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처럼 항상 변화 있게, 믿음은 움직이지 않는 산처럼 살고 싶은 나 천혜자 수산나입니다.”
춘천교구 레지오 마리애 60주년 감사미사에서 선교 부문 성공사례를 발표하면서 본인을 이처럼 소개했던 천혜자 수산나 씨를
퇴계동성당에서 만났을 때 기자에게도 이 인사말을 건네며 본인을 소개했다.
수상 소감을 묻자 “제 생애에 제일 영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선교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그 방법도 몰랐습니다. 제 사는 모습이
이웃을, 친구들을, 그리고 가족들까지 하느님 대전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었던 것 같아 기쁩니다”라고 말한다.
“‘나, 천혜자는 씩씩하다’는 좌우명처럼 제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힘들고 어려웠지만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았다는 수산나 씨.
생각지도 못하게 남편이 한창 나이에 사표를 내고 직장을 잃었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로 남편을
지켜봐야만 했다. 큰 아들이 결혼을 한 후 평탄지 못한 결혼생활 끝에 이혼을 하고 마음을 잡지 못해 긴 시간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
봐야했고, 설상가상으로 둘째 며느리가 말기 암 선고를 받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아들과 어린 손자들을 위해서라도 며느리를 꼭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집의 한쪽 방에는 암 투병을 시작한
며느리가, 또 다른 방에는 치매의 시어머니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느냐고 안쓰러워했습니다.
솔직히 정말 힘들고 어려웠지만 ‘나 천혜자는 씩씩하다’ 그러면서 살았습니다.”
20년간 60명 외인 입교와 냉담자 회두시켜
그는 영세를 받고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외인 입교와 냉담자 회두를 통해 60명이 하느님의 품으로 이끌었고, 레지오
단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교님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제일 먼저 신자인줄도 몰랐던 시어머님께서 냉담을 풀었고, 그 다음은 아들과
남편, 시댁 식구들, 친정식구들, 친구, 그리고 함께 사는 이웃들이었다.
선교의 방법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면 그는 할 말이 없다고, 나 천혜자 수산나가 사는 모습이 선교라고 말한다.
“신앙을 갖고 싶어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찾고 있던 중 꿈에 문이 보였고 강열한 빛이 제게 보였습니다. 성당 다니는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수녀님을 모시고와 말씀을 나누게 되었고 따뜻한 손길의 수녀님으로부터 ‘하느님 부르심입니다. 성당에 나오세요’라는
말씀과 함께 교리를 받게 되었는데, 교리를 받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하느님을 의심 없이
내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온전히 믿고 삽니다.”
너의 모습을 보고 나도 성당에 가고 싶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부담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부유한 삶을 사시던 시댁의 작은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집까지 경매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제가 찾아가 저희 집에 오셔서
함께 살자고 말씀드렸고, 작은아버지는 조카며느리의 말에 감동하여 성당을 나오셨습니다. 작은아버님께서는 영세후 신구약성서를 쓰기
시작하셨고 살고 계신 그 집에서 성서 쓰기를 마칠 수 있도록 6개월의 시간을 하느님께 청원 했습니다. 그 간절한 소망에 3년의
시간을 허락하셨고, 삶의 큰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던 무한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무한한 예수님의 사랑 보았습니다”
천혜자 수산나 씨는 현재 퇴계동 성당에서는 평화의 모후 Pr. 단장을 맡고 있으며, 복지관에서 장애인 목욕봉사를 하고, 성 골롬반
요양원에서 말씀봉사와 호시피스 시립요양원에서 10년째 봉사하고 있다. 어려운 사람들이 기도를 부탁하면 정말 열심히 그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말씀을 참 잘하신다고 했더니 제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은총을 선물로 받았다며 웃으신다. 인터뷰를 끝내고 차 한 잔을 나누며
성모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기도발이 좋다고 소문난 수산나 씨에게 나도 우리 아들 기도를 부탁했다.
천혜자 씨!
삶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을 선교시킨 그 모습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천혜자 수산나가 되십시오. 수고
많으셨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월간지 2014년 12월호 참조