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면발을 찾아서 別味 이색 국수 편
미국인 조리사 앤소니 보뎅은 '셰프'라는 책에서 주방의 비밀을 서슴지 않고 밝힌다. '주말 브런치는 미숙한 조리사가 주중에 남은 식재료를 처분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식이다. 국내에도 남는 식재료를 처분하려고 만들다 보니 '별미 이색국수집'이 된 식당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차별화된 신메뉴가 태어나고 전통음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 떠나보자, 이색 면발을 찾아서.
국물이 이색적인 국수
●구기자의 본고장 청양, '구기자칼국수'
국내 구기자의 67%가 생산되는 충남 청양에 가면 구기자 열매로 담근 술, 한과, 엿, 차, 구기순(구기자의 어린 잎)나물 등을 응용한 음식이 많다. 평범한 관광지 식당처럼 보이는 청양 '구기자광장' 주인은 구기자 한과를 만들다가 색다른 구기자 메뉴 개발에 나섰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구기자칼국수와 냉면이다. 구기자는 붉지만 열매를 우려낸 국물은 노랗다. 구기자칼국수는 구기자를 우려낸 물로 반죽해 노란 호박 빛깔을 띠는 면에 얼큰한 고춧가루 국물을 풀어 쫄깃하고 구수하다.
>> 청양구기자광장: 충남 청양군 운곡면 후덕리 178. (041)943-4305. 구기자칼국수 4000원, 구기자물냉면 5000원, 구기자비빔냉면 5500원.
- ▲ 별미국수는 더이상‘남은 음 식’이 아닌‘이색국수’가 됐다. 맛도 각각 독특 하고 흥미롭다.부산 남포동의 당면국수(왼쪽)와 전남 담양의선지국수.
●기러기 고기가 만든 깊은 육수, '기러기칼국수'
충남 예산에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식당, '기러기칼국수'가 있다. 사업에 실패해 귀향한 주인 부부가 우연히 얻게 된 기러기를 품에 안아 키웠더니 그 기러기가 부모처럼 따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러기 사육농장까지 하게 됐다. 기러기칼국수를 시키면 기러기고기 몇 점과 육수가 전골냄비에 나온다. 육수에 기름기가 많지만 기러기의 지방은 불포화지방산으로 혈액순환을 돕고 콜레스테롤을 억제한다고. 전골육수를 몇 숟가락 떠먹어 맛을 음미하다 살을 건져 먹은 뒤 젖은 칼국수 면을 넣어 끓이면 고급 국수전골이 된다. 마지막엔 부드러운 죽까지 만들어 먹는다. 딸려 나오는 백김치가 시원하고 정갈하다.
>> 신분준할머니 기러기칼국수: 충남 예산군 오가면 신석리 325-21. (041)333-3331. 기러기칼국수 6000원, 기러기전골 25000원부터, 기러기무침 30000원.
●막걸리를 한잔 걸치고 싶은 얼큰함, '모리국수'
식당에 들어갔는데, 벽 어디를 둘러봐도 메뉴가 없다. 잠시 후 부엌에서 인상 좋은 할머니가 다가와 일행을 보고 '두 명?' 하고 다시 들어간다. 이로써 주문 완료. 잠시 후 2인분이라고 믿기 힘든 푸짐한 음식이 담긴 양은냄비가 나온다. 아귀, 아귀 내장, 미더덕, 홍합, 작은 생새우부터 이름 모를 바다생선까지. 콩나물과 국수면이 들어가 푸짐함을 더한다. 날고춧가루 때문에 일반 매운탕보다 더 매워 보이나 막상 그렇게 얼얼할 정도는 아니다. 해산물은 싱싱하다.
옛날 구룡포 일대의 싸고 싱싱한 생선으로 배타는 젊은이들을 위해 푸짐한 국수를 끓여 내기 시작했단다. 연탄불에 끓이던 시절부터 벌써 40년을 넘게 장사한 할머니의 노하우가 알 만하다. 모리국수는 건져 먹는 해물로 막걸리 몇 잔을 너끈히 걸치고도 남는다. 국수가 아닌 해물 양으로 1인분, 2인분이 결정된다. 해물이 떨어지면 그날의 영업도 마감. '모리'는 여러 해산물을 모아서 먹는다는 의미다.
>> 까꾸네모리국수: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957-3. (054)276-2298. 모리국수 5000원, 막걸리 2000원.
●담양장터에서 먹는 '선지국수'
식용 비닐에 들어간 당면 순대가 아닌 선지가 들어간 진한 맛의 시장통 순대가 제대로다. 시골 오일장이 펼쳐지는 담양장터 내 '옛날순대집' 암뽕순대가 유명하다. 암퇘지의 대창(암뽕)에 선지, 검은콩, 찹쌀, 우거지, 깻잎을 넣어 대나무통에 넣어 쪄낸 것이다. 암뽕순대뿐 아니라 돼지육수를 기본으로 한 순대국밥 등 국밥종류가 다양하다. 새끼보(돼지자궁)국밥까지 있다.
이런 기본실력에 추가된 면요리가 '선지국수'다. 뽀얀 돼지육수에 도톰하고 둥근 면이 들어가 있고 선지 덩어리가 푸짐하다. 작은 양은 냄비에 나와서 뜨끈하게 먹을 수 있다. 일반 국수 한 그릇에 성이 안 차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은 영양냄비국수다.
>> 옛날순대집: 전남 담양군 담양읍 담주리 5-2. (061)381-1622. 선지국수 3000원, 대통암뽕순대 1만원, 새끼보국밥 6000원.
면발이 이색적인 국수
- ▲ 위에서부터 예산 기러기칼국수, 대전 두루치기비빔칼국수, 청양 구기자칼국수, 가평 국수호박.
●수저로 떠 먹는 '올챙이국수'
강원도에서 옥수수, 감자, 메밀을 어떻게 하면 밥이나 국수처럼 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다 시작된 음식 중 하나인 올챙이국수. 옥수수 전분으로 5시간 이상 묵을 쑨 뒤 3시간쯤 뜸을 들인다. 그 반죽을 작은 구멍이 수없이 뚫린 그릇에 넣어 바로 찬물에 바로 떨어지게 한다. 그러면 옥수수 반죽이 짤막한 올챙이 모양으로 똑똑 떨어진다. 올챙이국수는 짧아서 수저로 떠먹어야 한다. 어려웠던 시절엔 별미였겠지만 맛난 것이 천지인 요즘에는 맨송맨송한 맛이다. 그래도 양념간장과 김치를 더하면 가끔씩 생각나는 이색적인 맛이다.
>> 여랑식당: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1리 13반. (033)562-0503.
●윤기 나는 투명국수 '당면국수'
당면을 잡채가 아닌 국수로 먹는 지역이 있다. 부산이다. 소박한 국숫집이나 역 구내 분식집 등에서 심심치 않게 판다. 삶은 당면, 당근, 채 썬 노란 단무지, 삶은 부추, 김, 가는 오뎅 등 일상의 흔한 재료가 올라가고 그 위에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 비벼 먹는다. 쪼로록 빨아 넘기듯 먹는 투명한 당면 국수는 간단한 식사나 간식으로 애용된다. 남포동에 있는 오랜 전통의 '할매집회국수'는 스탠드바 구조의 실내에서 회국수 등 여러 국수를 파는데 그중에 하나가 '당면'이라는 국수이다. 이때 멸치육수는 주전자로 따로 주어 맘껏 리필할 수도 있다.
>> 할매집회국수: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2가 15-14. (051)246-4741. 당면 3500원, 회국수 4500원.
●호박 속에서 국수가 줄줄줄, '국수호박'
경기 가평에서는 호박의 속살이 국수처럼 풀어지는 '국수호박'이라는 커다란 개량 호박을 재배해 여름철에 별미국수로 팔고 있다. 노랗게 영근 호박을 푹 삶아 반을 가른 뒤, 찬물에 넣어 겉을 누르면 국수가닥처럼 줄줄줄 호박 속이 나온다. 국수호박 자체의 맛은 큰 특징이 없고 아삭아삭하는 식감을 즐기는 '흉내국수'다. 간장양념을 곁들여서 먹는데 칼로리가 낮고 섬유소가 풍부해 다이어트 식품으로 찾는 이도 있다. 7월 중순부터 한 달 남짓 수확돼 여름 한철에 즐길 수 있다. '초가집'은 서울에서 귀농한 중년부부가 국수호박을 재배하면서 잣국수와 시골밥상도 팔고 있다. 국수호박은 샐러드, 전, 골뱅이무침 등에 넣어 먹기도 좋다.
>> 초가집: 경기도 가평군 상면 행현리 374. (031)585-6597. 호박국수 6000원, 잣국수 7000원.
어쨌든 이색적인 국수
●소박과 소박이 만난 '두루치기비빔칼국수'
대전의 향토음식을 꼽을 때 꼭 들어가는 음식 두루치기. 대전에서는 돼지고기가 아닌 두부두루치기와 오징어두루치기가 일반적이다. 빨간 고춧가루 잔뜩 들어간 볶음이라고 보면 쉽다. 두루치기가 나오기 전 멸치육수에 적당한 조미료 맛이 가미된 국물부터 한 그릇 나온다. 이 국물은 몇 번이고 달래도 좋다.
두루치기가 무척 맵다. 두루치기를 어느 정도 먹으면 사리를 추가한다. 삶은 칼국수 면이 나오면 남은 두루치기를 넣어 색다른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게 된다. 좀 거친 비빈 맛이다. 두루치기는 한 그릇만 시켜도 두 명 이상이 충분히 먹는다. 혼자 가는 사람은 칼국수 면에 두부두루치기가 적당량 올려져 있는 '양념면'을 주문하면 제격.
>> 광천식당: 대전 중구 선화동 52-2. (042) 226-4751. 두부두루치기 7000원, 오징어두루치기 9000원, 비빔사리 1500원, 양념면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