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가 고향이면서도 그 유명한 한개마을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참외농사 하는 친구가 참외도 흉년이거니와 마침 단체 관광을 간다해서 한개마을을 가보기로 하였다.
성주읍에서 10여분의 가까운 곳이라 금방 도착하였다.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백천강을 앞에 두고 병풍같은 뒷산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자리잡은 한개마을.
성산이씨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대쪽같은 선비들을 많이 배출한 명문집안이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경상도 3대 마을로 유명하다고 한다.
주말 오후 늦은 시간이라 아주 한적해서 여유가 있다.
한옥은 기와집과 대청마루와 부속건물들이 많지만 여기는 70호중 절반 정도가 거주하는 곳이라
대부분 집안 출입이 어렵다.
하지만 흙과 돌과 기와로 만들어진 담벼락 구경도 아주 볼만하다.
이 집은 넓은 마당과 기와집이 아주 시원한 느낌이다.
돌담을 보면 모두 다른 느낌인데 어떻게 저리도 이쁘게 쌓았을까 생각해 본다.
기와집과 멋진 돌담길을 돌아서니 초가집도 아주 정겹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대감댁, 진사댁, 초시댁, 머슴집(?) 골고루 있었으리라.
역시 돌담에도 오랜 역사의 흔적들이 잘 묻어난다.
나도 돌담 쌓는 법을 배우고 싶다.
좀 넓어진 길이다.
아마도 대감님 댁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우측에 담너머로 기우뚱 감시하는 나무의 자세가 재미있다.
월곡댁, 옹와종택, 교리댁, 한주종택, 도동댁, 극화고택, 하회댁 표지판이 보인다.
한개마을은 무슨 벼슬은 모두 감추고 순수하게 친정동네를 택호로 하는 겸손함이 있다고 한다.
보리수 열매가 잘 익어서 4알을 따가지고 두 누님께 두알씩 맛보게 드렸다.
기와돌담길에 중앙통로가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다.
때가 때인지라 잘 익은 살구나무가 담 밖으로 뻗어있다.
욕심 같아선 가지를 흔들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떨어진 살구 몇 개를 주워서 맛만 보았다.
실지로 살구는 따서 먹으면 시큼하기만 하고 떨어진 넘이 달다.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차리는 것처럼 정갈한 느낌의 골목이다.
조선시대 집성촌 고을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듯한 초갓집....
건축목공기능사 자격증 보유자로써 목재들의 다듬기와 결합부분을 관심있게 관찰해 본다.
자연석으로 된 디딤돌도 아주 멋이 있다.
예전에 식객들과 아이들이 풀방구리 드나들듯 했다면 마당에 풀은 하나도 없었을 터인데.....
건축학에서는 흙과 돌의 결합이 가장 단단하다고 하였다.
그 아래 핀 저 꽃은?
갑자기 어느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가 소환이 된다.
유월에 맞게 키도 듬뿍 키우고 꽃자락도 멋지게 달았다.
구부러진 목재를 저렇게 멋지게 연결하신 목수님은 누구실까?
지금은 호젓한 이 골목이 조선시대에는 어떤 이들이 많이 다녔을까.
소슬대문이 크게 보이니 이 집은 분명 어느 대감님 댁이겠지만 택호가 무엇일까?
가지런한 기와랑 서까래가 정겹다.
돌로만 쌓은 담벼락이 대나무와 잘 어울린다.
담장 뒷길은 좀 어수선하지만 집안의 거대한 소나무의 위용이 대단하다.
저 긴 장대는 무얼 하는걸까?
한적한 숲길도 나오고....
뽕나무가 있길래 하나하나 따서 한입에 톡 털어넣었다.
달콤함이 온 몸으로 퍼진다.
큰 바위와 대숲이 잘 어울린다.
담양의 소쇄원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선비의 고을이라는 느낌은 확실하다.
도랑 건너편의 작은 주택은 누가 주인이었을까.
밤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밤꽃 송이가 엄청 큰걸 보니 밤송이도 주먹만 하겠다.
최근 새로 쌓은 듯한 담장.
오랜 세월의 풍파를 어루만져주는 담쟁이.
담쟁이 덩쿨이 멋지다.
여러 형태의 석축과 흙담들.
마을 공동우물 자리인 것 같다.
온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빨래도 하고 수다도 떨었을 듯....
시골집은 초가가 역시 운치가 있다.
매년 짚으로 다시 엮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동글동글한 자연석이 이뿌긴 하지만 시멘트로 쌓아서 약간의 아쉬움이.....
항아리는 언제 봐도 정겹다.
저 속에는 주인장의 어떤 작품이 들어 있을까.
이건 거의 내 수준의 돌담..... ㅋㅋㅋ
한바퀴 돌고 나오니 대문 틈에 대문과 같은 색깔의 커다란 개가 낑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