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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45차 산행]
○ 일 시 : 2014. 10. 25(토요일)
○ 산 행 지 : 고흥 거금도 적대봉
○ 도상거리 : 5.22km
○ 소요시간 : 2시간14분(10:12~12:26) [휴식시간 포함]
○ 누 구 랑 : 직장 단합대회
○ 산행코스 : 파성재주차장~샘물~마당목재~적대봉[왕복 원점회귀]
○ 직장 단합대회로 고흥 고금도에 있는 적대봉을 올랐습니다. 산행이라기보다는 관광과 역사탐방을 겸했기에 짧은 산행이었지만 매일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과 허물없이 서로 교감을 나눌수 있는 산행이라 나름대로 즐거웠습니다.
오늘 일정은 적대봉 등산을 하고 나서 거금대교를 거쳐 소록도관광, 그리고 정걸장군 유적지 탐방 등 빽빽한 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집에서 개인적으로 가기에는 만만치 않은 거리인지라 금산정사에서 적대봉을 거쳐 몽돌해변 넘어가는 조금 긴 코스가 개인적으로 탐나긴했으나 계획된 일정에 맟춰 일행들과 함께해야했기 때문에 아쉬움도 조금 남습니다. 다음에 시간내어 이 코스로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가족여행이라면 파성재주차장~적대봉 코스를 산행 후 자가용을 이용 해안일주도로를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거금도]
우리나라 10번째 큰 섬인 거금도는 고흥반도 도양읍에서 남쪽으로 2.3km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소록도 바로 아래 위치한 섬이다.
조선시대에는 도양목장에 속한 마목장의 하나로 절리도라 하였다. 그후 강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897년 돌산군 금산면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고흥군 금산면이 되었다. 큰 금맥이 있어 거억금도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최고점은 적대봉이며, 400m 내외의 산지가 많으나 서쪽과 북쪽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지금은 해안가의 방풍림만이 옛 모습을 겨우 떠올릴 수 있게 하지만 옛 문헌에 의하면 거금도는 조선시대 사복시(司僕侍)에 속한 둔전(屯田)과 왕대산지가 있었고, 선재(船材)의 확보를 위해 벌채를 금지했을 정도로 질 좋은 나무가 많이 자랐던 곳으로 유명하다.
적대봉 주변의 해안 경관도 뛰어나 섬의 동쪽 오천리는 해안선을 따라 조약돌이 널려있는 등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또한, 섬의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익금해수욕장은 수심 2∼3m 속의 해산물이 보일정도로 물이 맑을 뿐 아니라 울창한 방풍림을 배경으로 길게 뻗은 은빛 백사장은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산 아래를 흐르는 물만내는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받고 있으며 박치기왕 김일의 고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 [나들이]앱으로 기록한 GPX화일을 이용해 네이버지도에 오늘 등산한 코스를 표시하였습니다.
↓↓↓ [나들이]앱으로 기록한 통계자료를 캡쳐했습니다.
↓↓↓ [나들이]앱으로 기록한 GPX화일을 [에브리트레일] 홈페이지에 등록하였습니다.
↓↓↓ 들머리가 있는 넓찍한 파성재주차장입니다.
↓↓↓ 주차장에 있는 거금도 등산안내도입니다. 오늘은 파성재에서 마당목재를 거쳐 적대봉을 오른 후 왕복으로 원점회귀하는 적대봉 최단거리코스를 가기로 합니다. 직장 단합대회 행사 일정으로 역사기행을 겸하고 있기에 긴 거리의 등산은 할수가 없습니다.
↓↓↓ 등산안내도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합니다.
↓↓아담한 쉼터도 지나고....↓
↓↓↓ 적대봉방향으로 힘차게 오릅니다. 아직은 힘이 팔팔할때입니다.ㅋ
↓↓↓ 그러나 들머리인 파성재주차장에서 마당목재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30~40분 올라야하므로 땀벅벅에 가파른 숨을 몰아쉽니다.
↓↓↓ 약수터에서 약수 한모금으로 미리 힘을 불어 넣습니다.
↓↓↓ 어찌보면 주전저 형상같기도 한 소원탑입니다. [등산으로 흘린 땀, 건강으로 보답한다]라는 문구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 소원탑 뒤로 아스라이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연도교인 거금대교가 보입니다.
↓↓↓ 소원탑을 뒤로 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갑니다.
↓↓↓ 마당목재입니다.
↓↓↓ 마당목재에서 오른쪽 능선길로 가면 오천마을 몽돌해변쪽으로 갈수 있습니다. 좌측 적대봉 방향으로 조금은 완만한 능선길로 계속 진행합니다.
↓↓↓ 마당목재에 있는 돌탑
↓↓↓ 마당목재에서 가야할 적대봉 정상쪽 능선길을 바라봅니다.
↓↓↓ 지나온 능선길입니다.
↓↓↓ 적대봉이 300미터 앞으로 다가옵니다.
↓↓↓ 드디어 적대봉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은 섬산행인데도 바람이 일지 않아 비록 작은 산이지만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적대봉]
고흥반도의 끝자락 거금도 한가운데 솟아있는 적대봉(積台峰 592.2m)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고래등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산이다.
섬에 솟은 산이면서도 관내(고흥군)에서 팔영산(608.6m) 다음으로 높아 펑퍼짐한 산세와 달리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정상에 서면 바다건너 북쪽으로 고흥반도 천등산과 마복산, 서쪽으로 천관산과 마주본다. 또한 서쪽은 완도, 남쪽으로 거문도, 동쪽으로 여수 일원의 바다와 섬들이 올망졸망 한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날씨가 좋으면 멀리 제주도가 바라보인다할 정도로 전망이 좋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적대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조선시대 왜적의 침입 등 비상사태를 전달해 주던 봉수대는 둘레 약 34m, 직경 약 7m의 규모다.
적대봉 기슭은 또한 조선 때 목장성(牧場城)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소록도, 절제도, 시산도, 나로도와 함께 도양목장에 속한 속장의 하나였던 거금도는 적대봉을 중심으로 30리 길이의 성을 쌓아 말 116마리를 키웠던 세납(稅納)목장으로 전한다.
거금도의 남북을 종단하여 석정리와 어전리를 잇는 임도 곳곳에 목장성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고흥 절이도 목장성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206호로 거금도의 어전리와 석정리 일대에 위치하는데, 절이도(折爾島)는 거금도의 조선시대 지명이다. 이 성은 적대봉(592.2m)과 용두봉(418.6m)의 중간 계곡을 형성하는 부분과 두 봉우리가 연결되는 능선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을 중간으로 나눈 남북방향으로 축성되어 있다.
성은 완만한 구릉이 형성되어 있는 부분의 서쪽 사면 끝자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해안선까지 이어진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세조 12년(1466) 전라도 점마별감 박식의 주청에 의하여 말을 기르기 위해서 절이도 가까이에 있는 선군(船軍)을 동원하여 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축성 당시 절이도 목장성에는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하여 약 800여필의 말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으며, 실제로 성종1년(1470)에는 364필의 말을 방목하고 있는 등 절이도 목장은 조선 전기에 중요한 목장 가운데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중간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축조된 차단성 즉 장성(長城)이며,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섬 북쪽 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하고도 4,652m에 이른다. 너비는 하부 3.2m, 상부는 1.4m이다.
절이도 목장성은 조선시대 초기에 축성된 흔치 않은 목장성이며, 축성시기 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적대봉 일원은 예전 수림이 울창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적대봉 정상에서 사방을 동영상으로 담았습니다.
↓↓↓ 독사진도 박아보고....
↓↓↓ 동료들과 단체사진도 찍으면 뒤쳐진 일행을 기다립니다.
↓↓↓ 정상석보다 조금 높은곳에 원형으로 된 봉수대가 있으며 봉수대안에도 작은 정상석이 있습니다.
↓↓↓ 왼쪽으로 거금도 서북쪽 끝자락인 금진항 그 오른쪽 오른쪽으로 차례대로 거금대교와 소록도, 녹동항이 보입니다.
↓↓↓ 몽돌해변쪽 오천마을 전경......작은 섬은 준도....그 왼쪽으로 시산도가 조망됩니다.
↓↓↓ 지나온길을 돌아봅니다. 완도와 장흥 천관산쪽 조망입니다.
↓↓↓ 뒤이어 올라오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 고흥 천둥산, 마복산이 보이고...
↓↓↓ 봉수대안에서 간단하게 음료수(?)를 마시며 쉬어가는 시간입니다.
↓↓↓ 다시 하산하기 직전에 동료들과 단체 인증샷!!!
↓↓↓ 발걸음도 가볍게 하산시작.....2시간 14분간의 산행을 마칩니다. 휴식시간 20분을 뺀 산행시간은 1시간 54분입니다.
↓↓↓ 다음 목적지인 거금대교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거금대교 1층에 있는 보행도로로 향합니다. 거금대교는 1층은 자전거와 보행자가 이용할수 있는 도로이며 2층은 차량이 이용할수 있는 복층구조의 도로입니다.
[거금대교]
거금대교는 전남 고흥군 금산면 대흥리(거금도)와 도양읍 소록리(소록도)를 연결하는 교량으로 국도 27호선이며 총연장 2,028m로 중앙부분에 167.5m에 이르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주탑 2개가 케이블로 연결된 사장교 형식으로, 총사업비 2,733억원을 들여 지난 2002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9년여만인 2011년 12월 16일 개통했다.우리나라 해상교량 가운데 최초로 1층은 자전거· 보행자 도로이며 2층은 차도가 구분된 복층교량 형식이 도입되었다.
거금대교 개통 전에는 녹동항에서 거금도까지 통행시간이 배로 약30분 걸리던 것이 거금대교의 개통으로 약 5분이면 통행이 가능하다.
↓↓↓ 거금대교에서 산행하였던 적대봉과 마치 푸른 바다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듯한 작은섬을 바라봅니다.
↓↓↓ 거금대교 내부에서 단체사진을 박은 후
↓↓↓ 녹동항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 녹동항 전경입니다. 수협수산물센터에서는 한창 문어 경매가 진행중입니다. 옆 매장에서 1kg에 2만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 식사를 마친 후 소록도 탐방에 나섭니다. 주차장에서 산책로를 따라 수탄장-검시실-감금실-자료관-중앙공원을 돌아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소록도]
고흥반도 남쪽 끝의 녹동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있는 소록도는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부른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직도 약 700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라 여느 관광지의 흥겨움이나 소란스러움은 어울리지 않는다.
녹동항에서 바라보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운 4.4㎢의 작은 섬이지만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이 아름다운 소록도해수욕장과 일제시대 강제수용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이 손수 가꾼 것으로 알려진 중앙공원 등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예전에는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야 했지만 2009년3월2일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자동차로 오갈 수 있는 섬이다.
주차장에서 해변데크를 따라가면 해변을 감싸 안으며 시원스레 하늘을 바라보는 소나무숲과 갯바위들이 멋진 경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가면 한센병 환자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생활자료관과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의 시비,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하나이젠키치 원장의 창덕비 등 소록도의 아픈 역사를 접할 수 있다.
제2안내소 앞에는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자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수탄장이 있다.
한센병환자의 자녀를 강제로 격리해 놓고 병사지대와 직원지대에 있는 이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게 했는데 그것도 전염을 우려해 서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길가에 마주 서서 눈만 마주칠 수 있었다 한다.
실제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다.
최근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찾기가 더욱 쉬워졌다. 단, 일몰 후 출입은 통제된다.
↓↓↓ 소록도 안내도
↓↓↓ 해변가테크에서 바라본 소록도 해변 풍경입니다.
↓↓↓ [애환의 추모비]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습니다.
1945년8월22일, 해방을 맞아 원생 자치권을 요구하던 84명의 협상대표단이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 당했으며 참사 56년만인 2001년12월8일 화장, 매몰된 현장에서 유골발굴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발굴하였다 합니다. 당시 학살당한 현장에 2002년8월22일 상징적인 기념비를 세웠는데 [애환의 추모비]라 합니다.
[소록대교]
소록대교는 녹동항-소록도-거금도를 잇는 연륙교 가설공사 구간 중 녹동항-소록도 1단계 구간의 교량으로 2001년 6월 착공하여 2008년 완공하였으나, 섬안의 연결도로 공사가 지연되어 명절 연휴에만 임시로 통행해 오다가 2009년3월2일 완전하게 개통하였다.
길이 1,160m이고 왕복 2차선으로 이루어진 자정 모노케이블 현수교로서 사업비는 2,960m 연결도로를 포함, 1,652억원이 들었다.
12개의 교각이 설치되어 있으며, 교량 상판을 매단 케이블은 높이 87.5m에 이르는 주탑 2개가 지탱하고 있다.
↓↓↓ 멀리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이어주는 연륙교 소록대교가 보입니다.
↓↓↓ 병원에서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에 모자이크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센병환자를 대상으로 정관수술과 시체해부를 했던 검시실과 1935년 건립된 건물로 일제 강점기에 한센병 환자를 불법적으로 감금했던 장소인 감금실을 둘러 보았습니다. 감금실은 남과 북에 각각 1동의 건물을 나란히 짓고 두 건물 사이를 회랑으로 연결하여 외관상 ‘H’자형 평면을 이루며, 붉은 벽돌로 높은 담을 쌓아 놓은 인권유린의 현장입니다.
↓↓↓ 소록도자료관에는 어린시절 자주 보았던 익숙한 도구들이 눈길을 끌게 합니다.
↓↓↓ 미카엘대천사가 한센병을 물리치는 모습을 형상화 하여 구원을 갈망하며 세운 구라탑입니다.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 사방으로 뻗어 있는 셀수없이 많은 가지가 특징인 반송입니다.
↓↓↓ 안동마을 기적비입니다.
1514년에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후동마을에서 출생하였으며, 30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부안현감, 전라좌·우수군사와 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전라좌수영 경장으로 임명받아 이순신, 나대용 등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정걸장군의 직계 40대 본손이신 정종욱님의 안내를 받아 안동마을 기적비앞에서 정걸장군의 왜곡되고 잊혀져 있던 충절을 배웁니다.
시간관계상 안동사 제당을 보지 못한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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