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 제물이 아니라 속죄 제물입니다
최광희 목사
로마서 3:25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표현한 것은 독자들이 오해하기 쉬운 오역(誤譯)입니다. 여기서 ‘화목 제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인데 Strong's Concordance에 의하면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의 첫 번째 뜻은 a sin offering 즉 속죄제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a sin offering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제사’라고 해 놓았습니다. 즉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화해시킨다는 뜻이지요.
Strong's Concordance가 설명하는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의 두 번째 뜻은 the covering of the ark 즉 시은소를 뜻합니다. 여기에 설명을 덧붙이기를 대속죄일에 피를 뿌리는 장소라고 해 놓았습니다.
이 두 번째 의미를 정확하게 번역한 용례는 히브리서 9:5입니다. 로마서외에 신약성경에서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용례는 단 한 곳인데 히브리서 9:5입니다. 여기에서 한글개역성경은 ‘속죄소’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같은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을 로마서는 ‘화목 제물’로, 히브리서는 ‘속죄소’로 번역해 놓았으니 한글개역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오해하기 좋도록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한글개역성경에서 화목 제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곳이 있는데 요한일서 4:10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는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 아닌 힐라스모스(ἱλασμός)입니다. Strong's Concordance에 의하면 힐라스모스(ἱλασμός)는 a propitiation 즉 속죄를 뜻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한글성경에서 ‘화목 제물’로 번역된 두 단어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나 힐라스모스(ἱλασμός)는 모두 화목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하게 하는 제물 즉 속죄제의 제물을 뜻합니다.
그러면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나 힐라스모스(ἱλασμός)가 속죄제 제물이지만 화목 제물로 번역해도 무방할까요? 레위기 3장에서 말하는 화목제의 제물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 가지고 오는 속죄제물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화목제의 제물은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양이나 염소나 소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고 제물의 일부(앞가슴과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드린 후 그 고기를 가족과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제사입니다. 그것은 속죄 목적의 제사가 아니라 감사 목적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화목제의 나머지 고기는 제사를 드린 사람의 가족과 이웃이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화목제는 고기를 나눠 먹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야하기에 비둘기로는 화목제를 드릴 수 없습니다.
반면에 속죄제는 개인이 죄를 지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속죄제 제물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고기 전부를 먹어야 속죄가 됩니다. 이렇게 속죄제와 화목제는 목적도 다르고 제물의 고기를 나누는 방법(대상)이 다르므로 속죄제를 화목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속죄일의 속죄제는 개인의 속죄제와는 다른 특별한 속죄제입니다. 매년 7월 10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먼저 제사장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서 수송아지의 피를 뿌리고 나옵니다. 다음에 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염소의 피를 뿌리고 나옵니다. 그 피는 속죄소 뿐 아니라 휘장에도 뿌렸고 금제단(향단)에도 뿌리고 바깥제단(번제단)에도 뿌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이 땅의 지성소가 아닌 하늘 성소에, 염소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셨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화목 제물이 아니라 속죄제 제물입니다.
대속죄일에 피를 뿌린 속죄제 제물은 아무도 먹을 수가 없고 모두 태워야 했습니다. 이렇게 제물을 태우는 제물과 온 가족와 이웃이 나눠먹는 화목제 제물은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속죄제 제물을 화목제 제물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케네스 보아, 윌리엄 크루이드니어는 로마서 3장에서 화목 제물이라고 번역된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힐라스테리온이라고 부를 때, 구약의 헬라어 역본의 번역자들이 히브리어 카포렛(kapporeth)을 번역하기 위해 스무 번도 더 사용한 헬라어 단어를 사용한다. 카포렛은 성막과 성전에서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의 뚜껑이었다. 레위기 16장에 잘 나와 있듯이, 대제사장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kipper) 희생 제물인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취해서 언약의 뚜껑(kapporeth)에 뿌려야 했다.”
로마서 3:25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각종 번역 성경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새번역과 우리말성경과 허성갑의 '직역성경'은 속죄제물이라고 바르게 번역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구원하는 제물'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번역했고 공동번역은 논란을 벗어나려는 듯 그냥 ‘제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한글 성경들은 모두 개역성경처럼 화목 제물로 잘못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영어 성경 중에 NIV는 a sacrifice of atonement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로마서 3:25과 요한일서 4:10에 표현된 ‘화목 제물’은 레위기의 ‘화목제’와 같은 제사가 아니고 ‘속죄제’와 같은 제사입니다. 물론 '화목 제물'이라고 띄어쓰기를 넣어 '화목하게 하는 제물'의 의미를 담았을 수도 있지만 독자들은 레위기의 화목제로 오해하기 쉽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직역성경이나 우리말성경과 새번역처럼 ‘속죄 제물’로 번역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을 번역할 때 ‘화목 제물’로 표현하느냐, ‘속죄 제물’로 표현하느냐를 결정할 때 그 단어가 히브리어로 카포렛(kapporeth)이고 그 뜻은 언약궤의 뚜껑 즉 시은소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하게 하는 기능 속죄 기능임이 확실해 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화목제의 제물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대속죄일의 속죄제의 제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해결되었으며 이제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엡 2:14). 이렇듯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하게 만드는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참된 샬롬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이야기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