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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가운데 의(衣)와 식(食)에 관해서는 앞에서 이미 좀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사람들의 주거 환경과 관련된 한자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신체적 조건만 가지고 비교를 하면 자연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기에는 경쟁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민첩함이나 날카로운 이빨, 손톱 등은 물론이고 털이 나지 않은 몸으로 아무 데서나 함부로 살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성인이 되어 어른의 도움이 필요없을 정도까지 자라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걸렸지요. 날이 따뜻해지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럭저럭 살아갔지만 혹독한 겨울에는 사냥으로 얻은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호시탐탐 사냥감으로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짐승들이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자연환경에서는 더욱 그랬지요. 그래서 인간들은 동물들의 침입이나 습격을 피할 수 있고 추위도 막아줄 수 있는 안락한 거처를 찾게 되었습니다. 집을 지어서 공동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동물들의 습격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는 높은 곳이 적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저렇게 나무 위에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초에 인간들이 나무에 올라간 것은 아마 망(望)을 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망(望)은 앞에서 이미 나왔듯이 눈높이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난 점이 바로 이런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망을 보러 나무에 올라간 사람을 나타낸 문자가 바로 '탈 승(乘)'자입니다. 탈 승(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에서는 '탈 승(乘)'자가 생겨난 모습을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나무(木)' 위에 어른[成人: 大]이 올라가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금문부터는 사람의 몸에 두 발을 그려넣었습니다. 발은 평지를 딛고 서 있는 데도 중요하지만 나뭇가지 같은 것을 밟고 서 있으려면 넓고 편편한 발바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해서에서는 사람과 나무가 한데 합쳐져서 '벼 화(禾)'자 같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양 발바닥을 나타낸 요소는 '북녘 북(北)'자처럼 바뀌었죠. '탄다'는 훈은 나무를 올라탄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나중에는 '오른다'는 뜻으로 차츰 바뀌어 수레를 타거나 차를 탄다는 뜻으로 바뀌었고, 아주 일찍부터 아예 수레를 헤는 단위로까지 쓰이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승(乘)은 보병 72명을 딸린 전차로 옛날의 군대 편제 단위였습니다. 만 승은 전차[兵車] 1만 대에 보병 72만을 보유한 천자의 나라만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후의 나라에서는 전차 천 승에 7만 2천명의 군대만 보유할 수 있었지요. 전국시대에 들어와서는 그런 규정이 유명무실해지긴 합니다만. 나무에 올라본 사람은 그곳이 짐승들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 위에서 생활을 하는 방법을 생각해내게 되었고 이를 실천에 옮겨서 아예 새처럼 나무에다 집을 지어 살게 되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을 하였고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타잔>에 나오는 나무집입니다. 타잔의 부모가 선상 화재로 난파된 배에서 겨우 살아나 짐승들의 습격을 피하여 지은 집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타잔의 부모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잘 타는 동물인 표범의 습격을 받고 죽고 맙니다. 타잔은 아기를 잃은 암 고릴라에 의해 구출되고 길러지지요. 요즘도 나무 위에 지은 집이 저렇게 있습니다만 온전히 주거를 위한 목적으로 지은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고 싶을 때 찾게 되는 자연 휴양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인간에게 짐승의 습격을 피해 나무에서 살도록 인간을 가르친 성인(聖人)이 있습니다. 성(聖)자는 글자에서 나타나듯이 귀(耳)와 입(口)이 강조된 땅 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남다른 청력으로 보통 사람보다 먼저 위험을 감지하여 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성인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의 습격을 피할 수 있도록 나무에서 살게끔 가르친 성인은 유소씨(有巢氏)입니다. 소(巢)자는 나무 위에 둥지를 튼 새집입니다. 새 둥지입니다. 한 개도 아니고 3개나 있는 것을 보니 새들의 아파트 같습니다. 인간들만 군집(羣集)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지요. 집(集)자는 원래 나무 위에 새(隹)가 세 마리 있는 것을 표현한 글자인데 후대로 오면서 한 마리로 준 형태라고 했습니다.(『이미지로 읽는 한자』 314쪽 참조) '둥지 소(巢)'자는 나무 위에 새집이 있는 것을 나타낸 글자입니다. 이를 먼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보고 이어서 자형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무 꼭대기에 새가 둥지를 튼 모양입니다. 위의 모양만 가지고는 어디까지나 도화(圖畵) 즉 그림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둥지 소(巢) 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금문은 위 일러스트레이션을 더 간략화해서 표현하였습니다. 그림과 문자의 차이를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금문에서는 둥지와 붙어 있던 끝 부분이 분리가 되는데 이는 새 둥지임을 더욱 확실히 나타내기 위하여 새를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둥지와 나무는 해서에 와서는 모양이 조금 바뀌어 '열매 과(果)'자의 형태로 바뀌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둥지 소(巢)'자는 나무에 튼 둥지에 있는 새 세 마리입니다. 아마 다음과 같은 사진 모양이었을 것입니다. 나뭇가지에 지은 새집 즉 둥지인 소(巢)에 두 마리는 앉아 있고 한 마리는 막 내려 앉으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중국의 고대 왕조들은 나라마다 각기 토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인(聖人)인 복희씨(伏羲氏)가 다스리던 때는 뱀(복희씨는 허리 이하가 뱀으로 표현되어 있다)이었고, 농경의 성인 신농(神農)이 다스리던 때는 소(미노타우루스처럼 사람의 몸에 목 위로는 소의 형상을 하고 있다)였습니다. 그리고 노(魯)에서 드러나듯 물고기를 토템으로 삼은 나라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시 고대의 성인으로 동이족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소호씨(少皞氏)는 관직 이름에 새의 이름을 갖다붙였을 정도였습니다. 공자가 담(郯)나라 임금인 담자에게 소호씨는 왜 새의 이름을 가지고 관직 이름으로 삼았느냐고 물어볼 정도였지요. 그 후 상(商: 나중의 은[殷]나라)나라 사람들이 다시 새를 토템으로 삼았습니다. 새를 토템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하늘을 나는 것을 동경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한때는 문장(紋章)에 새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나치 독일의 문장에도 독수리 같은 새가 있고 미국의 문장에도 독수리가 있습니다. 미국의 국조는 다름 아닌 독수리이지요. 나치의 문장인 하켄 크로이츠(Hakenkreuz)와 미국의 국장인 대문장(大汶章, the Great Seal) 리차드 도너가 거의 다 만들었지만 영화사와의 불화로 크레딧에는 리차드 레스터가 오른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수퍼맨 2>에 보면 크립톤의 악덕 장군인 조렐이 미국의 대통령을 무릎 꿇리고 집무실 바닥에 있는 대문장을 보고 "나는 것을 숭배하는군."이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이런 것도 일종의 새 토템이랄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새 토템 신앙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럴까요? 2008년에 뻬이징에서 치른 올림픽의 주 경기장이 바로 새둥지입니다. 중국어로는 냐오차오(鳥巢)라고 하지요.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이 거행되었던 주경기장인 냐오차오(鳥巢)입니다. 정말 위의 새둥지랑 많이 닮았네요. 냐오차오 위로 커다란 새 모양의 조형물 세 개만 설치하면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새 둥지(鳥巢)를 나타낼 것 같습니다. 새 둥지가 보이는 한자는 소(巢)자 말고도 또 있습니다. 대표적인 글자가 바로 방향으로 쓰이는 '서녘 서(西)'자입니다. 방향으로 쓰이는 글자는 제각기 다른 뜻에서 나왔습니다. 동(東)자는 물건을 잔뜩 넣고 양쪽을 묶은 자루의 모양에서, 남(南)자는 악기를 설명할 때 말했던 것처럼 편종(編鐘)의 모양에서, 그리고 북(北)자는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있는 모양에서 나왔지요.(『이미지로 읽는 한자』 72쪽 참조) 그러면 '서녘 서(西)'자와 새 둥지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새의 둥지는 위에서의 경우처럼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나뭇가지 위에나, 또는 지지하기가 더 편하도록 Y자 형태로 갈라진 나뭇가지에다 틀기도 하지요. 그러나 모든 둥지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관찰을 할 수 없지만 나뭇가지 같은데 대롱대롱 매달리게 지을 수도 있습니다. 나뭇가지 끝에다가 대롱대롱 매달리도록 둥지를 튼 새가 제 집으로 보이는 둥지 위에 앉아 있습니다. 출입구인 문은 둥지 밑쪽으로 나 있네요. 사람의 집이 저런 형태라면 출입할 때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날개를 가지고 나는 새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서녘 서(西)'자는 가지에 매달린 새집을 나타낸 글자입니다. 서녘 서(西) 갑골문-금문-소전-해서 갑골문부터 생겼다는 글자는 굉장히 중요한 뜻을 가진 한자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방향이라는 개념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하죠. 실제 길을 가거나 항해를 하다가 방향을 잃어도 힘들고, 삶이나 사업 등도 방향을 잃어면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새 둥지와 서쪽이라는 방향이 무슨 상관 관계가 있어서 저렇게 매치가 되었을 지 궁금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자신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듯 둥지로 쉬려고 날아가는 새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지는 저녁이 되면 새들이 으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해가 서쪽으로 질 무렵이면 새들이 각자 집인 둥지로 날아간다고 생각하여 둥지가 해가 지는 서쪽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서녘 서(西)'자는 이렇게 생겨났는데, 금문까지는 마치 커다란 벌집처럼 보입니다만 소전에서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둥지의 모양이 보입니다. 해서에서는 옆으로 쭉 뻗은 가지에 둥지가 달린 모양이네요. 나무 위에다 집을 짓고 사니 출입하기가 많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차츰차츰 하나의 대규모 사회를 형성하게 되자 사람들은 다시 땅으로 내려와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집이랬자 지금과 같은 복잡한 구조가 아니었고 그저 비바람 또는 강한 햇빛이나 가릴 수 있는 정도였죠. 이런 집을 움집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선사유적지의 움집을 복원한 해 놓은 것입니다. 지금 보면 겨우내 먹을 음식이나 갈무리해두는 창고처럼 보이지만 옛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집이었죠. 움집의 구조와 내부 형태는 대략 다음의 그림과 같습니다. 신석기시대 움집터 복원도 ⓒ 국사사진자료실 움집을 짓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먼저 둥글거나 모난 형태로 사람 키의 절반 정도 되는 깊이로 파냅니다. 사람이 출입할 통로는 완만한 경사가 지게 하거나 계단 같이 만듭니다. 그리고 적당한 거리로 빙 둘러가며 파낸 가장자리에 기둥을 세워 골조를 만든 다음 바깥쪽에다 골조에 걸쳐 비스듬하게 나무를 엮습니다. 그러면 하늘로 향한 나무의 끝이 모두 한 곳으로 모이게 되는데 그 부분을 묶고 먼저 잔가지로 덮은 다음 풀 같은 것을 덮어 마무리합니다. 이런 움집 형태의 주거 공간은 현재도 아프리카 같은 곳에 가면 심심찮게 볼 수가 있으며, 인디언들도 최근세인 19세기까지만 해도 이런 움집에서 살았습니다. 사진은 1880년에 찍은 미국 캔자스 주 위치토(Wichita)에 있는 인디언의 주거지입니다. 인디언의 천막은 보통 위그왐(wigwam) 또는 티피(trpee)라고 하며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한 케빈 코스트너가 만든 <늑대와 춤을>에서 보이는 것 같은 가죽 천막을 말하는데 저런 움집 형태도 있었습니다. 유목민인 몽고족의 천막인 파오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가죽 천막입니다. 철에 따라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편리성을 위해서 그런 것이지요. 어쨌건 간에 움집은 인간이 땅에 정착을 하면서 갖게 된 최초의 주거형태였습니다. 이런 간단한 형태의 집을 나타낸 한자는 '집 면(宀)'자입니다. 집 면(宀) 금문대전-소전-해서 이 글자는 어딘지 쓰다 만 미완성 글자인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글자는 현재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으며 부수자로만 쓰이게 되기 때문인데, 흔히 '갓머리'라고 합니다. 부수자가 글자의 윗부분에 머리에 쓰는 모자(갓)의 형태로 붙는 것을 머리라고 하지요. 亠(두돼지해밑, 돼지해머리), 冖(덮을 멱, 민갓머리) 같은 것이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그리고 집과 상관 있는 글자가 모두 갓머리(宀)의 형체소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갓머리(宀)가 들어가는 글자는 모두 기본적으로 집과 상관이 있는 글자라고 보면 됩니다. 움집 같은 곳은 출입구를 한 곳에 밖에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움집의 출입구는 보통 북향이었다고 해요. 위에서도 이미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만 움집의 출입구를 한번 보도록 할까요? 둥글거나 고깔 모양의 움집에 나 있는 출입구입니다. 저런 출구를 통하여 밖으로 나가는 글자가 '날 출(出)'자입니다.(『이미지로 읽는 한자』 103쪽 참조) 움집의 출입구를 나타낸 글자는 '구멍 혈(穴)'자입니다. 구멍 혈(穴) 금문대전-소전-해서 갓머리인 '집 면(宀)'자 안에 출입구를 표시한 글자입니다. '구멍 혈(穴)'자는 지금도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글자입니다. 혈자리나 경혈(經穴) 같은 한의학 용어에 주로 쓰이고, 위에 나왔던 소(巢)자와 연용되어 쓰이기도 하여 소혈(巢穴)이라 하면 새집 곧 둥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구멍'이라는 훈이 요즘은 동굴의 구멍을 더 많이 나타내게 되어 혈거(穴居)라 하면 보통 원시인들이 기거하던 굴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자형을 보면 바위구멍(巖穴)이라는 뜻보다는 원래 움집의 출입구라는 뜻이 더 맞습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주거의 형태도 복잡해져갔습니다. 원룸에서 방이 두 개, 세 개로 늘어서 마침내 거대한 건축물이 무리를 이루는 형태로 발전을 했지요. 중국 건축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자금성이 아닐까 합니다. 자금성을 관람할 때는 보통 천안문(天安門)쪽으로 들어가서 신무문(神武門)으로 나오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신무문을 빠져나오면 관람이 끝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자금성의 전체 모습을 조망하려면 신무문 뒤에 있는 경산에 꼭 올라야 합니다. 위의 사진은 경산에서 내려다 본 자금성의 모습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건물이 빼곡이 들어서 있습니다. 궁(宮)자는 이렇게 한 구역 안에 많은 건물이 들어선 것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만 글자가 만들어질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옛날 집터를 발굴하는 현장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당연히 집터를 덮고 있던 지붕은 없어지고 여러 개의 방이었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 옛날의 '집 궁(宮)'자는 이렇게 하나의 지붕 아래 여러 개의 방이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일 것입니다. 집 궁(宮) 갑골문-금문- 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에는 한 지붕 아래 어긋나게 배치되어 있는 방 두 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식성이 강한 금문에서는 방이 둥근 형태로 바뀌었다가 해서에서 다시 갑골문의 자형을 회복합니다. 글자의 변화가 이처럼 없는 글자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 집의 구조가 복잡해지면 방과 방을 연결하는 복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궁궐 같이 큰 공간에는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도 필요했습니다. 궁궐의 건물과 건물을 연결할 때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거주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폐쇄적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와 햇볕은 막아줄 수 있는 기능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사진은 궁전이 아니고 왕실에 속한 정원입니다. 연못이 있고 연못 주위로는 지붕과 지붕을 지탱해주는 기둥만 있어서 걸어가면서도 사방의 경치를 두루 감상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놓았는데 주로 통로가 꺾이는 곳에 많이 설치해놓았습니다. 이런 형태의 통로를 주랑(走廊) 또는 회랑(回廊)이라고 하였습니다. 걸어가면서, 돌면서 구경을 하는 복도라는 뜻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회랑은 바로 청나라의 여름 별장인 이화원(頤和園)에 있습니다. 서태후가 해군의 군함을 살 돈을 빼돌려 크게 확장하였는데 그 결과 청나라의 멸망을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해에만도 당시 빼돌린 해군의 자금보다 몇 배는 더 벌어들입니다.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통로를 나타낸 글자가 바로 '어질 량(良)'자입니다. 어질 량(良) 갑골문-금문- 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부터 금문대전까지는 통로와 통로로 연결된 작은 정자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글자는 멋진 회랑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본래의 뜻은 일찍부터 잃어버리고 '훌륭하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뜻을 보존하려고 량(良)자에 지점을 나타내는 요소인 우부방(阝, 邑)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자는 또 '사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다시 건축물임을 나타내는 엄호(广)가 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진과 같은 개방형 통로를 가리키는 말이 최종적으로 랑(廊)자가 된 거죠. 그러나 이 글자는 후세로 가면서 꼭 양쪽이 다 터졌거나 한쪽만 터진 통로 뿐만 아니라 복도 같은 곳도 함께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전시하기도 하고 판매도 하는 곳을 화랑(畵廊)이라고 하는데, 화랑은 개방된 곳은 없습니다. 어느 화랑 주인이 귀중한 소장품을 사방이 다 개방된 곳에 전시를 해두겠습니까. 실제 자금성 같은 중국의 궁궐에 가면 저런 주랑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주랑은 다음과 같이 생겼습니다. 그럼 옛날 사람들의 움집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위 신석기시대 움집터 복원도를 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원룸입니다. 사실은 선택의 여지랄 것도 없이 원룸일 수밖에 없었죠. 방이 두 개 이상임을 나타내는 집인 궁(宮) 같은 주거형태는 훨씬 나중에 나타났습니다. 요즘은 원룸 하면 드는 생각이 다소 좁아도 한 사람이 생활해 나가기에는 편리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디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하던 작업을 다 못하면 저 안에서 해야 했고, 밥도 저곳서 지어 먹어야 했으며, 잠도 저 안에서 자야 했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움집 안에는 엄연히 밥하는 공간, 일하는 공간, 잠자는 공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집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휴식의 공간이었으니까요. 한 사람이 창가의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습니다. 침실 안이어서 지붕은 보이지 않습니다. '잘 숙(宿)'자는 위의 사진처럼 한 사람이 집의 침대가 있는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모양에서 나왔습니다. 잘 숙(宿) 갑골문-금문-소전-해서 사람의 위치가 좌우로 왔다갔다 합니다. 이는 갑골문은 거북의 등껍질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이 되게끔 쓰는 습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침상은 네모 반듯한데 쐐기형 무늬가 있습니다. 당시의 침상이라야 다른 곳보다 조금 높게 만들고 풀을 짠 자리 같은 것을 깐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니까요. 쐐기형 무늬는 바로 칭상에 깐 자리가 풀을 엮어서 만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전에 가서는 '서녘 서(西)'자 비슷한 모양으로 바뀌었다가 해서에서는 '일백 백(百)'자처럼 모양이 바뀌었습니만 어디까지나 침상, 곧 침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친 김에 침상에 까는 자리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볼까요. 요즘도 야외에 놀러나가면 노천에다 자리를 깔고 누워서 책을 보거나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정말 보기만 해도 여유가 느껴집니다. 도시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파란 잔디밭에 요 같은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간단한 간식과 오락을 할 공 같은 것도 보입니다. 팔을 위쪽으로 쭉 뻗어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요나 자리를 깔고 누워서 팔다리를 쭉 편 것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인할 인(因)'자입니다. 인할 인(因) 갑골문-금문-소전-해서 이 글자는 글자가 생겨난 갑골문부터 현재 쓰이고 있는 해서까지 모양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뜻은 아주 초창기부터 바뀌었습니다. '인하다'의 뜻으로 쓰이게 되어 원래의 뜻을 보존한 글자를 따로 만들어내었는데 새로 생긴 글자가 두 개입니다. 인(茵)자는 '자리'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풀을 엮어서 짠 위의 침상 위에 깐 자리 말이지요. 한편 이 글자에는 자리의 동사형인 '(자리를) 깔다'라는 뜻도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인(裀)자도 이 글자에세 생겨났는데 '옷 의(衣)'부입니다. 바로 잠잘 때 깔고 자는 '요'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매트(mat)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글자에서 뜻을 보존하려고 새로 만든 글자인데 인(茵)은 돗자리라는 뜻으로, 인(裀)은 침대에 까는 요나 매트리스 같은 것을 나타내게 된 것이지요. 종일 일을 하다가 잠잘 저녁이 되면 아마 잠자리가 엉망이었을 것입니다. 각종 먼지에 불을 땐 후 날린 재 날아와 앉았을 것이며... 그래서 아마 잠을 잘 때는 잠자리, 곧 침상을 깨끗히 청소를 했을 것입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인 모양이네요. 다락방인지 비스듬한 지붕의 구조가 면(宀)자처럼 드러나 보입니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침대도 깨끗이 닦고 있습니다. 상황은 약간 다릅니다만 이렇게 집안의 침대를 비로 쓸어내는 것을 표현한 글자가 바로 '잠잘 침(寢)'자입니다. 잠잘 침(寢)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위의 자형을 보면 갑골문과 금문까지는 집 안에 침대를 나타내는 요소(爿, 널조각 장)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금문대전에서는 비를 잡은 손이 추가됩니다. 소전에서는 사람이 누울 장소를 나타내듯이 침대를 나타내는 요소가 사람 인(人)자처럼 보입니다. 해서에 와서야 침대(爿)가 비로소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자는 집(宀)에서 집과 청소용구인 비(帚), 그리고 집에서 비를 쥔 손(又)을 거쳐 최종적으로 집에서 손으로 비를 들고 침대(爿)를 청소하는 모양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집(宀)과 침대(爿)는 잠을 잘 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잠잘 매(寐)'자에도 보입니다. 이곳에서 '미(未)'자는 음소로 쓰였지요.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한자로 '침이불매(寢而不寐)'라고 합니다. 애당초 침(寢)자가 집과 비(를 잡은 손)만 강조한 것은 옛 형태가 남아 있는 이체자(異體字)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침(寢)의 이체자 앞의 글자는 집과 비를 나타내었습니다. 뒤의 글자는 집과 비를 든 손을 나타내죠. '잠잘 침(寢)'자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글자는 비입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비입니다. 요즘은 웬만하면 진공청소기를 가지고 청소를 하기 때문에 비를 볼 일도 별로 없거니와 저런 짚을 엮어서 만든 비는 특히 보기 어렵습니다. 저런 비는 주로 방을 청소하는 데 썼고 부엌 같은 데서 쓰는 비는 수숫대 따위를 엮어 만들었으며, 마당을 쓰는 비는 싸리나무 등 보다 억센 재료를 엮어서 만들었습니다. 비 추(帚)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위의 글자가 비를 나타내는 글자인데, 쓰는 부분이 위로 손잡이가 아래로 향하도록 된 모양입니다. 비는 집안에서 청소를 하는 가장 중요한 청소용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사용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들이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주로 엄마들이 많이 사용하였지요. 비의 모양으로 보건대 분명히 마당을 쓸 때 쓰는 싸리비입니다. 주변 경관으로 판단하건대 멀리 집 대문이 보이고 동구밖으로 이어지는 길인 것 같습니다. 옆에 볏짚이 수북이 쌓인 것을 보니 금방 타작을 끝내고 뒷 청소를 하는 모양입니다. 옛날에는 추수와 타작 같은 것은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함께 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어머니 주위로는 애들이 청소하는 엄마를 돌며 놀고 있습니다. 청소를 하는 일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거장 장 프랑수아 밀레의 '집을 쓸고 있는 여인'이란 그림(드로잉)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남자들을 그린 그림에는 주로 삼태기로 곡식을 까불거나 무거운 곡식단을 옮기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은데 여인들은 위의 청소하는 일 등과 같은 다소 힘이 덜 드는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비를 든 여인을 나타낸 한자는 '며느리 부(婦)'자입니다. 부(婦)자의 훈은 '아내'라고도 합니다만 며느리가 먼저 생겨난 뜻인 것 같습니다. 며느리 부(婦)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위의 글자는 갑골문과 그 다음에 보이는 형태가 추(帚)자와 녀(女)자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습니다. 이것은 비를 왼쪽으로 해서 쓰느냐 오른쪽으로 해서 쓰느냐 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닙니다. 옛날 처음 글자가 기록되기 시작한 거북 등껍질이나 배딱지의 한 중간을 기준으로 좌우로 대칭되도록 썼던 사실을 반영합니다. 금문부터는 글자의 형태가 고정됩니다. 추(帚)자가 언뜻 음소와도 상관이 있어보입니다만 갑골문부터 있어온 것으로 보아 상형문자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를 들고 청소하는 사람이 며느리인데 단순하게 청소라는 것만 놓고 보면 하찮아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글자는 중요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옛날 집안의 가장 신성한 영역은 사당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시집을 가면 친정집 사당에서는 작별을 고하고 시집의 사당에서는 새 식구로 조상의 영령에게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새 식구로 살다가 집안의 풍속을 익히고 비로소 그 집안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다시 사당에 고하고 사당의 청소라는 중요한 일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한 가문의 종부(宗婦)쯤 되어야 사당에 출입하면서 청소를 하거나 아니면 청소하는 일을 감독 관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를 들었다고 해서 서양처럼 집안 청소 같은 허드렛일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런 사실을 모두 문자가 생생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
첫댓글 사월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며느리 부자의 비 추자 부분을 열쇠 뭉치(집안의 살림을 담당하는)로 해석하는 분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설명하곤 했는데...
선생님의 설명으로 사당을 쓰는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 며느리라고 하는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을것 같아
앞으로 선생님의 설명을 인용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