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은 사대주의자"
(연합)(연합)
승인 2000-09-
신문게재 2000-09-07 2면
역사평론가 이덕일씨 국사교과서 평가 뒤집어 '논란'
"그러나 그는 사대부 계급의 이익과 노론의 당익을 지키는데 목숨을 걸었다. 결국 그의 당인 노론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정권을 잡았으나 이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에 불과했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씨(39)가 우암 송시열(1607~1689)에 대한 신화 벗기기를 시도한 단행본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는 그를 혹평하면서 북벌론 자니 소중화론자니 하는 "편벽한 소인에게 주어진 공허한 찬사"를 걷어내자고 외친다.
우암은 독특한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무려 3000번이나 등장하고 있으며 공자와 맹자, 주희를 비롯한 이른바 유교의 대가들만 오른다는 문묘에 사약을 받고 죽었음에도 배향됐고 전국 23개 서원과 9개 사우에 제향돼 지금도 제사를 받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는 현행 중·고교 국사교과서에 잘 나타난다. 두 군데 모두 송시열은 송준길, 이완과 함께 효종을 도와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청을 무너뜨려 삼전도 치욕을 갚자는 북벌정책의 중추 인물로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우암에 대한 이런 평가가 역사에 대한 오도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그는 세 치 혀로는 북벌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북벌을 반대한 인물임을 우암이 남긴 기록과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낱낱이 반박한다.
또한 그가 겉으로 외친 북벌론도 실체를 들여다 보면 삼전도의 치욕을 갚자는 게 아니라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를 따르자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말한 조선이 바로 중화라는 이른바 소중화사상은 조선의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민족의식이 아니라 타인, 즉 명나라 중심 사상에 다름 아니다.
이런 철저한 사대적인 모습이 주희를 너무 치켜 떠받든데 있다고 진단하면서 예송논쟁에서 볼 수 있듯 예학으로 대표되는 그의 유학사상을 반동적으로 해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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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은 사대주의자"
박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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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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