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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8. 설봉에 찾아가 본 적이 있느냐?
[소산(疏山)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서 왜 운문선사는 다른 선사의 일을 거론하실까요? 방편으로 소산스님의 행록을 거론하시는 것입니다. 소산 스님은 그럼 누구일까요? 그 당시 조사선을 만드신 마조(馬祖) 도일(道一)선사의 도반이며 남악(南岳) 회향(回向)선사의 제자인 위산(潙山)선사의 어록집에 등장하는 소산(疏山)스님이 기록에 나와 있다. 한 고을에 선원을 차려 제자들에게 선문답을 하시는 한 선지식이며 깨달은 선사였든 것으로 사료된다.
위산록에 나오는 위산스님과 소산 스님의 선문답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소산 광인(疏山翠人)스님이 참례하러 왔다가 위산스님께서 시중(示衆)하시는 것을 들었다.
"행각(行脚)하는 선객이라면 모름지기 소리나 물질〔聲色〕 안에서 잠을 자고, 소리나 물질 안에서 앉고 누워야만 하느니라."]
여기서 위산 스님이 위앙종을 세운 선원임으로 많은 사부대중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위산스님이 이렇게 향상일구(向上一句)를 던진 것은 색즉시공(色卽是空)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상대성도리에서 색을 들어 색이 없음을 알아차리라고 든진 것입니다. 그럼 왜 허망한 색과 소리를 들어 보여주실까요?
이것은 깊은 현지는 바로 상대인 행각하는 선객들에게 던진 화두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눈밝은 선객이 있었따면 바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상대법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간파하여 그 상대법인 색은 형상이고 소리는 공의 파장인 것인데 바로 가리켜 주면 상대인 선객이 의심을 할 수 있도록 색과 소리를 들은 것이며 “모름지기 소리나 물질〔聲色〕 안에서 잠을 자고, 소리나 물질 안에서 앉고 누워야만 하느니라."]라고 하신 것은 일진법계(一眞法界)를 설하신 것입니다. 색이 있어 색이 아니며 소리가 있어 소리가 아니지만 색은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모이면 형상이 나타나니 이것을 색이라고 하고 소리는 소리가 아니지만 공기의 파장이고 진동인 것입니다.
그러나 소리라는 음색으로 드러나니 소리라고 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형상과 파장이 나와 함께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향상일구에 회광반조 하지 못한 소산스님이 나와 묻습니다
[그러자 소산스님이 위산스님에게 질문하였다.
"어떤 것이 소리나 물질에 떨어지지 않는 소식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상이든 파장이든 다 상은 상 그대로 이고 파장 그대로 각각 보이고 들리는데 어찌 물질에 떨어지지 않는 소식입니까?라고 물었다 이 물음은 소산스님은 모든 것이 자기적 형상과 파장을 느끼고 있는데 어찌 내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반박조로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불자를 번쩍 세우자 소산스님은 말하였다.]라고 하신 것은 여기서 위산스님게 불자를 번쩍 세우자라고 하는 것은 다 형상이나 파장이나 이 불자를 번쩍 드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다 형상이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임의 현상만 변하지만 불자는 있는 그대로라는 뜻으로 비유하는 방편을 베푼 것입니다.
그런데 소산스님은 그 원천인 체를 보지 못하고 움직이는 형상만을 보고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는 소리나 물질에 떨어진 소식입니다."] 왜 소산 스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실까요. 이는 소리나 물질에 떨어진 소식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다 별개로 상은 상 파장은 파장 그대로 독립적으로 그 체성이 없음을 알아차려야 하는데 아직 상이 있다고 생각하니 틀린 말이지만 그럼 여기서 회광반조하여 모든 것이 본래공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되지 안으니 위산스님은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파를 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바로 깨닫지 못하면 내가 한 말이나 소산 스님의 안목이 같지않으니 이렇게 하십니다
[스님께서 불자를 내려놓고는 방장실로 돌아가 버리셨다.]
소산스님이 아직 안목이 없음을 간파한 위산스님은 불자를 내려 놓고 방장실로 돌아가 버리셨다. 이것을 계합이 안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소산스님이 깨닫지 못하고 바로 향엄스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가려 하자 향엄스님이 물었다. "왜 더 머물지 않는가?"] 소산 스님이 깨닫지 못하니 자기의 알음알이 견문각지가 위산스님과는 통하지 않음을 알아차리고 떠나려고 옆에 계신 향언스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가려 하자 향엄스님도 이미 깨달은 스님인데 자기의 아직 안목이 없어 계합하지 못하는 것을 위산스님의 대답이 잘못되였다는 관념이 아직 남아 있으니 또 다른 선지식을 찾아 가야 한다고 떠나려는 소산스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산스님은 대 선지식이요 깨달음을 이루어 창종까지 한 대 스승인데 여기서 다시 다른 선지식을 찾으려 떠나는 소산스님에게 안타까워 "왜 더 머물지 않는가?"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산 스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스님과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자기의 수행이 부족하여 안목이 없음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를 무시하는 아만심이 남아 있었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향엄스님은 깨달음에 무슨 인연법이 있느냐? 깨달음을 얻는 것도 시절인연이라고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투득해야 하는데 핑계를 대고 있다는 것은 상대를 잘못 간파한 자기적 관념일 뿐인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향엄스님은 점잖게 한 마디 하십니다. "무슨 인연을 말하는지 어디 얘기나 좀 해보게."하면서 위산스님과 무슨 선문답을 하신 것인지 모르니 묻습니다.
“소산스님이 이윽고 앞에 했던 대화를 전해주니 향엄스님은 말하였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소산스님이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귀를 세우고 듣는다.
["말이 나와도 소리가 아니고 물질〔色〕 이전이어서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말이 나와도 소리가 아니고”이 말은 말이 나와도 그 실체가 없다는 뜻이며 “물질〔色〕 이전이어서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시어 물질이 색이란 것은 사실 그 실체가 없는 공과 같아서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시어 색즉시공(色卽是空)을 들려 주신 것입니다. 이 말에는 앞에 일진법계를 말씀한 위산스님의 방편에는 알아차리지를 못했느데 이 향엄스님이 말씀하는 말에는 조금 알아림이있었든지 소산 스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본래 여기에 눈 밝은 사람이 있었군요."]라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향엄스님도 이미 깨달은 스님이라는 것을 몰랐는데 아주 자기의 견처를 알아주시며 차제법문을 하니 알아차렸다고 향엄스님을 친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윽고 향엄스님에게 "앞으로는 스님께서 머무는 곳이면 제가 꼭 찾아 뵙겠습니다." 그리고는 떠나갔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소산스님은 위산스님의 선기방편에는 깨닫지 못하고 향엄스님의 방편에는 게합을 하였어 향엄스님은 스승으로 삼고 그 무파비를 배우겠다며 떠났습니다. 소산스님이 떠나고 나서 위산스님이 향엄을 불러 물었다
[위산스님께서 향엄스님에게 물으셨다.
"소리와 물질에 관하여 물었던 그 조무래기 중은 어디에 있느냐?"]
라고 묻자 향엄스님은 이렇게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이미 떠났습니다."]라고 대답함니다 그러니 위산스님이 묻습니다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해보게."
향엄스님이 앞에 했던 대화를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 "그가 뭐라 말하더냐?"]라고 물으니 향엄스님이 이렇게 답했다.
["저를 매우 칭찬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차제법으로 한 말을 해주니 양변의 한 쪽 부문을 치우쳐져 있는 소산스님은 양변을 벗어난 본래공이나 일진법계를 아직 모름을 말해 주니 위산스니미 이렇게 답을 합니다
[스님은 비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그 조무래기에게 봐줄만한 데가 있는가 했더니 원래 그랬었구나. 그 사람은 이후로 어디에 머물더라도 산이 가까이 있어도 땔감을 구할 수 없고, 물이 가까이 있어도 물을 마실 수 없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위산 스님의 말씀은
“나는 그 조무래기에게 봐줄만한 데가 있는가 했더니 원래 그랬었구나.]라고 하신 말씀은 한 쪽 변만으로만 세상을 환화공신(幻化空身)이란 견문각지로 있어 이 허망하고 실체가 없는 것은 알았지만 이 상이 바로 진실여상한 실상(實相)인 줄은 몰랐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그 사람은 이후로 어디에 머물더라도 산이 가까이 있어도 땔감을 구할 수 없고, 물이 가까이 있어도 물을 마실 수 없으리라.” 라고 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이 양변이 그대로 진여 실상임은 보지 못했다는 뜻이니 산에갔어도 산이 허상인줄로 알고 땔감을 구할 수도 없고 물이 가까이 있어도 이것이 허상이다 하여 물을 마실 수 없으니라 라고 하신 뜻은 실상이다 허상이다의 처별심으로 국집하여 이 둘을 회통하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은 모르는 아직 들익은 매실이라고 하는 소리입니다. “물을 마셔보아야 물맛을 안다”라고 하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은 깨닫지 못하고 편견적 견해로 단멸논에 떨어져 있는 사마외도임을 밝혀 준 대목입니다.
위의 선문답은 위산스님과 소산스님의 선문답을 이 납승이 거론 하는 것은 소산스님의 견처를 밝혀 보고자 하는 뜻이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위산스님이 소산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었다. 어디라는 말을 묻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 까요. 그사람의 견처(見處)를 물은 것입니다.
즉 이 스님의 심법계(十法界)에 있다면 이미 깨달은 스님일 것이고 현세의 세속심에 머물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던진 물음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영중(嶺中)에서 왔습니다."] 물론 현 세속심으로 답을 합니다.
영중에서 왔습니다. 라는 과거심이고 지명이 실지하는 실상이라고 하는 것이니 출세간이 아니라 생멸법인 세속심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견처를 알아차린 위산스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설봉에 찾아가 본 적이 있느냐?"]라고 세속심으로 묻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또 세속심으로 답을 합니다.
["찾아가 보았습니다."]라고 함니다. 그러니 이 답을 보고 방편으로 세속심으로 대기설법으로 내려와 다시 묻고 계십니다.
["내가 전에 갔을 땐 이 일이 부족하였는데, 요즈음은 어떠하더냐?"]라고 물은 것은 차제설법이지요 이 스님의 견처에 맞추어 묻는 것이며 사실은 차별법이지요. 그런데 이 스님은 한 번도 회광반조하지 못하고 심법계가 아니 세속법속을 벗어 나지 못함을 맞장구를 쳐 주지 아주 쉬원 쉬원하게 대답을 합니다.
["요즈음은 충분합니다."]라고 아주 다 충분하다는 차별심으로 또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 위산스님은 차별심이 아니 양변이 다 명색이 아닌 출세간 법으로 한 번 물어 봅니다.
["죽이 충분 하더냐, 밥이 충분하더냐?"]라고 지금 여기 무엇이 있더냐 다 지나간 그대 기억으로 대답하고 있어니 그대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모르는 인연따라 묻고 답을 하고 있으니 이것은 다 허망한 물음이고 답인 것이다. 라는 식으로 출세간의 본래공에서 한 마디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본래공에서 하신 위산 스님의 말을 알아차리수 있는 견처도 안목도 없는 이 스님은 무어라 말을 하겠습니까? 이런 세속심으로 출세간에 대한 안목이 없는 것은 깨달음이란 심법계(心法界)인 평등성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스님(운문)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오늘은 운문선사는 그 전등록에 전해 오는 선문답을 예로 들어 보이시면서 그때 나라면 이렇게 대답을 하겠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죽도 충분하고 밥도 충분하다."]라고 하시면서 제법실상(諸法實相)론으로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그대로 평등성지이며 절대경지이며 모든 것은 진실 여상한 진여임을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옛 선사들의 선문답을 듣러면 바로 깨달아야 되는데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선문답은 그 법칙이 다 있습니다.
양변이란 혜능선사는 이렇게 설파 하십니다. 이것이 36대대법(36對對法)을 알아야 빨리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혜능대사의 임종시에 유지로 남긴 대대법을 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혜능 대사는 임종에 앞서 특별히 십대 제자를 불렀습니다. 십대 제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린 이는 당시 29살인 신회 선사였습니다. 대사가 열 명의 제자를 따로 부른 것은 당신이 입적한 뒤에도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돈교법을 올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설법의 핵심과 요령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사의 법문은 곧 삼과법문(三科法門)과 36대법(三十六對)입니다. 대사는 사람과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각각 3과(三科)와 36가지 대법(對法)으로 분류했습니다.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法海), 지성(志誠), 법달(法達), 지상(智常), 지통(志通), 지철(志徹), 지도(志道), 법진(法珍), 법여(法如), 신회(神會) 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 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아,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각각 한 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는 법을 가르쳐서 근본 종지를 잃지 않게 하겠다.
3과(三科)의 법문을 들고 36대(三十六對)를 활용하여, 공(空)에 들어가고 유(有)에 나아감에 곧 양변을 여의도록 하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인 성상(性相)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상대적인 쌍으로 말을 하여 모두 법이 서로 상대적임을 깨닫게 하라. 가고 오는 것은 서로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법을 다 없애면, 다시 오고 갈 곳이 없게 된다.”
삼과(三科)의 법문은 음·계·입(陰界入) 등 세 가지입니다. 음(陰)은 오온(색수상행식)을 가리킵니다. 계(界)는 18경계인 육진(六塵)과 육문(六門) 육식(六識)이며, 입(入)은 12입은육진(六塵)과 육문(六門)입니다.
5음(五陰)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인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의식)이다. 18계(十八界)란 육진(六塵)· 육문(六門)· 육식(六識)이다. 12입(十二入)은 바깥의 6진(六塵)과 안의 6문(六門)이다. 6진(六塵)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형상·소리·냄새·맛·감촉·사실)이며, 6문(六門)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눈·귀·코·혀·몸·뜻)이다.
법의 성품(法性)이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6식과 6문과 6진을 일으킨다.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여 함장식(含藏識)이라고 한다. 생각을 하면 곧 식이 작용하여, 6식(六識)이 생겨 6문(六門)으로 나와 6진(六塵)을 본다. 이렇게 하여 3*6은 18이다. 자성이 삿되면 18계가 삿되게 일어나고, 자성이 올바르면 18계가 올바르게 일어난다. 악하게 쓰면 곧 중생이요, 선하게 쓰면 곧 부처이다.
삼과 법문은 사람의 인식 세계가 안(6입)과 밖(6문)과 중간(6식) 등 모두 18 경계가 서로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을 밝히는 법문입니다. 이어 대사는 36대(三十六對)를 설명합니다. 대법(對法)은 짝을 지어 서로 의지하는 상대적인 법을 뜻합니다. 외부 자연의 물질적 현상에 다섯 가지의 짝이 있고, 언어로 표현하는 법문의 모양에 열두 가지 짝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성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열아홉 가지의 짝이 있으니, 모두 36가지 대법입니다.
외부 자연에서 일어나는 다섯 가지 상대법에는 하늘과 땅, 해와 달, 어둠과 밝음, 음과 양, 물과 불 등이 있습니다. 혜능은 음양과 건곤감리(乾坤坎離) 등 도가의 자연 철학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어 언어로 표현하는 12가지 법의 모양(法相)은 곧 유위와 무위, 유색과 무색, 유상과 무상, 색과 공, 동과 정, 승과 속 등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성에서 일어나는 19법에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愚智), 정과 사(正邪), 생과 멸, 번뇌와 보리, 자비와 인색, 교만과 평등, 법신과 색신, 고요함과 어지러움(定亂) 등이 있습니다.
삼과(三科) 법문이 사람의 분별 인식을 18경계가 모여 일어나는 상대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면, 36대법은 자연 현상과 경전 법문과 자성의 모든 작용 또한 모두 서로 짝으로 의지하는 상대적인 법임을 밝히는 법문입니다. 그러므로 삼과 법문과 36대법의 핵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서로 의지하는 상대적인 법임을 깨달아 마침내 자성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있습니다.
자연현상과 불법의 교리를 천지(天地) 음양(陰陽) 생멸(生滅) 정사(正邪) 동정(動靜) 체용(體用) 등 이원론적인 상대법으로 정리한 것은 그 뜻이 깊습니다. 만물을 하늘과 땅, 해와 달, 음과 양 등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국 민중들의 오랜 관념입니다. 이원론에 익숙한 사람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거나 머물지 않는 지혜를 자연스럽게 터득합니다. 사람들이 불교의 선(禪)에 쉽게 접근하도록 오랜 정서와 관념에 맞게 경전의 뜻을 정리한 것입니다. 대사께서 십대 제자들을 위해 3과 법문과 36대법을 설하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상대성이론이며 36대대법(對對法)을 다 알아차리고 양변이 회통하게 하는 것이 법성원융(法性圓融)이며 이것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이 바로 일진법계(一眞法界)이며 깨달음인 것입니다.
돌~~!!!!!!!!!!!!!!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운문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