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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노래
- 순천 가곡마을 산속 음악회 -
2014.03.24
산은 곧잘 노래를 불렀다
짝을 부르는 산비둘기
바위를 보채는 물줄기
생강나무 노란꽃 서성이는 꿀벌의 날갯짓
언제부턴가 사람과 쇳덩이
문명의 깃발 나부끼면서
산은 자폐아가 되었다
별이 서늘한 이마에 바짝 내려온 봄밤
두 여인이 침묵하는 산을 깨웠다
황톳빛 첼로 선율
산수유 빛 피아노 선율이 흐르자
검은 산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산 품에 안긴 사람들도
산의 입술 매화꽃으로 터지는
산의 눈물 별빛으로 쏟아지는
노래를 들었다
첼로와 피아노 선율 깊어갈수록
사람들 몸에서도 노래가 흘러나왔다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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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습니다.
이성부 시인은 봄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 안으면서 " 큰 소리로 외쳐봅니다.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얼마나 그리던 봄이면 사람이 되어 왔을까요
봄을 몰고 오는 것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선봉에 선 장한 것들은 역시
형형색색의 봄꽃들입니다.
산에 들에 정원에 흰눈처럼 펄펄 내리는 매화꽃,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인 듯 앙징맞은 산수유 연노랑꽃,
붉은 눈물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 유행가 가사처럼 봄 바람에 휘날리는 새색시 연분홍 치마같은 벚꽃,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여인 카르맨의 입술같은 진달래꽃 ......
산에 들에 막무가내로 번지는 이 환장할 꽃의 향연이 없었다면 봄은 이토록 가슴 설레지도
눈시울 뜨겁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부자리 박차고 졸린 눈 다시 뜨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아찔한 향기,
봄밤의 매화향기와 라일락 향기가 아니라면 봄날은 그 많은 영혼들이 사랑을 찾아 이 개울 저 들판을
헤매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목덜미를 간질이는 봄바람은 그래서 밭 갈고 씨부려야 하는 절박한 농부의 마음도 휘저어
"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남겨놓고 예쁜 여자 손 목잡고 섬진강 매화를 보러 가게 하는" (김용택/ 봄날)
못된 바람인가 봅니다.
그래서였습니다.
자동차가 사람 걸음보다 느린 남도 매화길 가는 길을 짜증내지 않고 섬진강으로 달려간 것도
봄 바람때문이었습니다.
꽃보다 사람이 더 많은 광양 백운산에서도 속절없이 매화향기에 젖고, 이제 막 불이 붙은 뇌관처럼
장렬한 폭발을 앞 둔 선암사 홍매를 바라보다 눈물이 괸 것도 봄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순천 아담한 문유산 속에 자리한 가곡마을 연주회에서 봄바람은 절정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미 사라진 밤, 머릿 속에만 남아 있는 칠흑같은 밤이 생생하게 다시 살아온
가곡마을의 봄밤,
하늘에는 고층빌딩에서 뿜어내는 허접한 인공 불빛 대신 우주가 켜 놓은 별빛 가로등이 온통 불 밝혔고,
매화향기와 순천만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은 서로 몸을 섞어 천상의 향기를 검은 허공에 뿌려놓았습니다.
그 밤 꽃 향기에 취하고, 송광사와 선암사에서 부처님의 향기에 취한 나는 산속에서 울려 퍼진
피아노와 첼로 선율에 완전히 취하고 말았습니다.
소리가 뿜어내는 향기는 가장 강렬했습니다.
첼리스트 탁윤지 님과 피아니스트 김현정 님이 앙상블을 이뤄 들려 준 선율은 먼데서 어김없이 찾아 준
이 고마운 봄날에 바치는 감사의 노래, 환영의 노래인 듯 했습니다.
보케리니의 첼로 소나타를 시작으로 드보르작, 브람스, 라흐마니노프에 이르기까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를 거쳐 초기현대음악까지 두루 정수를 보여 준 아름답고 열정적인 선율,
여기에다 최영섭 선생님의 '그리운 금강산'과 가곡마을의 주인이신 장은훈 선생님이 작곡하신
'가지에 걸린 하얀 달빛' 가곡까지,
아담한 황토로 꾸민 산속의 연주회장은 온통 봄의 물결이 넘쳤습니다.
은은하면서도 장중한가 하면 고요하면서도 격정적인 첼로 선율과, 청아하고 이지적이면서도
때로는 폭풍이 몰아치듯 열정적인 피아노 선율은 모두 봄을 닮았습니다.
꽃들을 꼬드기는 미풍인가 하면 느닷없이 꽃망울을 얼게 하는 야멸찬 바람,
봄날은 비록 변덕스럽지만 결국은 꽃들을 열어젖히고 깊은 잠에 빠진 나무들을 보채서
눈부신 초록의 싹을 밀어올리게 하는 위대한 창조자입니다.
천리 길을 불편하다 하지 않고 기꺼이 달려와 준 두 아리따운 연주자가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하는 동안, 나는 도대체 이 연주는 누구의 작품인가 골똘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저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는 선율은 여인의 가슴 속에 있었던가, 첼로와 피아노 속에 있었던가,
나는 저 선율이 원래 산 속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저 노래는 산이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 온 봄에 바치는 자신의 노래인데,
두 여인의 손과 두 악기의 소리를 빌어서 부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이면서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돌덩이로 위대한 조각작품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 작품은 본디 돌 안에 있는 것이다. 돌이 조각가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고
조각가는 심부름꾼일 뿐이다." 라고,
본래 장인들이 만들어 낸 세상의 모든 악기와, 위대한 음악가들이 오선지에 써 내려간 아름다운 선율들은
근원을 캐보면 모두 자연에서 온 것들이 아닐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음악가들이나 악기 제작자들은 자연의 소리에서 결정적인 영감이나 소재를
얻지 않을까요?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에서,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했던 명인 우륵은 이렇게 말합니다.
" 북은 가죽의 소리고, 피리는 바람의 소리이다. 징은 쇠의 소리고 목탁은 나무의 소리다."
실제로 흥겨운 국악의 사물놀이 악기 역시 자연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징은 바람소리, 장고는 빗소리, 꽹과리는 천둥 번개소리, 그리고 북은 구름소리를 닮았다는 것이지요.
이탈리아의 작곡가 비발디 역시 그의 최고 걸작 '사계'를 작곡하면서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새들은 즐거운 노래로써 봄 인사를 한다.
시냇물은 산들바람에 상냥히 속삭이면서 넘쳐흐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먹구름이 몰려와 천둥과 번개가 봄을 알린다.
폭풍우가 지난 뒤, 새들은 또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의 '봄'에 나오는 바이올린과 첼로와 플루트 등 악기의 선율은 새들과 산들바람과
시냇물과 먹구름과 천둥, 번개, 그리고 폭풍우의 소리인 셈이지요.
정말 서양의 악기 가운데 피콜로와 플루트는 새소리를 닮은 듯 합니다.
첼로는 유려하게 흐르는 물소리같구요, 피아노 소리도 바위돌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이 들리구요
바이올린 소리는 자작나무 숲을 휘젓는 시베리아의 찬바람 소리 같기도 합니다.
사실 산은 옛부터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으면서 온갖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문명의 이름으로 개발의 명분으로 속살을 마구 파헤치고 허리를 잘라 길을 뚫고
나무를 베어내고 건물을 지으면서 노래를 잃어버린 것 뿐입니다.
1962년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전율합니다.
"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가. 새들의 합창은 사라지고,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인간이 농작물의 생산성을 높인다면서 마구 뿌려댄 비료와 농약 등 화학물질로 인해 새들이 멸종하고
곤충이 죽어가고, 마침내 산과 들은 봄이 와도 노래하지 않는 죽음의 침묵에 이르렀다는 것이지요.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도 마찬가집니다. 사람들이 마구 나무를 베어내고 도로와 터널을 뚫고
콘크리트와 쇳덩이로 마구 건물을 지으면서 산은 한 때 신음했었습니다.
노래를 잃어버렸고 숨결이 거칠어졌고 자폐아가 되어 시름시름 앓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숲속 음악회는 잃어버렸던 산의 노래를 되찾아 준 위로의 노래였고,
한편으로는 산이 봄바람을 타고 세상에 들려 준 회귀와 부활의 노래였습니다.
열과 성을 다한 두 연주자의 공연에 장내를 꽉 메운 관객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았는지
연신 박수를 보냈고, 앵콜을 외쳤습니다
샘물에서 퐁퐁 솟아나는 물방울 소리가 첼로에서 다시 쏟아져 나왔고, 이 아름다운 봄날을 허락하신
신께 바치는 찬송가도 울려 퍼졌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쳐다 본 밤하늘에는 그야말로 우주의 모든 별이 총출동해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아마 저 별들도 은하수 건너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흘러나오는 이 신비한 선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요?
음악을 만들고 노래하기도 바쁠텐데 맨주먹으로 이 아름다운 연주회장과 숙소를 만드신 바리톤 장은훈 선생님과
이종례 실장님께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한 사람의 집념과 열정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 아자르 부피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황무지 프로방스에 수십년 나무를 심어 마침내 기름진 숲으로 만든 양치기가 떠올랐습니다.
언젠가 이곳이 두분이 꿈꾸듯 우리 가곡의 메카가 되고, 음악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한국의 '빈'이나 '잘쯔부르크'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순천으로 가는 버스에 자주 올라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음악만 듣고 이번처럼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밤을 새면서 멀리 순천만 갈대숲에서
불어오는 갯바람 내음과, 동틀 때까지 울어 댈 뻐꾸기 소리와 뻐꾸기 소리에 묻어오는 찔레꽃 내음에 취하고,
박목월 시인의 노래처럼 구름에 달이 가는 소리는 어떤 것인지,
별은 쏟아지면서 내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봐야겠습니다.
그러다 무료하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틀어놓거나 쇼팽의 '야상곡'을 틀어놓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베토벤과 쇼팽에게 詩를 써야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산과 나무와 풀과 꽃과 새와 바람과 구름과 별을 내려주신 하늘에 감사하고,
이 아름다운 자연을 오선지에 옮겨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준 그들에게 바치는 사랑과 존경의 詩를!
- 서울 여의도에서 gofotest -
첫댓글 먼곳까지 오셔서 격려해주시고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글로 감동을 주시니
그 감사함을 무어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순천 가곡마을 일정 후 서울 가곡마을로 이제 올라와 댓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자연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많은분들이
400고지 숲속 생태마을 가곡마을에서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가곡기념관 음악회를 한 달에 한 번 하고 있지만,
청중이 많아지면 서울처럼 많은 음악회를 진행 할 계획입니다.
그 곳 피아노가 업라이트라 연주자들을 초대하기에 죄송하고..
그러다보니 아직은 피아노 독주회를 할 수 없어서 많이 아쉽지만
나날이 순천가곡마을도 발전해서 서울 예술의전당까지 올 수 없는
지방의 계신 많은분들, 자연과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좋은 음악회로 늘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