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쿨한 여자라도 천상 여자가 되어 일렁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는 결혼 프로포즈의 순간. 요즘 세대에서는 프로포즈 대행업체도 성행할 만큼 결혼 전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물론 프로포즈 반지(이하 약혼반지. 우리나라의 결혼반지와 유사한 개념)는 이벤트의 핵심이다. 특히 이 반지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뉴요커들이 쏟는 정성과 시간, 비용, 그리고 저마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무척 흥미롭다.
드비어스(DeBeers)사의 마케팅 캠페인 중 하나인 “약혼반지 비용은 신랑의 세 달치 월급”이 말해주듯 뉴요커들의 약혼반지는 시어머니의 예산에 맞추어 예물을 결정하던 우리나라의 풍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신랑이 직접 돈을 모아 약혼녀를 위한 다이아몬드 반지 쇼핑에 나서기 때문에 남자들의 “심리적 압박”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의 결혼정보업체인 The Knot의 제 6회 리얼 웨딩 설문조사에 의하면 약혼반지는 2011년 미국의 결혼 준비에 있어서 두번째로 많은 돈이 지출되는 항목이었다. 그 중 뉴욕의 맨해튼은 전(全) 미국에서 결혼비용이 가장 높은 도시인데, 약혼반지 비용 또한 최고이며 따라서 다이아몬드 사이즈도 가장 크다. 현재 뉴욕 평균 중량이 약 1.6 캐럿인 반면 남부의 바이블 벨트(Bible Belt)지역에서는 평균 0.25~0.40 캐럿에 그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크기는 대도시일수록 커지는데 패션과 경제의 중심지 뉴욕에서는 이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해 보인다. 필자가 인터뷰한 백여 명의 뉴요커들이 본인이 속한 그룹에서 가장 최근에 결혼한 사람일수록 다이아몬드가 커졌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약혼반지에 부여하는 의미와 과시욕구가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재산성에 중심을 두어 예물의 형태로 목걸이, 귀걸이와 함께 세트로 구입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뉴요커들은 반지만 단독으로, 그리고 실제 착용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중량에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장을 보러 갈 때도 항상 착용을 하는 점이 우리와는 다르다. 4C의 모든 요소를 최상급만 고집하기 보다는 주관적인 중요도에 따라 가치를 결정하므로 다이아몬드의 세분화된 사양을 최대한 활용하여 타협하는 모습이다.
디자인 트렌드로는 간결하고 클래식한 솔리테어(Solitaire)와 화려한 헤일로(Halo)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유행을 타지 않고 다이아몬드 자체를 돋보이게 하는 솔리테어는 취향에 따라 4발, 6발, 더블클로(double claw) 등의 형태로 꾸준한 시장이 있다. 하지만 메인 다이아몬드 주위를 자잘한 멜리 다이아몬드로 둘러싸고, 밴드에는 정교한 마이크로 파베 세팅을 한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의 헤일로 스타일도 인기가 높아 다양한 버전으로 변형되어 나온다. 헤일로의 장점은 작은 메인 스톤도 크게 보완해주며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로 광채를 극대화시키는 데 있다.
또한 뉴요커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라운드컷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쿠션컷, 아셔컷, 에메랄드컷, 레디언트컷 등 팬시컷 다이아몬드도 선호한다.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에이든에게 받은 반지를 기억하는가? 애초에 에이든이 준비했던 페어 셰이프 다이아몬드(게다가 옐로 골드였다)를 보고 기겁을 하던 캐리. 결국 반품 후 해리 윈스턴의 3캐럿 정사각 에메랄드컷 반지를 받고서야 흡족해 한 그녀는 뉴욕 여성들의 실제 모습이다.
미국의 셀레브리티들 또한 대부분 팬시컷 다이아몬드 반지를 착용하는데, 스톤 자체에서부터 개성을 찾고 자신만의 감각을 드러내는 모습은 그들의 다양성을 표방하는 문화적 특성과 일맥상통한다. 그 밖에도 쓰리스톤링, 다이아몬드 원석을 활용한 개성있는 반지, 화이트 골드 대신 팔라듐을 사용한 제품들도 반응이 좋다.
필자는 얼마전 주얼리 서적을 출간하면서 웨딩컨설팅 회사와 함께 프로포즈 사연 공모 이벤트를 실시하였다. 예상대로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뉴요커 못지 않게 프로포즈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저마다의 사연에는 개성과 감동이 녹아 있었다. 마케팅 상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주얼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만들어간다는 차원에서 프로포즈와 다이아몬드 반지의 프로모션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이아몬드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질 수 없는 테마이고, 세기의 커플과 그들의 사랑을 상징하는 약혼반지에는 낭만이 흘러왔다. 다이아몬드의 가격과 사랑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지만, 반지를 고르는 시간과 정성, 소중한 그녀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을 서투른 그의 몸짓은 가슴 한 켠에 뭉클한 감동을 남긴다. 오늘,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던 다이아몬드에 사랑의 간절함을 전하는 메시지를 녹여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 주얼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