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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는 외길 인생, 전설로 남을 작품들
이번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들의 욕구와 고민이 드러난다. 시니어 스타 ‘이순재, 최불암, 송해, 김혜자’의 공통점은 은퇴를 모르는 현역이라는 것. 5,60년대에 데뷔한 이들은 무려 50여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나이가 들어서도 관록있는 연기력과 자기만의 개성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58년간 연기생활을 이어온 배우 이순재는 64.9%라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던 인기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캐릭터를 그대로 고수하면서도 인기를 얻는 독특한 배우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 가장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당당하고 굽힘 없는 모습이 남성들에게 대리만족감을 주기도 하고, 여성들 입장에서는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남자들의 모습을 반영한 인물이라 큰 공감을 사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얻은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덕도 톡톡히 봤다. “유럽 배낭여행 가시려면 ‘배낭’을 직접 매셔야 한다”는 제작진의 설명에 “배낭? 6.25때 이후로 매본 적이 없는데?”라고 받아치는 이순재식의 유머는 젊은이들까지 사로잡았다. 사실은 유머가 아니라 상황 그대로를 이야기한 것일 뿐이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인생이 전해지면서 젊은이들은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은 삶이 존경스럽다.”며 감탄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외국에 나가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촬영장에 어느 젊은 배우보다 일찍 나와 준비하는 성실함, 꾸준히 운동하며 자기 관리하는 철저함은 세대불문하고 많은 시청자들에게 박수를 받기도 했다.
1967년 데뷔한 이래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사반장>의 수사반장으로, <전원일기>의 아버지 ‘김 회장’으로 안방극장에 자리잡아온 최불암은 푸근하고 서민적인 모습의 ‘국민 아버지’다. 농촌냄새 물씬 나는 <전원일기>의 유명한 OST와 함께 그의 구수한 목소리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친근감을 주며 나래이션으로 참여한 <한국인의 밥상> 등의 프로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힘들고 지칠 때, 언제 돌아가도 따뜻하게 맞아줄 것 같은 그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고향이자 현재는 잃어버린 농촌의 인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니어들은 그에게서 유년시절의 향수를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 프로그램의 마이크를 20년간 놓지 않고 있는 승리자는 바로 ‘송해’다. 30년 장수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일등공신인 그는 1955년 데뷔한 이후 제5대 MC로 <전국노래자랑>을 맡은 후, 6개월간의 휴식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한 자리를 지켰다. 구성진 입담과 재치로 전국을 돌며 시청자들을 웃고 울리는 그의 진행 스타일은 이제 ‘송해 아닌 전국노래자랑’은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25년 출생인 그의 나이는 올해 89세. 아흔을 앞둔 나이에도 어느 젊은이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는 그의 열정은 시니어들에게 나이를 잊게 만드는 비타민 그 자체다.
유일한 여배우로 순위에 오른 김혜자는 우리들의 ‘국민엄마’이자 ‘영원한 소녀’의 양면을 지닌 배우다. <전원일기>, <사랑이 뭐길래>, <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 <엄마가 뿔났다> 등에서 ‘엄마’ 역을 맡으며 잔걱정, 잔소리 많고 사랑 많은 우리네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지만 두 자녀를 둔 본인은 “엄마보다 배우의 역할에 충실한 삶이었다”고 회고한다. 자기 손으로는 빨래 하나 제대로 못하지만 고운 심성만큼은 소녀 같은 말투 하나 하나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배우. 아프리카에 가서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힘쓰며 진정한 ‘국민 엄마’로 거듭난 그녀는 시니어들이 기대고 싶은 푸근한 모성이자 한편으로는 지켜주고 싶은 연약한 소녀다.
이번 조사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 중인 한국 시니어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배나 선배에게 스스로의 욕망과 고민을 투영시켜 바라본다. 이번 조사에서처럼 시니어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인정받고 경제력도 유지할 수 있는 삶”을 꿈꾸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 자기관리를 하고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갈 의지도 있다. 모두가 인기 스타처럼 살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빛나는 별을 발견할 수 있는 삶, 우리 모두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