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노인이 취약? 2030女 훨씬 많다
노인이 주타깃 예상과 달리
피해자 대부분 젊은 여성
2030 남성보다는 14배↑
"온라인 정보·공공기관
잘 믿기 때문에 피해 커"
박대의 기자 입력 : 2018.11.14 17:52:25 수정 : 2018.11.14 19:33:05
수원에 사는 강 모씨(25·여)는 지난 5일 오전 한 남성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검찰 직원이라고 밝힌 수화기 너머 상대방은 강씨 명의 통장이 불법 대포통장으로 사용돼 수사 중이니 자신의 지시에 따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건 번호가 적힌 고발장 사진을 강씨에게 전송하며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을 확인해야 하니 현금으로 인출해 지하철 2호선 봉천역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830만여 원을 인출해 가짜 검찰 직원을 만나러 가던 강씨는 인근에 잠복하던 경찰 덕분에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강씨는 "보이스피싱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설명이 그럴듯해 겁이 나 순순히 지시를 따랐다"며 "전화가 걸려오기 일주일 전 포털 사이트 아이디를 해킹 당해 불안감이 큰 상태이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금융감독원이나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의 피해자 중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이 주 피해자일 것이란 세간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14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사건은 1만6338건으로, 총 피해액만 1796억원에 달한다. 특히 `기관 사칭형` 수법 피해자 중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관 사칭형 수법은 수사기관 관계자를 사칭해 모아둔 예금을 범죄로부터 보호해주겠다며 접근하는 전통적인 사기 방식이다. 올해 상반기 기관 사칭 수법 피해 여성은 2653명으로 남성 피해자 526명의 다섯 배 수준이다. 또 전체 여성 피해자 중 20·30대가 2076명으로 압도적 비중(78%)을 차지했다. 반면 60대 이상 연령대에서 여성 피해자는 201명, 같은 연령대 남녀 전체 피해자도 443명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직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디자인 분야 전문직종에서 7년째 일하는 이 모씨(29)는 지난해 7월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해 재산 2000만원을 잃었다. 이씨는 "평소 보이스피싱에 대한 분별력이 높은 편이라고 자부했지만 범인이 상세한 개인 신상을 얘기하자 의심할 수 없었다"며 "범인이 부모가 해외에 체류 중인 사실과 주거래 은행계좌를 먼저 언급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고 토로했다. 이명규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팀장은 "기관 사칭 범죄는 20대 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이며 사무직·전문직 할 것 없이 피해자 직업군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보이스피싱에 대해 잘 아는 편이어도 범인이 구체적 신상 정보를 제시하면 의심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경찰 실무자들은 여성 피해자들이 온라인 정보에 대한 노출도가 높고 공공기관의 권위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이유로 보고 있다. 팀장급 경찰인 A씨는 "20대 여성은 인터넷 거래와 모바일 뱅킹에 익숙하다"며 "전화나 인터넷으로 접하는 정보에 대한 믿음이 확실한 편"이라고 말했다. 과거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이 모씨(24) 역시 "평소 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믿고 자주 이용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에 노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범죄에 연루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불안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에 연루된 적이 없고 사회 경험이 비교적 적은 20대 여성들이 수사기관을 사칭하는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적으로 더 당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은 최근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일부 보이스피싱범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예비신부라는 점을 알아낸 뒤 여성들이 혼수 준비를 위해 마련한 목돈을 노리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모르는 상대가 전화를 걸어 은행 직원이라고 소개하고 대출을 권유하거나 특정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보이스피싱일 가능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앱을 잘못 설치하면 휴대전화가 악성코드에 감염된다"며 "이 경우 은행이나 금감원의 실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사칭 기관으로 연결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사회생활 경험과 상관없이 보이스피싱 사건과 관련된 뉴스, 여러 정보를 넓게 받아들이고 모르는 상대가 현금 인출 등을 요구하면 반드시 의심해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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