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라씨엔아이 김동환(50) 사장. 중소기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집안 몰락으로 중졸 학력에 그쳤지만 발명에 매진, 현재 특허 등 280여개의 지적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1994년 발명한, 볼펜 끝에서 불빛이 나오는 ‘반디펜’은 해외에서 더 유명한 히트상품으로 김동환 사장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김 사장은 영업용 택시운전 등을 전전하다 1987년 단돈 4만원으로 경찰용 가스총 판매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반디펜’이 국내외 발명상을 휩쓸면서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로 올라서는, 인생 대역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처절한 실패담’을 들고 나타났다. 정부 말만 믿고 각고의 노력끝에 도로 표지병 신기술 개발에 성공했으나 주 수요처인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외면으로 나락으로 추락한, 10년 세월의 분투기를 고스란히 옮겨담은 책을 펴낸 것. 책 제목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국민은 심장이 멈춘다’ 도 심상치 않다. 관납 물량이 많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정부와 공무원에 직격탄을 날리는 책을 낸다는 게 어디 가당한 일인가.
김 사장은 평소 책을 쓴다면 남들처럼 은퇴할 무렵 그동안의 경험을 담은 ‘특허로 성공하기’, ‘중소기업에서 강소기업으로’ 등의 제목으로 자신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성공담을 담담히 적어 후배 중소기업인들에게 반면교사로 삼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정부의 신기술 지원법만을 믿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세상에 나온 중소기업들의 신기술과 기술혁신 제품 1000여개가 제 자리를 못찾고 사장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펜을 들었단다. 그는 이 책에서 발명가로서 자신의 인생역정도 담았지만 상당 분량을 중소기업과 관련한 정부 정책과 복지부동 공무원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그가 전하는 사연은 이렇다. 지난 1999년 정부는 고부가가치 기술을 국가의 핵심 역량으로 삼아야 한다며 신기술 개발 지원책을 발표했다. 그 중 하나가 ‘건설 신기술 지정 제도’.정부가 인정하는 신기술을 개발하면 건축물 설계 때 의무적으로 정부가 인정하는 신기술 개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 사장은 사업 아이템을 찾기위해 어림잡아 100편 이상의 논문을 탐독했다. 정부가 구매를 일정 부분 책임진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민간보다는 공공부문 쪽이어야 했다. 그러다 찾은 게 도로 표지병. 야간이나 비가 올 때 차선을 표시하기 위해 차선에 못처럼 박아둔 표지다. 의외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안 돼 있고, 제대로 된 상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언뜻 보면 간단한 제품이었지만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안전’을 보증하는 제품이어야 했기 때문에 수많은 실험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꼬박 3년이 넘은 2001년 4월, 마침내 신제품을 내놓았다. 다음해인 2002년 과학기술부의 국산신기술인정(KT)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건설교통부의 건설기술지정(CT)을 받았고, 2005년에는 산업자원부의 신제품인증마크(NEP)와 환경부의 환경신기술지정(ET: 환경마크)까지 받았다.여기에 중소기업청이 주는 동종 제품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인정하는 제품에 주는 ‘성능 인증’도 받아냈다. 기존 표지병의 문제점인 도로에서의 회전 및 이탈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데다 디자인도 뛰어나 도시 미관을 살리기 때문.그러나 현실과 법은 너무 멀었다. 문턱이 닳도록 지방자치단체를 드나들었지만 공무원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 표지병이 성능과 가격으로 결정되는지 아십니까?”라고 되물을 땐 관납의 ‘흑막’과 부패고리에 절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3무정신(무식.무소신.무비전)으로 무장한 공무원들 앞에서 법과 원칙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만난 공무원을 세분해 복지부동형, 무소신형, 물타기형, 벽창호형, 동정(김빼기)형,학자형, 조폭형, 배째라형, 위원회형, 읍소(엄살)형, 만석꾼형,검사(조사관)형, 바쁘다형, 이성계형, 선조임금형, 크레믈린형, 책임떠넘기기형, 돈키호테형, 해바라기형, 탐관오리형, 내일형,예산타령형, 쪽박깨기형 등으로 설명했다. 바로 기업인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공무원들이다.
이 가운데 이성계형과 선조임금형이 재미있다. 이성계형은 위화도에서 회군하면서 최영 장군에게 우기(雨期) 불가론 등 4가지 이유를 명분으로 돌아와 정권을 잡은 것을 빗댄 것으로 그럴듯한 이유로 회피하는 것을 말한다. 또 선조임금형은 재임 32년 동안 “왕 못해먹겠다”는 뜻을 23번이나 내비치면서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벗어나려 한 것을 비유했다.
김 사장은 이런 공무원들을 만나며 자신의 처지가 ‘초상집 주인없는 개’ 신세 처럼 여겨져 한때 우울증과 고혈압에 시달리기도 했단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미국의 쉬들란 교수는 ‘좋은 기술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기술패권주의가 대세인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기술우대 정책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하루 지나면 새 대통령이 등장합니다. 새 정부 아래서는 저 처럼 정부말만 믿고 10년 가까운 세월을 피멍이 든채 견뎌야 하는 중소기업인이 더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호진 기자(mhj@heraldm.com)
======================================= ! ! ! =======================================
공무원 마케팅 7계명을 미리 알았더라면~. 정부와 결혼은 하되, 사랑은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