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날 찾은 내 고향 서석
탁 트인 높고 맑은 푸른 하늘, 바람에 날리는 오색의 낙엽 새 향연, 붉게 물든 과일의 정경
초가집 담장에 걸친 담쟁이, 나목에 겨우 달려 몸부림치는 붉게 물든 이파리
추수한 들녘의 풍경,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라 했다. 상쾌한 날씨, 풍요로운 곡식, 아름다운 풍광 이런 자연이 준 아름다움이 있기에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했는가? 오늘은 10월 마지막 날이다.
잠에서 깨어 물끄러미 창밖을 보니 뒤뜰에 감은 누렇게 익어가고 불청객까치는 주인도 맛 보지 않은 아직은 덜 익은 반홍시를 혼자 먹기 아까워 깍깍 동료들을 부르는 듯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눈감고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 늘 소풍을 다녀왔던
서봉사 계곡은 가을 풍경이 아름답고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포근하고 정감어린 곳이다.
나는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역마살이 동한다. 어디론가 가고 싶어 안달이나 일주일에 3일은 풍경 좋은 곳 찾아 글 소재도 찾고 아름다운 풍경도 스케치북에 담는다. 채비라고는 작은 가방에 소주 한 병과 계란두알 그리고 연필과 스케치북, 카메라가 전부다.
그래 ! 지금쯤 그곳은 여기 춘천과 기온차가 많이 나서 단풍도 아름답고 낙엽 새도 분주하리라 생각되어 아침을 먹자마자 홍천 서석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비쳐지는 가을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라디오를 켰다. 맑고 고운 소리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주는 세상의 아침 진행자의 목소리가 정겹다. “가을에는 낙엽을 밟으며 그 길을 걷고 싶다. 긴 바바리코트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꽂고 깃은 세우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에 나의 옷깃을 스치는 소릴 듣고 싶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을 밟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
아! 가을은 남자의 계절,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분위기 있는 로멘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되어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노래는 10여년이 지나 다시 한 번 그의 여유롭고 사랑으로 오고, 트럼펫의 아름다운 울림과 짙은 커피 향처럼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김동규의 ”시월의 멋진 날에“ 입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 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중략
서봉사 계곡에 도착하니 눈이 즐겁고 마음은 풍요롭다. 아~~ 가을인가! 노래가 절로 불러진다. 푸른 솔 사이 붉게 물든 단풍, 맑고 깨끗한 물을 선물해 준 자연에게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이곳에 오니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가을 하늘이 드러나 있다. 뿐만 아니라 야생 가을꽃들이 바람에 산들 거리며 가을 정취를 더한다.
나보다 앞서온 관광객들은 계곡 너럭바위 위에서 울긋불긋하게 물든 주변 경관이 맑은 물에 비쳐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산사에도 어느 덧 깊은 가을이 내려앉았다. 지붕위에 핀 와송(瓦松)은 누렇데 변해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는 산사의 적막감을 해소한다. 주변 숲의 푸른빛은 붉고 노란 단풍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산사 한쪽 켠 계곡에는 서석의 주산인 아미산을 등반하고 하산한 등산객들이 긴 여정의 고단함을 막걸리 한 잔으로 달래는 듯 왁자지껄하다.
올 가을엔 추위가 예년보다 1주일 이상 빨라 단풍이 빠르게 남하하고 있다는 말이 맞는 듯 낮과 밤의 일교차까지 심해 단풍은 어느 해보다 붉고 고운 빛깔을 자랑한다.
나는 이곳 풍경을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아 색깔 펜으로 이곳 가을 정취를 스케치 북에 담았다. 소나무 숲의 단풍 아래서 막걸리를 시원하게 마시고 머리위에 술잔을 얹은 등산객 모습에 솔향을 담아 그렸고, 너럭바위에 앉아 가을 정취에 취해 사색을 즐기는 아주머니들의 모습 등 주변 풍경과 조화로움을 더해 그렸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2시간이 지났다. 출출하다. 가을 정취는 아름다웠지만 마음은 어딘가 쓸쓸해 이를 혼자 달래보고자 계곡 입구에 위치한 막국수 집에 도착했다. 막국수와 맛 난 고향 향기 담긴 배추김치를 안주로 막걸리 한잔했다. 잠시 발길을 돌려 무당소를 찾았다. 무당소도 많이 변했다. 바위 아래 물은 오염 되었는지 옛날처럼 맑지는 않은데 꽤나 깊어 보였다. 손으로 한 줌 물을 퍼 보니 누렇고 검은색 물이끼가 섞여있다.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옛날처럼 물은 깊진 않지만 마을 사람들이 자주 찾는 밤 낚시터다라 하며 이곳이 왜 무당소라는 명칭을 얻었는지 연유를 물으니, 옛날에 바위 위에서 굿을 하던 무당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하여 그리 부른다고 한다. 강가에는 나이 들어 보이는 버드나무와 이름 모를 잡목들이 뒤섞이고 담쟁이 넝쿨은 붉게 물들어 흰 머리를 한 억새풀과 갈대와 가을 전형의 모습에 정감이 갔다. 고교시절 선생님의 눈을 피해 한말들이 막걸리 통을 메고 안주는 오징어로 이곳에 사는 친구들과 이 강가에서 밤늦도록 놀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 때가 그립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오늘 스케치 여행의 멋을 더하고자 단풍의 전경이 일품인 아들 바위 딸 바위의 스케치를 더했다.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은 너무 애처로운 마음을 담고 있다. 이곳 풍경은 국도 옆에 있는 작은 바위산 언저리 큰 바위는 벽돌을 쌓은 듯 겹겹으로 얹혀있다. 바위 틈새마다 소나무가 자라고 , 진달래나무, 철쭉나무, 노간주나무가 이웃하며 자라고 있다.
허리만큼 자란 억새풀이 흰 머리를 하고 바람에 흔들리며 안내한다. 스텐 재질로 세워진 안내판에는 아들바위의 전설이 쓰여 있다. 지금부터 오백년 전쯤에 딸만 셋 둔 아낙이 있었는데, 시부모와 남편에게 구박을 받게 되었다. 고민하던 아낙은 어느 날 밤 꿈을 꾸는데 산신령이 나타나 이 바위 위에 돌을 던져 올려놓으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다음날 아낙은 돌멩이를 던졌는데 용하게 3개나 얹혀 졌다고 한다. 그 후 아들을 낳았다고 하여 아들바위라고 한다. 나는 봄 소풍 가는 길에 친구들과 던져 보았는데 던질 때 마다 돌이 올려 진 덕인지 아들만 둘을 두었다. 신통방통한 효력이 있는 바위다. 서석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심심풀이로 늘 돌을 던져 보기도 하고, 바위 난간을 타고 지나가기도 했다 . 아들바위 꼭대기에는 돼지모양의 바위가 있고, 방아확처럼 움푹 팬 곳이 있다. 방아확처럼 움푹 팬 이 곳에 돌이 들어가면 딸을 낳는단다. 여기까지 왔으니 심심풀이로 옛 추억을 생각하며 휙 돌을 던져본다.
잠시 인근 예술 촌에 들러 물을 얻어 마시고, 학창 시절 자주 찾았고 여름이면 멱을 감으며 친구들과 끈끈한 우정을 쌓은 곳 매지꾸미(매지소)를 찾았다. 이곳은 너럭바위가 있어 이 삼 백 명은 족히 앉아 놀 수 있던 자리였건만, 지금은 흔적만 있었다.
이곳은 서봉사와 더불어 초등학교, 중학교의 단골 소풍장소였다. 기억으로는 이곳에서 가뭄이 들면 면장 주관 하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 장마 시기엔 주변 골짜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살이 더 거세 옥답이 떠내려갔다. 이곳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원망의 장소이기도 했다. 늘 저것만 없으면 이 난리를 치루지 않아도 될 텐데 하던 차에, 생곡에 저수지를 막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사람들은 메주꾸미 너럭바위를 깨서 석축으로 쌓아주면 좋겠다고 어리석은 민원을 냈고, 극기야 이 바위를 깨서 저수지 뚝을 막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아쉽다. 자연적인 명소는 몇 억 만 년 걸리는데, 없애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를 후대에 어떻게 말할 것인가! 지금은 깨고 남은 바위 암반 위에 제방을 쌓아 자취는 졌지만, 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유유히 기억처럼 흐르고 있다. 지금 그 바위가 있었다면 강가의 풍경과 물소리가 어울리는 관광명소가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래 이젠 전설이 되었어. 한탄한들 무엇 하랴! 아쉽다.
나는 흔적으로 남아있는 바위 언저리에 앉아 내가 한 짓은 아니지만 몇몇 문외한이 저지른 일이 내 죄인 양 생각이 들어 눈물을 삼켰다.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2014년도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가을의 끝자락에 와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오늘 있었던 이야기도 하며,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치킨 한 조각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건배를 외쳤다. 57번 째 맞는 멋진 10월 마지막 밤이야. 친구야! “추억에 오래오래 남을 그런 밤을 보내자“ 내 년에 더 좋은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건배! 술기운을 빌어 이용의 잊혀 진 계절이란 노랫말을 흥얼거려 본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
여름처럼 햇빛은 강하지 않지만 가을 햇살은 양기를 듬뿍 품었으니, 가을햇살을 마음과 몸에 가득 담아 내년에는 더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보리라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