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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머릿속이 명료하다. 그리고 이름모를 드높으신 구도학인께서 쓰신 빛운반자님의 수행사자후를 읽었다. 특히 심장에 훅..박히는 글이 있다. 반복하여 읽으며 뼈속깊이 뇌속깊이 새겨넣어야 할 존귀한 가르침이다. 옴 아 훔 _()_ 다 차원에서 의식적이 되는 길은 인간의 의식은 49갈래(또는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인간 의식이 순수의식 자체로 녹아 들어갈 때 이는 차원 공간으로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로 들어감을 의미하며 그 곳에서는 본질적 차원(진리)을 파악하기가 용이해 진다.
공부가 깊어지고 각성이 높아진다는 말은 다차원 공간의 중첩현상을 동시적으로 현실 속에서 체험함을 의미하므로 그가 죽음 속에서도 현실 속에서 겪는 것과 같이 의식이 명료함 속에서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각 차원 중 어느 한 차원에 집착할수록 다 차원간의 의식확장은 소외 되고 소외 된 공간은 무의식 공간으로 남게 되므로 무의식적 공간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죽음의 공간이 많다는 말이 된다.
모든 공간 속에서 의식적이 되는 길은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 속에서 얼마나 무집착 무반응을 통해서 한 차원에 집착하지 않고 의식을 확장기키려 또 그렇게 살았느냐에 따라 무의식적 공간이 남지 않게 됨을 말한다.
자신 내면에 나타난 의식적 벽(감정, 상념들)을 녹여내느냐에 따라 벽이 없는 순수의식에 다가서게 된다는 말이다.
결국 다 차원이란 인간의 의식이 설정해놓은 한계이며 벽이고 가상적 벽이므로 얼마나 이런 벽 또는 제한성을 녹여 내느냐에 따라 그 영혼은 다 차원의 공간에 머무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감정의 층을 녹여낸다면 더이상 감정의 차원이란 존재치 않게 되며 지식의 층을 녹여내면 더 이상 지식의 층은 존재치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 덩어리의 의식의 공간만이 존재하는 차원 즉 순수의식의 공간만이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 속에 존재하는 다차원 질료 즉 상념체를 인식 이해 인정하는 만큼 그것이 녹아지고 순수의식 에너지로 변화 되게 되어 더욱 더 진리적 입장에서 창조하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수행이란 바로 이런 벽을 제거하기 위한 삶을 말하는 것이다. 수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탈 열반 이라 말하는 세계로 빨리 다가서느냐 그렇치 못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해탈 열반 득도 이런 말들은 우리의 의식이 다차원의 질료를 모두 녹이고 순수의식 자체 속으로 녹아 들어간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삶을 거울로 이용할 수 있으며 삶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가려져 있는 카르마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삶이란 우리가 전생에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우리에게 다가온 삶의 모습(모든 상황들)은 전생에 내가 그렇게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삶 속에 나타난 나의 모습이 잘못된 것임을 안다면 그 벽을 허문다는 말은 곧 삶을 바꾼다는 말이 된다.
오늘의 현실은 과거의 상념이 나타난 것이요 미래의 현실은 지금의 상념이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그대가 지금(현재)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생각하느냐 무엇을 욕망하느냐는 미래의 현실을 창조한다. < 출처 - 진리 사랑 그리고 수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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