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海南) - 한반도의 최남단 땅끝
고산윤선도유적[孤山尹善道遺蹟] 해남읍 연동리 82번지 일대
이곳은 조선조의 문신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윤선도(1587-1671) 선생의 유적지이다. 선생은 광해4년(1612)에 진사(進士)되고, 4년후 성균관유생으로서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이 일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 향리(鄕里)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이곳 유적지에는 선생이 시문에 열중하던 해남윤씨어초은공파 종가(宗家)의 고택(古宅)과 녹우당(綠雨堂)(사적 제167호), 그리고 그의 선조 어초은사당 외에 고산사당 및 추원당(追遠堂)이 있고 유물전시관에는 윤공재자화상(국보 제240호) 등 소중한 유물이 있다. 뒷산 중로에 있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 241호)은 약 500년전 선생의 선조가 이루어 놓은 수림(樹林)으로 알려져 있다.
공재윤두서[恭齋尹斗緖]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이다. 그의 아들은 윤덕희(尹德熙)이고 그의 외손자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다. 그는 시·서·화에 두루 능했고, 유학과 경제·지리·의학·음악 등 여러방면에 박학을 추구하던 학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실학자였던 성호 이익(星湖 李瀷)과도 깊은 친분을 맺고 있었다. 윤두서가 46세가 되던 1713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해남으로 이주하였다가 2년후 사망하였다. 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현재 그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을 들 수 있다.
대흥사[大興寺] 삼산면 구림리 766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三災)가 미치지 못해 만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이라 하여 그의 유물을 이곳에 보관토록 한 명당 터다. 사찰 안에 있는 유교 형식의 사당인 표충사는 1789년에 건립됐으며 서산대사와 그의 문도인 사명(四溟)대사, 뇌묵(雷黙)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 법당에서 동남으로 오솔길을 30분쯤 걸어 들어가면 차의 명인이자 거장인 초의선사가 정진하던 일지암(一枝庵)의 옛 터가 있다. 대흥사 느티나무(사랑나무 암,수) 소원과 사랑을 이루어 준다하니 기원해보세요
땅끝마을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全圖)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우리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니, 역사 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명량대첩축제
1597년 음력 9월 16일에 이순신이 거느리는 조선수군 13척은 울돌목 즉 명량에서 일본 수군 133척과 접전을 벌여 그 중 31척을 격파하고 대승을 거둔 세계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리를 거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기리는 축제로, 2005년 전라남도 해남군이 ‘명량대첩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10월 해남군과 진도군이 명량대첩축제 통합추진을 합의하였고, 2008년 3월 재단법인 명량대첩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으며, 2008년 10월부터 해남군과 진도군이 공동으로 축제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해마다 10월 초순, 3일간의 일정으로 명량대첩 기념관광지인 해남군의 우수영국민관광지와 명량대첩 현장인 울돌목(명량해협) 근처에 있는 진도군의 녹진국민관광지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주요프로그램(명량해전재현·제례의식·소다섯마리 큰잔치·난장콘서트·평화행진길놀이·삼도수군통제사 입성퍼레이드·해군 군악대/의장대 공연·수문장교대식·강강술래대회·위령씻김굿·풍등날리기 등)과 체험프로그램(수병훈련소·함거타기·말타기·신호연·민속 체험과 해양레저·트래킹·하이킹 등), 기획프로그램(명량대첩과 이순신 관련 전시회·영화상영, 장터·특산품관·음식코너 운영) 그리고 각종 이벤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황사[美黃寺] 송지면 서정리 산247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749년(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우수영국민관광지[右水營國民觀光地] 문내면 학동에 있는 명량대첩 기념관광지.
임진왜란 때 최대의 전과를 올린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86년 해남군에서 해전이 벌어졌던 명량해협을 국민관광지로 지정하고 1990년에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공원에는 명량대첩탑·명량대첩비·어록비·충무공유물전시관 등의 시설물이 있다. 공원내 전망대에 서면 명량해협과 진도대교를 비롯하여 객사·토성·전적지 등 당시의 전투 상황을 알 수 있는 상징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에 충무사·울돌목·진도대교 등의 관광지가 있다.
명량대첩[鳴梁大捷]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 13척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 133척을 쳐부순 해전이다
조류생태관 황산면 우항리 201-1
철새들의 천국! 해남은 간척지의 기온이 따뜻하고 넓은 농토와 바다갯벌이 오염되지 않아 먹이가 풍부하여 철새들의 새로운 서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생태계의 보고(寶庫)인 이곳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가족단위의 환경체험현장이 되도록 하기위해 “조류생태관”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해남배추
해남겨울배추는 전국 생산량의 70%
해남윤씨녹우단[海南尹氏綠雨壇] 녹우당(綠雨堂) 해남읍 연동리
조선 중기의 문신 윤선도(尹善道)의 고택(故宅). 해남의 상징적인 고건축물의 오랜 역사의 흔적은 1543년경에 고산 윤선도가 거주 하면서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5백년 된 늙은 은행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 녹우당도 이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비오는 것과 같다하여 녹우당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땅끝권 도솔암 → 녹색농촌체험마을(북평동해) → 어촌체험마릉 → 땅끝조각공원 → 해양자연사박물관 → 땅끝마을(전망대) → 송호해수욕장 → 중리허준촬영지 → 중리신비의바닷길 → 달마산미황사 → 군곡리패총 → 백포리윤두서가옥 → 초호윤탁가옥
우수영권 고천암 철새도래지 → 우항리공룡화석지 → 화원요 → 충무사 → 우수영성지 → 우수영관광지(명랑대첩공) → 화원관광단지 → 보해매실농원 → 산이진산청자도요지 → 당두철새도래지
두륜산권 옥녀봉토성 → 윤선도유적지 → 대흥사 → 금쇄동(수정동, 문소동) → 화산풍혈 → 방축리지석묘 → 연정리지석묘 → 고정희생가 → 김남주생가
화강암이 수백만 년 세월동안 풍화되어 황토의 땅, 해남을 이룬 것이다. 황토를 가라앉힌 물, ‘지장수’를 이용하여 간장, 된장 등의 장류를 담가 먹는 이승희 씨. 해독 효과가 있는 지장수로 담근 장은 우리 몸에도 좋을뿐더러 관리도 쉽다. 소에게 사료와 함께 황토를 섞어 먹이는 한우 농가. 흙집이 대부분이던 시절, 소는 바닥이며 벽의 황토를 핥아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황토에는 미네랄 등 사람과 동식물에 유익한 성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