시에 돌려줄 참이었다. 사람이 아닌, 도시를 위한 벌레가 되지 않을 각오를 그는 다지고 또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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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양승언의 도시벌레는 치열한 삶의 소설이다. 여기, 현재의 문제를 이처럼 뜨겁게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끌어들인 소설은 일찌기 드물었다. 현재만큼 현실을 잘 설명할 수는 없다. 현재를 떠난 그 무엇도 우리의 삶을, 행복을 담보하지 못한다. 오늘 이전의 과거는 이미 떠나버린,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요,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은 추상 내지 공상의 시간에 불과하다. 현재만이 나를 살리고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우리들 인간은 현재 아닌 어디에도 발 디딜 데가 없다. 현재에 대한 철저한 응시와 처절한 자각만이 나를, 인간을 인간으로서 바로서게 할 것이다.
이 소설은 작가인 양승언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는 청년시절 한때 입산하여 수행하였고, 전국시니어복싱대회에서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서 가장 뜨겁다는 신촌의 한복판에서 10여 년간 식당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으며, 저급하고 비열한 도시의 한복판을 떠나 소설 속 보라카이의 탐비사안에 머물면서 '우선멈춤'의 시간 보낸 적도 있다.
스스로 뜨거운 삶의 현장을 지켜온 그의 작품은 문장이 살아있고 묘사가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연세대 대학원 응용생명과학과에서 주관한 '문학과 혹은 이야기의 힘, 삶은 이야기다'라는 주제의 인문학 특강은 생생한 활구로 당시 교수 사회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전남 보성 산중에서 무욕의 삶을 실천하며 또 다른 역작을 준비 중이다.
https://youtu.be/u42VwB-fa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