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건만다라선송
(欲健曼茶羅先誦)
정법계진언 〈옴 람〉
만다라는 우주의 진리나 깨달음의 경지 또는 불 보살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부처와 보살 등 성현들을 모시기 위해 설치해 놓은 법단, 수행을 하는 도량, 법회를 행하는 일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절에 가면 법당에 그려져 있는 여러 가지 탱화나 문양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이 일종의 만다라이다.
욕건 만다라선송은 삼보를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법단을 만다라로 표현하고 이 만다라를 세우기전에 먼저 외우는 진언이라는 뜻이다. 공양드릴 법단을 만들려면 안팎이 청정해야 한다. 정 법계 진언은 법계를 청정히 하는 진언이다.
법계란 무엇인가? 중생의 마음에 의해 나타난 모든 존재의 모습이다. 모든 존재는 마음에 의해 그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마음에 의해 드러난 모든 존재는 각각 차별 된 모습을 하고 있어도 하나의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조건으로 생긴다는 연기성, 자체성품이 없다는 무자성, 실체가 없다는 공성이다. 법계는 연기로 존재하고 무자성으로 존재하며 공으로 존재한다.
이때 연기니 무자성이니 공이니 하는 말은 글자만 다를뿐 같은 의미를 지닌다. 경에 의하면 이러한 특성을 지닌 법계는 본래 청정하여 일체의 차별을 떠나 평등하다고 설한다. 중생의 분별하는 마음이 개입 되지 않는다면 법계는 아무런 허물이 없다.
곧 중생의 망녕되게 분별하는 마음으로 인해 이름과 개념이 붙고 갖가지 가치가 따라 붙어 높고 낮음, 붉고 푸름, 깨끗함과 더러움 등의 시비가 생기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결국 법계가 중생의 마음을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난다는 말로 중생의 차원에 따라 하나의 분별이 없는 공적한 법계가 천차만별의 법계로 변질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해가 뜨는 방향을 동쪽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쪽은 스스로를 동쪽이라 한 적이 없다. 사람이 분별없는 해 뜨는 방향에 동이니, 해니, 뜨느니 하는 등의 분별을 하고 가치를 부여하여 법을 만들었다. 개에게는 동도 없고 서도 없다. 대신 그것들에게는 다른 차원의 법계에 대한 분별이 있다.
이는 법계는 하나지만 중생의 수 많큼이나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법계의 청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분별하는 중생의 허망한 마음을 버리고 역시 맑고 깨끗한 마음이 되어 드러난 존재의 모습을 바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법계진언은 눈에 보이는 대상의 세계를 깨끗이 한다는 의식이라기보다는대상을 보고 있는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이다. 물론 여기서 가리키는 깨끗함 청정함은 더러움에 반대되는 분별로써의 깨끗함과 청정함이 아니라 수행에 의해 일체의 오염을 떠난 깨달음에서 드러난 깨끗함과 청정함을 뜻한다. 어떤 이들은 정 법계와 같은 진언을 보이지 않는 악귀를 퇴치하고 혼탁한 기를 맑게 만들게 하는 주문으로 여기고 암송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참으로 미신적이고 주술적 행위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왜곡되게 하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진언은 다른 가르침과 마찬 가지로 중생의 마음을 맑게 하고 깨우치게 하려는데 목적을 둔다.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 향하는 곳 그 곳은 다름 아닌 그 가르침을 보고 있는 당사자의 마음이다.
불자가 삼보 앞에서 정법계진언인 옴람을 외울 때 마음은 정화되고 법계는 청정해진다. 법계와 삼보와 진언과 삼보에게 예경하는 중생의 마음과 법단 이 모두 한 바탕이라는 이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 해야한다.
유마선원장
922호 [2007-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