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 바당 냄새가 난다`
오늘은 예전에 먹던 팥죽을 먹으멍,
문득 어린 시절 제주에서 살던 그 시상이 스르르 떠오른다.
팥죽 한 숟갈에 바당 냄새 나고,
부엌 구석에 앉아 있던 우리 형제들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제삿날이면 곤떡, 상애떡, 기름떡은 꼭 올랐다.
그 맛은 참말로 잊히질 않는다.
그런데 제사는 왜 그리 밤 늦게, 꼭 자정쯤 돼야 파제를 했을까.
솓아지는 졸음을 꾹꾹 참아 보지만,
결국은 제삿밥은 고사하고 나눠주는 반도 못 챙겨 먹고
스르르 잠들어부는 날이 허다했다.
아침에 눈 뜨민 제사는 이미 다 끝낭 있고,
“어…” 엉 서러워 울었던 그 시상도
이제 와 생각허난 웃음이 난다.
학교 가민 점심으로 강냉이죽이 나왔고,후엔
잘 솖은 옥수수 빵은 모양은 호꼼씩 달라도
왜 그리 맛있던지.
집에 오민 양푼에 보리밥 한가득 담고
마농지 하나만 있어도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보리밥 물에 말아 마농지 살짝 찢어 얹어 먹으민
그날은 참말로 살판 날이었다.
유채기름 간장에 마른멸치까지 곁들이민
그건 뭐, 말허지 말라.
근데 늘 눈길이 가는 밥상이 하나 있었주게.
아버지 밥상이었다.
계란후라이 하나, 삶은 계란 하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멍
‘저거 조금만 남기민 맛이라도 볼 수 있을 건디…’
속으로 기다려 보지만,
식사 끝난 자리에 남는 건
빈 그릇뿐이었다.
그 허망함은 말로 다 못 허주게.
그러다 가끔, 정말 가끔
아버지 기분 좋아진 날이 있었다.
돼지고기 앞다리나 숭을
5kg 넘게 들고 오는 날.
그날은 우리 집 대박 난 날이었다.
솥에서 고기 삶아지는 냄새가 집안에 퍼지믄
배는 벌써 반은 찼다.
돔배 위에 올려진 고기를
아버지가 썰어 줄 때마다
군침이 꼴딱 넘어가멍
정신없이 먹던 그 맛은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영양이 부족허진 않았다.
바당 덕이 컸주게.
그 시절 바당은 참말로 풍성했다.
얕은 물 속 작은 돌구멍에
대나무 촘대로 만든 낚시바늘을 넣고
보말똥을 끼워
바위 트멍에 쑥 집어넣으민
어랭이, 우럭, 보들래기도
어렵지 않게 잡혔다.
보말은 또 어떠했나.
널부러져 있었주게.
잡은 보말은 작은 깡통에 담고
주운 헌 검정 고무신으로
엉장 속에서 불을 피워 삶아먹던 그 맛.
그 재미는 어른들은 모르는 세상인 거다.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7물, 8물 때였다.
바닷물이 가장 많이 쌀 때민
동네 사람들이 모두들 바릇잡으러 나갔다.
소라는 흔했고,
재수 좋은 날은 전복도 두세 개씩 건졌다.
우리 형제 중엔
경량이 형님이 머정이 좋아
늘 잘 잡아 왔다.
여름 한복판,
마을이 들썩들썩허던 밤의 축제도 있다.
큰 고기들한테 쫓긴 멸치 떼가
순식간에 선창이랑 낮은 해안으로 몰려들 때다.
번쩍번쩍 빛나는 멸치 떼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이
“멜 들었져~~~!” 하고 외치민
그 소리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쪽바리랑 담을 그릇 들고
멜 든 바당으로 우르르 뛰어갔다.
갓 잡은 멜로 끓인 멜국은
뭐 말해사 뭐허겠나.
남은 멸치는 멜젓을 담가
일 년 내내 밑반찬으로 먹고도 남았다.
이렇게 겨울 저녁,
팥죽 한 그릇 앞에서
나는 다시 그 시절 제주로 돌아간다.
가난허긴 했어도
배고프진 않았고,
부족허긴 했어도
웃음은 늘 있었다.
지금은 다 추억이 됐지만,
그 추억 덕분에
오늘도 마음은 따뜻허다.
2025년 1월 3일
강경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