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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블랙박스를 찾아서
 
 
 
카페 게시글
자유롭게 글쓰기 ‘高麗(高句麗)’의 독음에 대한 종합추론
카오스 추천 0 조회 179 13.10.02 18:33 댓글 3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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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0.02 19:57

    첫댓글 아니.. 저렇게 긴 장문을 글을 쓸 수 있는 대실력자가 여기 카페에 오시다니요..??
    쿠투넷에 빨랑 가서 거기서 노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ㅋㅋㅋ (뭐 읽어 보지도 않았지만요^^)

  • 작성자 13.10.02 21:20

    이곳에 먼저 올리고 난 다음에 저곳에도 바로 올려 두었으니 아무곳이나 선택해서 '어른스럽게' 논의하시지요...
    불필요한 언급은 '무시'하기로 했으므로,...이것이 마지막 '순리적인 응대'입니다...

  • 13.10.02 21:44

    카오스님/
    오랜만에 제대로 된 님의 글?을 읽게 되어 반갑습니다.
    위 님의 글을 읽다가 드는 의문이 있어 하나 여쭤보고자 합니다.
    님이 주장하시는 바,
    고려와 신라의 國都를 시대별로 정리해 주실수 있으시겠습니까?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지금의 어디어디라는 식으로요...
    님의 주장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서입니다..
    元史의 고려北極出地三十八度少와 맞는가 체크해보려고요...
    위 글에 대한 반론은 나중에 제시하겠습니다

  • 작성자 13.10.02 23:37

    꽁트님>...아직 조금 성급해서 '발표를 보류'하고 있는 문제인데,...굳이 말씀 하시니까...조금 틀리더라도 간략히 말씀드립니다. [다만, 아주 정확한 현재지명의 위치가 아니라 대략 반경 100km 정도의 범위내에 위치해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신라는,...
    1) 지증마립간이전에는 현,산동성중서부에서 몇군데 옮겨다님...
    2) 지증마립간 부터 대략 현,양주시 일대..
    3) 헌강왕때부터는 현,경주...

    왕건고려는...
    1) 대략 940년 이전 : 현,하남성과 산동성의 중간부근(숭산의 동쪽지역?) =제1개경..
    2) 1010년까지 : 현,요하요양 =제2개경
    3) 1010년이후 : 현,황해도 개성=제3개경

    물론, 백제나 고구려도 수차례 이동함

  • 13.10.03 08:37

    카오스님/
    일단, 님의 위 주장을 보니, 바로 지명 비정이 잘못-솔직한 표현으로 엉터리-이라는 것을 바로 알겠습니다..

  • 작성자 13.10.03 09:03

    아, 그런가요?....'엉터리'로까지 평을 하시니 '얼마나 다르길레?'라는 의문이 드는군요....'일단, 간단하게나마 (한두가지라도) 그 이유'나 들어 보지요....그리고 만일 (조금 농담을 섞어서 말씀드리면,)....그 '엉터리가 엉터리가 아닌 것으로 규명'된다면, 그 때는 '님이 엉터리가 되는 것'을 감수하셔야 할 것으로 봅니다....길고 짧은 것은 재 봐야하고, 그 기준이 되는 잣대가 올바른가도 확인하여야 하지 않을가요?....카오스가 보기에 현재의 모든 사학계(강단+재야)는 모두 그 잣대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어디 '님의 잣대'를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주시지요...

  • 13.10.03 09:17

    님이 주장하시는 헌강왕대 현 경주에서 제1개경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경순왕이 신라 경주에서 고려 왕건이 있는 개경으로 항복하러 가는 일정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시면 위 비정이 엉터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으실 겁니다

  • 작성자 13.10.03 16:16

    에?....'꼴랑' 그건가요?....실망했네요.
    누가 경순왕이 제1개경으로 항복하러 갔다고 했나요?....카오스는 그런적이 없는데요?...콩트님께선 아직 젊으셔서 너무 지레짐작이 심하시군요...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말씀만,...'세상을 볼 때 항상 바로 한없이 멀리 올려다 보이는 하늘만 높은 것이 아니라 둘러 보아서 눈에 들어오는 곳 보다 더 먼곳에도 역시 땅이 있으므로, 잘 안보이더라도 땅도 하늘과 같이 한없이 넓고 멀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시기'를 조언드립니다....
    어쨋든, 경순왕은 '고려의 제1개경'으로 항복하러 간 것이 아니며, '고려의 제1개경'에는 '예성강'도 없습니다...그러니 다시 좀 더 깊이 '고민해 보시길'...

  • 작성자 13.10.03 16:27

    조금 '힌트'를 드리면, '예성강[禮成江]'이란 명칭을 잘 음미해 보시면 답이 보입니다. 다만, 고대사서를 접할 때는 반드시 '다각적으로 음미'해야 합니다. 즉, 단순해 보이거나 간단히 찾아지는 답은 거의 항상 '정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고대사서를 쓴 사람들은 콩트님이나 카오스 보다 IQ가 10배는 더 좋은 사람들'인데, 그런 분들이 '절대절명의 절박한 상황에서 수수께끼를 내면서' 아무나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예성강[禮成江]'이란 명칭의 수수께끼에서 최소한 두개의 답을 찾으셔야 하는데, 진짜 정답은 아마 더 찾기 어려운 두번째일 것입니다. 먼저 예성강을 풀어보시지요.

  • 13.10.03 17:25

    카오스님/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935년 기록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꼴랑이 아닐 겁니다.

  • 작성자 13.10.03 22:28

    물론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935년 기록'은 대충 훑어 봤습니다....지금 중국25사 중 사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구당서를 수색하고 있습니다. '도둑님이 내가 도둑이요'하는 경우도 있을까요?...극구 아니라고 하지만, 여기저기에 '펑크나는 곳'이 있어서 결국 '실토'하게 되지요...우리나라 고대사는 '역사학자의 몫'이 아닙니다. '탐정의 몫'입니다. 역사학자라는 분들은 너무 '고고하셔서' 손에 흙을 묻히려하지 않으므로 흙 속에 묻힌 실사를 결코 찾아낼 수 없습니다. 남이 입에 넣어주는 '왜곡사'만 이리저리 꿰맞추어서 밥벌이하고 있는 것이지요...그것도 '권위자랑'하면서요... '예성강[禮成江]'을 먼저 풀어 보시라니까요...

  • 13.10.03 10:22

    현 경주에서 하남성 登封시까지 직선거리로도 1470km입니다...

  • 작성자 13.10.03 16:36

    '하남성 登封시'를 '고려의 제1개경'으로 보시는 어떤 이유라도 있나요?...카오스도 아직 정확하게 찾지는 못해서 콩트님의 조언을 듣고 싶네요....카오스는 대략의 위치를 비정하고 있으므로 아직 정확한 지점은 짚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확한 지점은 '카오스가 지정하는 주제를 기반으로 한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서 확인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 현재의 사학자분들이 일상적으로 발굴을 하게되면, 실제 '발굴작업'은 잘 하는데,... 결론(해석)이 삼천포로 흘러서 '왜곡역사에 끼워 맟춰 버리게' 되니 아예 발굴하지 않는 것 보다 더 못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직선거리보다는 경로'에 대해 연구해 보시길...

  • 13.10.03 17:24

    숭산 동쪽이면 그 위치 아닌가요??
    고려 개경은 당연히 지금의 북한 개성이지만요..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고려가 대륙에 있었다는 망상에 전혀 동조하지 않습니다

  • 작성자 13.10.03 22:01

    현,황해도 개성은 '고려의 제3개경'입니다...

    '망상'은 서로 상반된 주장이 있을 경우, 확실히 틀린 것이 확인된 뒤에 언급하시길...
    ['역사기망'에 속아 오신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 13.10.03 18:43

    카오스님/
    19세기말경 올림픽관련 회의에서 국호의 순서를 정할 때, ‘Japan(일본)’을 ‘조선(Chosen 혹은, 高麗=Corea)’보다 앞세우기 위한 일제의 농간으로 독일식 독음인 ‘Korea(코리아)’를 조선의 영문표기로 확정시킴으로서 현재의 ‘Korea(코리아)’가 국제적인 영문호칭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 라고 하신 위 글의 근거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도 않았던 19세기말에, 그것도 남의 나라 국호를 지 마음대로 좌지우지했다는 근거를 보고 싶습니다

  • 작성자 13.10.03 22:07

    지적하신 것은...별로 본래의 주제와는 무관한 내용이므로 틀리던 맞던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카오스가 여기저기 주어들은 이야기들을 엮은 것이니 적의 감안하시기 바랍니다....'달(高九黎)'를 보시라 했는데,...자꾸 '손가락(Korea-Corea문제)'만 탓하시지 마시길...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면, 심층 연구하셔서 카오스에게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13.10.03 18:39

    카오스님/
    영어식 표기인 ‘Korea(=Corea)'와 ...
    독일식 독음인 ‘Korea(코리아)’를 조선의 영문표기로 확정시킴으로서 .../
    Korea가 영어식 표기란 말씀입니까? 독일식 독음이란 말씀입니까?

  • 작성자 13.10.03 22:07

    잘 모르겠네요...그냥 그럴것이라고 생각해서 쓴 것입니다.

  • 13.10.03 18:42

    카오스님/
    중세국가 왕건高麗’는 변조된 ‘고대국가 高句麗(=주몽高麗)’의 國號字를 결과적으로 계승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그리고 또 초기에는 ‘고리’로 독음되었었지만, 한반도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부터.../
    고려가 한반도로 이주하여 정착했다는 근거도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바로 반론해드리겠습니다

  • 작성자 13.10.03 22:17

    '고려가 한반도로 이주하여 정착했다는 근거'는 '카오스의 보따리의 일부(약5%정도됨)'입니다...그리고 아직 공개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제1개경, 제2개경, 제3개경을 대략 구분해서 말씀드렸으니 나름대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굳이 더 확인하시고 싶으시다면, '보따리를 통채로 풀라'라는 식으로 주문하지 마시고 '실타래 풀듯이 단서가 될 만한 것을 하나하나 단문식으로 질문'해 주시면 가능한한 충실히 답해 드리겠으니 활용하시길... 어쨋든 본문에서 카오스가 주장하는 핵심은 '우리가 아는 고구려인들 스스로의 국호자는 高句麗가 아닌 高九黎였었다'는 것이고 '그 독음도 중국식 독음인 고구리였었다'는 것입니다.

  • 작성자 13.10.03 21:57

    [본문내용 수정합니다]
    본문항목 5. 3) (1)에 포함되어 있었던 .../-강희자전(청)과 그 후속의 자전, 옥편 등 : 麗자를 국명으로 읽을 때는 "離"로 읽는다/...는 꽁트님의 지적을 받아 재검토한 바 적절한 근거를 찾지 못해서 삭제하였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13.10.06 21:45


    [참고 : 麗가 나라이름일 경우, 본래의 음은 '려'가 아니라 '리'였다는 내용의 한자자전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 강희자전은 아니지만, 아마 강희자전을 참조하였었을 것으로 추측은 되지만, 잘 알 수는 없네요...일반적으로 보아서,...한국어에서 "離"의 음을 '리'가 아니라 굳이 '려'라고 강변하지는 않겠지요...]

    아래 글의 댓글[자오지천왕]에 소개되어 있네요...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4&page=1&sn1=&divpage=4&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9259

  • 13.10.07 09:30

    님/
    별 내용은 보이지 않네요.
    그 곳 인용대로라면 麗가 '례'로 발음되어야 하니, 高는 '괴'가 되어 괴구례네요?? ㅋㅋ
    반절이 우리나라 발음사전입니까?? 그렇게도 이해가 안가시나....
    강희자전에
    麗...《正韻》鄰溪切,竝音離。이거나 설명해보시지요.
    그 논리라면 린계절이니 발음이 '례'인 데, 音은 '리'라 했으니..

  • 작성자 13.10.07 13:28

    꽁트님> 참, 답답하시군요....高에 대해서 누가 뭐라합니까?....그 링크로 걸어드린 사전에 麗에 대해서 ‘本音 리’.....라고 되어 있는 부분만을 지적하여 소개드린 것입니다...즉, 한글로 분명히 .../‘리’가 麗의 본래의 음이다/...라고 하고 있으니, 그것을 말한 것입니다. 엉뚱하게 高에 대한 음과...“강희자전에 麗...《正韻》鄰溪切,竝音離。”가 왜 나옵니까?...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13.10.07 13:26

    그리고 또, 설령 꽁트님이 제시하는 강희자전의 내용을 보더라도...해당 글자들의 음을 중국어 자전에서 찾아서 살펴보면,

    [鄰溪切] = [《唐韻》力珍切 = lin ] +[《廣韻》苦奚切 = xi ] = [ li ]로서,
    [ li ]음은 ‘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카오스가 말하는 ‘중국어식 독음’으로 ‘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꽁트님의 지적대로 [鄰溪切]을 [린계절]로 보아서 ‘례’로 보는 것은, 카오스가 말하는 ‘한국어식 독음’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국어식과 한국어식을 각각 구분해서 살펴야 된다고 보는데, 링크한 한국어 한자자전에는 ‘례’가 아니라 ‘리’라고 명기되어 있으니 왜 그런가? 하고 여쭙는 것입니다...

  • 작성자 13.10.07 13:38

    그리고 또 ‘(麗) 竝音離’라고 하고 있는데,... 離자도 중국어 자전에서는 [《唐韻》呂支切 = li ]로 되어 있어서 아무래도 이를 한국어식으로 독음하면, ‘리’라고 해야하는 것이지 ‘려’나 ‘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呂支切]자체에 대한 한국어식 독음도 [려지절]이어서 이래저래 離자는 한국어식이든지 중국어식이든지 ‘리’로 독음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지 ‘려’나 ‘례’로 독음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어쨌든,...‘高句麗’란 문자에서 麗의 독음이 ‘리’인지? ‘려’인지?가 ‘본질문제’가 아니므로 이정도로만 하겠습니다...

  • 13.10.07 13:44

    카오스님/
    본음 '리'가 도대체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건지??? 중국애들이 리로 읽건 말건..
    제가 진작에 알려 드린 사이트 있죠?(위 제글중 보시면 본문 제일 하단에 있읍니다)
    http://www.toegye.ne.kr/dic/dic_first.asp
    여기서 麗를 검색해보세요.
    나라이름 '려' 예시) 고구려 본음 '리'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게 뭐 어때서요??
    본음은 리이지만 나라이름일 때는 려라 읽으라 하지 않습니까?
    글씨 우리나라 한자음이 중국어느시대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의 중국 원래음은 리였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려로 읽었다는 거 아닙니까??
    이제 대동지지의 문구가 이해되십니까?

    離자도 같이 찾아보세요

  • 13.10.07 13:51

    카오스님/
    "물론 여기서는 [呂支切]자체에 대한 한국어식 독음도 [려지절]이어서 이래저래 離자는 한국어식이든지 중국어식이든지 ‘리’로 독음된다고 ===
    문장을 아무렇게나 자르지 마시고 잘 보십시오.
    正韻》鄰溪切,竝音離. 즉, 린계절이라하고 음은 리라 되어 있지 려지절과 음리는 별도의 문장부분입니다.
    단장취의하시면 안되죠...린계절이 음이 리가 아니니 이 반절은 우리나라 독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작성자 13.10.07 13:50

    독음문제는 이제 그만하지요...개미챗바퀴도는 이야기이니...꽁트님이 그 중요도를 아시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예성강'은 풀으셨나요?... 아마, 우리들 이야기의 첫 갈림길이 '예성강'이었었지요?...항상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니 아직 풀지 못하셨다고 하더라도 계속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성강'을 알아야 경순왕이 왕건에게 항복하러간 장소를 알 수 잇게 되어 있으니까요...[건투를 빕니다]

  • 13.10.07 13:52

    예성강은 추후에 찾도로 하고 제1개경의 위치 알려달라고 부탁진작에 드렸습니다.
    열려주시는 순간 님의 비정은 이상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 작성자 13.10.10 11:29

    제1개경?, 이미 말했는데?.....'경순왕의 항복루트' 이외에도 근거가 또 있다는 말씀이시겠군요...당연히 그러실 것입니다만, '우리가 아는 고대역사'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역사스토리'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 경계점이 왕건고려의 건국이므로 '왕건고려의 건국스토리'는 '실사와 허사가 뒤범벅'되어 있으니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즉, 대략 왕건고려의 건국초기에 가까울수록 현재의 통설은 대부분 '허사' 쪽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반도사관이라는 틀 속에서는 실사가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과감히 '반도사관(식민지사관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해부해야만 비로소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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