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셨다. 가정은 사회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이다. 그것은 셀과 같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가장 작고 기본이 되는 부분이다. 가정하면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남편과 아내가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는 데는 부모와 자녀가 없어도 괜찮지만, 없어서는 아니될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이다. 제 자신도 설주 혜주 아빠가 아니라, 아내의 남편이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그와 같이 부모로써 자식을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면 되는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5월 첫 주 어린이주일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라 둘째 주 어버이주일에는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말씀으로 함께 했다. 오늘은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 부부를 통해서 우리 가정의 모습을 보고자 한다.
II.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의 남자와 여자는 불완전한 사람들이었다. 20절!!!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독처함을 보셨다. “...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 “...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20절)” 하나님은 외롭지 않으시다. 그러나 아담은 외로웠다. 아담에게는 누군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배필이 필요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불완전한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도울 사람이 필요하지 않으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완전한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 타락 후는 말할 것도 없지만, 타락 전에라도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불완전한 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소리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고 피조물은 완전치 못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으로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지만,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로서 무엇엔가 의존해야 하며 기대야 하는 존재이다. 어차피 모든 피조물은 완전하지 못했다. 완전하다고 할 때, 그 범위 안에서 완전함을 말할 뿐이다.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이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인격자이다. 인내도 없고 감정도 의지도 연약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고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을 때 하와를 만들어 주셨다. 아담을 잠들게 한 다음에 갈비뼈를 하나 제하시고 그 자리에 살로 채우시며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와를 만드신 다음에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그들은 뗄 수 없는 관계의 부부였다. 뗄 수 없는 관계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불완전한 존재임이 증명되고 있다. 하나는 또 다른 하나가 없이는 갈비뼈 없는 장애자요 다른 하나는 갈비 한근 밖에 되지 않는 존재가 될 뿐이다. 하나님께 뗄 수 없는 꼭 필요한 관계에 있는 것은 없다. 완전하시기에 말이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서로 필요했다. 그래서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한다. 마음도 하나요 몸도 하나이다. 그래서 그 사이는 무촌이다. 거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요즘 보면 아내나 남편을 이름을 부르든지 하는 것이 좋은데, 오빠라고 하기도 한다. 그것은 관계를 아주 멀리 잡는 것이다. 오빠라고 부를 때는 아내를 2촌으로 멀리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하기 위해 나의 완전을 채워줄 갈비뼈를 찾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을 찾지 말라. 완전하면 결혼하겠는가! cf)릭워렌은 완전한 교회를 찾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완전한 교회는 없다. 혹 완전한 교회를 찾았다고 할찌라도 미안하게도 당신이 그 교회에 교인이 될 수 없다. 그 교회는 불완전한 당신을 거부할 테니까... 그와 같이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나를 완전하게 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 사람 역시 나와의 짝이기에 불완전한 사람이다. 그때 결혼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을 발견해 봐라. 그는 나와 결혼할 이유가 없다. 결혼은 외로운 사람이 하고 결혼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뭐를 준비해 놓고 결혼하겠다고 하지 말라.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결혼하라. 결혼하기를 원하는가? 부족한 사람이 되라!!!
예)하남의 한 자매는 얼굴에 큰 점이 있다. 그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아프다. 하물며 그의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이 딸이 어떻게 시집이나 갈것인가 싶어서 말이다. 어느 날 아버님과 버스를 탔는데, 그 자매가 탔다. 아버님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자매를 시집보내기 위해서는 중매를 아주 잘해야겠지요? 그때 아버님 왈, 연애를 잘해야 한다. 그에게 짝이 있는 것이다. 약해 보이지만, 부족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돕는 배필이 있는 것이다.
III. 하나님이 하와를 이끌어 아담에게 붙이신다. 22절!!!
결혼을 하게 된 경위를 들어보라. 모든 스토리는 러브스토리이다. 쉬운 만남이 없고 우연한 만남이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쳐 왔겠는가! 하지만, 그 사람은 많은 사람 중에서 바로 그 사람인 것이다. 내 짝은 그이다. 남자가 적네라고 종종 말을 한다. 남자가 많으면 여러 명 하고 결혼하는가? 내거 하나면 되는 것이다. 그 하나는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22절).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고 계시고 때가 되면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처럼 앞에 데려다 놓으신다. 때가 되면 내 앞에 하나님께서 이끌어 놓으신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내게 이끌어 오시든지 혹은 자꾸 내 몸이 그쪽으로 가게 만드신다. 어떻게 여기 라이프찌히에 와서 사람을 만날게 뭐냐고 할 수 있다. 박창현 이진, 홍순욱 박소희, 조규석 클라우디아, 크리스티나와 데이비드, 변정인 김진경, 한달우 전주희, 김희문 오혜미, 김재준 이유정, 유환희 김지영, 송기준 윤영미 등등. 안될 사람은 안 되고 될 사람은 된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놓으셔야 한다.
예)내 자신도 아내를 만나기 전에 이 사람이 하와인가 확인해 보던 때들이 있었다. 결정적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 다 될 것 같아도 안되는 것이다. 여러 자매들 중에 특별히 눈길을 끄는 한 자매가 있었는데, 예쁘고 착해 보이고 음악을 해서 교회에서 피아노를 친다고 했다. 마음이 서서히 동하기 시작했다.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소개했다. 그런데 이름이 석00자매였다. 안 되려고 하니 그랬지. 제가 아는 한문이 돌석자 밖에 없었다. 돌 석인가요 물었다. 그랬더니 그래요 라고 한다. 나는 정말 이런 성이 있나 하도 궁금해서 정말 돌 석이예요 라고 몇 번 물었다. 사실 나는 궁금해서 물었는데, 그녀는 내가 분명히 맘에 들지 않아 그렇게 하는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채인 것이다. 안 물어도 안다. 아닌 것은 하나님이 안 되게 하신다. 나의 무식함과 센스 없음을 사용하셔서 일이 뒤틀리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끌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 가신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기도하고 나가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그리고는 아내를 만난 것은 제가 필리핀에 잠시 있던 1989년도였다. 20년 전의 일이다. 한국에서 방문하신 부모님께서 저에게 사진 한 장을 밀어 넣으신 것이다. 당시 저는 수년을 사귀다가 헤어진 자매가 있었는데, 마음의 상처로 인해 도무지 장가도 안갈 것 같은 분위기였나 보다. 어머님께서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밀어 넣으신 것이다. 거기에는 카라를 세우고 머리를 올린 아주 도도하게 생긴 여자가 하나 있었다. 나는 첫눈에 만만하지 않는 여자임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내게는 매력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받아 넣었다. 그리고 한 달을 머무시던 가족들이 갈 때에 어머니께서 제가 물으셨다. 남의 처자 사진을 가지고 있으면 어떡하냐 다시 달라고 하신다. 그때 저는 뭐 그런 거 주고 받아요 그냥 가지고 있지요 라고 했다. 그 말은 그 자매가 마음에 드냐는 어머님의 말씀이고 제 말은 맘에 듭니다 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끌어 오시니 제 눈에 하트가 나오는 것이다. 저만 사진을 본 것이 아니다. 그 여자도 나의 사진을 본 것이다. 그 사진은 브라질 축구선수 같은 사진이다. 빠마를 해서 머리가 붕 뜨고 얼굴을 까무잡잡하고... 그런 모습이라할찌라도 하나님께서 아내의 눈을 멀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일이라면 될 일은 사람이 막아도 된다. 하나님이 어느 날 내 앞에 두시는 사람이 누구인가 보라. 우리는 외로워 있고 도울 사람이 필요한 모습으로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이삭이 리브가를 순적히 만났던 것처럼 순적한 만남을 위해 기도하라.
IV. 가정은 세워나가는 것이다. 24절!!!
서로 불완전한 사람들이기에 문제도 많다. 그런데 문제가 많다고 깨뜨리고 나갈 것인가? 그러면 언제나 깨뜨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불완전하고 다르기에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붙어서 함께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4). 내 것이기에 다듬고 사랑하고 감싸주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나 부모, 심지어 아내나 남편까지 언제나 꼭 내 마음에 다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것이기에 좋게 보는 것이다. 부족하고 불완전할수록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세워나가야 한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기에 남남이 아니다.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
가까이 있을 때 정말 웬수가 되는 것이다. 뗄래도 뗄 수 없는 관계이니 원수가 되는 것이다. 뗄 수 있는 관계이면 원수가 될 수 없다. 안 만나면 되니까. 멀리 있는 사람은 나의 원수가 아니다. 멀리 할 수 있는 사람은 원수가 되지 아니한다. 인디나의 꼬뻬 메로씨를 아는가? 남미의 곤잘레스씨를 아는가? 이라크의 모하메드씨를 아는가? 그들은 나와 상관없다. 문제는 이웃이 원수요 가족이 원수가 된다. 성경에서도 가족이 원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웬수야”라고 한다. 너하고 엮어져서 평생을 살아야 하니 웬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지 질투나 증오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질투와 증오는 사랑의 이면이다. 하나님과 우리는 원수 사이가 되었다.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기에 원수가 된 것이다. 이제 주님은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지 알만하다. 아담에게 있어 하와는 정말 웬수 같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아니 혼자 잘 있었는데, 웬수 같은 것이 나타나서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웬수 같은 사람이 옆에 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만났기에 가정은 이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완성되어 있다면 만들어 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만난 사람들은 서로를 세워나갈 생각을 해야지 헤어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아내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가질 것이며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고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그를 다스리게 된다. 아담은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서로 맡겨진 일을 하면서 세워나가야 한다. 부부는 서로 공통의 것도 있지만, 서로 다른 것도 있다. 그것이 서로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이다. 생연분이라는 말을 쓴다. “아무개는 천생연분이야!” 그 말은 서로 맞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잘 사네라는 말이다. 하늘이 맺어주지 아니하고서야 어찌 그렇게 다른데 잘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가정이 깨어지고 있다. 세워나가야지 깨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가정이 세워지지 아니하고 깨어질 때 자녀들이 고통을 받는다.
예) 서울의 은천국민학교에서 4-5학년을 다닌 적이 있다. 한반에 100명씩 있는 학교였다. 거기에 고아원원생이 두 명이 같은 반에 있었다. 애들은 그들을 싫어했다. 조직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그 아이들을 타치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고만장한 아이들이 점심시간만 되면 우울했다. 원장님이 학교에 부탁했는지 반찬과 밥을 그 주의 주번이 늘 책임졌다. 한 학생의 도시락뚜껑을 네게 얻어서 두 곳에는 반찬을 두 곳에는 밥을 가득 챙겼다. 한 숟가락씩 떴다. 그러면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음식의 산이 되었다. 그때 저는 그 아이들을 보았다. 어떻게 느낄까 싶어 본 것이 아니라, 짜식들 먹을 것 줄때는 어떤가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저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 아이들을 보았다. 어떻게 그들이 고아원까지 갔는지 모른다. 보통 우리 윗 세대는 전쟁으로 가정이 깨어졌다. 우리시절의 원생은 가난으로 인해서였다.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어디 있을까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 부모가 봤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요즘은 내 살겠다고 자식들을 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윤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이기주의적인 행복을 위해 가정이 깨어지기도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혼 사유도 많다. 하지만, 가정은 하나 하나 세우면서 풀어나가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V. 가정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공동체임을 알라. 그러기에 그 가정의 무게 중심에는 하나님이 서 계셔야 한다. 가정을 이루고 있는가? 혹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 나의 한 짝을 찾고 있는가? 부족한 자의 모습으로 함께 가정을 세워나가라. 나의 부족을 채울 사람을 찾고 내가 함께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 준비된 때에 내게 이끌어 달라고. 완전한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배우자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a helper suitable for him 이다. 배우자의 축복과 가정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