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4일 부터 16일 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전국을 순례하시는
밀성박씨 각문파 회장단님 80여명이 저희 여천문중을 방문하심에
충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16일 08시 30분부터 1시간여 동안 청죽공과 야와공의 산소를
참배하고 청죽재에서 다과회를 갖고 바로 고헌 박상진 의사 생가로
향할 계획입니다.
지난 7월의 전국 청년 부녀회 주관 행사시에는 무려 115명이
저희 문중을 찾아주었는데
이번에 또 다시 저희 문중을 찾아주시니 크나큰 영광입니다.
바쁘시더라도 시간을 내시어
많이 나와 대 환영을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일으키자 여천문 !
화합하자 여천문 !!
길러내자 우리 후손 !!!
울산여천문중 소개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의 計劃으로
遠德祠 配享先祖 文化遺蹟地 巡禮團이
저희 門中을 찾아주셔서 眞心으로 歡迎합니다.
경주에서 一泊하시고, 아침 일찍부터 바쁜 日程에
勞苦가 많으십니다. 울산에는 우리 門中을 비롯한
密城朴氏의 여러 門派가 있는데, 共通的으로 모두
忠孝와 忠義의 家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 都評議事公 后 蔚山麗泉門中은 始祖王의 47世이신
自溫 遯庵公이 端宗朝에 成均生員으로 수양대군이
王位簒奪의 機微가 보이자 族兄인 大護軍 朴衍生 遯齋公과 함께
南下하여 전라도 泰仁으로 내려오고,
自溫 遯庵公은 다시 경남 宜寧 闍崛山속으로 더욱 깊이 隱遁하여
經書로 樂을 삼으며 淸廉潔白한 삶으로 一生을 超然하게 마치시니 死六臣의 마음과 같았고,
그 발자취는 生六臣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自溫 遯庵公의 後孫이신 朴孫 聽竹公께서는
젊어서 經書와 兵書를 탐독하시며 말타기, 활쏘기, 창다루기 등
武藝에도 能通하셨다고 傳합니다.
1592년 壬亂이 일어나자 義兵將으로 앞장서서
집 곳간의 모든 糧食과 이웃들과 함께 병장기를 모아
東大山 含月山城으로 깃발을 높이고 향하셨답니다.
4년간에 걸쳐 20여회의 크고 작은 戰鬪에 參與하였고
경주 蚊川會盟 및 울산 鷗江會盟에 同參하였습니다.
1595년 음력 2월 18일 이른 아침에 太和江을 건너
敵軍이 쳐들어오자 白蓮岩 戰鬪에서 10여 차례 血戰苦鬪 끝에
하늘의 猜忌로 父子가 敵의 兇彈을 맞아 卽死는 免하여
本陣으로 돌아오니 모든 군사들이
일제히 憤慨하여 공격하였고
敵은 魂飛魄散하여 흩어져 도망을 쳤다합니다.
金應生, 金洽, 尹弘鳴, 金弘煒 등 義兵將들이
父子의 屍身을 收拾한 후 祭文을 지어 哀悼하고
喪輿 두 채를 麗泉里 本家에 보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忠孝와 節義의 본보기가 아니겠습니까.
宣武原從功臣錄卷 53쪽에 3等功臣으로 登載되어
있고, 以後에 嘉善大夫 刑曹參判을 贈職받으셨습니다.
오늘에 1200여 姓孫들이 集姓村을 이루고 있으며,
近來에 와서 後孫들은 돌아가신 날을 祖上崇慕의 날로
門中不遷位의 享祀를 드리고 있습니다.
禁草(伐草)와 墓祭 때는 청년회와 부인회를 비롯하여
男女老少가 무려 120여명이 年例行事로 參與하니
忠孝와 忠義의 門中이라 이웃의 他 門中에서
龜鑑이 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위의 여천문중 소개글은
청년회 임원들과 두 차례 협의 수정하여
올린 글입니다.
밀성박씨 전국 각 문파의 대표들이 오시기에
더더욱 신경스였습니다.
문젯점이 있으면 연락주십시요.
문중의 발전을 위하여
토론하여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10월 16일 07시 40분 부터 우리문중 성손들 20여명이
청죽공 산소와 계단 및 도로변 인도를 말끔이 정리하고
도열하여 80여명의 밀성박씨 각 문파 대표들을 환영하는 모습
진정 고마웠습니다.
청죽재에서 다과회를 하면서 서로 서로 인삿말을 나누며
보낸 짧은 30분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떠나가시면서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여천문중은 전국에서도 우뚝한 예의바른 문중이다.
특히 손님들의 신발마져 정리 정돈 해 두었으니,
우리도 놀라워했습니다.
금년에 들어 두 번씩이나 도평의사공파 울산여천문중이
온 천하에 알려졌으니,
더더욱이 긴장이 되고 조심스러워 집니다.
다함께
여천문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
원덕사 배향선조 문화 유적지 순례단의
우리 문중을 찾아 주심은 큰 영광이라 생각 되옵니다.준비 하신분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우현 할배의 훌륭하신 문중소개도 돋보이는 하루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