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우체국
하순희
난 한 촉 벌고 있는 소액환 창구에서
얼어 터져 피가 나는 투박한 손을 본다
"이것 좀 대신 써주소, 글을 씰 수 없어예."
꼬깃꼬깃 접혀진 세종대왕 얼굴 위로
검게 젖은 빗물이 고랑이 되어 흐른다
"애비는 그냥 저냥 잘 있다. 에미 말 잘 들어라."
갯벌 매립 공사장, 왼종일 등짐을 져다 나르다
식은 빵 한 조각 콩나물 국밥 한 술 속으로
밤 새운 만장의 그리움, 강물로 뒤척인다.
새우잠 자는 부러진 스티로폼 사이에
철 이른 냉이꽃이 하얗게 피고 있다
울커덩 붉어지는 눈시울,
끝나지 않은 삶의 고리
하순희 선생님은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입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셨고, 경남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성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시조문학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신데요, 현재 경남시조시인협회 회장이시고, 시조문예지 <화중련>의 편집장을 맡고 계십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비, 우체국’이라는 시조는 갯벌매립 공사장을 따라다니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하루종일 등짐을 져다 나른 후, 식은 빵 한 조각이나 콩나물 국밥 한 술로 끼니를 때우는 아버지인데요, 어느 비 오는 날 우체국에 가서 번 돈을 가족에게 송금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글을 몰라서 우체국 직원에게 안부 인사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그 투박한 말투와 가족에게 보내는 투박한 인사말이 인상적입니다. 또 얼어 터져 피가 나는 손을 보면서 시인은 가슴아파하고 있는 데요, 우체국 창구에서 피고 있는 난화분의 난꽃과 이 투박한 손이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아버지의 고된 삶을 더욱 실감나게 해줍니다. / 이주언 시인
첫댓글 방송을 못들었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