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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45강-4 (2013. 11. 4.)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六
十住品 第十五.
二. 菩薩十住(보살십주)
9. 第七 不退住(불퇴주)
(1) 聞十種法(문십종법)
(2) 勸學十種法(권학십종법)
10. 第八 童眞住(제팔동진주)
(1) 住十種業(주십종업)
(2) 勸學十種法(권학십종법)
11. 第九 法王子住(제구법왕자주)
(1) 善知十種法(선지십종법)
9. 第七 不退住(불퇴주)
(1) 聞十種法(문십종법)
佛子야 云何爲菩薩不退住오
此菩薩이 聞十種法하고 堅固不退하나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聞有佛無佛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有法無法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有菩薩無菩薩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有菩薩行無菩薩行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有菩薩이
修行出離修行不出離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過去有佛過去無佛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未來有佛未來無佛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現在有佛現在無佛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佛智有盡佛智無盡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聞三世一相三世非一相하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이니
是爲十이니라
不退住. 물러서지 않는 주라. 이것은 앞에서 正心住하고 유사한데요.
正心住에는 부처님을 찬탄하든 비방하든 마음이 안정돼서 動하지 않는 이치. 여기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유사합니다.
聞十種法이라.
佛子야
云何爲菩薩不退住오? 무엇이 보살의 不退住. 물러서지 않는 주인가?
此菩薩이
聞十種法하고, 10종 불법을 듣고
堅固不退(견고불퇴)하나니, 堅固 = 아주 굳건해서 물러서지 않나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聞有佛無佛하고,
부처님이 있다.ㆍ부처님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불법가운데서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며,
有佛無佛. 참 사실 “부처님” 하면 뜻이 워낙 다양 하고, 포괄적이라서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부처님”하면 대개 학자들은 2600년 전에 인도 역사에 계셨던 그런 가비라국의 싯달태자로 출가해서 성도 하신 그 한 분을 “부처님”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ㆍ그렇게 말하고 그 이상은 더 거론하지 않는 것이 학자적인 그런, 신앙이 빠져버린 그런 안목이라면 우리 수행자들은, 종교인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물론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던 것은 믿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할아버지ㆍ증조할아버지ㆍ고조할아버지 다 믿듯이 그렇게 믿음과 함께 또 그 부처님은 우리의 스승으로서, 영원한 스승으로서 스승의 그 가르침을 함께한 그런 석가모니 부처님을 그렇게 믿기 때문에, 학자들이 믿는 것 하고 차원이 또 달라요. 우리는 거기에 또 더해가지고 이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공부하기 때문에, 마음의 부처.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이다. 하는 그런 차원에서의 어떤 부처님. 그리고 또 영원히 존재해 계시는 常住不滅(상주불멸)하는 법신부처님. 법신으로서의 부처님.
이러한 것은 그런 역사적인 부처님을 다 포함하면서도 항상 내가 생각하고 내가 믿고 할 때 언제나 내 곁에 있는, 내 마음속에 있고ㆍ내 주변에 있고ㆍ우리법당에 있고, 그래서 내가 언제든지 기도하면 의지가 되고 또 들어주고 하는, 그런 법신부처님으로서의 부처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론적으로만 말하지, 그런 것을 생각을 잘 안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습니다. 믿고 또 거기에 대한 어떤 신심이 확고해요.
사실은 그것이 큰 힘입니다. 그것이 큰 힘이라고요. 실지로 있는 것은 무엇이며, 없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것을 깨놓고 이야기를 하면 3000년 전에 있었든지, 아니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처럼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디 있는 겁니까? 예를 들어서 누가 어떤 사람,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사람, 저 주지 스님이라도 좋고, 나하고 가장 친한 친구라도 좋고, 아니 나 자신이라도 좋습니다. 확실하게 있습니까? 정말 자신 있게 있다고 할 만하냐고요? 불교적인 지식을 조금만 가지면, 거기에 확실하게 있다고, 요지부동으로 있다고 그렇게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실상을 아니까요.
금방 우리가 無常ㆍ無我ㆍ苦ㆍ空(45-1). 이런 것을 다 설명 들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있다고 하는 것도 있다고 할 것이 못 되는데, 또 없는 것이 실지로 없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실지로 없는 것도 또 없습니다.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적으로 부처님을 믿는... 그래 서양에서는요? 법신불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신앙합니다. 미국 같은 데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잘 안 모시고, 석가모니부처님보다도 오히려 비로자나부처님을 많이 모십니다. 법신부처님을 많이 모신다고요.
그것은 그 자체가 법신불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법신불을 이해하고, 법신불을 우리마음에 의지 처로 삼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것을 부정하고는 불교를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 저런 부처님에 대한 의견이 아주 다양하지요. 또 신앙에 따라서, 믿는 사람에 따라서도 여러 가지입니다. 그래서 有佛無佛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뭐 누가 그렇게 부정하든 긍정하든, 또 그 사람은 어떤 부처님을 믿든, 과거에 계셨던 역사적인 부처님, 그 분만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든, 아니면 법신불을 진짜 지금 살아있는, 이 우주에 변만 해있는 부처님, 언제든지 부르면 나타나는 그런 부처님이라고 생각하든, 거기에 마음이 退轉하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또
聞有法 無法하고, 진리가 있다.ㆍ진리가 없다 하는 소리를 듣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그것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법이라고 한다면 “그 부처님가르침, 말짱 헛것 아냐?” 이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소리에 결코 退轉하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또
聞有菩薩 無菩薩하고, 보살이 뭐,
“관세음보살이 실지로 있어?ㆍ지장보살이 실지로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우리가 지대방에서 그런 이야기할 수도 있고, 신도들도 그런 소리할 수가 있고, 그리고 우리도 신심이 왔다 갔다 할 때는 그런 소리할 때도 있고, 농담 삼아 “관세음보살은 이때 안 나타나고 뭐 하는 거야?”하고 그런 농담도 우리가 흔히 쉽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 말 속에도 사실은 속에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꽉 있는 겁니다. 있으니까 “관세음보살이 이때 안 나타나고 뭐 하는 거야?” 하고 그런 소리를 우리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런 것이 실질적으로 “뭐 보살이 진짜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고, 그래서 이것을 합리화 시키느라고 막~~ 예를 들어서,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상징이다.ㆍ지장보살은 원력의 상징이다.” 이런 식으로 견강부회. 그야말로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납득시키려고 하고, 자기가 납득하려고 하는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 보다는 경전에서 말한 그대로 우리가 실질적으로 부처님이 계시고, 보살님이 계시고, 뭐 오대산에는 문수보살이 있고, 지장도량에는 지장보살님이 있고, 관음도량에는 관세음보살이 있고, 이렇게 막연하나마 그렇게 믿는 사람이 또 있긴 있는 겁니다. 믿음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믿음이 빠져버리면요? 뻔히 눈뜨고 우리형제자매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것 있는 것 아닙니다. 믿음이 빠져버렸는데 거기에 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실지로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그 대상도 믿음이 빠져버리면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나 믿음이 있는 곳에는 또 있는 겁니다. 우리 눈앞에 실증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한다하더라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이론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有菩薩ㆍ無菩薩. 그런 소리를 듣고
於佛法中에, 불법가운데 心不退轉하며, 또
聞有菩薩行 無菩薩行하고, 보살행이 있느니 보살행이 없느니,
아까(45-2) 제가 증엄스님이야기ㆍ정공법사이야기 많이 했는데, 다 아주 뛰어난 보살행을 하시는 분들이지요. 거기에 대해서도 왈가왈부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 소리에 於佛法中에 ‘네는 네 소신 대로 그런 소리 하든지,’ 큰스님이다ㆍ나이 많은 스님이다ㆍ공부 많이한 스님이다. 이런 조건가지고 그런 소리한다고 해서 흔들릴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절대 거기에 흔들릴 일이 아니다. 心不退轉하며, 마음이 退轉하지 않는다.
聞有菩薩이 修行出離 修行不出離하고,
보살이 있어서 수행해서 出離한다. 생사로부터 벗어난다.
또 수행해서 생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도대체 생사를 해탈하는 건가? 안 하는 건가? 진짜 그 도리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많이 의심 하고 논란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듣고도
於佛法中에, 불법 가운데 心不退轉하며, 전혀 내 불법을 믿는데 대해서는 까딱 않는다. 이 말입니다.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이 그런 소리했다하더라도 마음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권위라는 것도, 그것 사실 애매합니다. 제가 불교 안에서 공부 많이 했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 가만히 들어보면, ‘저 사람이 불교를 믿는 건가? 안 믿는 건가? 진짜 불잔가? 불자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평생 불법 집안 안에서 먹고 살고 일생을 살아가고 하는데도, 가만히 보면 전혀 불법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겉으로만,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그렇게 불교에 몸담고 있을 뿐이지, 실지로 마음이 거기에 젖어들어 있지 않은 그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대개경전을 가지고 강의를 많이 했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그런 것을 볼 때는 실망이 참 크지요. 실망이 크면 안 된다 했습니다.
於佛法中에 心不退轉 ←이 말이 그 말입니다. 하하하. 실망을 갖지 말라. 그래 생사의 문제에서도 수행해서 생사를 벗어나느냐? 벗어나지 못하느냐? 하는 그런 문제도 의심할 만합니다. 또
聞過去有佛 過去無佛하고,
과거에 부처님이 진짜 있어서 과거부처님이라고 하는가? 과거에 부처님이 없는데 무슨 방편으로 하는 소리인가? 사실은 그것 크게 중요한 것 아닙니다. 늘 제가 말씀드리지만, 있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눈 뜨고 옆에 있는 사람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아니, 나는 실지로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나 자신도 있다고도 못하는 것이고 없다고도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물며 과거부처님ㆍ현재부처님ㆍ미래부처님, 있느니ㆍ없느니, 그렇게 단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경전에서 이렇게 “과거 무량부처님”하면 그 나름대로ㆍ자기 소신대로 이해하면 되는 겁니다.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또
聞未來有佛 未來無佛하고,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부처님이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그런 소리를 듣고
於佛法中에, 於佛法가운데 心不退轉하며, 또
聞現在有佛 現在無佛하고,
현재부처님이 진짜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과거에, 2600년 전에 인도 역사에 인류의 스승으로 나타났던 그 분이 부처님인가? 그렇게만 생각하는 경우도 많지요. 現在有佛입니다. 또 現在無佛이라고 하는 사람도 물론 있고요. 있다하든 없다하든 그것은 그 사람 소신의 문제지ㆍ그 사람 안목의 문제지요. 제가 지금 여러 번 중언부언하지만, 현재 나인들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현재 나도 있다고 할 수가 없는데...
現在有佛 現在無佛이 돼서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이것 우리가 불법을 믿고 수행하는데 아주 직접적인 그런 문제들을 여기서 많이 거론하고 있습니다. 또
聞佛智有盡 佛智無盡하고,
부처님의 지혜는 다함이 있다. 부처님의 지혜는 다함이 없다.
그런 것들도 우리가 한번 의심할 수가 있겠지요. 그런 소리를 듣고
於佛法中에, 불법가운데 心不退轉하며, 신심이 아주 견고한 사람은요? 그런 것에 까딱도 안합니다.
聞三世一相 三世非一相하고,
三世 = 과거ㆍ현재ㆍ미래가 한 모양이다.ㆍ한 모양이 아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 於佛法中에 心不退轉이니
是爲十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가 된다.
(2) 勸學十種法(권학십종법)
佛子야 此菩薩이 應勸學十種廣大法이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說一卽多와 說多卽一과 文隨於義와 義隨於文과
非有卽有와 有卽非有와 無相卽相과 相卽無相과 無性卽性과
性卽無性이니라
何以故오 欲令增進하야 於一切法에 善能出離하고 有所聞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니라
勸學十種法. 10종법 배우기를 권한다.
佛子야 此菩薩이
應勸學十種廣大法(응권학십종광대법)이니,
열 가지 廣大한 법을 배우기를 권하나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說一卽多(소위설일즉다)와 說多卽一(설다즉일)과,
하나가 곧 多와, 多라고 말하는 것과, 많은 것이 곧 하나다. 우리 외웠듯이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화엄경에는 이런 소리가 많지요.
文隨於義(문수어의)와, 글로써 뜻을 따른다.= 글이 뜻을 따른다. 또
義隨於文(의수어문)과, 뜻이 글을 따른다.
뭐 여러 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 관점의 차이지요.
非有卽有(비유즉유)와 有卽非有와,
非有가 곧 有다. 有아닌 것이 곧 有다. 라고 하는 것과,
有가 곧 有가 아니다.= 有卽非有.
학인 때 강원에서 교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하다 보면요? 아주 재미가 있고, 또 이론이 분분하고, 또 사실은 서로 잘 모르고요. 그러니까 이야기가 많은 겁니다. 많이 다투고 그러지요. 옛날에는 논강 때 서로지지 않으려고 글을 얼마나 깊이 파고 심사숙고 하는지, 어떤 스님이 졸린다고 책을 들고는 마루에 나와 가지고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가지고서 책을 보고 있는데 도반이 보니까 뱀이 한 마리가 내려와 가지고, 그 머리위에서 얼굴 앞에서 널름널름하고 있더래요. 큰 구렁이가 내려와 가지고... 그래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책을 뚫어지게 보고 있더라는 겁니다. 이것은 기록에 없는 강원에만 전래된 문서화 되지 않은 그런 불교입니다. 또 그런 불교도 많아요. 우리가 구전불교라 그럽니다. 口傳佛敎. 입으로만 전해진 불교. 有卽非有. 이런 것들도 그런 논의의 대상중의 하나지요. 그 다음에
無相卽相(무상즉상)과 相卽無相과,
이것도 같은 것입니다. 모양 없는 것이 곧 모양이다. 또 모양이 곧 모양 없는 것이다. 라고 한 이름.
無性卽性(무성즉성)과 性卽無性이니라. 같은 것이지요.
성품 없음이 곧 성품이다. 성품이 곧 성품 없음이다. 불교에는 명제가 참 많습니다. 설명이 참~ 풍부하고 말이 많고 또 불교 술어ㆍ용어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습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확철하게 안목이 서지 아니하면 이론이 참~ 분분합니다. 정말 분분해요. 뭐 성품이라고 하는 문제ㆍ相이라고 하는 문제ㆍ있음의 문제ㆍ없음의 문제ㆍ一의 문제ㆍ多의 문제, 다 그런 것이지요.
何以故오?
欲令增進(욕영증진)하야, 增進 = 앞으로 나아가서
於一切法에, 모든 법에서
善能出離(선능출리)하고, 잘 능히 出離하고 = 벗어나고,
결국은 일체 법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이제 일체 법을 공부하는 것은 궁극에는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도 역설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善能出離하고 有所聞法(유소문법)에, 법을 들은 바에 있어서
卽自開解(즉자개해)하야, 곧 스스로 이해해서
不由他敎故(불유타교고)니라.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아니한 연고니라. 참 좋은 말입니다.
有所聞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니라.
열 번 나와도 너무 중요한 말이라서 저는 열 번 다 줄그어 놨습니다.
결국은 내 스스로 납득이 돼야 된다. 납득할 수 있도록 우리 준비는 다 되어있습니다. 불성이라고 하는 인간 불성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전의 난해한, 그리고 고준한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소질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卽自開解할 수 있는 그런 소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동진준데요.
10. 第八 童眞住(제팔동진주)
(1) 住十種業(주십종업)
佛子야 云何爲菩薩童眞住오
此菩薩이 住十種業하나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身行無失과 語行無失과 意行無失과 隨意受生과
知衆生種種欲과 知衆生種種解와 知衆生種種界와
知衆生種種業과 知世界成壞와 神足自在하야 所行無碍니
是爲十이니라
童眞. 참 좋은 말이지요? 아이 童ㆍ참 眞.
童眞출가를 좋아하잖아요. 아주 깨끗하게 순수하고 세속물이 들지 않고,
그래도 전생에 들어가지고, 금생에는 든 것이 별로 없어도 전생에 든것이 있어가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세속적인 것이 표출되는 것은 또 말릴 수가 없어요. 그런 경우도 많지요. 童眞이라고 하는 불명 가진 사람 몇을 봤습니다. 그런데 다 하나 같이 시원치 않아요.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동진출가는 다 동진출가 했는데, 어떻게 돼가지고 그렇더라고요.
동진이라는 사람 들으면 좀 곤란하겠네요. 뭐 들어도 할 수 없지요.
住十種業이라. 10종업에 머물다.
佛子야
云何爲菩薩童眞住오? 어떤 것이 보살이 童眞住냐?
此菩薩이
住十種業하나니, 열 가지 업에 머무나니,
何者가 爲十고? 무엇이 열이냐?
所謂身行無失(소위신행무실)과,
身行. 우리가 3업을 말할 때 신ㆍ어ㆍ의. 처음에 몸으로 행하는 것이 손실이 없음. 또
語行(어행)無失과, 말로 행하는 것. 말이 손실이 없음.
意行(의행)無失과,
뜻으로 =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 실다움이 없음. 잃어버림이 없다. = 손실이 없음과, 또
隨意受生(수의수생)과, 뜻을 따라서 受生 = 생을 받는 것과, 또
知衆生種種欲(지중생종종욕)과,
중생들의 가지가지 욕망을 아는 것과,
知衆生種種 解(해)와, 중생들의 가지가지 이해. 이해를 아는 것과,
知衆生種種 界(계)와, 중생의 가지가지 경계를 아는 것과,
知衆生種種 業(업)과, 種種業을 아는 것과,
知世界 成壞(성괴)와, 世界成壞를 아는 것과,
成壞 = 成ㆍ住ㆍ壞ㆍ空하지요? 그것을 꼭 줄여서 成壞ㆍ成壞하고 맙니다. 우리는 생노병사가 있듯이 세계는 成住壞空이 있고, 生住異滅이 있고, 계절에는 춘하추동이 있고, 참~ 그것 정리 잘 해놨지요?
불교에서는 그런 정리 참 잘 해놨습니다. 그런 것과,
神足自在(신족자재)하야, 신족이 자유자재 함을 알아서
所行無碍(소행무애)니, 행하는 바가 걸림이 없으니
是爲十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가 되느니라.
童眞住에는 동진이라고 하는 말 그대로,
身行無失ㆍ語行無失ㆍ意行無失. ←이것이 동진이라고 하는 말하고 상당히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지요. 또 隨意受生이라. 하~ 뭐라고요?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이것을 한문으로 하면 身行無失ㆍ語行無失ㆍ意行無失입니다. 隨意受生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아이로서 출가하기를 원력을 세웠으니까, 뜻을 그렇게 가졌으니까 뜻을 따라서 受生했다. 불교를 이리저리 많이 알면 염주 꿰듯이 하나로 그렇게 꿰어집니다. 그 다음에
(2) 勸學十種法(권학십종법)
佛子야 此菩薩이 應勸學十種法이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知一切佛刹과 動一切佛刹과 持一切佛刹과 觀一切佛刹과
詣一切佛刹과 遊行無數世界와 領受無數佛法과 現變化自在身과
出廣大遍滿音과 一刹那中에 承事供養無數諸佛이니라
何以故오 欲令增進하야 於一切法에 能得善巧하고
有所聞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니라
勸學十種法. 10종 법 배우기를 권한다.
佛子야 此菩薩이 應勸學十種法이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知一切佛刹(소위지일체불찰)과, 一切佛刹을 아는 것과,
一切佛刹. 화엄경에서는 끊임없이 佛刹ㆍ佛刹. 그렇게 하지요.
특히 화엄경에서 佛刹이라고하고, 법화경 정도도 佛刹이라는 말 잘 쓰고, 그 외에는 佛刹이라고 표현을 잘 안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요?
一切佛刹할 때 참 큰 교훈이 있습니다. 그냥 세계입니다. 그냥 세계를 대승불교 안목으로는 佛刹이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왜냐? 모든 사람ㆍ모든 생명ㆍ모든 존재 산천초목 산하대지를 그대로 부처님으로 보기 때문에 그래서 佛刹이라고하는 겁니다. 그래서 佛刹이라고하는 것, 참 좋은 표현입니다.
이것을 그 전에 우리 어릴 때는 어떻게 들었는가하니, 지금 사바세계에 석가모니부처님이 탄생해서 이 지구상에 부처님이 계셔서 그래서 “불 국토라고 한다.” 하듯이, 그런 어떤 특수한 존재가 동불바제ㆍ서구야니주. 이런 데에 그런 식으로 다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참~ 아주 소승적인 설명입니다. 화엄경적인 설명은 모든 생명ㆍ모든 사람ㆍ모든 존재가 다 부처님이기 때문에 그래서 다 佛刹아닌 데가 없습니다. 다 佛刹입니다.
그 어떤 주인공으로써 뚜렷한 특수 인격을 내세워 놓고 부처님이라고 하거나, 그래서 佛刹이라고 하거나 그런 뜻은 아닙니다. 제가 자꾸 화엄경을 보다 보니 어느 날, 이런 것도 깨닫게 됩니다. 야, 왜 佛刹이라고 했는가? 그래서 그 전에 번역해놓은 것을 보니 그냥 “세계” 라고 했었더라고요. 큰 잘못인 것이지요. 佛刹을 그냥 “세계” 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입니다.
“부처님 세계라.” 이렇게 해야 됩니다. 왜냐? 우리사람이 전부 부처님이고, 생명이 전부 부처님이니까요. 화엄경안목은 그러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냥 세속적인 관점에서 “그냥 세계”라고 표현한 경우도 많지만, 화엄경에서 굳이 佛刹ㆍ佛刹. 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一切佛刹을 아는 것과, 또
動一切佛刹과, 一切佛刹을 움직이는 것과,
持(지)一切佛刹과, 一切佛刹을 가지는 것과,
觀(관)一切佛刹과, 一切佛刹을 관찰하는 것과,
詣(예)一切佛刹과, 一切佛刹이 나아가는 것과,
遊行無數世界(유행무수세계)와, 무수 세계를 유행하는 것과,
돌아다니는 것이지요. 遊行하는 것과,
領受(영수)無數佛法과,
무수한 불법을 말하자면 領受 = 이해해서 받아들이다. 우리가 영수증 할 때 이렇게 쓰지요? 이해해서 받아들이다. 무수한 불법을 이해해서 받아들이는 것과, 또
現變化自在身(현변화자재신)과,
변화가 자재한 몸을 나타내는 것과,
出廣大遍滿音(출광대변만음)과,
광대하고 두루 가득한 소리를 내는 것과, 또
一刹那中(일찰나중)에, 일체 찰중에
承事供養無數諸佛(승사공양무수제불)이니라.
무수한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는 것이니라.
何以故오?
欲令增進하야, 하여금 增進해서
於一切法에, 일체 법에
能得善巧(능득선교)하고, 능히 善巧하고,
이것은 “익숙하고” 그 말입니다. 잘하고 = 善巧. 이것이 참 많이 나오고, 그냥 善巧하면 이해가 되는데요. 우리말로 바꾸려니까 이것이 적절한 표현이 잘 없습니다. 저는 계속 화엄경번역을 하고 해설을 쓰다보니까, 이런 낱말 하나도 자꾸 걸리는 겁니다. ‘우리말로 뭘 로 바꿔야 적절하게 표현이 될까?’ 여기 善巧ㆍ방편이라고 하는 것이 따라다니잖아요. 아주 익숙하고ㆍ능숙하고 하는 그런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능숙함을 얻고,” 또
有所聞法(유소문법)에, 법을 들은 바가 있음에
卽自開解(즉자개해)하야 不由他敎故(불유타교고)니라.
그 다음에 아홉 번째는
11. 第九 法王子住(제구법왕자주)
(1) 善知十種法(선지십종법)
佛子야 云何爲菩薩法王子住오
此菩薩이 善知十種法하나니 何者가 爲十고
所謂善知諸衆生受生과 善知諸煩惱現起와 善知習氣相續과
↑45강-4
↓45강- 5
善知所行方便과 善知無量法과 善解諸威儀와 善知世界差別과
善知前際後際事와 善知演說世諦와 善知演說第一義諦니
是爲十이니라
法王子住.
그 전에 어떤 法王子라는 보살님이 있었는데요.
“이름이 너무 크지요?ㆍ너무 크지요?” 누가 지어줬는지 하여튼 크게는 지어줬어요. 法王子. 하하하하 그러나 우리 불명은, 승속을 막론하고 불명은 다 꿈이니까요. 法王子하면, 우리가 法王子가 되고자 하는 그런 꿈을 거기에 담는 것이지요. 꼭 지금 無比라야 無比가 아니라, 앞으로 無比가 되고자 하는 그런 꿈을 거기에 싣고, 이름을 지어요. 그래서 이름은 자기의 어떤 근기나, 자기의 그릇 보다는 좀 크게 짓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고 열심히 정진해야지요.
佛子야
云何爲菩薩法王子住오? 보살의 법왕자주인가?
此菩薩이
善知十種法하나니, 10종법을 잘 알아야하나니
何者가 爲十고? 무엇이 10이 되는가?
所謂善知諸衆生受生(소위선지제중생수생)과,
善知 = 아주 잘 안다. 잘 善자입니다. 잘 안다. 무엇을요?
모든 중생이 생을 받는 것 = 태어남을 받는 것. 도대체 저 사람은 돌고 돌다가 어떻게 해서 여기 이렇게 태어났는가? 이런 것을 잘 아는 겁니다.
그 다음에
善知 諸煩惱現起(제번뇌현기)와,
모든 煩惱現起.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또 잘 알아요.
아홉 번째 法王子쯤 되면 그렇지요. 그 다음에
善知 習氣相續(습기상속)과, 習氣가 相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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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心不退轉하야 有所聞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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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신심이 굳건하여 물러섬이 없음.
有所聞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니라. 법을 들은 바에 있어서 곧 스스로 이해해서 다른 이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아니한 연고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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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이지..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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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一切 衆生 早得法 나무 대비 관세음
고맙습니다. _()()()_
석대원성님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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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現在有佛 現在無佛이 돼서 於佛法中에 心不退轉하며...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 산천초목 산하대지를 그대로 부처님으로 보기 때문에 佛刹이라 함..
釋대원성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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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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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所得法에 卽自開解하야 不由他敎故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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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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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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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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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 산천초목 산하대지를 그대로 부처님으로 보기 때문에 佛刹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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