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자님의 글)
돌아가신 엄마의 영적 체험이 60년이 넘어 기억나는 생각만 전합니다.
막내를 42세에 낳으시고 산후 조리도 못하시며 9식구 옷을 빨기위해
무거운 찹체기에 옷을 담아 이고 방주에 가서 빨아와 널고 들어가셔서
오한이 나며 앓아 5일 정도 의식을 잃었는데~~~
막내동생은 젖이 없어 큰어머니께서 젖동냥을 하러 다니며 아기를 돌보셨어요.
내 기억으로 뒷마당에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려는 상여같은 화려한것이 있었고
고덕면에 사시는 외삼촌도 오시고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엄마가 깨어났어요.
엄마가 어딘가 많은 사람들이랑 함께가고 있었는데 동양인, 백인, 흙인들이
세개의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엄마도 가서 보니 양쪽으로 길고 큰 유리문이 있었고
뒤에는 바다 같이 끝없이 펼쳐진 물 위에 홍두깨 같은 다리가 놓여있는데 엄마 차례가 되어
문이 열리니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며 향기로운 꽃냄새가 너무 좋았는데 하얀옷을 입은 사람이
옆에서서 큰 책을 뒤적이더니 문무작성(엄마의말)이 안되었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고
호통을 치는 소리에 깨어나셨습니다.
그때 우리 나이가 어릴때 엄마가 천국문 앞에서 돌아오지 않으셨다면
우리 7남매의 인생이 어찌되었을지 엄마를 살려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 가족들도 예수님을 다 믿고 엄마가 계시고 할머니가 계신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어머니 께서 80세가 넘어 우리집에 오셔서 3주동안 머물러 계실때 함께
주일예배도 드리고 영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들은 말씀인데 동생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기에 다시 올립니다.
어머니는 영의 세계를 보고 오시고도 그곳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인줄 모르셨고
그 동리 안마을 에는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없었는데 윗마을에 사시는 명자할머니가
부처님이 살려주셨으니 절에나가 빌어야 한다고 해서 얼마동안 우리 7남매 이름을
절에올리고 불공을 드리러 가신 어느날 어머니는 또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를 왔느냐"며
호통하는 소리에 혼비백산 하여 보따리도 챙기지 못하시고 맨발에 밖으로 뛰어나와
철푸덕 주저안고 말았다고 하시며 정신을 차린후 명자할머니랑 내려오셨다고 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놀랍게도 천국문 앞에서 들었던 똑 같은 말씀이네요.
그후 어머니는 다시는 절에 다니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되었어요.
어머니 처럼 지금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 받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6.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이사야 44장 )
(신하자님의 글)
둘째 언니는 카톡을 안하시는데 기억역은 차암 좋으신데 저한테 전화가 왔네요..
엄마가 막내 낳고 얼마 지나서 꿈을 꾸셨대요~
냇가 옆에 방앗간 옆 우리밭에서 엄마가 무우를 뽑고 있었는데 까만쎄단이 길에와서
엄마께 타라고 하신꿈을 삼일 동안 꾸시고 빨래해오셔 오한으로 쓰러 지셨다네요..
그때 엄마가 삼일중 한번이라도 그 차를 탔었다면 엄마는 가셨을지 모르는데 엄마께서
"내가 왜그차를 타느냐며 지금 할일이 많은데" 하시고 안타셔서 살으신것 같아요..
그리고 한달을 앓아누우셨대요..
큰어머니들이 경읽어야한대서 한 세번 정도 하기도 했고 아버지가 예산병원가셔서
왕진 의사도 모셔 오셨고 조가내서 약국하셨던(병국씨?) 그분이 삽교쪽으로 이사갔는데
큰 언니가 찾아가서 그분 모셔와서 그분이 우리집에 몇날 몇일 있으시며 엄마를 일르켜 세우시고
춤추는 것 같이 돌리고 이르키고 하시며 그 분이 고치셨대요..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엄마를 살리셨다고 믿습니다~
어머니의 간증을 들으셨으니 아버지의 간증도 공유 하겠습니다.
저는 결혼전에 완고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로 간절히 아버지의 구원을위해 부르짖으며
기도한적이 있었어요..
아버지집은 예전에 부잣집으로 할아버지께서 독립군들 군자금도 많이 대주시곤 하셔서
정치의 세계를 아셨나봐요..
제가 아버지께 예수님 믿으시라고 예배당에 가자하면 할아버지께서 절대로 당을 믿지말라고
유언하셨다며 예배당(예전에는 교회를 예배당이라 불렀음)도 당이라고 안가신다고 하셨어요..
그때 주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셨어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당은 정치세계의 당이라는것을...
아버지께 그렇게 말씀드렸죠...
아버지께선 너무 유순하사고 맘이 좋으시니 정치세계에 발을 들려놓으시면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게 되실까봐 그러신거라구요..
그후 제가 결혼해서 포항에 내려오셨는데 그때 교회가자고 하니까 따라 나서시고
그 뒤로 고향에 가셔서 일하시면서도 자전거 타고 주일 성수 잘 하시다가 구원 받으시고
천국에 가셨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참고로 아버지께서는 부잣집 막내 아들로 태어 나셔서 서울에 유학가셔서
서울 고등공민 학교을 나오셨고 체신청에 근무하셨으며 큰언니(필순이 엄마)는
서울출생이셨습니다.
평생에 즐겨부르시던 찬양은 새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어머니가 즐겨부르신 찬양은 새찬송가 183장 "빈들에 마른풀 같이 시들은 나의영혼~
입니다.
(신명자님의 글)
아버지 간증을 들으니 어릴적 시골 초가집에서 살던 때가 생각나서...
아버지가 서울 광화문에 사시며 체신청 저금보험 관리국에 계장으로 근무하시다
대동아전쟁으로 예산 집에 내려오신 후 복직을 안하시고 사시다 포목점을 하시며
주일은 언제나 자전거를 타시고 신장로 길을 따라 교회에 나가서 예배 드리시며
세계문학 전집과 한국 문학전집을 즐겨 읽으시던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하신 후
구성진 목소리로 빗소리와 함께 성경 책을 읽으셨을 정겨운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네...
동생! 아버지 소식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