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사찰순례지는 서울 조계사와 길상사 입니다. 조계사(曹溪寺)는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과 종회사무처(宗會事務處)가 본부를 두고 있는 포교전법도량(布敎傳法道場)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의 직할교구 본사이다.
조계사는 이전의 중동중학교 자리에 있었던 각황사(覺皇寺)를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은 것이다. 1910년 전국 승려들의 의연금으로 창건한 각황사는 원흥사(元興寺)에 있던 조선불교중앙회무소(朝鮮佛敎中央會務所)를 옮겨 왔다.
1915년초 포교와 교육사업의 일원화를 위해 각황사에 30본산 연합사무소를 설치하였고, 1922년 1월 조선불교선교양종 중앙총무원을 설치했으나, 같은 해 5월 조선불교선교양종 중앙교무원이 설치됨에 따라 각황사 안에는 상반된 두 개의 종무기관이 존립하게 되었다. 1925년 총무원과 교무원은 타협을 보고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으로 통합되어 통일적인 중앙 통할의 종무기구가 세워졌다.
1929년 1월 3일 104명의 승려가 각황사에 모여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를 열어 종헌을 비롯한 교무원 규정· 교정회법(敎正會法)· 종회법(宗會法) 등을 제정하였다. 1937년 3월 각황사를 현재의 자리로 옮기는 공사를 착공하여 1938년 10월 준공한 뒤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절이름을 태고사라고 하였다.
그 뒤 불교계의 중심 사찰로 명맥을 이어 오다가 1955년 불교계의 정화운동이 일단락된 뒤 태고사를 조계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대한불교조계종의 행정 중심 사찰이 되고 있다.
조계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덕왕전(德王殿)· 불교회관· 불교정화기념관 등이 있다. 대웅전은 1910년에 건립된 법당으로, 크기는 조선시대의 왕궁 건축과 비길 만하지만 그 양식은 조잡하여 미술적 가치는 별로 없다. 다만, 문(門)의 조각과 사면조각(四面彫刻)이 특이하며,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다.
법당 뒤뜰의 불교회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의 현대식 콘크리트건물로 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한국청년불교연합회· 성자 이차돈선양회· 전국신도회· 군법사단(軍法師團)· 중앙종회사무처(中央宗會事務處)· 불교신문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등이 있다.
그리고 2층 건물인 불교정화기념관(佛敎淨化記念館)은 1955년의 불교계 정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57년에 건립한 건물로, 조계사 사무실과 포교원, 승려들의 숙소로 쓰고 있다.
그 밖에도 종각· 범종· 사리탑비와 7층석탑 1기가 있다. 1층 목조건물이었던 종각은 1973년 8월에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징하여 2층 6각으로 개축하였다. 사리탑비는 1930년 스리랑카의 달마파라(達摩婆羅)가 부처의 진신사리 1과(顆)를 가져와 승려 대표 김금담(金錦潭)스님에게 전해준 것을 기록한 비명이고, 7층의 석탑은 달마파라가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이다.
또, 경내에는 수령 약 500년으로 추산되는 백송(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과 수령 약 400년의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길상사(吉祥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며,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사찰이다. 또한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이다. 길상사는 예전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로, 대원각 주인이였던 길상화 김영한님에게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던 대지와 건물을 시주 받아 1997년에 개원하였다. 처음 1985년에 김영한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희사해 절을 짓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법정스님은 이를 간곡히 사양하였으나, 김영한은 10년 가까이 법정스님을 찾아와 끈질기게 부탁했고 이에 법정스님 또한 이를 받아들여,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여 처음 사찰이 되었고, 초대 주지로 현문스님이 취임하였다.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재등록되었고 같은 해 2월 14일에 초대 주지로 청학스님이 취임하였다.
김영한은 평생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에는 식사를 하지 않았고, 길상사에 기부된 김영한의 대원각 재산은 시가 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영한은 '1000억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대답했다고 할 정도로 백석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1999년 11월 14일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해를 눈이 오는 날 길상사 경내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길상사 경내의 길상헌 뒤쪽 언덕에는 김영한의 공덕비가 세워졌다.
사찰의 창건주였던 법정스님은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고, 김영한 사후에도 길상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었으며,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8세(법랍 54세) 로 입적하였다. 또한 길상사의 개원법회가 열리던 1997년 12월 14일에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법회에 참석해 법정스님과 함께 나란히 축사를 했고 법정스님 또한 이에 답하여 1998년 2월 24일에 명동성당을 찾아 법문을 설법하였다. 길상사 경내에는 공덕주 김영한의 공덕비와 함께, 법정스님의 영정과 그 생전 유품들을 전시한 기념관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길상사는 역사는 짧지만 서울 도심권에 위치하여 내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쉽게 들러볼 수 있는 곳이며, 사찰체험, 불도체험, 수련회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도심문화공간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길상사에는 대중들의 정진 수행공간인 ‘길상선원’과 ‘침묵의 집’이 있다. 길상선원은 일반인들을 위한 상설시민선방으로 방부가 허락된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하며, 침묵의 집은 참선은 물론 음악을 통한 명상 등을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정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아울러, 무소유, 영혼의 모음, 말과 침묵, 물소리바람소리,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을 저술하신 법정스님이 계신 곳으로도 유명하며, 파리에 길상사 분원이 있다. 1997년 세워진 길상사는 개원법회가 있던 날, 김수환 추기경이 개원 축사를 하였고, 2005년 5월 15일 부처님 오신날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님들을 초대하여 ‘길상음악회’를 통해 불교와 천주교의 종교를 뛰어넘은 만남을 갖기도 하였다. 또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가 직접 조각한 관세음보살상과 기독교 신자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기증한 7층 석탑을 보유하고 있어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 순례일시 : 2023. 6. 4(일) 07:00 대전세무서 출발
- 순례장소 : 조계사, 길상사
- 순례코스 : 대전(07:00) - 조계사(10:00) - 사시불공(10:00~11:00) - 길상사(11:30~12:30) - 점심공양(13:00~14:00) - 대전(17:00)
- 점심공양 : 길상사 근처 식당
- 순 례 비 : 40,000원
- 입금계좌 : 하나은행 740-910157-83807(정인자) 010-5454-4560
자비행사찰순례단 회장 최종대 합장
조계사 :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44(우정국로 55) ☏ 02-768-8660
길상사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23(선잠로 5길 68) ☏ 02-3672-5945 / FAX 02-3672-5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